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관의 사명
그동안 출간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보았다. 비교적 나름대로 관심이 가는 분야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였다. 기억에 남는 군사관련 서적을 꼽으라면 「로버트 마시」(민평식 역)의 『피터대제』, 「칼 하인츠 프리저」(진중근 역)의 『전격전의 전설』, 「클라우제비츠」(류제승 역)의 『전쟁론』, 그리고 「바버라 티크먼」(이원근 역)의 『8월의 전설』 등이다. 이 책들은 하나같이 탁월한 번역으로 원작자의 의도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역작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원어에 능통한 번역가의 제 2의 창작에 준하는 내용은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작으로 공직자는 물론이고, 사회지도층 인사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란 생각이 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전쟁은 국가지도자의 오판과 욕망에 의해 발생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백성의 몫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여 전쟁을 대비하는 이유는 유사시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과거 전쟁사를 통해 도출된 교훈을 면밀히 연구하여 그로인한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사의 연구는 국가번영의 지름길로 사전에 젊은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최근에 어느 선배님으로부터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초대장을 받았다. 제목이 『한국인의 눈으로 본 제2차 세계대전사』이다. 저자와는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주요 부서에서 근무 후 정예 장교 양성을 위한 군사학과의 설치를 주도했으며, 항상 논리가 정연하고 박학다식하여 많은 학생들과 동료교수로부터 존경을 받은 분이다. 언젠가 대형로펌에 있는 그의 개인사무실에 갔다가 책장에 빼곡하게 들어 있는 전쟁사 서적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무래도 타인보다 탁월한 정세의 판단과 정확한 결심은 많은 독서량의 결과였으며, 사실 풍요로운 대화도 독서의 기초가 굳건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폭넓은 장서는 전혀 새로운 인상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수시로 「존 키건」의 『1,2차 세계대전사』와 『8월의 포성』 등등의 귀한 책을 복사본으로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특히, 러시아군 「투하쳅스키」 원수가 군 현대화로 기갑부대를 육성하여 훗날 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 군 최정예 부대인 SS 기갑사단을 저지시킨 과정의 설명은 압권이었다.
이 때부터 종종 평생의 업적으로 ‘세계전쟁사’를 쓰고 싶다 했는데 장장 15년이 넘는 집필과정을 거쳐 역작을 완성한 것이다. 나이는 마음의 훈장이라더니 그 훈장보다 몇 배는 더 빛나는 업적을 남긴 쾌거에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낸다. 누구나 마음은 있어도 성큼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전문가들조차 엄두도 낼 수 없는 전쟁사의 집필은 얼마나 험난한 질곡(桎梏)의 과정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더구나 국내에서의 자료는 거의 전무할진데 그 과감한 도전과 성공이 부럽다.
일찍이 「사마천」은 『사기열전』의 「태사공」자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무릇 효도란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며, 그 다음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고, 마지막은 자신을 내세우는데 있다. 후세에 이름을 떨침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으뜸이다”고.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갖고 있지만 현실을 그리 녹록하지 않다. 누구나 공명을 떨친다고 하면 이 세상 일이 얼마나 쉬운 일이겠는가? 그만큼 이번의 쾌거는 작자 자신은 물론이고, 출신학교와 고향의 부모님을 비롯한 일가친척에게도 큰 영예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가의 녹을 먹고 살았으면 무엇인가를 주변에 남겨 끝까지 위국헌신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목민관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불후의 명작인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남겼다. 적어도 백성을 다스리고 계도하려는 관리 혹은 지도자들이 어떤 마음자세를 구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이다. 그는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목민관의 바른 자세’로 청렴한 자세를 누누이 강조했다.
『목민심서』는 목민관으로 불리는 지방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 이다. 부패의 극에 달한 조선 후기 지방의 사회 상태와 정치의 실제를 민생 문제 및 수령의 본무(本務)와 결부시켜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명저이다. 과거에 이 책은 고위공무원을 양성하는 각 연수원에서 입학 전에 반드시 읽고 그 독후감을 제출해야하는 필독서였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이 있다. 오늘 날 미국사회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카네기」와 「록펠러」가는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도 반복하였다. 하지만 조성된 부를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는데 활용하였다. 누구나 한 때의 실수는 범하기 마련이지만 유용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수를 위한 일에 기여하면 바른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우리주변에도 종종 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지만 소위 대재벌의 집안에서는 재산의 분할을 두고 가족끼리 극한의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다. 근본 없는 천민자본주의의 실체를 과감 없이 보여주는 현상이다. 일반 보통국민들에 의해서 쌓여진 부가 그들만의 잔치로 계승되는 자본주의의 맹점을 개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일이다.
역사를 보면 한 인물이 남긴 족적은 그 과정 못지않게 그 결과가 평가를 받는다. 웬만한 과오는 정당한 결과 여부에 따라 용서를 받는다. 그만큼 사후의 역사적 판단은 매우 냉정하고 엄정하다.
우리는 다양한 각계각층에서 훌륭한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가 재직 중에 축적한 업무지식이나 훌륭한 정책을 사장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과정에서 그 자신이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는 후배들의 타산지석이 된다. 이에 마땅히 직무와 관련된 지식을 전승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그야말로 올바른 ‘목민관의 사명’이다. 옛 시절에 개인 문집을 만들어 후대에 전하듯 우리 사회에서도 그러한 미풍을 되살려 각 가정과 사회와 이 나라가 건전하게 발전하길 희망한다.
(2024.6.17.작성/6.19.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