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의 복음 (4) /
저도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여기 와 있는 동안에도 외손자 외손녀 영국에 있는 아이들을 하루에 한 번은 꼭 봅니다.
외손녀가 4살 5살 된 외손녀가 할아버지 하는 그 소리가 그냥 거의 중독성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저를 시험해 봤죠. 아이들 안 보고 내가 며칠을 견딜 수 있나 했더니 3일을 못 견디더라고요.
그래서 손자 손녀 금단 현상 여기 온 다음에 할아버지 바다 보여줘 창문 여기 여기 서서 차 받아 보여주고 또 할아버지 할머니 하는 그 소리.
우리 손자 지금 7살 먹은 손자가 막 갓 퇴원하던 날 그다음 날인데요.
우리 병원에 갔더니 뭐 볼 수 없다고 그래요. 근데 얼마나 보고 싶은지 제가 질서를 잘 지켜야 되는데 제가 질서를 어겼습니다.
보니까 간호사들이랑 거기 있는 분들이 제 제자의 아내랑 이렇게 제가 인맥을 동원했습니다.
내가 잠깐만 보고 갈 테니까 좀 보여줘 보여줘 그래가지고 저 창문 밖에서 이렇게 유리창 밖에서
이렇게 볼 수 있는데 그때 딱 볼 때 아이가 웃는 모습을 찍었어요.
제가 평생 자랑하는 보고만 있어도 그냥 그렇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돈 만 원씩 내가면서 보여준다고 그러잖아요.
이 아이는 우리 손자가 아닌데요. 아이들이 이렇게 자꾸 뭘 잡죠?
그거를 학문적으로 심리학에서 잡기 반사라고 그럽니다.
그래스픽 리플렉스 이렇게 영어로 그렇게 표현합니다.
잡지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잡는다는 거죠. 근데 갓 태어난 아기가 태어나서 웃는 것뿐만이 아니고 뱃속에서도 웃어요.
그걸 베넷 미소 그렇게 하죠. 베넷 미소 그 아기들이 왜 뱃속에서 웃냐 이거예요.
왜 아기들이 그렇게 자꾸 잡으려고 그러냐 이거죠.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뱃 속에서도 아이들이 이렇게 혼자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웃는 게 본능적인 관계의 본능 나 당신하고 친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 당신이 필요해 뭐 이제 이런 걸 나타내 보인다는 거죠.
이게 역시 막 잡는 것도 본능적으로
난 당신하고 가까이 지내고 싶어 이 관계 관계에 대한 본능을 나타내 준다는 겁니다.
1959년에 학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끼친 한 실험이 있습니다.
헤리하로그라고 하는 교수인데요. 교수가 새끼 원숭이를 놓고 실험을 했습니다.
1959년에 있었던 실험인데 새끼 원숭이에게 두 개의 가짜 어미 원숭이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털이 부드러운 아주 부드러운 털이 있는 어미 원숭이를 만들고 또 하나는 보시는 대로 철사로 차갑게 만들어 놓고 그 우유병을 달아 놓았죠.
이 두 어미 중에 우유를 주는 차가운 철사로 된 철사 어미와 우유는 안 주는 부드러운 털이 있는 어미 중에 새끼가 누구한테 가 있는가 하는 실험입니다.
보시는 대로 배가 고프면 가서 우유를 먹어요. 먹는데 가능하면 몸을 안 붙이려고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입만 갖다 대고 우유병을 빨아들이고 있죠.
그리고 오른쪽에 보시면 우유만 먹고 나면 우유 먹여준 건 저 철사 음인데
우유만 먹고 나면 바로 이쪽으로 와가지고 그냥 엄마 얼굴을 만지고 비비고 이렇게 기대고 이제 이러는 거예요.
이 녀석이 배고플 때만 저런가 확인하기 위해 헤리 하우로 교수는 갑자기 빵 하고 이제 놀래키는 놀라게 하는 이제 깜짝 놀라게 만들어요.
그러면 이 새끼가 10번이면 10번 다 우유 먹여준 어미한테 안 가고 부드러운 털이 있는 어미한테 가는 거예요.
이 실험을 통해 헤르 핼로우 교수가 전개한 발견은 유기체 살아있는 어떤 생명체는 식욕 본능보다 관계의 본능을 우선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낸 겁니다.
어쩌면 우리 부모 세대는 우리를 먹이기 위해 투잡 쓰리잡 그렇게 말하죠.
미국에서 그렇게 말해 이민 간 일 세대들이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투자 3자 막 한다고 그러 일을 막 한 개 두 개 해가면서 막 애써가지고 벌어지고 애들 밥 먹였는데 애들 한 번 안아줄 시간도 없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애들이 잘못되니까 내가 밤
낮잠 안 자고 몸이 부서져라 이래서 너 학비 대주고 너 먹였는데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쩌면 그 아이는 밥 먹여주는 것보다 얼마나 힘드니 하고 안아주는 걸 더 기다렸을 수 있다는 거지요.
이거는요. 굉장히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문학적 실험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예요.
사람이 따뜻하게 부드럽게 친밀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따뜻한 따뜻함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좀 전에 우리 노래 불렀잖아요. 그렇죠 여러 가지 실험으로 반복되는데요.
에드워드 리어라고 하는 일리노이 대학의 교수입니다.
심리학과 교수인데 이 교수가 비슷한 논문들을 많이 발표했어요.
여기 2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쓴 논문 제목이 이게 무슨 논문 제목이 이런 논문 제목이 있나 싶은데 베리 해피 피포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논문인데요.
여기 보면 해피 라지 사이언스 심리학이라고 하는 잡지 2002년도에 발표된 논문인데요.
이 사람이 이 논문 결과 내용이 뭔가 하면 상위 10%의 행복한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들과 보이는 가장 큰 재산 요인 가장 큰 요인은 돈이 높은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고 심지어 건강한 사람도 행복한 게 아니고 재산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것이 전제됐다 할지라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느끼는 마지막 요인은 관계였다는 거지.
그래서 이 논문의 결론이 이겁니다. 가장 결정적인 특징 누구냐?
그러니까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지수와 가장 낮은 지수의 디플레이션 우울지수를 보이는 지수를 보이는 상위 10% 학생들이 공유한 가장 뚜렷한 특징은 뭔가 하면 스트롱 타이즈 아주 밀접 강력한 타이스 관계 연결고리 친구들과 앤 패밀리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이는 스트롱 타임 우리가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줄 때 너 가서 불법 체류 안 하고 한국에 다시 올 거지 하는 걸 보여주는 것을 타이라 그러죠.
타이가 있냐 없냐까지 연결고리입니다. 타이가 있냐 무슨 패밀리 타이가 있냐 이 타이라고 그러잖아요.
타이 앤 컴메이트먼트 그리고 뭔가 바치는 거예요.
어디에 투 스탠딩 타임 스탠딩 타임 그들과 함께 얼마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에 달려 있다 이거죠.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 행복을 결정하는 게 관계라고 하는 우리 뻔히 아는 내용이 이렇게 시간을 많이 들여 연구해서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한 논문입니다.
이런 논문들이 몇십 년에 걸쳐서 하버드 대학에서 또 이런 저런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발표돼서 계속 논문들이 이렇게 발표되고 있죠.
사실 관계는 우리들의 삶과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1981년에 발표된 이 논문에 의하면 최근에 일어난 가장 괴로운 일이 뭐냐라고 물었더니 그 질문의 50% 이상의 사람들이 인간관계 갈등이 힘들다.
여기 1988년에 발표된 논문은 인간관계가 결여되면 갈등관계가 생기면 담배 피운 것보다 더 강력한 수명 단축 요인이다.
제가 이거 발견하고 난 다음에 오일 금년 학교만 할 게 아니고 오히려 관계 회복 학교도 해야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관계가 깨지면 많이 힘들어요. 결정적으로 우리의 건강과 삶과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힘들어지잖아요.
실제로 우리 몸을 힘들게 만들죠.
반대로 1996년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건강한 인간관계는 우리의 육체적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갑자기 사랑을 하게 되면 병이 낫죠.
기분 좋고 육체적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에 부정적 관계는 우리들로 하여금 두 가지 양상을 보이죠.
인간관계가 부정적으로 되면 두 가지 모습을 보여요.
하나는 집착이고 하나는 회피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다 이렇게 왕따를 당해서 관계가 없어 그래서 외로워 외로우면 굉장히 집착하게 되지 영어로 어테치먼트 그런 사람들은 나하고 좀 나를 떠나지 마 영어로 동의 미 근데 사람들 때문에 너무 많이 시달려서 괴로워 그러면 안 만나고 싶죠.
디테먼트 떨어지고 싶은 혼자 있게 내버려 둬.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현대인은 이 두 가지 사회를 넘나든대요.
인간관계가 없어서 외롭거나 인간관계 때문에 괴롭거나 그래서 외롭습니까?
괴롭습니까? 괴로운 사람들이 옛날에도 사람 때문에 괴로우면 떠나가지고 아 나 시골 가서 살래 귀거리에서 샀죠.
다 끊고 어울림도 다 끊고 자연으로 돌아가 살래 귀거래사 몇 번 소개해드린 대로 청사는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제가 한 번은 여주 신륵사에 갔더니 100년 탐욕 일조진 맞습니까?
100년 동안 탐욕해봐야 다 뭔가 티끌 같다. 또 우리 고산 윤선도 선생님이 쓰신 오우가 있죠.
저 보길도에 가면 오가 보길도에 가잖아요. 저 해남 땅끝 마을에 내 벗이 며 친구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하늘에 또 달이 있으니 수석 송죽을 여러분 이 말은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와 달이 다 내 친구다 이런 뜻이 아니고 인간들 참 같이 못 놀겠다.
자연하고 더불어 살아야겠다 그런 이야기죠. 왜 이렇게 사람은 관계를 찾을까요?
애도 우리 손자 손자도 베넷 미소 짓고 레스핑 리플렉스 하고 그 창세기 1장 2장에 보면 관계는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첫 번째 그건 창조주의 판단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갈아사되 사람의 독 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매일의 창조가 다 좋았더라 좋았더라 끝나는데 여기 좋지 못하니라는 표현이 하나 나옵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사실 1장 31절에 보면 그래서 독촉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이 다 맞춰졌을 때, 1장 31절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쉼이 좋았더라 여기 보시기에 쉼이 좋았다라는 말은 혼자 있는 인간에게 또 한 명의 인간을 주신 다음에 언급되는 표현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게 창조주의 판단이에요. 창세기 1장에 나타나 있는 1~2장에 나타나 있는 창조의 질서지요.
뿐만이 아닙니다. 그 관계는 창조의 모델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하죠.
1장 26절 27절 하나님이 가라사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참 이상하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라고 복수로 표현하세요.
그런 다음에 다시 말씀하실 때는 하나님의 스피치,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할 때는 우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내레이션 본문에서 설명할 때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갈아사되 그다음 이건 스피치죠.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에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즙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시게 하자 하자.
여기까지는 스피치예요. 그다음에 다시 내레이션 해설이 나오죠.
하시고 하나님이 그다음 뭐라고 이야기하죠?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말씀하실 때는 우리의 형상이란 복수인데 해설할 때는 자기 형상이란 단수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만들었다는 거죠.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복수로서의 하나님이 단수로 나타나시는 모습, 우리의 형상이 자기 형상이 되는 그런 모습 복수가 단수되는 관계인 거죠.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걸 뭐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삼위 하나님이 일체가 되시는 관계의 형상이다 이렇게 설명합니다.
맞아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그 관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도 관계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다움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는 거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창조의 순서에서도 나타납니다.
보세요. 창세기 2장 1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에 각종 새를 지으시고 그다음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으시니 여기 이게 19절 20절이죠.
20절 다음에는 몇 절인가요? 모르세요 너무 질문이 어려워요.
20절 다음에는 몇 절이에요? 21절이에요. 왜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미안합니다.
21절을 보면 이게 18절에서 독촉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한 다음에 이게 18절이에요.
그리고 19절에서 짐승들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고, 그다음에 21절에서부터 25절에서 하와를 창조하세요.
좀 이따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 21절부터 보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에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고 이렇게 돼 있죠 오른쪽 갈빗대로요.
오른쪽이라고 대답하지 마세요. 묻는다고 대답하시면 안 돼요.
근데 물어보면 다 다 오른쪽이라고 대답해요. 대답하시는 분들은 어디서 봤냐 그러면 성경에서 봤대요.
설명할 길이 없어요. 왜 그렇게 대답하시는지 하여튼 갈비떼 하나입니다.
여기 20절까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좋지 못하니 혼자 있는 게 좋지 못하니 하신 다음에 성경에 보면 아담으로 하여금 이름 짓게 하는 것을 먼저 하게 하시고 그다음에 잠재우시고 여자를 창조하시죠.
그 순서가 뭘 나타내주나요? 아담으로 하여금
그 짐승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반려의 필요를 느끼게 하시는 거죠.
창조의 순서를 통해 관계를 인식시키는 겁니다. 얘네들은 다 둘인데 나는 혼자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친구들이 다 짝짝짝짝 찾아가면 나는 왜 이렇게 외로워 이제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 걸 보여준 거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첫 시간 말씀드린 대로 머리뼈도 아니고 발뼈도 아니고 옆구리 뼈입니다.
갈비됩니다. 근본적인 동등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 부조와 선지자라는 책 46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은 고독하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사교적 존재가 될 것이었다.
반려자가 없었다면 에덴의 아름다운 광경과 유쾌한 노작도 완전한 행복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분 에덴 동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담 혼자 살면 아름답지 않다는 거예요.
요수 요양원의 한려수도와 이 바다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러분 혼자 여기 와 있으라 그러면 아무도 없고 여기 혼자 와 있으라 그러면 이거 보고 아름답다 그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죠. 그다음 또 보세요. 유쾌한 노작도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계속하라고 그러면 재미가 없다는 거죠.
또 뭐라고 그러죠? 천사들과의 교재라 할지라도 심지어 천사하고 산다 하더라도 동종과 반려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천사하고 살아도 같은 사람이 없으면 좋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이에요. 근데 요즘에는 천사하고는 같이 살기는 커녕 고양이하고 같이 살고 이제 개하고 같이 살아서 그걸 애완견이 아니고 반려견이라 그러고 그렇죠 애완묘라고 그러니까 반려묘 그러잖아요.
한 번은 백화점 지하 시시 코너에서 난리가 났어요.
사람들이 막 싸우는 거예요. 가보니까 시시 코너에 한 젊은 분이 이렇게 잡숴보세요.
잡숴보세요 하는데 아주 잘 아주 아주 이 부자 마님이
시시 코너에 서서 일하는 직원을 막 닦아세우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둘러선 거죠. 그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시식 코너에 강아지를 안고 오신 이분이 그 음식을 자기만 한번 시식하면 되는데 그걸 들어다가 자기 개한테 먹인 거예요.
이렇게 가슴이 아 나한테 그러니까 이 직원이 아줌마 그 사람 먹는 걸 왜 개한테 먹여요?
더럽게 이렇게 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아주머니가 더럽다니 우리 애 보고 더럽다니 막 우리 애가 뭐가 더러워 우리 애가 막 이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막 이제 큰 소리가 났죠.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왼 총각이 쓱 났었어요.
쓱 나선 다음에 아주머니 이 직원 참 무식하네요. 그렇죠 애가 얼마나 깨끗한데 애 보고 더럽다고 그러 그러니까 이 아주머니가 갑자기 악운이 생기니까 힘이 나가지고 그렇죠 우리 애들이 얼마나 우리가 깨끗하게 애들을 돌보는데
딱 그렇게 한 다음에 이 총각이 갑자기 주위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총각이 갑자기 아주머니한테 돌아서더니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보면서 아주머니.
그런데 어쩌다가 개를 애로 낳으셨대요 실제로 제가 가다가 레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예요.
여러분 천사들과의 교제라 할지라도 동정과 반려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는데 어쩌다가 개를 애로 낳았대요.
요즘에는 개도 그냥 결혼 안 시키고 다 족보 따져가며 결혼시키는 바람에 개끼리 사돈이 된다고 그러죠.
그래서 그런 사돈을 개 사돈이라고 그런답니다. 오 족보 찾아가면서 결혼식이기 때문에 여러분 여기 사랑하고 사랑을 받을 자기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
이게 뭐예요? 인간은 창조 질서 속에 인간과 함께 좋은 관계로 살아가는 게 창조의 질서라라고 하는 사실을 나타내주는 거죠.
이제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볼 때입니다. 나는 나와 함께 이 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준 만나는 이들에게 뭔가 그들의 삶을 복되게 하는 표정과 말과 관계인가
아니면 그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는가 성찰해 보는 거지.
이외수라고 하는 한 춘천 출생 시인이 있죠. 이분이 인간관계를 해결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이렇게 짧은 시로 표현했습니다.
날마다 하늘이 열리나니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 하여 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으랴.
내 한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 영감적이에요. 그렇죠 뒤에 있는 사람 못 앉잖아요.
팔은 이쪽으로 바뀔 때 팔이 안 되잖아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
돌아서면 되는 거지 돌아서면 내 한 몸 돌아서면 되는 것을
영상 하나 보시겠습니다.
난 아이가 있는데요.
아이가 다운 증후군을 앓았습니다. 강아지가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하니까 아이가 뒤로 물러나 앉아요.
안 받아들이지 어떻게 해야지 강아지가 걔가 고민합니다.
한 발자국 다가가 봅니다. 친하게 지내자. 에이 마음 좀 열어줘.
그러니까 하지 마. 나 너하고 안 사귀고 싶어. 가까이 오지 말라니까 난다.
아이 좀 가까이 좀 지내보자. 아 참 귀찮게 왜 그래 뒤로 옆으로 좀 물러 아이 그러지 말자고 다 좀 친하게 지내보자.
이 그러지 마. 우리 오빠 때문에
한 번 더 몸기스를 하다가 슬쩍 가서 또 두드려 봅니다.
그렇죠 여러분 개도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가가고 만지고 두드리고 이렇게 뒤로 돌아서서 또 이렇게 안고 이렇게 뒤집어도 보고 금방 안 돼요.
네 관계를 자꾸 축소해 갈 수 있죠. 우리가 상처를 입고 사람이 싫어지고 이제 이러면 그럴 때 우리가 관계를 확장해 가기 위해 관계가 얼마나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이제 재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 주시는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해야 되지요.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누구나 다 이렇게 한다는 거지 뭐 그 이상 무접하는 게 있어야 된다 그 말이죠.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아느니라.
인사하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건 누구나 다 한다 이거예요.
그냥 인사 안 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자는 거지.
그렇죠. 이게 이게 예수 믿는다면 이 이상은 해야 되지 않냐 이 주님 말씀하신 게 이겁니다.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 잘하는 건 누구도 다 하지.
그게 나한테 좀 잘 안 하더라도 기도하고 그들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 뭐 해보는 것 이게 칭찬받을 게 있는 게 아니냐 이 여러분 여기 성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연못이 있습니다. 이 연못 속에 물고기들이 있었습니다.
저기 저 성문하고 여기 물고기 연못 속의 물고기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성문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성문에 불을 끄기 위해 연못의 물을 퍼서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물이 없어지고 연못의 바닥이 드러나면서 물고기가 죽음을 맞게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하고 내가 살아가는데 내 인생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이 보이는 어떤 것들이 제정신 차리고 다 제대로 살아가 주는 게 사실은 내 인생과 존재의 기반일 수 있다는 원리죠.
이런 걸 가리켜 나타내주는 한자 사자 성어가 지어지앙이라고 그럽니다.
연못 속에 있는 물고기의 재앙
이것이 성문에 성문이 불타는 것.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우리와 아무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여 나하고 아무 관계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어떤 사람들이 제정신 못 차리고 살아가는 것 때문에 내 삶이 망가지고 무너지는 경우들을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자주 봅니까?
그러니까 내가 내 정신 제대로 차리고 살아가는 거 나의 삶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삶의 기반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삶의 기반일 수 있다고라고 하는 관계, 보편적 관계에 대한 인식, 무엇보다 이런 인식을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들이고 정치 지도자들이에요.
우리 사회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죠.
그렇죠 여러분 우리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12초 대한민국에 있었던 가장 비극적인 그 순간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 것도 아니고 뭐 갑자기 비행기처럼 1~2초 사이에 미국의 무슨 우주선 갔다가
12 73초인가 만에 이렇게 터진 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다 겪으면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저 너무 이때 탔던 사람들 생생하게 그냥 연기 들이마셔가면서 나가지는 않고 문은 안 열리고 그러면서 엄마에게 부모에게 형제들에게 가족에게 전화하면서 나 지금 죽어간다고 하는 그 고통을 전해야 했던 그 비참한 상황 이게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했던 이 사건.
그것은 김대한이라고 하는 분이 자기 인생 하나 챙기지 못해가지고 신나를 넣고 지하철에 와서 불을 지폈죠.
그 바람에 이 김대한이라는 사람과 아무 관계없이 살아가던 그 기차에 탄 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부상을 당했잖아요.
어쩌면 이 기차에 탔던 사람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가족 관계도 아니고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그런데 같은 기차를 탔다고 하는 것 때문에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운명을 끝내버렸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같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던 그 사람들은 공동 운명체죠.
운명을 같이 맡겨놓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탄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한 사람이 제정신 못 차리고 있는 바람에 그들이 다 함께 생명을 잃고 비참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어느 순간 함께 만나 어느 한 공간과 시간에 있을 때 같은 운명을 가지고 있는 운명 공동체라고 하는 인식, 그래서 모두를 참 우리와 함께 소중한 존재라고 하는 확대된 관계에 대한 인식 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거지요.
불교에서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는 순간을 어업의 인연이라 부릅니다.
코스모스라고 하는 책 유명한 책이죠. 카셰이근이라고 하는 학자가 쓴 코스모스라는 책은 그 내용만큼 유명했던 것이 그 서문이죠.
뭡니까? 책 머리말에 있는 헌사 그가 그의 아내에게 이른바 물리학자로서 이 광대한 우주 이 무한정한 시간 속에
오늘 내가 그대와 함께 같은 시대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며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디 넓은 우주에서 여기에 이 긴 시간 속에서 지금 내 옆에 이분이 앉아 있으려면 불교로 말하면 어급의 인연이겠지만 우리로 말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는 거죠.
어떻게 저와 여러분이 만나서 이렇게 눈 마주 보면서 같이 대화를 하고 있느냐고요.
그래서 한 번의 만남은 정말 소중한 기회가 아닐 수 없는 거고, 그 한 사람에게 내가 생명의 빛을 나누어주면서 나의 인생의 하루를 보낼 수 있고, 누군가 그에게 아주 negative한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주고 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거잖아요.
나는 그에게 어떤 한 사람이냐고요. 여기 이런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딱 한 사람 삶이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해도 딱 한 사람, 나를 의지하고 있는 그 사람의 삶이 무너질 것 같아 다시 일어나 내일을 향해 바로 섭니다.
속은 일이 하도 많아 이제는 모두를 의심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딱 한 사람, 나를 철썩같이 믿어주는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그동안 쌓인 의심을 걷어내고 다시 믿기로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나 강팍하여 모든 사람을 미워하려 해도 딱 한 사람, 그 사람의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와 그동안 쌓인 마음을 미움을 씻어내고 다시 사랑하기로 합니다.
아프고 슬픈 일이 너무 많아 눈물만 흘리며 살아갈 것 같지만 딱 한 사람, 나를 향해 웃고 있는 그 사람의 맑은 웃음이 떠올라 흐르는 눈물 닦고 혼자 조용히 웃어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딱 한 사람, 나를 인정해 주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다시 용기를 내어 새 일을 시작합니다.
세상을 향한 불평의 소리들이 높아 나도 불평하게 되지만 딱 한 사람,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그 사람의 평화가 그리워 모든 불평을 잠재우고 다시 감사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진실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온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오 온 세상의 모든 사랑도 결국 한 사람을 통해 찾아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한 사람이 되고, 누군가가 나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온 세상이 좋은 일로만 가득하겠지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기가 막힙니다. 딱 한 사람, 딱 한 사람, 딱 한 사람, 딱 한 사람, 계속 딱 한 사람 하니까 이 시를 읽으면서 나에게 그 딱 한 사람 누구일까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줬는데, 마지막 구절에서는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내가 누군가의 그런 딱 한 사람이 되면이라고 말합니다.
나에게 딱 한 사람을 찾지 말고 우리가 누구에겐가 그런 딱한 사람이 되자고 하는 말로 이 씨는 끝나고 읽는 거지요.
관계는 정말 필요합니다. 신혼 시절이었습니다.
아내가 첫 아이를 베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저희는 원정 출산 이런 거 전혀 계획도 하지 않았는데, 처가가 다 미국 가 살았는데 다 이민을 갔는데 아내만 저 한 사람 쳐다보고 한국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아이 첫 아이가 서기 때문에 몸조리하기 위해서 친정을 갔죠.
아내가 막상 가고 혼자 남아 있으니까 너무너무 아내가 보고 싶었습니다.
달력에다가 아내가 오는 날을 그려놓고 하루하루 지워가면서 방문해도 재미가 없고 설교해도 재미가 없고 성경 가르쳐도 재미없고 그냥 온 생각이 안 해요.
언제 어떤 집사람 언제 돌아오나 그것만 지워가면서 날짜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이제 한 아내가 돌아오는 날이 됐습니다.
그날 반포 아파트 부근에 가서 구역반 구역반이라고 그러는데 우리 사모님들을 모시고 성경을 가르치는데 이 여 집사님들이 저를 놀려요.
아이고 목사님 입이 귀에 걸렸네. 오늘은 왜 그렇게 좋으세요?
사모님 오늘 오시죠? 그래 놀려요. 그러면서 한 분이 물어요.
사모님 몇 시에 도착하세요? 그래서 몇시 비행기로 도착합니다.
아 그러면 그때 저희도 다 같이 공항 가겠습니다. 그래 깜짝 놀랐죠.
왜요? 공항 오시게요. 그래요 그러 사모님 오시는데 가야죠.
안 오셔도 돼요.
뭐 하러 오시려고 그러세요? 그 먼 데까지 그 시절에는 미국 가도 따라 나오고 뭐 누가 온다 그래도 공항 나가고 이러던 시절이잖아요.
근데 저는 진심으로 안 오기를 바라는 거죠. 오랜만에 만나기 때문에 내 마음껏 이렇게 반가움을 표현하고 싶은데 우리 집사님들이 사모님 오신다고 공항을 가겠다고 그러니까 제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안 오셔도 돼요. 뭐 거기까지 가세요? 아유 아니에요.
우리 가야 갈 겁니다. 난 진심으로 안 갔으면 싶은데 이분들은 진짜로 따라오시는 거예요.
공항에서 형 형 아닌 거예요. 내 마음이 이게 나오는데 진짜 내 마음 같으면 가서 막 꽉 끌어안고 막 괜찮았어 이렇게 하고 싶은데 나오길래 왔어.
그냥 그렇게 그렇게 하고 교회 왔지. 그러니까 그때 수요일인가 목요일 왔습니다.
그러니까 금요일 예배가 마치니까 우리 청년 교회 몇 명 안 되는 우리 청년들도 절 보고 오늘 설교가 특별히 은혜롭네요.
가지고 다 축하합니다. 인사하고 막 그래
그렇게 교우님들하고 만나고 난 다음에 안식일이 지났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다음에 이제 그래서 저는 기분이 완전히 업됐죠.
오랜만에 신혼초에 아내와 헤어졌다가 아내를 다시 만났으니까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렇게 하고 이제 안식일 지나고 일요일 오전 지나고 이제 일요일 오후쯤 돼가지고 늘 교회에 오시던 한 분이 안 오셨어요 우리나라에 아주 명문여대를 나오신 아주 고상한 분이셨어요.
그래가지고 오후쯤 돼가지고 전화를 드렸죠. 그분이 아직은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된 분이기 때문에 사모님 아주 기분이 좋아가지고 사모님 하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사실은 그 댁에서 오던 날 구역반 예배를 드렸거든요.
사모님 그러니까 아 네 그렇게 하는데 아 네 하는데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아요 어쩐 일이세요?
왜 어제 교회 못 오셨던데요? 그랬더니 아 예 뭐 일이 좀 있어서요 그래 무슨 그렇게 급한 일이 있길래 교회도 못 오셨어요 그랬더니 교회는 뭐 매주 가야 되나요?
그래요
아 이게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이게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 무슨 일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랬더니 아니요. 별일 없어요.
별일 있으신데요. 저 지금 가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오지 마세요.
오지 마세요. 아무 일 없어요. 오지 마세요. 저 지금 갑니다.
이렇게 하고 전화 끊고 이제 갔죠. 갔더니까 아파트에 이제 이렇게 올라갔습니다.
아 별일 없다는데 왜 이렇게 금방 오시고 그러세요?
근데 표정이 싸늘해요. 그게 뭔 일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러니까 별일 없는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사실 성경도 잘 모르고 내가 뭐 하나님 믿는 것도 잘 모르고 믿음도 별로 없고 한데 자꾸 교회에 가가지고 사람들 만나고 내가 이렇게 하는 것보다 내가 조용히 혼자서 하나님 생각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이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이런 것도 좀 싫어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고 싶어
성경 말씀만 사람 말 자꾸 안 듣고 싶고 하나님 말씀만 보고 싶다고 그래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셨어요? 진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고 싶다고 사람들 좀 이렇게 말 안 듣고 싶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러세요. 그럼 제가 이렇게 잠깐 성경 말씀 좀 보고 그리고 기도하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앉아가지고 이제 찬미 하나 부르고 성경 한 줄 찾아가지고 사모님 제가 그때 찾았던 성경이 누가복음 4장 16절에 예수께서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에 성경을 읽으려고 회당에 서심에 물론 하나님 믿고 하나님 바라보고 사는 건 좋은데 안식일에는 함께 예배드리셔야죠.
예수님도 자기 규례대로 늘 그게 생활이 되신 거거든요.
제가 이렇게 이제 권면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분이 표정이 은혜를 받는 표정이 아니고 화가 나는 표정이에요.
내가 이렇게 약간 눈치를 봐가면서 이렇게 권면을 하고 있는데 이분이 얼굴이 점점 더 굳어지더니 갑자기
목사님 딱 이래요. 놀라셨죠? 저도 깜짝 놀랐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걸 이렇게 딱 쳐다보는 거 왜 여자분들이 막 참다가 참다가 막 안 하려고 참다가 참다가 터지면 막 다다다다다다 막 터져 나오는 거 있죠.
내가 그때 목요일에 우리 집사님들이 공항 간다고 그러고 그럴 때 내가 나도 같이 공항 가려고 그랬는데 말을 막 빨리 하는데요.
막 제가 이 정신이 하나 이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내용인 즉 목요일에 자기 집에서 구역반 예배드리면서 사모님이 오신다 그러는 날 집사님들하고 같이 공항에 오려고 했는데 그분이 이렇게 전문인이에요.
그래서 그 어떤 학생들에게 과외를 가르치는 그걸 취소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게 취소가 안 돼서 못 갔대요.
그거하고 이분이 얘기한 게 무슨 연결이 되는지 내가 아직은 제가 이해가 안 되죠.
그래서 금요일 저녁 예배 마친 다음에 사람들이 와서 저한테 사모님 오셔서 좋으시겠어요 좋으시겠어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자기도 예배가 마친 다음에 저한테 와서 웃으면서 사모님 와서 좋으시겠어요 하고 인사를 하니 제가 인사를 안 벗고 고개를 돌리더래요.
내가 목요일에 사모님 오실 때 공항에 같이 가려고 그랬는데 내가 공항에 같이 못 갔다고 내가 금요일날 내가 인사하니까 내 인사도 안 받는데 내가 교회에 어떻게 나가요?
오 그 얘기였습니다. 제가 그럴 때 그 말 듣고 저도 나이가 훨씬 더 위시니까 저는 뭐 이제 20대 후반에 아주 젊은 목사니까 그 말 듣고 나이 값을 하세요.
제가 이랬을까요? 아 어떤 것이나 약간 좀 우습기도 하면서 아이고 인사를 하시는데 제가 왜 안 받았겠습니까?
전 천 정말 기억이 없습니다. 아마 이분 저분이 와서 사모님 오시니까 좋지요 하고 인사하니까 이 젊은 목사가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서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하니까 이분이 풀어지시면서 아이고 뭐 그게 그 그 그러셨겠죠?
뭐 그분이 이렇게 풀어지시는 걸 보고 사모님 용서하시는 거지요.
저 정말 정말 저는 기억이 없어요. 제가 왜 사모님 인사를 안 받으시겠어요?
젊은 목사 오랜만에 아내 만나서 너무 좋아가지고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용서하세요.
그날 그렇게 하고
나와 가지고 버스 타고 집에 오면서 제가 그날 이후로 깨달은 게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누군가가 우리 교우님들이 나는 이제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았는가 하면 나 사람에게 상처받았어요라는 말로 알아듣습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 주위에서 나 이제 성경만 읽고 살 거예요.
이렇게 하면 아 이 사람 누구에게나 상처받았구나 그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차이가 뭐냐 하나님 안 믿는 사람들은 상처받으면 가서 들이받든지 니가 잘났다 그러고 싸우지만 우리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은 그럴 때 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거예요.
이렇게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만 있어요. 그렇죠.
성경은 말하죠.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이니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물을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여러분 다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죠 우리 함께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특별히 함께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파서 와서 회복을 위해 찾아온 이곳에 하루가 됐든 이틀이 됐든 함께 머무는 날 동안 누군가에게 그의 회복에 힘이 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되지 않겠어요.
그뿐만이 아니고 또 그야말로 이 억겁의 세상 속에서 억겁의 시간 속에서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함께 만나 친구로 부부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게 된 그들에게 우리가 정말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그 관계의 본질을 따뜻하게 미루며 살아가야 되지 않겠어요.
누군가 나에게 그런 사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뒤돌아서면 안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깨달음으로 따뜻한 미소 하나, 따뜻한 손길 하나, 따뜻한 위로 하나 먼저 내밀며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함께 만나는 사람들, 우리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마음들을 여유롭게 해주시고 넉넉하게 해주시고 따뜻하게 해주옵소서
우리들 다 연약한 존재들이라. 나름대로 이 세월을 살아오면서 한 사람 예배 없이 이런저런 상처받은 아픔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 위로해 주시고 힘 주셔서 그래 이쯤 되면 돌아서서 앉자라고 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누리도록 우리 마음들을 감동해 주옵소서 많고 많은 세상의 공간 속에서 여기 있게 해주시고, 이 긴 시간 속에서 오늘 우리와 함께 있게 해 주심으로 서로 만나게 해 주셨으니 스쳐 지나가는 만남일진데 함께 따뜻하게 해주어야 하겠거든.
하물며 이 같은 공간에서 아픔을 함께 이겨내려고 찾아온 이들, 연약함을 극복해내려고 함께 찾아온 이들에게 함께 격려하며 미소와 친절로 사랑을 나누는 우리가 되어, 주의 은혜로 주님께서 원래 만들어줬던 아름다운 관계들을 회복해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도록 감동해 주옵소서 좋은 이웃이 되는 한 사람 되도록 우리들의 삶을 지켜주시기를 감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clovanot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