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세계에서 이 도시만큼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방문하는 곳이 또 있을까? 텔레비전과 영화에서 등장하는 뉴욕은 대체로 화려하고 세련되며 낭만이 넘치는 멋진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곳이고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하는 곳이기도 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모습과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 따로 있음을 이번 뉴욕 방문에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도착한 날은 마침 금요일이었다. 오후에 호텔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남편과 아이와 함께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공항에서부터 간간이 코를 찌르던 냄새가 타임스퀘어 부근에서는 진동을 했다.
마약 냄새였다. 대마초 합법화로 인해 미국의 대도시에 마약 냄새가 흔하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작년에 갔었던 LA와 샌디에고에서는 마약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다. 이 두 지역에 마약 냄새가 없었다기보다는 내가 잠시 방문했던 곳들이 냄새가 유난히 나지 않는 장소였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에서 마약 냄새가 어떤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사실 컸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내 탓도 있겠지만 마약 냄새로 인해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아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
뉴욕에 대한 첫 인상이 완전 구겨지게 되면서 나는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지 걱정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날부터는 첫날만큼 냄새가 심하지 않아서 뉴욕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금요일 타임스퀘어가 가장 사람이 붐비다보니 마약 냄새도 가장 심했던 것 같다. 나머지 날들은 다소 덜 심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길을 걸으면 종종 냄새를 맡게 되어 눈쌀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하나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노숙자가 생각보다 많고 아무데나 널브러져 있다는 점이다. 행인들은 마치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양 지나친다. 행여 눈길이라도 마주치면 따라오면서 해코지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된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나 내 시선도 언제나 땅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며칠 동안 맨하탄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문득 궁금했다. 뉴욕시 시장은 아무데나 쓰러져있는 노숙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뉴욕이라면 세금도 많이 걷힐 것 같은데 지저분하고 화장실 냄새가 나는 일부 길거리들을 왜 방치하는 것일까? 내가 모르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을 수 있다. 세상 일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님을 내가 왜 모르겠나.
마약 냄새와 노숙자로 인해 뉴욕을 싫어하거나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타임스퀘어 주변을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나가니 내 마음에 쏙 드는 지역들이 있어서 참 좋았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맨하탄 브릿지와 브루클린 브릿지가 동시에 보이는 이스트 강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경치를 즐기며 멍때리고 싶을만큼 좋았다.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뉴욕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뉴욕을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과 별개로, 뉴욕에 대해 보여주는 면과 보여주지 않은 면이 있음을 아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이번만큼 삶의 본질에 대해, 교육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적이 또 있었을까?
뉴욕의 화려함 이면에 담겨 있는 모습이 유난히 내 눈에 밟혔다. 뉴욕만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국가와 교육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자꾸 되묻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국가는 과연 국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일까? 교육은 과연 사회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는가? 교육 만능주의를 경계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교육이 어느 정도는 사회에 긍정정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자꾸만 흔들렸다.
뉴욕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마약을 금지하고 노숙자가 잘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는 과연 국가가 제기능을 잘하고 좋은 교육 덕분인가?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더 심란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심각하고 더 큰 문제들을 일상에서 직면하고 있지 않은가?
국가의 역할까지는 잘 모르겠고 나는 교육학자이니 교육에 대해서만 생각을 해 보겠다.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웠다고 해서 사회에서 사람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그럴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뉴욕에 있는 동안 뉴스를 통해 트럼프가 구치소로 이동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봤다. 이미 열번도 넘게 기소가 되었던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공립이 아닌 비싼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비싼 사립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 중에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학교 교육이 별 의미가 없는 사례들이다.
미국만 그러한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공교육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받고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고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 가운데 제대로 된 시민 의식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많지는 않아도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다녔지만 이번 만큼 여행 내내 그리고 여행 이후에도 머리가 복잡한 적은 처음이다. 멋지고 화려한 볼거리들을 구경하고 맛난 음식들을 먹으며 여행을 즐겼음에도 말이다. 이래저래 신기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