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서론
7일간을 단위(unit)로 하여 하나의 주기(cycle)를 구성한 이 주일(week) 제도는 모든 역법들(calendars) 중 가장 오래고, 또 단 한 번도 갱신된 일이 없는 완전무결한 것으로 유일한 것이다. 그 기원은 오로지 구약성경 창세기에 수록된 창조 설화의 역사적 기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제도이다.
이를 제정하신 분의 의도가 제칠일을 안식일로 성별하므로써 창조 사업의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고(창2:1-3), 동시에 이 주기적 제도를 영구히 보존하므로 조물주 하나님과 인격적인 피조물인 인간들과의 사이에 불가분리의 관계를 대대로 영원히 지속하고, 또 이를 상기시키기 위함일찐대(출20:8-11, 31:16-17; 겔20:12, 20) 그것은 창시자이신 하나님의 본질처럼 그 불변함이 영원한 것이리라(말3:6; 삼상15:29; 약1:17; 히13:8; 시119:151, 152, 160). 따라서 제칠일이 성별되어 조물주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일로 정해지고, 동시에 이 안식일이 칠요일 제도의 기산일이 되어 반복하여 사도시대에까지 전승해 내려온 것이므로 중도에 변경된다는 것은 결코 이를 제정하신 분의 의도가 아니고, 이는 분명히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세력에서 모의된 것이라 간주해도 과오를 범하는 것이 결코 아니리라(단7:25; 살후2:3-7; 마13:24-30).
성경에 분명히 명시되고, 모든 사도들이 존중한 이 거룩한 “제칠일 안식일”을 개종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여러가지 이유와 구실들을 내세워 감히 일요일로 옮기려 시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인간의 능력과 권위의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는지라, 실로 이 작업은 수세기를 거쳐 서서히 이룩한 일이기에 변경되어 가는 사실을 그때의 당세대나 오늘의 세대가 변절의 본질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누가(Luca, [Luke] the Exangelist)의 보고에 의하면, 안식일을 존중히한 사도들 사이에, 이방인 개종자들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여 교회에 성도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로 한때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여러 해가 바뀌면서, 일요일을 존중하는 습성을 지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증가하게 되자, 반대로, 이들이 교회의 유력한 지도층에 이르니, 안식일을 존중히 여겨 준수하는 성도들과 유대인계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할 것인가 하는 논란을 일으키는 양상으로 뒤바뀌어졌다. 그야말로 적반하장격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제9장에서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의 점성술에 관해 살펴보았다. 즉 황도 12궁(Twelve Signs of the Zodiac)과 태양을 중심으로 한 일곱 혹성신들(seven planetary deities)이 펼쳐내는 천상의 현상이 어떻게 지상의 현상에 대응하며 또 그것이 인간사를 어떻게 좌우할는지를 알아내려는 점성술이 Roma에 도입되었을 때 Roma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내었으며, 그것이 나중에 그리스도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것을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하늘의 별을 보고 국가와 개인의 운수를 점치는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것은 토, 일, 월, 화, 수, 목, 금의 일곱 혹성신의 날들이었다. 이 별신들의 날들 중의 최고의 날은 당연히 태양신의 날 곧 일요일이었다. Roma에서는 태양신 부활절과 함께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신성시 했으며 존경했다. 그래서 소위 로마 사람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안식일”과 “일요일”은 로마제국 시대에 와서 우열을 가리는 일전을 피할 길이 도무지 없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가 Roma 제국의 박해에서 벗어날 길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유대인의 안식일 대신에 태양신의 날 일요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 당시의 교부들은 생각했었다. “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이라는 대의명분으로‧‧‧.
그러나 일요일이 그리스도교의 예배일로 성별되고, 나중에는 안식일을 대신하게 되기까지는 수세기의 시간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이 역사적 변천 과정에 대하여 한 마디로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영국 신학자 팔라(F. W. Farrar, 1831-1903. A.D.)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가 한 날에서 다른 날로 일자를 정식으로 변경한 것이 아니고, 다만 거의 의식하지 못하리 만큼 점차적으로 변경되어 갔던 것이다(The Christian Church made no formal, but a gradual and almost unconscious, transference of the one day to the other.).”
돔빌레(William Domville, Clergy of Englican Church)경도 같은 영국 교회 성직자인데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그리스도교가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게 되기까지는 수백년이 지나야 했다. A.D. 321년에 반포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안식일 칙령 이전에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대사전”에서 아래와 같은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
“‧‧‧ 주일을 특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정하게 된 것은 제4세기 때부터인데, 교회와 국가에서 법률로 정했다. 이것이 엘빌라 회의(Council of Evira: 306. A.D.)에 의하여 명령되고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321. A.D.에 다시 법률로 공포되었다....
그후 A.D. 380년 라오디게아 회의는 주의 날에 일하는 것을 되도록 삼가라 하였으며, 6세기서부터 13세기에까지는 교회에서 더욱 엄하게 하여 주일에는 반드시 미사에 참례할 것을 명하였으며‧‧‧”
우리는 또 다음과 같은 논설들을 읽게된다.
① “어떤이들은 사도들의 명령에 기초하여 일요일 준수를 세우고자 애쓰나, 사도들은 그런 명령을 한 것이 없다.”
②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안식일이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되었는가?”
답: “안식일이 일곱째 날로부터 첫째 날로 바뀐 것은 어떤 결정적인 권위에 의하여라기보다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서 되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또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조와 신앙이 퇴보되고, 안식일 준수의 열의가 식어갈 무렵인 A.D. 3세기에 활약한 아르케라우스(Archelaus, Bishop of Cascar in Mesopotamia, A.D. 278. ca.) 교부의 말대로 안식일이 명확히 폐한 바 된 일이 없었으나, 단지 흐려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또한 안식일이 폐하여졌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주께서 안식일을 확실히 폐하셨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 까닭은 주께서는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이다(for He was Himself also Lord of the Sabbath). 그리고 그 안식일과 관련된 율법이라는 것은 마치 신랑의 방을 맡아서 온 정성을 다하여 그것을 준비하는 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낯선 사람들로 인해 방해되거나 건드려서 곤난을 당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요, 신랑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지켜서 보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몇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1. 태양신을 최고의 주신으로 하는 다신교국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2. 이 박해에서 모면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소위 호교론자로 자처하는 교부들의 편벽된 반-유대주의(Anti Judaism) 선동.
3. 당시 헬라 철학(Greek-Roman Philosophy)의 감화와 그 영향.
4. 그리고, 다수 민족들 간에 전승해 내려 온 우상숭배 습성과 이교 점성술의 감화 등등의 입체적 원인이 작용한 결과였으리라.
대대로 내려오면서 전승된,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숭배의 관습과 몸에 깊숙이 밴 이교의 사상-점성술-은 꼴지어 자라나는 초창기 그리스도교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그러기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Bishop of Carthage, ca. 160-230? A.D.)도 이러한 시대적, 주변의 종교적 환경의 오염을 염려하면서, 그의 저술에서 지적하듯이 우상숭배자들이 해마다 행하는 태양 경축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끼치는 감화에 대하여 경고했으며 또 그는 다른 서한에서 이교도들의 농신제(Saturnalia) 동지 축제를 교회가 모방하고 있음을 한탄했다. 그는 여기서 그뿐만 아니라 동시에 상대적으로 안식일이 점차적으로, 이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등한히 여김을 당하게 되었음으로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우리들 때문에, 안식일이 생소한 것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월삭과 절기들이 농신제와 신년제, 그리고 동지축제와 ‧‧‧가 성행하므로 무색해지고 있도다....”
고 지적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교의 발산지인 팔레스틴(Palestine)을 중심으로 해서:
ⅰ) 먼저, 제국 시대의 로마 사회 각계 각층에 만연된 점성술(Astrology, Horoscope, Astrological Medecine)의 양상을 대체적으로 살펴본 다음에;
ⅱ) 중동지역 제민족들의 태양신 명칭들을 살피고;
ⅲ) 이 태양신을 경배하기 위해 성별한 일요일에 대한 여러 증언들을 들어보고;
ⅳ) 그리고, 이교도들(Pagans)이 연례적으로(annually) 축제해 왔던 태양신 부활절(Easter) 경축행사와 그 풍습들을 고찰해야겠다.
ⅴ) 끝으로, 이 태양신을 존경하기 위해 제정된 “태양 탄신일”이 이교도들에 의해 어떻게 경축되어 왔는지를 살펴 볼 것이다.
ⅵ)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결과로 이루어진 중세기 유럽 문화와 종교에 나타난 태양신 숭배의 흔적들을 하나 하나 살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