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에게 사죄할 일
한도숙
하늘이 높아지면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캔다
그놈들이 땅속에서
서로의 몸을 부비며
얼굴 붉히며
풀벌레 휘파람 소리에
몸뚱일 키우는 동안
난 정말 몰랐었다
욕된 상징들이 몸을 키웠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부관참시의의 능멸을
마다하지 않는다
얽히고 섥혀도
굼벵이에게 몸을 내 주어도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내는
고구마에게 부끄럽다
왜 것들도 하지 않는
알프스를 광고하는 무리들이
제 색깔을 찾지 못하는 사이
오염수는 땅으로 스며
은밀한 거래를 시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땅 고구마의 내력은
허접한 것이 아니잖는가
주린배를 채웠고
민주주의를 만들어 낸
여전히 붉은 황토밭에
뿌리내리는 고구마는 의연하다
한줌 햇빛에 감동하고
빗방울 하나에 줄기를 뻗는다
서두를 것 없이
축축한 땅 만큼
높아진 하늘 만큼
딱 그 만큼 하늘의 이치를
붉은 알뿌리에 달고 있다
고구마에게 사죄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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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
시집 『딛고선 땅』 외 다수. 칼럼집 『농사의 종말』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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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에게 사죄할 일/한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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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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