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토라#샤밧
성경의 숫자가 어떻게 히브리 경전의 비밀을 풀어주는지 알아보기(part1: 3-7
<히브리어로 된 숫자는 위의 숫자 1~10과 같이 알파벳의 해당 문자로 표시됩니다.>
“우리의 날들 세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우리로 지혜의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십시오(시 90:12).”
어제의 숫자의 비밀(1-2)에 이어집니다.
3. 쉴로샤(쉴로샤 또는 기멜/셋)
“한 사람이 그를 이기면 두 사람이 그에 맞설 것이다. 삼겹실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전4;12).”
세가지, 3은 균형 또는 안정, 연속성 및 영속성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 또는 완전함의 수, 숫자이다. 이 숫자는 성경의 이야기에서 많이 쓰인다.
셋째 날(욤 쉴로쉬-화요일)에 지구가 바다로부터 분리되었다(창1;9~13).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하나님은 한눈(은혜), 라훔(자비), 헤쎄드(친절)의 세 가지 속성으로 묘사된다. 세라핌(천사)은 하나님의 완벽한 거룩을 의미하는 3중의 발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사6;3, 요계4;8)).”
이스라엘은 균형이나 완벽한 토대를 표현할 때 아브라함과 이쯔학과 야아콥, 3명의 건국의 아버지(아보트)들을 언급하고 사용한다.
성경은 3번의 순례의 축제(쉴로쉬 레갈림)를 명시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제물을 가지고 최소한 3번 예루살렘에 가야 할 의무가 있다.
페싹(유월절), 샤부옷(오순절), 수콧(초막절)이 이 순례의 절기들이다. 세 명절은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적 교훈 이상의 것을 알려주고, 메시야를 통해 하나된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들에게 지속적으로 영적인 깨달음을 주어 깊이를 더하게 한다.
페싹은 이집트의 좁은 땅에서의 속박과 어린 양의 희생과 예슈아의 희생을 통한 영원한 죽음을 이긴 것을 기념한다.
샤부옷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지 50일 후에 시나이산에서 토라를 주신 것과, 십자가 사건 40일 후 예슈아께서 승천하시고 50일 되던 날 샤부옷에 성전에 임하신 성령을 기념한다.
수콧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보호하신 것을 기념한다.
그의 영광의 구름을 통해 백성들과 함께하셨고 오늘날에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 여전히 보호하시고 앞으로 메시야의 통치 기간에도 보호하실 것이다.
출애굽기 19장은 아도나이께서 시내산에 내려오시고 모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 말을 하시는 장면과 점점 커지는 쇼파르 소리가 하나님의 마음의 강도를 모쉐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3, 셋은 구원과도 관련이 있다.
아브라함은 약속한 아들을 제물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모리아 산으로 사흘을 여행했습니다(창22;1~4). 엘리야는 짜르팟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3번 뻗었다. 요나는 고래의 배 속에서 밤낮으로 사흘을 보냈다(욘1;17). 에스더는 유대 민족을 전멸로부터 구하기 위해 3일을 금식했다. 그리고 예슈아는 사흘째 되는 날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살아나셨다.
4. 아르바아(아르바 또는 달렛)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땅의 네 모퉁이에 천사가 각각 서서 네 바람을 잡아 그 바람이 땅이나 바다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계7;1).”
4는 기초적인 수학에서 보는 2+2=4와 2×2=4로 4는 창조, 물리적인 영역, 지구, 사계절과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 우리는 땅을 언급하는 넷째 날의 명령을 통해 4와 땅의 연관성을 보게 된다. 또한 주기도문 4번째 조항에 땅을 언급한다. 이 숫자는 지상의 네 왕국을 말하는 다니엘서 7장 3절과 하나님이 사방에서,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을 것을 약속하는 이시야 11장 12절과 같은 장소와 시간의 공간개념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 땅은 선택받은 사람들이 정한 장소이자 공간이다.
구원은 자신의 돌아갈 가치나 공간으로 돌이키는(슈브) 것이며, 자신의 나라로의 귀환(알리야)은 민족으로서 의 구원과 부르심의 성취를 위해 필요하다.
성경에서도 에덴의 네 강(미쉬칸 하코데쉬 강), 광야의 성막, 네 개의 케루빔,네 생물(계4;6 7;11), 옷이나 탈릿 모서리에 있는 네 개의 찌찟트등이 있다.
또 유대민족은 네 명의 어머니(이모트)가 있는데 그 어머니는 사라와 리브카와 레아와 라헬이다.
5. 하미샤(하미샤 또는 헤이)
“레뷔인들보다 이스라엘 자손의 맏아들이 초과하는 이백칠십삼 명의 속전을 너는 두당 오 쉐켈씩 취하되(민3;46,47)”
5는 구원과 은혜, 하나님의 선함의 숫자이다.
E.W.불링거는 “성경의 숫자에서 4가 세계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 무력함, 허영을 나타낸다.”라고 말하면서 5(4+1=5)는 약점에 완벽하게 추가되고 만들어진 하나님의 손, 힘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숫자라고 설명한다. 곧 땅의 무력함에 대한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일, 어떤 상황에도 영향받지 않는 무소 불능하신 하나님의 호의를 의미한다고 한다.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내신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5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세상에 자신의 뜻을 밝힌 모쉐의 5권의 책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십계명은 두 개의 판에 쓰였고, 각 판에는 5개의 계명이 쓰여져 있다.
숫자 5는 성소의 기물을 두는 것(1왕 7;39, 49)과 오천 명이 먹었던 기적(마 14;17)의 공급과 은혜와도 연관이 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사용하고 열심히 일하고 믿음을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
5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5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말하였다. “주인님 당신께서 저에게 5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5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말하였다. “잘했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했으니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길 것이다. 네 주인의 기쁨에 동참하여라.”(마 25;20~21)
6. 쉬샤(쉬샤 또는 봐브)
6일 동안 너는 일하되...(신5;13)
숫자 6은 자연계, 인간, 그리고 물리적인 영역의 6방향(앞, 뒤, 왼쪽, 오른쪽, 위, 아래)을 상징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6일 만에 자연계를 창조하신 후 7일에 쉬었다고 밝히고 있어 이 숫자는 육체적 완성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섯째 날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고 여섯째 계명이 살인을 금지한 후, 6은 사람의 수라고 불리었다. 숫자 6은 숫자 7에 담긴 거룩(케두샤)을 향해 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사람의 활동이 하나님의 제재가 없이 다가올 세상(올람 하바)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곧 지금(올람 하제)의 삶은 덧없는 것이 된다.(유대인의 지혜)
7. 쉐바(쉐바 또는 자인 /7)
“아도나이의 말씀은 정결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정제된 은과 같으니 일곱 번 걸러낸 은과 같습니다.”(시12;6)
숫자 7은 성스러움과 신성함을 나타내며, 완전함, 충만함, 영광을 의미하는 신성한 숫자이다.
7은 사실 유대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미드라쉬에는 “일곱은 모두 사랑 받는다.”(바이크라 랍바 29;9)라고 적혀 있다. 쉐바, 7은 맹세(쉐브아)와 같은 어근으로 헌신과 관련이 있다.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로, 완전을 뜻하는 단어와 만족을 뜻하는 단어가 있다.
7의 일곱째 날인 샤밧은 다른 평범한 6일간의 완성이 일곱째 날에 쉬는 안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이스라엘에서는 일곱 번째 안식년 또는 슈미타(땅을 쉬게 하는 일곱 번째 해)가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샤밧과 슈미타는 둘 다 6개의 일상적인 시간 단위와 하나의 구별된 시간의 단위를 강조한다. 일곱 번째 날과 일곱 번째 해는 모두 특별한(구별된) 시간이다. 또한 레위기 23장 1~44절에는 페싹, 하그 하마쪼트, 욤 하비쿠림, 샤부옷트, 욤 테루아, 수콧등 매년 7개의 절기들이 있음을 보여 준다. 성막의 거룩함과 완벽함은 7가지 기구, 즉 놋 제단, 안뜰, 황금 메노라, 진설병 상, 황금 향로, 언약궤, 속죄의 자리에 투영되어 있다.
성전 메노라의 7갈래의 가지는 루왁 하코데쉬 (거룩한 영)와 관련이 있다. 이사야 11장 2절 메시야를 예언하는 구절에서 세상의 빛 예슈아 하마쉬아흐(메시아)가 루왁 하코데쉬의 7가지 영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가르침은 모든 남성은 우상 숭배, 살인, 절도, 성적 도덕성, 신성 모독,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섭취하는 것을 금하는 노아의 7가지 법을 지켜야 한다.
레위기 26장 18~27절은 7을 가지고 죄에 대해 설명한다.
‘이 모든 일이 끝난 뒤에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너희의 죄를 7번이나 벌하여 주겠다. 만약 너희가 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희의 죄를 받을 자격이 있는 만큼, 너희의 고통을 7번이나 곱하여 주겠다.
이렇게 해도 너희가 나를 듣지 않고 나와 반대로 걸어간다면 나는 너희에게 진노하여 반대로 걸어갈 것이며 나 또한 너희 죄들에 대해 7배로 너희를 벌할 것이다.’
실로 죄 때문에 유대민족은 바빌론에서 포로로 70년을 보냈다(렘29;10)
“참으로 아도나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벨이 70년이 찰 때 내가 너희를 방문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내 선한 말을 너희에게 이루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 관하여 생각들을내가 알기 때문인데 너희에게 희망찬 미래를 주려는 평화의 생각들이지 악의 생각들이 아니다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나는 너희를 들을 것이고.”(렘29;10~12)
바벨로니아에 갇혀 있는 동안 다니엘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70주 동안의 예언을 통해 메시야의 도래 시기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놀라운 수학적 메시지를 받았다. 우리가 본 70주 동안의 숫자들은 거룩함,완성, 완벽함, 그리고 시간의 주기를 포함한다.
그 대목에서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70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예례미야의 예언을 묵상할 때 가브리엘이 그에게 나타난다.
가브리엘은 에레미아의 예언에서 포로 생활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70주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에 정해졌으니 이 기간은 범죄를 끝내고 죄를 완전히 없애고 죄악을 속하며 영원한 의를 가져오고 계시와 예언을 봉하고 지성소에 기름 부을 때까지다.(단9;28)
이 예언은 예슈아의 사역이 시작된 해를 정확하게 예측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해 그가 희생하신 죽음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의로움을 가져온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로의 재건설과 마지막 70주차가 끝나고 예언 시계의 알람이 다시 울리기 시작하는 시대의 끝을 기대한다.
예슈아와의 단절은 70주 중 69주에 불과하다.(단9;24~27) 남은 3년 반은 메시야의 귀환으로 절정에 이르는 환난의 때가 될 것이다. (단9;27, 11;31, 마24;15) 70의 패턴을 통해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역사 위에 하나님의 손이 있음을 나타내며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 준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다니엘서만이 아니라 다른 예언 서에도 많은 계시와 예언이 있다. 이를 통해 메시야를 아는 유대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에서 거주하는 어떤 유대인의 경우, 다니엘의 70주 비전이 자신을 예슈아 하마쉬아흐에 대한 믿음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예슈아를 믿기 전에 다니엘서 9장의 묘사에 따라 예슈아가 어떻게 메시아가 될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성경의 메시아적 예언은 예슈아가 유대인 메시아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확인시켜 준다.
자료: Messianic Bible.com
글: <월간샤밧> 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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