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대구는 사실 그렇게 크게 와닿을 것 없는 여행지었다. 아니, 여행지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그냥 도시였다. 하지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거늘, 대구 구석구석엔 숨어 있는 여행지가 많았고,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았다. 그중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장소가 있다. 아니, 장소라기보단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느끼고 올 수 있는 길. 근대문화골목이 그곳이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 (의료 박물관)
선교사 블레어 주택 (교육역사 박물관)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선교박물관)
골목투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
동산 청라언덕 - 화교협회
골근대문화 골목을 여행하는 골목 투어는 동산청라언덕부터 시작해 화교협회로 끝나는 1.64km의 비교적 짧은 길을 거니는 투어였다. 하지만, 이 짧은 길을 구석구석 누비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근대문화골목은 대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가 되었다. 이 코스엔 선교사 주택, 계산성당, 제일교회, 국채보상운동을 주창한 서상돈의 고택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근대화의 발자취를 따라 거니는 투어, 그것이 바로 이 골목투어 제2코스의 묘미이자, 본질이었다.
동산 청라억덕
선교사의 주택
청라언덕은 대구의 기독교가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정착하고, 지금의 도산의료원이 사회에 봉사하며 성장한 중심지라 말할 수 있다. 지난 100여 년간 지역의 역사와 함께 호흡해온 유구한 시간의 흐름과 놀랄만한 변화의 과정이 이곳에 녹아있다. 특히 이곳 청라언덕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볼 장소는 선교사들의 주택이었다.
이곳 청라언덕엔 세 개의 선교사 주택이 있다. 서양식으로 지은 주택과 그 안의 녹아있는 한국 특유의 전통 형식이 눈을 사로잡는 주택은 그 오묘하고도 신비스러운 모습만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한 장소였다.
스윗즈 주택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24호로 지정된 근대 서양식 주택으로, 1910년 미국인 선교사 스윗즈가 살았다고 해서 스윗즈 주택이라고도 불린다. 1999년부턴 선교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 주택은 빨간 벽돌로 쌓아올려 기본은 양옥 주택의 양식을 따르고 지붕에는 기와를 사용해 한옥의 멋을 살렸다. 서구식 주택에 한국의 기와로 한옥의 멋을 살린 건물은 그 모습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보였다.
챔니스 주택
드라마 각시탈에서 기무라 슌지(박기웅)의 집으로 나온 곳으로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올 정도로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이 주택이다. 이곳을 잠시 거닐다 보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챔니스 이후에도 이곳에서 다양한 선교사들이 살았고, 동산병원을 부흥시킨 마펫 선교사도 살았다. 2002년 문화재 보수로 원형 이미지를 찾았고, 현재는 의료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레어 주택
동산에 세워진 최초의 선교사 주택으로 블레어가 거주했던 장소이다. 붉은 벽돌로 쌓은 이 건물은 당시의 미국 주택 양식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2001년부터 교육역사 박물관으로 개장되어 근대 교육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도록 했고, 2003년부턴 3.1운동에 관한 자료를 모아 교육과 역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계산성당
1899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처음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1902년 프와넬 신부에 의해 다시 설계되어 지금의 건물이 되었다. 아름다운 설계와 100여 년의 긴 전통 때문에 성당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고딕 양식의 탑이 특징인 계산성당은 건축물의 아름다움 덕에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주황색 벽돌로 쌓은 벽과 초록 탑이 조화로운 이 성당은 대구의 근대화 과정에 자리 잡은 중요하고도 소중한 장소로 남아있다.
이상화 고택
이상화 & 서상동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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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 선생 고택
항일시인 이상화 선생이 1939년부터 사망할 때인 43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건강 악화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작품 활동을 했지만, 이상화 시인의 시가 조선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해 모두 압수 당했다. 그렇기에 생전에 시집 하나 발간하지 못한 비운의 시인으로 기억된다. 그의 시는 발간되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시인, 그의 민족의 얼은 고택에 남아 많은 사람에게 여운을 준다.
서상돈 선생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 회복을 꿈꿨던 민족 운동가이며 구한말 시대의 장사꾼으로, 청렴한 선비로, 교육가로 산 서상돈 선생이 머문 고택을 복원한 곳이다. 그의 고택을 보면 소박한 서상돈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고,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나라를 위해 자신의 부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민족을 위해 일했던 진정한 민족운동가였다.
구 제일교회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대구제일교회의 구 예배당이다. 1994년 새로운 예배당이 건립됨에 따라 지금은 선교관으로 쓰이는 이곳은 1893년 대구경북지방 최초의 기독교 교회인 남성정 예배당을 모태로 시작했다. 처음엔 기와로 시작해 단층 교회를 신축하고 후에 벽돌조의 교회당을 신축한 이 교회는, 1936년 완벽한 교회의 모습으로 완성되었고, 건물 전체에 근대의 고딕 형식이 잘 나타나 근대 건축물 연구에 큰 자료가 되었다. 기독교인 내게 이곳 제일교회는 대구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기독교의 산증인과도 같은 장소였다.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
선교사 블레어가 자택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함께 지은 이 건물은 학생의 공부와 강연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외에 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운동 등 각종 민족운동의 경남 지역 거점 기능을 했다.
대구 근대사와 가장 밀접해 있는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만들 장소였고,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산증인이 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