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설교 중심 사상: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면 다른 사람을 그분께 인도하는 통로가 된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침을 억누르기 힘든 것처럼 사랑도 숨기기 어렵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표가 납니다. 예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게 됩니다.
A.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가?
침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나다나엘도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요? 안드레와 요한은 침례 요한의 증언을 듣고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의 증언을 듣고,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먼저 다른 사람의 증언을 들은 후에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9과 1:35-3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기별을 전할 때, 예수님이 무리 가운데로 오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선언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고, 그분의 얼굴은 광야에서의 극심한 시험 때문에 수척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침례 요한은 다음날에도 그분을 가리키며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선포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정치 철학자 마키아벨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실제보다 외모로 판단한다. 누구나 눈은 있지만 통찰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당시 요단강에 있던 군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눈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적 통찰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시대의 소망 137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금은 창백하고 쇠약하고 여위어서 선지자 요한만이 그분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은 그분의 얼굴에 거룩한 동정과 뚜렷한 능력이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눈길마다 얼굴 전체에 겸손과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예수님은 비록 수척해 보였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났습니다. “모든 눈길마다 얼굴 전체에 겸손과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참으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얼굴입니다. 당시 군중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분에게서 비범함과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침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했을 때, 그의 제자 안드레와 요한은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의 말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느끼고 두 사람은 직접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요한복음 1:38-39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그날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그분의 제자가 된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테미 멜턴이라는 여성 전도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슬프게도 많은 사람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 관해 배우지만 하나님을 잘 모른다." 우리가 교회에 오래 다니며 하나님에 대해 배울지라도, 정작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공적인 예배 시간 외에도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께 질문하고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그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어 단어 중에 '듣다'는 'listen'과 '침묵하다'는 'silent'는 알파벳 순서가 다를 뿐 스펠링이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자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분 앞에서 침묵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금방 답을 주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기 위해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그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입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고 나다나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복음 1:47-4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은 먼저 제자가 된 빌립의 증언을 듣고 곧바로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의심이 있었지만,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다나엘을 알아보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다나엘은 자신의 생애가 예수님 앞에 모두 드러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의심을 품고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찾아가 그분을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장로교회에 30년간 출석하던 한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신앙에 열심이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 그녀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한 지인의 소개로 여수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기도회에서 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영혼이 소멸된다는 내용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설교 후, 목사님께 질문했지만 답을 주지 않고 예언 전도회의 설교 몇 편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설교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한 달 동안 1시간 30분짜리 설교 6개를 여러 번 들은 후에야 점차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후 병원에 있는 재림교회의 서적들을 읽기 시작했고, 결국 재림교회의 기별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에 관한 이야기는 설교 끝부분에서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대의 소망」 141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제자가 된 것은 스스로 보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다나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연구하고 성령의 깨우쳐 주심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안드레와 요한 그리고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 그분이 어떤 분인지 확인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것이 진리인지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행 17:11).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나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진리를 직접 확인하는 구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B.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하는가?
안드레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깨닫자마자 형제인 베드로를 찾아갔습니다. 요한복음 1:41-42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여기서 “먼저"라는 단어는 “처음으로"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다른 할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형제 시몬에게 달려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빌립도 같은 일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1:45-4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이 예수님을 따른 후에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 대한 편견을 보이자, 빌립은 "와서 보라"고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멋진 장소를 방문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의 소망」 141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회개하면 즉시로 예수가 자기의 귀중한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려주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에 생긴다. 구원하며 성화시키는 진리는 마음속에 가두어 놓을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있을 때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즉시 알리게 됩니다.
또한 「시대의 소망」 141-142페이지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실증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예수님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변화된 삶을 통해 간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증은 오늘날 재림 신자에게 더 많이 요구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노력을 하지 않아 죽어가는 영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암에 걸린 후에 진리를 발견한 여집사님에 대해 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진리를 찾은 후에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요양병원에서의 처음 몇 개월은 어떻게 하면 '암에서 나을까?'였지만, 이후의 몇 개월은 '어떻게 하면 다른 암 환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습니다. 암 환자 중에는 건강 프로그램을 알고 온 사람이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 주면서 예수님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직원에게 마음을 열지 않던 환자들이 같은 환자인 그녀에게는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녀는 간중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목표는 병에서 낫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녀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바뀔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나 그분과 사랑에 빠진 참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신도 윤택해집니다. 물이 흐르는 주변에는 나무와 풀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흐르는 주변은 살아납니다. 생명수이자 빛이신 예수님의 통로가 되는 자는 가장 큰 축복을 받아 자신이 먼저 살아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그분과 깊은 사랑에 빠져봅시다. 그 사랑이 진실하고 깊어질수록 우리는 예수님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생명을 얻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사람들을 그분께 인도하는 아름다운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