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 1169.1.15.∼ 1241.10.8.)
고려의 문신, 시인
본관은 황려(黃驪)
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백운산인(白雲山人),
시호는 문순(文順)
美 人 怨 (미인원)
腸斷啼鶯春 장단제앵춘
落花紅簇地 낙화홍족지
香衾曉枕孤 향금효침고
玉瞼雙流淚 옥검쌍류루
郞信薄如雲 랑신박여운
妾情撓似水 첩정요사수
長日度與誰 장일도여수
皺却愁眉翠 추각수미취
애간장 탑니다 우는 꾀꼬리 봄날에
떨어진 꽃 붉게 땅을 뒤덮었어요
이불 속 새벽잠은 외롭기만 하고
고운 뺨엔 두 줄기 눈물 흘러내립니다
사나이 믿음 엷어 뜬구름 같고
이내 마음 일렁이는 강물 같습니다
긴긴 밤을 누구와 함께 건널까요!
찡그리며 우울한 눈썹 푸르름 지웁니다 (順讀)
啼 : 울 제
鶯 : 꾀꼬리 앵
簇 : 뭉칠 족, 모일 족, 무리 족, 떼지을 족
衾 : 이불 금
曉 : 새벽 효, '밝다', '깨닫다', '타이르다', '사뢰다'
枕 : 베개 침
孤 : 외로울 고
瞼 : 눈꺼풀 검, 눈시울 검
薄 : 엷을 박
撓 : 흔들릴 요, '휘다', '굽히다', '어지럽다'
皺 : 주름 추, 주름지다', '쭈그러지다'
却 : 물리칠 각, '내치다', '물러나다', '없애다'
愁 : 근심 수, '시름', '우울함'
翠 : 푸를 취, '물총새', '비취(보석)'
美 人 怨 <回文>
翠眉愁却皺
誰與度日長
水似撓情妾
雲如薄信郎
淚流雙瞼玉
孤枕曉衾香
地簇紅花落
春鶯啼斷腸
푸른 눈썹은 수심 겨워 찌푸려 있는데
뉘와 함께 긴긴 밤을 지내어 볼까
강물은 내 마음인 양 출렁거리고
구름은 신의 없는 님의 마음 같아라
두 뺨에 옥 같은 눈물 흐르고
외론 베개 새벽 이불만 향기롭구나
땅 가득히 붉은 꽃이 떨어지고
봄 꾀꼬리 우는 소리에 애간장 타누나 (逆讀)
回文詩란 첫 글자부터 순서대로 읽어도(順讀) 뜻이 통하고, 제일 끝 글자부터 거꾸로 읽기 시작하여 첫 자까지 읽어도(逆讀) 뜻이 통하는 시를 말한다. 뜻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운자도 맞아야 한다. 일종의 배체시(俳體詩)이자 유희시(遊戱詩)이다.
回文詩는 시인들이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표현 기법을 구하고자 고심에 찬 노력 끝에 창조된 쟝르이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을 절묘하게 살려서 짓는 回文詩는 한 수에 두 수의 뜻을 형상화할 수 있는 아주 경제적인 詩이기도 하다.
回文詩는 앞뒤로 운자의 제한을 받고 또한 순서대로 읽거나 거꾸로 읽을 때에도 뜻이 통하도록 하여야 하기 때문에 짓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고도의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만 지을 수가 있다.
● 여간 (如干) ; (부사) 보통, 보통으로
이규보에 대한 평가
신의론(新意論) vs 용사론
이규보는 당대 큰 문장가이던 이인로와는 정반대의 문학관을 갖고 있었는데, 이인로의 용사론이 과거의 고전에서 좋은 구절을 응용하여 시를 짓자는 의견인 반면 이규보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여 시인 자신의 목소리로 독창적인 표현을 써야한다는 신의론을 주장했다.
때문에 이규보의 작품에는 기존 한시에서는 쓰지 않았던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그 표현이 탁월한 명구절들이 많다.
그의 대표시 <미인원>은 그의 기발한 시적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지금 입장에서 보아도 매우 파격적인 회문시(回文詩, 앞에서 뒤로 또는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의미가 통하는 한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사륜정(四輪亭)
이규보의 독창적이면서 기발한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륜정인데, 이것은 네 발 바퀴가 달려있고 가벼운 대나무로 만든 정자로서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 했던 기발한 것을 발명해 내는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규보의 사륜정 실물은 경기도 양평군 석창원에 있다.
민족혼을 깨우는 시
이규보는 개성 천마산 은거 시절, 고구려의 계승 국가 고려의 정통성을 세우고 고려인의 단결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으로 <동명왕편>을 지었다.
이것은 당시 무인 집권에서 생긴 혼란과, 또 백제, 신라 부흥 운동으로 고려의 정통성마저 부정하는 상황 속에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정통 민족 국가임을 내세우기 위하려는 의도에서 쓰여졌다고 평가받는다.
<동명왕편>은 이후 이승휴의 <제왕운기>, 조선 초기의 태조 이성계의 업적을 찬양한 <용비어천가> 창작에도 영향을 끼쳐 민족 서사시의 정통을 최초로 수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