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테두리에 ‘中’자가 새겨진 모표를 붙인 모자를 쓰고 까만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괜히 심통이 나고 분풀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완력이 작동하고 있는 자신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때 공부도 못하고 맨 뒤에서 허우적거리듯 지낸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멋지고 의젓해 보였다.
마냥 그들을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 없는 나는 다시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를 하러 갈 수 밖에 없었다. 괜한 설움이 밀려와 복받치는 마음 한구석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찌하여 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책가방 대신 지게를 지고 높은 산고개와 재를 넘나들며 나무나 해야 하는가…… 내 자신이 너무나 작아 보이고 한스러웠다.
‘어떻게든 진학을 하리라’
마음속에 다시 한 번 각오를 새기고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을 했다.
상품가치가 있는 장작나무를 골라내다 팔기도 하고 숯을 운반해주고 품삯을 받는 일도 했다.
오늘은 황진골로 숯을 운반하러 갔다.
나무꾼과 숯지게꾼들만 다니는 험한 산 오솔길은 혼자서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다. 가파르기는 얼굴이 땅에 닿을 듯한 비탈길이여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정신을 집중해야만 하는 길이다.
40키로가 넘는 숯포대를 지고 그 험한 산길을 반쯤 내려 왔을 때 급커브 길을 돌다가 그만 지게목발이 진달래꽃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숯포대가 데굴데굴 굴러 골짜기 물웅덩이로 쳐박혀 버렸다. 숯덩이는 깨어져 부스러기가 되어버렸고 게다가 물을 빨아먹어 엄청 무거워졌다. 힘들게 옆으로 굴려 건져 놓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자니 걱정이 태산이다. 부스러진 숯의 대한 질책도 두려웠지만 그보다 물을 먹어 무거워진 숯을 짊어지고 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갈 길이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우선 골짜기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숯포대를 언덕빼기로 굴려 간신히 지게에 얹어 놓긴 했지만 너무나 무거워서 한발짝 걷기가 힘들었다. 산길을 벗어나 벌판으로 나오니 여기저기 모내기가 한창인 논두렁에는 모꾼들이 새참을 먹고 있는 듯 했다. 무거운 숯포대를 지고 얼마나 실랑이를 오래 했는지 점심전에 도착해야 될 숯짐은 벌써 새참때가 되었는데도 가야만하는 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 못해 허기가 치솟아 발걸음 떼기가 더욱 힘들었다.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할지……. 기약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드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짐은 무겁고 허기는 극도로 차올랐지만 눈물을 밟으며 힘겹게 앞으로 앞으로 가고 또 갔다. 그날따라 뻐꾹뻐꾹 울어대는 뻐꾹새 울음소리가 들녘에 퍼져 나를 더 슬프게 하였다.
어떻게든 이 생활을 변화시키고 말겠다는 각오를 몇 번이고 다져가며 목적지에 도착하니 나 혼자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즉에 일을 끝내고 돌아갔을 것이다.
부스러진 숯과 물먹은 숯포대를 보고 내 얼굴을 쳐다보시던 사장님은 내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 주시더니 오늘은 전표가 아닌 현금으로 삯을 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하는데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온다. 훌쩍훌쩍 우는 나를 달래주시는 사장님의 온정과 배려가 나를 더 울게 했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학교에 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는 기대로 피로를 달래며 힘들고 지친 하루를 마무리 했다.
서당에서 과제를 정리하던 중 동네 아는 형님이 느닺없이 찾아와서는 중학공부를 할 수 있다며 당장 책보따리를 싸서 나오라고 했다. 서당에 발을 붙인지 겨우 한달여 밖에 되지 않아 이제 겨우 천자문을 이수했을 뿐이지만 영문도 모르고 설레임에 서당교육을 정리하고 현대식 교육을 받기로 결정했다. 알고 보니 교육청 장학관 한분이 진학 못 한 아이들을 위해 야간학교를 개설하셨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대학을 졸업한 뜻있는 분들을 선생님으로 모셔오고 학습과정도 훌륭하게 짜여져 있었다.
야간학교에는 향학열이 높은 아이들이 모였지만 피로를 이기지 못해 조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들은 그런 학생들을 안쓰러워하시며 온 정성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석달이 지난 어느 날 중학교에 편입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편입시험을 치르고 나는 당당하게 2학년으로 편입을 하게 되었다.
일년 반동안 힘든 지게질을 하고 고작 석달을 익혀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생들과 같은 2학년으로 편입이 된것이다. 그들과 같은 진도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
세월이 흘러 군생활을 마치고 야간학교를 개설해 주셨던 선생님께서 고위직으로 계신 서울의 한 경찰서를 찾았다. 선생님을 찾아뵙고 그간의 세상사를 회고 하며 내 운명을 크게 전환해 주신 평생의 은인 선생님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드릴수 있어 다행스런 일이었고 선생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많은 일중 가장 뜻 깊은 일이었다고 만족해 하셨다.
이제는 지역사회의 봉사일꾼으로 일할 수 있는 직책까지 가지고 보니 어린 지게꾼의 앞날을 개척해 주려했던 신의 묘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첫댓글 어쩜!
그 번민과 고난의 길!
그래도 참고 견디며 일어선 그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도 배움의 의지를 놓지 않은 것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