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를 바라보며
제8회 작품상
이범찬
나는 우리 동네를 가장 아름답고 살기 편한‘꽃동네’라고 자랑한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방아다리 근린공원이나 빌라 단지의 담장 안에는 봄 꽃들이 이어서 피어난다. 꽃잎이 떨어지고 연두 빛 새싹과 잎이 피어나나하면 어느 결에 짙은 초록으로 물들이고 여름의 활기를 내뿜어댄다. 이팝나무 가로수가 흰색의 꽃잎으로 뒤덮일 무렵이면 우리 꽃동네에는 배롱나무와 능소화가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능소화凌霄花는‘담쟁이덩굴’처럼 벽을 타올라가는 기술이 탁월하다. 다른 물체를 감고 오르는 등나무를 닮았고, 황금빛 꽃을 피움에 금등화金藤花라 불리기도 한다. 옛날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왔을 땐 그 아름다움이 남달라 양반집에서만 이 꽃을 심을 수 있게 하였기에‘양반꽃’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우리 집 대문 옆에는 굵은 능소화가 한 그루 심겨 있다. 올해도 봄꽃이 자취를 감추니 어김없이 주황색의 화사한 꽃을 피워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송이가 담장 너머로 주렁주렁 매달려 황홀할 지경이다. 먼저 핀 꽃잎이 떨어지면 다른 마디에서 새 꽃을 피워낸다.
능소화가 필 무렵이면 배롱나무도 따라 핀다. 우리 집 뜰에는 배롱나무도 한 그루 심었는데 능소화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붉은 꽃떨기를 흔들어댄다. 그러나 능소화는 한 그루라도 좋지만, 배롱나무는 길가에서 줄지어 피어야 장관이다. 문득 울진의 배롱나무 꽃길이 떠오른다.
배롱나무는 홀로 서 있을 때보다 특히 무리지어 있어야 그 꽃이 사뭇 황홀하다. 배롱나무 꽃길에 나보다 더 홀린 상남 시백을 따라 뜨거운 여름이면 남녘으로 나들이에 나선다. 울진의 덕구리 고개를 넘으면 배롱나무들이 수십 리 긴 줄을 지어 도열한 꽃대궐을 만난다.‘야트막한 키에 우산살 같이 가지를 뻗어 붉은 꽃떨기를 잔뜩 달고, 스치는 바람결에 간질이지 않아도 바르르 떤다. 온 천지를 붉게 물들일 듯 타오르는 지심地心의 불길’을 나는 달린다.
-「배롱나무 사랑」에서
능소화의 꽃말이 궁금해서 찾아보다‘명예’라는 것을 알아내기는 했는데, 곁들여 올라온 가련한 전설이 가슴 아프다. 어차피 전해오는 이야기라니 믿거나 말거나지만.
먼 옛날 궁궐 안에 들어온‘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발그레한 볼과 얌전한 자태가 임금님의 눈에 띄어 하룻밤의 성은을 입고서 빈이란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궁궐 한 편에 처소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빈들의 이간질로 왕은 소화의 처소에 발길을 끊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소화는 임금님 오시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혹시나 임금님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오시지나 않을까? 그 발자국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소화는 처소 주위를 서성이며, 수시로 담장 밖을 살피게 되었다.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임 향한 일편단심에 무심한 세월은 흘러만 갔고.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결국 두 번 다시 임금님을 뵙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무더운 여름날 눈을 감게 되었다.“저를 처소 담장 아래에 묻어주세요. 죽어서라도 임금님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시녀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그렇게 담장 밑에 묻힌 소화는 이듬해 여름, 환생이라도 한 듯 덩굴을 뻗어 담장 너머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능소화'가 되었다고 한다.
능소화의 전설은 가련하고 가슴 아픈 사연이지만, 우리 집 능소화는 밝은 표정에 기쁨뿐이다. 담장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주인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다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나는‘파크빌라 능소화’에 새로운 꽃말을 지어주고 싶다.‘환영’이라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꽃들은 자취를 감췄다. 나는 담장 안의 능소화를 바라보며 내년의 염천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빈이 된 궁녀가 시샘으로 쫓겨나니
그리운 임 못 잊어 담장 타고 기어올라
꽃잎은 화려하여도 속절없는 명예뿐
삼복의 열기 속에 지쳐서 늘어져도
돌담엔 화사한 꽃 주렁주렁 매달려
반기는 소화의 자태 잊을 수가 없어라
-「능소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