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誡(자계) 스스로 경계
의천 義天
悠悠無定志 유유무정지
不肯惜光陰 불긍석광음
雖曰攻經論 수왈공경론
寧知目面墻 녕지목면장
세월만 보내며 정한 뜻이 없으니,
아끼지 않는구나, 빛과 같이 가는 세월
비록 경론을 공부한다고는 하지만,
어찌 알랴, 벽을 마주하고 있는 줄을
의천(義天, 1055~1101)
고려 전기의 천태종 고승. 호: 우세(祐世). 시호: 대각국사(大覺國師).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의 넷째 아들이다. 왕자로서 자원 출가하여 불교는 물론 유교의 전적과 제자백가까지도 두루 섭렵하고 송나라에 유학하였다. 귀국 후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국내외에서 불교서적을 두루 수집하여 《신편제종교장총록》이라는 목록으로 정리하였다. 이를 간행한 것이 《고려속장경》이다.
'자계'는 학문에 정진해야 할 사람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경계하는 시입니다. 의천은 자신에게 시간을 아끼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경전을 공부한다고 해도 결국 학문이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퇴직 후 牛耳書堂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 설익은 서예나 문인화 실력으로 좀 더 발전해보려고 필묵을 주물럭거리며 우물쭈물하다 보면 하루가 언제 갔는지 해가 지고 만다. 퇴직 하면서 무엇에도 拘礙 받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살려고 했던 결심도 결심이지만, 古稀가 이마에 걸리고 보니 몸도 뜻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이에 무엇이 급할 것인가. 무엇을 더 이루려고 무엇을 더 바라고 매진할 것인가! 의천대사의 自誡를 보면서 그래도 스스로 크게 나태하지는 않지 않느냐고 위로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위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팽팽하게 긴장된 시간보다는 느슨한 하루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