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lash of civilizations
새뮤얼 헌팅턴의 대표작. 냉전 종식 직후인 1993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고, 3년 후 동명의 저서로 확대 출간되어 세계 전역에서 치열한 논쟁을 일으켰다.
2. 역사적 흐름
헌팅턴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에는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져 왔다.[1]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문명의 정체성을 대체하여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이 주도권을 차지하며 5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지속된다. 그러나 80년대 말까지 세계 질서를 결정하던 미국과 소련의 양극(bi-polar) 냉전체제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리면서, 다극(multi-polar) 체제로 다시 세계질서가 재편된다고 주장했다.[2] 그리고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을 위해 대신 싸워온 대리 전쟁 국가[3]들 내부에서 쌓여온 갈등,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 정체성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문명의 충돌》에서의 문화권 분류
Western - 헌팅턴은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권을 서방(Western) 문명권으로 보았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일부 지역, 파푸아뉴기니 등 이 있다. Orthodox - 헌팅턴은 동구권을 정교회(Orthodox) 문명권으로 보았다. 발칸반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정교회 문화권과, 카자흐스탄 같이 구소련에 속해있던 지역 중 일부가 포함된다. Islamic -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African - 아프리카, 즉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대명사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권이다. Latin American - 라틴 아메리카, 토착 문화(아즈텍, 마야 문명, 잉카 등)와 가톨릭 문화권(에스파냐, 포르투갈)이 혼합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Sinic - 중국, 즉 유교 문화권으로 한자 문화권으로도 대표되는 동북아시아이다. 중화권, 한반도, 베트남 등이 포함된다. Hindu - 인도 아대륙을 중심으로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힌두교 문화권이다. Buddist - 불교 문화권이다. 티베트 불교 문화권(티베트, 몽골, 부탄 등)과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 문화권이 여기에 속한다. Japanese - 일본, 일본이란 단 하나의 국가로만 성립하고 Sinic에 포함하지 않는 별개의 독자적인 문화권 으로써 특히 신토가 강세를 보인다.
4. 냉전 이후 세계 질서 예측
서구(Western)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며, 동아시아와 이슬람 문명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과 인근 국가들간의 세력 균형이 위협을 받을 것이며, 비서구 문명들은 자신의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강화해 갈 것이다. 서구의 압도적인 패권은 점차 약화될 것이며 그 패권은 점차 비서구 세계, 특히 동아시아 문명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권의 이동은 비서구 사회의 자긍심과 서구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의 쇠퇴로 인하여 종교의 이념적 가치가 부활하여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비서구 국가들은 서구 문명의 타락성에 반감을 가지며 서구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과 동아시아는 도전의 기반이 서로 다르다. 동아시아는 빠른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자기주장을 펼칠 것이며 이슬람은 인구 증가를 기반으로 자기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 두 차이점은 두 문명의 각기 다른 도전이 세계 질서의 위협에 끼치는 정도의 차이를 야기한다.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세계 질서 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슬람은 비 자본주의적인 방식, 즉 테러리즘과 같은 무력 행사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즉, 동아시아보다는 이슬람이 더욱 세계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자신들의 가치가 세계 보편적인 가치임을 주장하는 서구 문명에 맞서 동아시아(특히 중국), 이슬람의 도전이 앞으로의 세계 질서의 위협 요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정교회), 일본(신토), 인도(힌두교)는 이 문명의 경계선에 걸쳐서 있어, 협력과 갈등의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서구의 편에, 또는 비서구의 편에 설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려는 것을 미국이 저지하려고 할 경우, 대규모 전쟁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5. 현실 세계 대입[편집] 이 책은 냉전이 종식된 직후인 1993년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후 세계 질서 변화에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주요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슬람 문명과의 갈등 - 새뮤얼 헌팅턴이 예언한 이슬람 문명의 부상과 갈등은 2001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IS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일련의 테러 역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종교의 순수성 강화 -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슬람주의 세력이 성장하여 서구를 타락한 존재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요하고 있다.[4] 중국의 경제적 부상 - 중국의 부상은 헌팅턴이 예상한 방식으로, 경제적인 성장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패권 장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위안화가 준 기축 통화화 되면서, 미국의 달러화 본위제 기반 경제 패권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 -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에서는 지속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5], 경계선 상의 몇몇 국가들은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서 시소처럼 자국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패권 이동에 따른 대규모 전쟁 -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의하면 세계의 패권이 한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이동할 때 대규모의 전쟁이 발생한다고 한다.[6] (다행히도)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지만,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십수년 안에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6. 비판
"길 잃은 문명충돌론"(<매일경제> 2022년 7월 6일 기고문. 저자 장지향(아산정책연구원))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7]이 팽배했던 학계에 경종을 울렸으며[8], 새로운 분쟁의 원인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좋게 말하면 '명쾌하고 냉철한 선견지명'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분법적 숙명론과 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대립 선동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이 점은 황화론(Yellow Peril)과도 통한다.
6.1. 문명 간의 충돌은 숙명인가? 문명충돌론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의 대화, 공존 가능성과 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은 평가절하한 채, 대립과 충돌의 숙명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문명도 엄연히 인간이 만든 것인데, 인간이 문명에 일방적으로 지배받기만 한다는 주객전도식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1998년 독일 학자 하랄트 뮐러도 《문명의 공존》(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이란 저서를 통해 헌팅턴의 견해에 반박했다. 그는 문화는 섬처럼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충돌이 아니라 양립하거나 새로운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에드워드 사이드[9]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무지의 충돌(The Clash of Ignorance)이라는 글로 문명충돌론을 비판했다.
문명충돌론의 지지자들은 코소보 전쟁,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등의 사례가 헌팅턴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가 세력, 규모 측면에서 이슬람 전체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국가들 내부의 정치, 사회적인 불안정 및 취약성으로 이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제대로 예방 및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것이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또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르완다 학살 등 문명 내부의 충돌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도 '문명 충돌'이라는 요소만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국제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중요성의 비중 강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높다. 만약 동아시아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국제 질서의 주변부일 뿐이라면, 굳이 미국 같은 패권국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헌팅턴의 문명충돌론대로라면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대만, 한국 등은 진작에 중국과 협력 관계에 있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문명적으로 이질적인 미국과 동맹 내지는 제휴 관계에 있으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6.2. 서구중심주의(미국과 서유럽 중심) 냉전의 종식으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의 구도가 무너지고, 명백한 적이 사라지자, 헌팅턴이 문화권이라는 새로운 진영 논리를 끌어들여 서구 세계(사실상 미국)가 상대해야 할 새로운 이념적 적대 세력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있다. 기존의 냉전 세계관이 끝나니 이제는 러시아를 '정교회', 서아시아를 '이슬람', 중국을 '유교'라는 식으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6.3. '문명'의 탈을 쓴 자의적 구분 비판과 논란이 매우 많은 분류이다. 헌팅턴은 1차적으로 종교, 문화에 따라 구분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국제적인 세력 논리를 이름만 바꿔 나누어 놓은 세력 정치 반영에 불과하다.[10]
일단 보면 알겠지만 유라시아는 종교를 핵심적 문화 요소로 보고 묶은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같은 기독교권은 가톨릭-개신교의 서구권을 서방으로써 정교회권과 나누었는데 같이 서구에서 기원하였던 앵글로 아메리카는 서방에 편입시킨 반면, 라틴 아메리카를 또 구분하였다.
정작 같은 이슬람교라고 해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서로 갈등이 심한데다[11], 불교도 대승 불교와 상좌부 불교가 다른데 그냥 하나로 묶었다. 정작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종교의 정치 개입을 부정하는 세속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지배의 영향으로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러시아와 동유럽을 '정교회'권으로 구분한 것도 똑같이 치우쳐진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도 문제가 많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유교 문명권이었지만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이며, 북부 지방을 제외하면 유교 문화권뿐만 아니라 동남아 문명의 영향도 크다. 그리고 한자 문화권이라고 한국과 베트남을 중화와 묶어 놓은것도 굉장히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만든 잘못된 분류이다. 왜 일본만 굳이 분리해서 독자적 문명으로 간주했는지도 의문이다. 가나 문자를 만들거나 신토의 영향이 강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신토 못지 않게 강세인 불교는 중국에서 변형된 대승불교를 백제를 통해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여러 제도나 체계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서구학계의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였던 아놀드 토인비는 일본을 중국의 '위성문명'으로 분류하였을 정도였다. 오히려 독자적인 종교나 문자로 구분한다면 텡그리 신앙과 밀교를 믿고, 여진 문자와 몽골 문자, 만주 문자를 썼던 몽골족과 여진족이 별도의 문화권으로 나뉘지 않을 이유가 없다.[12]
게다가 필리핀과 파푸아 뉴기니를 서구(Western) 문명의 일부로 간주했으니 종교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부분은 헌팅턴 개인의 선호에 따른 자의적 분류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미국 내 영향력이 적거나 세력 정치와 반대되는 경우는 정말 비전문적이고 무성의한 분류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로 스리랑카와 인도차이나 반도 일부 지역을 몽골과 함께 불교 문화권으로 묶은 것과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도서부를 같은 이슬람 문화권으로 묶은 것을 들 수 있다. 애초에 몽골은 지리적, 인문학적으로 북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에 가까운 지역으로써 저 동남아, 남아시아 지역들과는 기후와 생활 환경 자체가 다르고 스리랑카의 싱할라인과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믿는 상좌부 불교와 몽골의 티베트 불교는 서유럽의 개신교와 가톨릭, 동유럽의 정교회만큼이나 교리가 판이하게 다르다. 이슬람 문화권으로 묶인 지역의 경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언어 및 문화적으로 유사하여 일반적으로 동일한 문화권으로 간주되지만,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도서부는 기후와 환경, 인종이 상이하여 생활 양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
6.4. 미국 이민자 문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애초에 미국은 이민자인 영국 청교도들이 세웠으며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통해 키운 국가이기에 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가령 히스패닉계가 미국 내에 지나치게 많아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만을 고집하여 미국 안에 독립 자치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등이 있다. 이는 실제로 미국 백인/흑인들의 불안감에 부합하며[13],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탰다.
진영논리나 인종차별 논란을 떠나서 헌팅턴은 미국 역사를 아주 피상적으로 그것도 부정확하게 일반화한다는 주장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청교도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 "미국의 청교도"라는 종교집단은 하나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초창기 미국으로 이주해온 종교적 소수자 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교파가 청교도[14]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미국 백인 중 가장 인구 비중이 높은 집단은 주로 루터교회를 믿던 독일계 미국인이며, 미국 초창기 역사에서 정치 분야에서 활약한 교파 사람들은 상당수가 유니테리언 교회 신도였다. 16~18세기 미국에서는 유럽 각지에서 이주해온 칼뱅파 외에도 독일 루터교회 신도들도 많았는데, 루터교회는 청교도와 엄연히 갈래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독일계 루터파들은 초창기 미국 사회에서 이질감 없이 빠르게 적응했다. 미국 청교도가 단일화된 민족 종교집단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이 영국에서 이주해온 청교도 문화와 제도를 이어받았다는 주장은 미국 보수층들을 결집시킬 이데올로기로는 나름 적합한 설명이겠지만 역사적 정확성을 놓고 보면 사이비 역사학 수준의 설명이다. 미국 문화는 인종(영국계/독일계), 종교(개신교) 같은 요인 외에도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지리적/경제적 요인이 더 컸다. 종교에서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토지는 부족한데 인구만 많다던지 하면 해당 사회에 평등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미국 영토가 21세기에도 계속 확장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사회와 경제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마당에 불법 이민자만 안 오면 미국 문화가 부패하지 않고 보전된다는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