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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
조선통신사를 성대하게 대접하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고려가 조선으로 바뀐줄을 몰랐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비
1697~1811(210년)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조선통신사 일행은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다.
그 행로를 보면 한양에서 부산에 도착, 해신제를 지내고 뱃길로 쓰시마의 서북단 사스나 또는 와니우라에 도착하여,
이쯔하라에 들러 그곳 번주가 베푸는 환영연에 참석하고, 다시 해로를 따라 이키를 들러 오사카까지 간다.
오사카부터는 육로로 나고야, 에도(현 도꾜)를 거쳐 닛고에서 행사를 마치면 가던 길로 귀로에 오른다.
보통 8개월 내지 1년이 소요되는 여정이었다.
성신지교린비
아메노모리호슈(1668-1755) 선생이 주창한 "성신지교린"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교역은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아메노모리호슈 선생은 1689년 쓰시마번에 임관하여 조선과 의 외교를 담당하였고 동문인 아라이 하쿠세키가 도쿠가와 장군을 일본의 국왕으로 표현한 것을 비난한 왕호사건으로 유명하다. 특히 부산 왜관에 와서 3년간 조선어를 공부하고 대마도로 돌아가 1727년 3년 과정의 "조선어학교"를 개소할 정도로 조선과 유학을 숭배하였으며 그로 인해 일본 최초로 한글 교습소가 대마도에서 생겨나기도 하였다.
대마역사 민속 자료관
조선통신사 행렬도, 초량 왜관도 등 다양한 유물과 쓰시마 야마네꼬(산고양이), 쓰시마 사슴, 물수리 등 천연기념물이 보관되어 있다. 입구에 덕혜옹주의 남편인 소 다케유키의 풍경화가 걸려있다.
덕혜옹주비(이왕조종가결혼봉축기념비)
고종의 따님인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쓰시마섬[對馬島]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했다.
덕혜옹주와 종무지는 1931년 5월에 결혼하여 11월에 대마도를 방문한다.
1955년에 이혼하였고, 종무지는 1985년에 덕혜옹주는1961년 귀국후,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그리고 종무지는 대마도 도주의 납골묘인 만송원에 덕혜옹주는 홍유릉 근처 언덕에 묻힌다.
종무지와 덕혜옹주는 동경에 살았으나, 종무지가 대마도 도주이므로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 비는 두분의 성혼을 축하하여 대마도 거주 한국인들이
소화6년(1931년) 5월 길일을 택하여 건립하였으며
쓰러져 있던것을 일해재단에서 2001년 11월에 복구한 것이다.
유명산 금석산성문
대마시청
시청앞을 지나는데 방송을 한다.
가이드에게 내용을 물으니
어린이 여러분 오후 5시가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이란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서산사와 김성일 선생 시비
서산사는 조선통신사가 대마도를 들렀을 때 유하던 장소로서 지금도 유스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
홍가이드
25세의 젊은 청년으로, 대마도 제일이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성일 선생의 시비
김성일의 후손들이 세웠다.
바위,구름,파도.....
일본 정원의 특징으로 일본은 바위를 신성시 하여
곳곳에 바위를 모셔 놓고 있었다.
바위는 산봉우리를 상징하며
자갈을 곱게 쓸고, 구름과 파도를 상징하는 선을 만든다.
일본의 사찰 옆에는 많은 무덤들이 있는데
일본은 화장률이 97%이다. 이는 철저한 법적 규제와 행정지도 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장터는 물론이고 납골당도 만원이어서
시내 중심가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고층 납골당 등 도심형 납골당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납골당의 면적을 줄이는 동시에 가족 합장 납골당의 설치를 검토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유골을 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자연장'을 권장하고 있다.
지난해 사망한 일본의 유명 여배우 사와무라 사다코는 생전에 자신의 집 창문에서 한눈에 보이는
사가미 천변에 자신의 뼈를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묘들을 살펴보면 개인묘도 있고,가족묘도 있다.
묘 앞에는 귀신을 부르는 귀신나무(사까기)를 놓는다.
첫댓글 이리 상세히 올리느라 애 쓰셨어요. 역사 공부를 하게 되네요 ^*^
제가 여행하고 오면 여행기를 하나씩써요....함께 여행한 분들이 비봉19라고 남편 고향친구들 모임이랍니다...1달에 1번씩 등산모임을 하구요...그 카페에 올린 여행기인데...대마도의 덕혜옹주비와 남편 종무지의 시비가 있어서 올렸어요....
저는 여성문화유산해설사로 여성의 문화재를 발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그래서 덕혜옹주의 유적지를 찾아보게 되었구요...지금 우리가 보는 문화재는 남성의 입장에서 발굴,발표된 것들이라 여성의 시선으로 문화재를 바라보는 일을 하는데..엄청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