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름과 공감하는 시선 ‘종교문해력 총서’ ◆
사회 여러 부문에서 통용되는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은 글을 아는 능력을 넘어 그 의미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종교문해력은 ‘맹목적 믿음’이 아닌 ‘이성적 이해’의 측면에서 종교를 재해석하고 소통하는 능력으로, 종교문해력의 비판적 성찰과 모색의 힘은 올바른 종교의 선택과 바른 신행의 지향점을 제공한다. 특히 다종교·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른 종교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종교 감수성’을 높이는 힘이 된다.
마인드랩이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지원을 받아 출간한 ‘종교문해력 총서’는 종교문해력으로 종교 감수성을 키우는 입문서 시리즈다. 『내 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종교), 『인생의 괴로움과 깨달음』(불교),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기독교),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이슬람교), 『소태산이 밝힌 정신개벽의 길』(원불교) 등 5종으로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오래 사랑받는 세계 종교의 핵심 메시지들을 인문학 관점에서 접근했다.
‘종교문해력 총서’는 종교학을 비롯해 붓다·예수·무함마드·소태산 등 각 종교 창시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그들이 고민한 인생의 근본 문제와 그 해답을 새롭게 풀이한다. 그리고 탈종교, 기후변화와 팬데믹, AI 혁명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종교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다름과 공감하는 시선의 방향을 일러준다.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성장하는 ‘인간 예수’의 또 다른 이야기
『지금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는 ‘믿음’이 아닌 ‘이해’의 측면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종교 감수성을 키우는 ‘종교문해력 총서’의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오직 예수’를 부르는 맹목적인 믿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 예수’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 이렇게 4개 복음서에서 기록한 예수의 말과 행동에서 은유와 사건을 재해석한 이 책은 예수의 사랑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이기도 하다.
‘금발 백인 남자’ 이미지 걷어 낸 새로운 예수의 초상화를 그리다!
예수를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금발 혹은 갈색의 물결치는 고운 머리카락에 온화한 미소를 띤 백인 남성이다.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면서 나라마다 다양한 예수의 얼굴이 그려졌다. 하지만 유독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의 얼굴은 ‘금발의 백인 남자’다. 왜 그럴까?
‘금발의 백인 남자’ 이미지는 미국 화가 워너 샐만의 1940년 작품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 세계적으로 5억 장 이상의 복사본이 팔린 만큼 기독교를 믿든 안 믿든 익숙한 이미지가 됐다. 저자는 “전형적 예수 이미지가 처음부터 ‘서구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 역사 속 예수는 백인이었을까?
“2015년에 공개된 리처드 니브(Richard Neave)의 이 예수 이미지는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큰 논란과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니브는 디지털 기술과 포렌식 기법을 활용해 1세기 팔레스타인 남자의 얼굴 특징을 반영한 예수를 형상화했다. 짙은 피부, 둥그런 눈, 뭉뚝한 코, 곱슬머리의 이 예수 얼굴에 거부감이 든다면, 은연중에 우리의 관념이 서구화되어 있거나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분명한 것은 예수는 중동의 유대인 청년이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예수의 얼굴을 ‘금발의 백인 남성’으로만 상상한 우리의 편견을 깨부순다. 예수를 알거나 믿는 이에게도 충격적이었던 십자가에 매달린 여성 형상의 조각상 〈크리스타(Christa)〉,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를 형상화한 목판화 〈빵 배급 줄의 그리스도(The Christ of the Breadlines)〉, 불자 예술가가 만든 작품 〈야곱의 우물가의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Jesus and the Samaritan Woman at Jacob’s Well)〉 등 다양한 예수의 얼굴을 소개한다. 예수의 얼굴에는 문화에 따른 예술적 상상력이 무한하게 더해진다고 분석한 저자는 ‘박제된 예수의 얼굴’을 거부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살아있는 예수의 얼굴’을 제안한다.
“우리 시대의 작은 자들인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얼굴을 보고 환대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거리에 살아 있는’ 예수의 얼굴을 보게 된다.”
강력한 메시아를 갈망한 기대와 달리 함께 고통받는 사랑을 선택하다!
예수가 숨 쉬고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은 예수에게 그리 녹록지 않았다. 예수는 유대교 전통 안에서 ‘배신자’였고, 로마 제국에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전복시킬 ‘반란자’였다. 당시 사람들은 복합적인 고통에 시달렸다. 로마 제국과 헤로데 왕국의 정치적 억압, 엄격한 율법주의, 이중삼중의 세금 부담 등 가난한 유대인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 즉 메시아를 갈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예수였다.
“시대가 고통스럽고 혼란할수록 우리는 메시아를 열망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대하며 따라가려는 메시아가 ‘어떤 메시아’인가다. 부와 권력을 한 손에 쥔 카이사르나 다윗 같은 정치적 메시아, 신비주의나 열광주의로 대중을 현혹하는 종교적 메시아,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예수 같은 ‘고난받는 메시아’도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수는 정치적 지도자보다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랑을 택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세상을 지상에 실현하려는 한 명의 유대인이었다.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바랐던 인간이었다. 저자는 예수의 사랑을 우리의 삶으로 소환하며 되새김질한다.
“오늘의 우리가 차별받고 혐오당하는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것,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소비문명으로부터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것, 성평등 교회와 사회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것, 전쟁과 폭력에 맞서 평화를 외치는 것 등 이런 사회적 실천 하나하나가 역사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