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비구니계의 큰 별 원적에 드시다.












스님의 행장
선, 율, 경 을 두루 섭렵하신 지행합일의 큰 스승
한국불교 비구니계의 대 강백이자 청정율사이신 묘엄스님,
스님은 1931년 정월 경남 진주에서 청담스님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스님의 어머니 태몽에서 어느절에 갔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복숭아 두개,
하얀 연꽃과 붉은연꽃을 접시에 담아 주었는데,복숭아는 먹어 버리면 그만이다
싶어 흰 연꽃 한 송이만 받아 집으로 가져와 꽂았다고 한다.
맑게 핀 연꽃 한 송이가 바로 묘엄 스님인 것이다.
아버지 청담스님은 묘엄스님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출가 득도 했다 .
묘엄스님은 193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에 진주 공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주 일신여학교에 진학하려 했는데 그 무렵 흉흉한 사회정치상황에 쫒겨
청담스님이 주석했던 문경 대승사로 피신을 갔다.
그 인연으로 열다섯 소녀가 세속을 떠나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된다.
대승사 윤필암에서 당대 비구니 선승인 월혜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묘엄스님은
성철스님을 계사로 청담 ,청안, 자운스님의 참석하에 사미니계를 수지했다.
당시 성철스님은 "내가 아는 것을 너에게 다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고 묘엄스님이 출가를
결심하자 "숭중계의 큰 스님이 되라"며 <화엄경>의 세주묘엄품에서 따온
이름, 묘엄<妙嚴>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이후 묘엄스님은 윤필암에서 스님으로써 갖추어야할 행해율의를 배우면서 대승사 큰절을
왕래하며 당대 내노라하는 큰 스님들로부터 "중노릇" 잘하는 가르침을 받았다.
성철스님으로 부터 한국역사를 배웠고,자운스님은 계율을,청담스님은 수행자로서 대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줬다.
한번은 윤필암에서 전 대중스님들이 큰 스님들로부터 능엄주 공덕설 법문을 듣고
크게 발심하여 철야 용맹정진을 했는데,묘엄스님은 무려 21일 동안 눕거나 자지 않고
능엄주 주력을 하여 부처님 위신력을 입기도 했다.
이후 문경 봉암사로 거처를 옮긴 스님은 성철스님으로 부터 '만법은 하나로 돌아갔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갔는고?'라는 화두를 받아 참선 수행에 매진했다.
또 역대 조사스님들의 사상과 철학을 공부했다.
이는 스님이 반세기 이상 강사로서 후학을 가르치며 올바른 수행의 길을 걸어온 밑거름이 됐다.
생전에 묘엄스님은 제자들에게 "누더기를 입어도 정신은 살아있던 봉암사 시절이
가장 중답게 살던때"라며 "요즘 중노릇 하는 이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도
진심을 내지 않고 방일하다"며 경책 하기도 했다.
봉암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식차마나니계를 수지한 묘엄스님은 1950년 통도사로 내려가
자운스님 문하에서 계율학의 기본이 되는 사미니율의와 비구니계본,범망경등을 공부했다.
청정승단을 회복하고 정법을 구현할 율맥을 잇는 비구니 율사로서 터전을 굳힌 계기다.
스님은 출가이후 7년간 해방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동기에도 불구하고 대승사 윤필암,
해인사 국일암,동래 금화사, 월내 묘관음사,창원 성주사 등지에서 수선안거를 하며
흔들림 없는 구도의 길을 걸었다.
비구니 강원이 전무했던 시절 동학사에 주석하고 있는 대강백 운허스님을 찾아가
비구니로서는 처음으로 경전공부를 시작했다.
공주 동학사에서 사교과를 수료하고 경봉스님으로 부터 전강을 받은 스님은 7년간
맹자와 논어,치문부터 일대시교를 다 마치고 운허스님으로 부터 전강을 받았다.
1958년 영축총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니 구족계를 수지했고,
1959년 비구니 전문강원인 동학사에서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취임했다.
이후 스님은 현대식 교육을 통한 학문적 시야를 넓히기 위해 마산대 불교학과를
수료하고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청도 운문사 강주로 취임하여 후학을 지도하다가 1971년 수원 봉녕사에 정착했다.
봉녕사 강원을 개원하고 이후 40년간 학장을 맡으며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
한국 비구니 교단의 미래를 밝히는 동량을 양성시켰다.
2007년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비구니스님의 최고 법계인 명사법계를 품서 받았고,
2009년 조계종 계단위원회로부터 비구니 전계화상으로 위촉됐다.
스님의 임종유훈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