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는 지금, 2022년 6월까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도망으로 넘어온 제주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나는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이 도망이 운명인 거겠지.
나와 맞는 주파수를 가진 제주.
나는 현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에 살면서 조금은 특이해진 습성이 하나 있다. 유명한 곳은 기피하는 것. 원래 제주 이주를 하기 전엔 여행할 때면 보통 유명한 곳을 당연히 넣었고, 그 안에는 성산일출봉, 함덕해수욕장, 사려니 숲 등의 여행지들이 꼭 포함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앞서 말한 여행지는 늘 후 순위이고, 사람이 적은 숲, 오름 같은 경우를 찾고, 바다 같은 경우도 드라이브가 아니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두피디아' 내에도 보통은 마이너 한 여행지가 많이 올라온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은 이 습성을 지우고자 유명한 여행지를 찾았고, 그 선택지로 비자림이 선택되었다.
비자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비자숲길 55
비자림은 1993년 8월 19일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된 숲으로 문화재청에서 소유하고 있다. 구좌읍 평대리 서남쪽 6km 되는 지점에 448,165미터제곱 면전의 커다란 숲 비자림. 짧게는 500년 길게는 800년의 비자나무 2,570그루가 밀집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단순림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나무 높이는 보통 7~14m, 지름은 50~110cm, 수관폭은 10~15m에 이른다.
이곳 비자나무 숲이 이루어진 유래는 마을의 무제에 쓰이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라 식물상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섬의 진상품으로 바쳤던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했다. 지방분이 있어 비자유를 짜기도 하는데, 기관지 천식이나 장기능에 효험이 있다. 나무는 또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숲 가운데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최고령목이라고 하는 800년 이상 된 비자나무가 있는데, 높이 25m, 둘레 6m로 비자나무의 조상목이 있다. 그 조상목을 향해 숲을 걷는 것. 그게 비자림의 특징이다.
비자림 여행기
비자림 여행의 시작은 사실 약간의 운도 따른다. 처음 여행을 한 건 바다 쪽 드라이브로 시작했다. 김녕해수욕장에서 시작된 여행. 김녕해수욕장을 넘어 평대리, 세화해변까지 여행을 하고 나서 친구가 다른 관광지도 가보고 싶다는 말에 더운 날씨를 피해 '만장굴'을 가는 게 어떠냐고 나는 권했다. 굴이라는 이유로 젊은 여행자들은 잘 찾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고, 여름엔 시원함을 선물하는 곳이기에 나는 이곳을 추천했다.
물론, 친구도 그 말에 궁금하다 말했고, 만장굴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6월 1일 지방 선거일에는 만장굴이 정기 휴무일이었고, 그걸 만장굴 입구까지 가고 나서야 알게 됐다. 급하게 여행지를 옮겨야 하는 순간. 우리는 만장굴에서 가까운 비자림을 택했고, 그곳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휴일이라서였을까. 그 넓은 비자림 주차장은 만차였다. 좁은 주차 공간, 그 모습에 '내가 유명한 관광지를 이래서 싫어한다니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시 주차장을 빠져나와 조금 먼 곳에 차를 대고 걸어서 비자림으로 간 나는 그럼에도 결국 유명한 여행지를 여행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또, 왜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지를 깨닫게 됐다.
도민이라는 이유로 무료로 입장한 비자림. 제주에 살면서 좋은 점이라면 이런 것 같다. 도민이라는 이유로 받는 여행지의 혜택. 특히 나처럼 몇 년 살지 않은 이주민에겐 최고의 혜택이다. 그렇게 나는 무료로 비자림을 입장했고, 약 한 시간가량의 산책로를 걸을 수 있었다.
비자림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많이 알고 있다. 또 여행자의 입장이었을 때 이곳은 꽤 여러 번 찾은 여행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주민이란 입장이 되고선 아마 처음이었던 비자림. 그 느낌은 여행자였을 때완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자였을 땐, 오롯이 이곳을 즐기기보단 사진을 찍기에 바빴던 것 같다. 언제 또 비자림을 와보겠냐며 주객을 전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마음에 오롯이 숲을 즐길 수 있었다.
숲 사이사이의 숨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비자나무에서 쏟아지는 피톤치드, 시원한 바람,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막까지 모든 게 '비자림' 안에 있었다. 또 걷는 내내 보이는 원시림은 마치 영화 쥐라기월드를 연상시켰고, 500년이 넘은 숲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비 오면 그 모습이 더 짙게 다가온다는데, 맑은 날의 비자림도 그에 못지않게 짙었다. 천 년의 숲이라 하는 비자림. 가장 오래된 나무인 새천년 나무를 향해 걸으며 보는 눈과 귀에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피부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까지 모든 게 짙게 남았다.
반환점인 새천년나무를 지나 다시 30분 가량을 걸어 나온 비자림. 단일 수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숲이라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제주도는 숲의 섬이라 말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곶자왈' 지형,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수종 숲 '비자림'이 이곳에 있으니까.
비자림 숲은 명성만큼, 또 많은 사람이 찾는 숲인 만큼 그 가치를 하는 곳임에는 분명했다. 아름답게 빛나는 숲. 그게 비자림이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인기가 많은 숲인 만큼 주차는 이날 어려웠다. 무질서하게 주차라인이 아닌 곳에 차를 댄 사람들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 비자림. 아직 습성을 바꾸기엔 좋은 기억이 더 필요할 듯싶다는 생각과 함께, 여행지의 문화를 서로 이해하고,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여행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