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초등학교의 추억
기억과 추억 사이/수필·산문·에세이
2007-02-06 20:01:57
경부국도를 달리다 보면 노근리 터널 못미쳐 초등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산자락 아래 낡고 허름하게 서있는 학교, 내 유년 시절의 꿈과 희망이 서려있는 노송초등학교다.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전교생이 수백 명이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러던 것이 사정이 달라졌다. 젊은 사람이 농촌을 뜨는 이농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학생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얼마못가 분교가 되는가 싶더니 폐교가 된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런 소문이 현실이 된 것은 불과 10년 전이었다.
부모님의 산소가 고향에 있어 가끔 일을 보고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폐교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궁금증을 안고 첫발을 내 디딘 순간, 운동장은 왜 그리 작아 보이던지, 그 앞에 빤히 보이는 학교 건물도, 뒷배경이 되어주던 산들도 왜 그리 낮아 보이던지, 40년이 흐른 세월동안 훌쩍 커버린 내 마음 때문일까. 그러나 눈앞에 펼쳐지는 폐교의 광경을 본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누런 풀들이 얼키설키 솟아난 운동장도 그렇지만 녹이 잔뜩 슬어 반쯤 허물어진 축구 골대나 바람이 불때마다 삐걱거리며 흔들리는 그네, 아예 흔적조차 없어진 꽃밭의 동물 모형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건물 쪽으로 걸어갈수록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그 옛날의 풍경들
그 때의 시간이 머문 듯 정지된 풍경들은 한결같이 폐허 상태였다. 측백나무 울타리 아래 물놀이를 즐겼던 수도가나 그 옆의 연못도 아예 흔적조차 없었다. 바닥을 메워버린 쓰레기 더미에선 세월에 시든 잡풀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쳐들었고, 하늘을 향해 멀대처럼 자란 상록수 몇 그루만 울울창창 그 때의 시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연못이었는데, 크기는 손바닥만해도 쉬는 시간에 산책 장소로 아주 제격이었던 연못, 그 때 그 곳에서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울긋불긋 물속을 휘저으며 다니던 비단잉어들, 수줍게 자줏빛 꽃을 터뜨렸던 난초들, 구름처럼 부유하던 부레옥잠들, 그 곳에서 놀다 종이 울리면 오종종 뛰어 들어갔던 6학년 1반 교실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뒤로 돌아가려니 괜히 겁이 났다.
어둠이 잔뜩 고인 화장실이나 허물어진 사택, 도르레로 물을 길어 올리던 우물터, 아무데나 뿌리를 틀고 솟구친 잡풀들이 바람에 진저리를 칠 때마다 머리끝이 쭈빗 솟아올랐다.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음산했다. 문짝이 없는 복도를 살짝 엿보았더니 벽이 동굴처럼 뚫여있고, 허물어진 벽돌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누군가 문화 공간으로 개조하려다 그만둔 것이 틀림없었다.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며 끓임 없이 떠돌았던 소문은 언제쯤 사실로 굳어질까. 요즘 폐교가 된 학교 건물을 임대해서 화가나 작가들의 작업실로 꾸민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린다. 황량한 폐교를 허물어 문화공간으로 꾸민다면 가끔 찾아와 그 때의 시절을 회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화장실 옆 측백나무 울타리 너머 고불고불한 산길이 아직도 흐릿하게 남아있다. 내 고향 안화리에 닿는 길이다. 먼지 폴폴나는 넓은 신작로가 따로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그 산길을 지겹도록 타고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초등학교가 폐교가 된 이후로 이 산길은 점점 더 풀길에 묻혀 희미해졌고 산자락에 전답을 일구는 농부들만 이용하는 길이 되어 버렸다.
산길을 타고 가다 새들의 울음 소리도 지겹도록 들었었지, 싱그러운 보리밭 이랑에서 푸른 하늘로 푸릉푸릉 날아오르던 종달새나 축백나무 울타리 사이를 푸드득 날아다니는 참새떼의 지저귐은 아직도 내 유년의 기억을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뻐꾸기 울음소리에 비기랴. 이름 봄날, 진달래가 꽃불을 놓던 뒷산에서 청승맞게 울던 뻐꾸기 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뻐꾸기 울음 소리가 진달래 향기에 묻혀 창문을 타고 날아들던 날,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던 교실, 선생님이 갑자기 문을 확 열었을 때 내 뒤에 앉아있던 영운이가 양손바닥으로 귀를 꽉 막으며 더듬거리는 말에 그만 교실이 웃음보가 되었다.
“야. 빠, 빨리 귀, 귀 막어”
녀석이 귀를 막은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귀를 꽉 막아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선생님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놈인가. 학년이 바뀌면서 선생님은 아이들을 심심하면 벌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이하게 단체기합을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머슴애들은 책상위에 올라가 바지를 내리고 무릎을 꿇게 하고선 회초리로 사정없이 무릎을 찰싹찰싹 갈겼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지만 짝궁이 된 여자애들 때문에 소리내어 울 수 없었다. 그 때는 선생님이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미웠지만 지금은 그런 시절을 다시보고 싶을 정도로 살가운 풍경이 되었다.
희미해진 기억 속에서 유독 선생님 얼굴만 생생한데
40년 전의 세월이라 모든 게 기억 속에서 아물아물하다. 잠깐 둘러보는 자리에서 6년 동안의 기억을 어떻게 다 끄집어낼 수 있단 말인가.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들이 뒤죽박죽이다. 어떤 것은 선명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 헤어져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타임마신이라도 있다면 1960년대 그 때의 시절로 되돌아가 정겨운 풍경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
입춘을 하루 앞둔 날이지만 바람이 무진장 차고 매섭다. 끄트리만 간신히 남은 겨울 한 자락을 다가오는 봄에게 내주고 싶지 않는 가보다, 조금 있으면 운동장을 솟구쳐 올랐던 누런 잡풀에도 파랗게 물기가 올라오겠지, 그리고는 앞 다퉈 풀꽃이 피고 뒷산에선 뻐꾸기 소리 청승맞겠지, 그 때 지겹도록 상큼하게 냄새를 피우던 청보리밭도 고랑고랑 싱싱한 물이 들어가겠지, 다른 친구들도 나처럼 폐교가 된 학교에 살짝 다녀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선생님을 생각할까. 나이로 본다면 지금쯤 돌아가셨을 만도 한데, 아득한 세월에 다른 것들은 자꾸만 기억을 지워가지만 그 때 아이들에게 단체기합을 주었던 그 선생님의 얼굴이 왜 그리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이제는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묻어둔 추억들, 언제쯤 끄집어낼 것인가. 건물 앞 허공으로 높이 솟은 국기봉에 매달린 산불방지 캠페인용 국기가 그 시절의 기억을 두드려 깨우듯 찢어질 듯 팔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