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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사명과 선포(1-7)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임하셔서 치유하고 회복하십니다. 이사야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십니다. 오랜 후에 그리스도는 이 본문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이 아름다운 소식이 곧 복음임을 상기시킵니다.
1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5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6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7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1-7)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합니다. 놀랍게도 위로는 역설적입니다.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교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복하심으로 은혜의 해가 도래하게 하십니다.
(1) 종의 자기소개 (1a)
종은 자신을 여호와의 영이 함께하고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소개합니다(la). 좋은 자기 힘을 의존하지 않고 여호와께 능력을 받아 사명을 완수하는 자입니다(42:1; 48:16). 그에게는 여호와의 영이 지속적으로 함께합니다. 현재 문맥에서 기름 부음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지속적 권위’에 관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구약에서 영의 수여는 주로 통치자에게 나타나고, 기름 부음은 제사장의 서임식이나 왕의 대관식 때 행해지고, 예언자는 열왕기상 19:16에서 한 번 언급됩니다. 갇힌 자의 해방을 선포하는 사면권은 왕의 권리에 속합니다. 따라서 여기 좋은 예언자 이상의 왕적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종의 오중적 사명(1b-3a)
이어서 좋은 자기의 사명을 다섯 가지로 요약합니다(1b-3a). 첫째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52:7-8; 40:9; 41:27). 율법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보장해주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법적 권리는 쉽게 짓밟혔습니다. 강자에 의한 약자의 수탈은 예언자들의 핵심 고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은 위로보다는 가난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사건과 관련 있습니다. 둘째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자’(마음이 부서진 자)는 삶에 지치고 마음에 상처받은 자입니다. 가난한 자는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힘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불이익을 당합니다. 내용상 이들은 66:2의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와 동일시됩니다. 셋째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유’는 안식년의 종의 해방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입니다(레 25:10; 렘 34:8,15,17; 겔 46:17). 빚 때문에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사람의 자유를 되찾아주는 안식년 또는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 종의 사명입니다. “포로된 자”와 “갇힌 자”는 1차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 특히 빚을 갚지 못해 경작지를 빼앗기고 종이나 소작농 또는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넷째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내용상 세 번째 사명에 직접 이어집니다. 율법에 따르면 7년마다(안식년; 출21:2; 신 15:12) 또는 50년마다(희년; 레 25:10-12) 종들의 해방이 이뤄지는 ‘은혜의 해’가 선포됩니다.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하나님의 정의가 불의를 심판하는 날입니다. 그분의 정의는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에게는 은혜와 구원으로, 부당하게 약자를 착취하는 강자에게는 보복과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해’와 ‘날’은 특정 시점의 표시보다는 ‘때의 전환’을 가리키기 위해 함께 언급된 것 같습니다. 다섯 번째는 “모든 슬픈 자”, 곧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는 것입니다(40:1;57:18; 마 5:4). 종은 탄식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이들에게 축제와 기쁨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합니다. 재를 뿌리던 머리에는 “화관이 씌고, 슬픔으로 얼룩진얼굴에는 “기쁨의 기름이 빛나고, 베옷이 사라지고” “찬양의 옷”을 입습니다. ‘기쁨의 기름’(시 45:7)은 축제를, ‘찬양의 옷’은 축제 때 입는 옷을 가리킵니다.
(3) 시온의 재건과 영화(3b-7)
3b절부터는 종의 해방과 위로의 말씀을 받은 자들에게 주는 말입니다. 종의 선포를 받아들인 자들에게 새로운 이름이 주어집니다. 이들은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참조. 60:21)라고 불릴 것입니다. 파괴된 땅의 재건과 그 땅에 사는 자들의 의로움(구원)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새로운 구원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거대한 의의 나무로 성장해 심으신 분의 영광을 찬양할 것입니다. 종의 사역이 긍정적 결실을 봅니다. 위로받고 놓임을 받은 자들(‘의의 나무’)이 오랫동안 폐허로 남겨진 성읍들을 재건할 것입니다(4). “중수할 것이며”는 원래 ‘새롭게 하다’를 의미합니다. 이사야서 후반부의 용례들은 시온의 재건이 회복을 넘어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을 시사합니다(참조. 48:6-7; 62:2; 65:17; 66:22). 5-6절에서는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직접 약속이 주어집니다. 폐허가 된 성읍을 복구하는 시온의 주민들을 위하여 밭과 포도원에서는 외인(타지인들)과 이방인이 노동자로 일합니다. 이스라엘은 앞으로는 이방인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신하여 양 떼를 치며, 밭을 경작하고 포도원을 재배하게 됩니다. 시온 공동체는 “여호와의 제사장,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로 불리고, 제사장이 일반 백성이라는 십일조와 예물을 자기 몫으로 받는 것처럼(레 27:30-33; 민 18:21-32), 모든 민족에게서 재물을 받아 향유하게 됩니다(참조, 60:5-7,16). 시온 공동체에게는 제사장의 우월적 지위가, 민족들에게는 시온 공동체를 물질적으로 부양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참조 롬 15:26-27). “의의 나무”에게 “그들의 땅에서 갑절”의 몫과 “영원한 기쁨”이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고난을 이겨낸 욥에게 갑절의 보상적 축복이 주어진 것처럼(욥 42:10), ‘재와 슬픔과 근심’의 삶을 산 시온 공동체가 이전에 소유한 것보다 갑절이나 많은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영원한 언약과 축복(8-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죄 사함의 자유를 누릴 뿐 아니라 죄를 이기고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경험하도록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십니다.
8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8-9)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역시 과도한 강탈로 이스라엘을 압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행위에 보상하십니다.
(1) 영원한 언약(8)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시는 여호와께서 폭력적 착취에 시달리는 자들을 위해 개입하십니다. 그분의 정의는 백성에게는 구원으로, 백성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8b절은 내용상 7절에 연결됩니다. 그분께서 수치와 능욕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갚아 주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십니다. 수치 당한 자들의 의로움이 여호와에 의해 인정을 받고, “영원한 언약”(55:3; 59:21)체결로 “영원한 기쁨”이 보장됩니다. 다시는 언약의 파기로 징벌에 떨어져 치욕거리가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구원 사역에 세계사적 전망이 주어집니다.
(2)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9)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구원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40:5; 52:10) 이들을 “여호와께 복받은 자손”으로 인정하게 됩니다(9). 축복은 언약 준수에 따른 여호와의 선물로, ‘영원한 언약’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한 축복을 보장해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손의 축복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창세기 12:23의 약속을 읽어내는 것도 가능한데, 경우 민족들은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복 받은 이스라엘을 통해 주어질 축복의 수혜자들, 곧 이스라엘의 구원사에 참여하는 자들이 됩니다.
감사의 노래(10-11)
하나님의 거룩하신 땅에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공의롭고 정의로운 삶을 살며, 불의는 어느 것에도 없을 것입니다. ‘싹’이 메시아를 상징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개될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을 통해 종말에 일어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10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10-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열매들입니다. 하나님게서는 구원받을 백성들의 삶을 구관하셔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이며 공의로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1) 넘치는 기쁨(10)
화자 ‘나’는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인 결혼식에 비교해 여호와께서 주신 은혜를 노래합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위해 아름답게 치장하듯이 여호와께서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으로 입혀주셨고 슬픔의 베옷 대신 “찬송의 옷”(3)을 입혀주셨기에 그는 기뻐합니다. ‘구원과 공의’는 승리 또는 ‘인정받음’을 의미합니다. “사모를 쓰며”는 문자적으로는 ‘제사장처럼 화관을 쓰며’로, 대제사장의 화려한 의복(출 28:1-43; 39:1-31)을 염두에 둔 표현 같습니다. ‘사모’(퍼에르)는 장식용 머리띠(3:20;겔 24:17,23) 또는 제사장이 머리에 쓰는 가는 베로 만든 관을 가리킵니다(출 39:28; 겔 44:18). 현재 문맥에서는 3a절의 재 대신 쓰게 될 ‘화관’에 연결됩니다.
(2) 여호와의 공의와 찬송(11)
11절은 9절을 받아 시온의 구원과 축복 가운데 나타난 여호와의 공의가 민족들에게도 알려집니다. 땅이 새순을 내고 동산이 씨를 자라나게 하는 것처럼 그분께서 모든 민족 앞에 ‘공의와 찬송’이 솟아나게 하실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땅에서 갑자기 싹이 돋아나듯이 민족들이 이곳저곳에서 여호와의 공의를 봅니다.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호와의 활동과 능력이 민족들에 의해 매우 신속하고도 전격적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수치스러운 삶을 살던 시온이 찬송의 대상이 됩니다. 민족들은 시온이 ‘여호와께 복 받은 자’임을 인정하고(9) 구원받은 시온의 명성을 노래합니다.
사람이 비참한 상황에 빠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생들을 그냥 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는 이스라엘을 구속해 주셨습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선물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영광을 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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