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어를 키우면서 좌충우돌,
애꿋은 열대어만 숱하게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저 맑은 물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무산소 물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분명 어항속의 물은 정화되어 맑기만 한데,
한 마리, 두 마리
그렇게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열대어를 보면서
맑은 물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무산소 물,
그래서 적절하게 새로운 물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산소공급기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물 속에 산소를 녹아들이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열대어는 죽어나간다.
비록 예전처럼 떼죽음은 아니지만
한 마리, 두 마리
그렇게 물 위에 둥둥 떠서 자신의 죽음을 알린다.
새벽예배가 끝나면 어김없이 어항을 살펴보는 일이
요즘의 일과가 되어버린 나,
그 열대어의 죽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어제도 한 마리가 둥둥 떠 있다.
핀셋으로 건져내며
죽음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그렇게 가슴이 철렁내려앉지는 않는다.
어느새 달관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습관으로
풀 잎을 찬찬히 훓어보게 된다.
그러면 어김없이 깨알보다 더 작은 생명체가 꼬물거리며
노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구피의 죽음이 그저 죽음이 아니고
또 다른 생명 낳기의 일이었다는 사실.
어항을 가득 채웠던 성어들이 하나 둘 죽어나가고
어느틈엔가 그 자리를 채운 치어들의 세상이 되어간다.
치어들은 그 모습이 하나같다.
그래서 똑같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
점점 더 모습을 갖춰가며
저마다 다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한 종자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제법 씨알이 굵은 모습에서
죽어간 에미의 모습을 발견한다.
거무튀튀한 새끼의 모습이 사라지고
형형 색색으로 오가는 그 모습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래서 열대어를 키우나보다 생각하며
오늘도 깨알보다 작은 네 마리의 유영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한 마리 어미의 죽음이 여러 마리로 나뉘어 나타나는 생명의 신비
오늘도 열대어로 채워진 어항에는 생명의 이어짐이 계속되고 있다.
터키산 닥터피쉬,
저승사자로 이름한 닥터피쉬의 바쁜 움직임에
어항의 건강한 생명력은 오늘도 유지되고 있다.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교회 일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묵은 신자가 새신자를 낳기 위해 자신이 죽어야 여러 새신자가 탄생 하는데 우리는 아직 죽을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 부끄럽군요.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메스컴을 통해 비춰진 기도원의 일을 말하며 분개 하고 ...정말 주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힘없는 자들을 농락하고 있으니 복음 전하는 일이 점점 힘이 드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새생명을 주셨으니 끝까지 승리 할것을 믿고 간구 합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살 길이 있다는 게지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자신의 존재감을 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부끄럽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다시금 마음에 새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