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노동자 중에는 돈 빌려가 떼먹는 뺀질이도 많습니다.
‘학출’들은 노동자들을 운동의 대상으로만 삼으려했지 진정한 동료로서
대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운동가들이 현장에서 ‘상처’만 받고
떠난 배경이지요.”
그가 왜 ‘아직도’ 현장에 있어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특히 80년대는 너무 사람을 귀하게 취급하지 않았다고 질타한다.
“한 공단에서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은 의리와 인정, 공동체적 유대감 등
나름의 ‘속살’이 있습니다. 아무리 삭막한 공단이지만 대부분이 농촌 출신인
그들에겐 ‘농심’이 배어 있습니다. 인간관계나 문제를 푸는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은 그래서 획일화를 싫어한다.
“노래엔 젖은 눈동자 남아/ 적시네 남은 생애를/ 어디서 솟은지 몰라/
눈물샘 마르지 않네 노래엔/ 젖은 눈동자 남아/ 적시네 남은 멸망과/
그 이후의 더 진한 눈물까지…”(‘젖은 눈동자’).
꿈이 사라져버린 90년대 부평에 홀로 남은 시인은 괴로워 했다.
“나의 시간은 여전히 대치선 위에서 떨고 있다”(‘길’)고 외치기까지 했다.
시인은 그러나 억지로 전망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새삼스럽게 시를 과학의 도구로 내세우는 것도 철 지난
편향일 따름이라고 본다.
그것은 시인의 몫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그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는 시적 통찰력이 담긴, 예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부평은 이런 시인의 마음을 담기엔 안성맞춤이다.
작금의 노동계와 정부의 대치국면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동의’를 거치지 않는 변혁은 모두 허위”라고 단정한다.
아직도 시인의 할일이 남은 세상이 야속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하다.
글 조정진, 사진 이제원기자/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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