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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휴가와 유진이의 청소년백두대간 생태탐방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유진이와 같이 휴가를 보내지 못한게 올해로 3년째다.
올해도 어김없이 휴가시즌에 맞춰진 백두대간탐방 일정.
올해 중학생이 된 지환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를 보낼거잖아!" 면서 별 거부반응 없이 백두대간 탐방에 동참하게 되었다.
3년차인 유진이는 산에서 느끼게 될 수고로움과 경외감보다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큰 듯 하다.
올해도 같이 신청한 이종사촌이자 친구인 진주와 통화할 적마다 어떤 오빠들이 올까,어떤 재밌는 일들이 있을까하고 기대가 큰 눈치다. 이런걸 두고 제보다 젯밥이라고 해야되나...^^ 그래도 안간다 안하는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날씨와 휴가일정을 고려하여 올해는 한국산악회 강원지부에서 주최하는 대관령권역을 신청했다. 백봉령에서부터 선자령까지 총 58km를 걷는 5박6일 일정. 다행인 것은 야영지가 정해져 있어 무거운 배낭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야 올 여름휴가는 부부만의 단촐한 여행이 되겠다.
16년만에 맞이한 둘만의 여행. 평소 아이들의 태클에 못 가 본 곳. 못 했던 일들 다 가고 싶어 열심히 여행계획을 짰다.
첫번째 후보지는 양구군. 박수근미술관과 대암산 등산. 최근에 개방한 계곡들과 두타연, 펀치볼 등 잠 안오는 밤마다 양구지도를 펼쳐놓고 눈으로 양구를 여러 번 다녀왔다.
휴가 떠나기 4일전쯤. 우연히 강릉 여행지를 검색하다가 '강릉 바우길'이 눈에 띄었다.
정확히 말하면 '강릉 바우길'보다 소설가 '이순원'이란 이름 때문에 클릭을 하게 되었다.
재작년인가, 우연히 읽게 된 책<아들과 함께 걷는 길>. 대관령아래가 고향이었던 작가가 어른이 되기까지의 여러 일들을 대관령 옛길을 걸으면서 청소년인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작가가 들려주는 인생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혔던 이유는 아마도 고만한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연한 클릭질 한 번에 휴가계획이 통째로 바뀌었다.
이순원작가와 강릉의 산악인 몇 분과 뜻이 맞는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서 개척한 바우길은 이미 11구간까지 개척되었고 아직 미완의 상태이다.
강릉을 중심으로 대관령휴게소에서 선자령코스와 바닷가 길을 걸을 수 있는 헌화로 코스까지 어느 한 군데 궁금하지 않는 곳이 없는 길이다.
마침맞게 아이들 일정 중 마지막 날 일정과 바우길 1구간 <선자령 풍차길>이 겹쳐서 휴가 첫날 일정은 바우길 1구간으로 잡았다.
7월 31일 오전 9시까지 강릉종합운동장에 집합하는 아이들 때문에 30일 5시 30분에 강릉으로 출발, 2시간 40분만에 강릉 안목항 민박집에 닿았다. 바우길카페에서 추천받은 민박집이고 바우길 회원은 조금 더 싼 가격에 묵을 수 있고 바우길 몇 구간의 날머리나 들머리가 되는 지점 인 듯 하다. 휴양림에 익숙한 우리가족에겐 약간 낯설기도 했지만 밤에 강릉 밤바다를 거닐 수 있다는 것에 다른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하기로 했다.
7월 31일 아이들을 배웅하고 대관령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할까 하다가 김밥이라도 숲에서 먹는것이 더 맛있을 것 같아서 김밥을 세 줄 샀다. 김밥 파는 휴게소 직원에게 바우길에 대해 아냐고 물으니 모르신단다.
개척한지 얼마되지 않다는 것이 실감난다.
휴게소에서 왼쪽 양떼목장 가는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이렇게 이정표를 만난다. 전봇대에 파란 솟대그림이 바우길 이정표다. 오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따라가면 된다. 우리가 오르고자 하는 선자령이 5.8km 순환등산로이다.
휴게소 주차장에 가득찬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양떼목장으로 진입하고 나와 남편만 호젓한 숲길로 접어 든다.
초입부터 만나게 되는 노루오줌 군락들. 연보랏빛 꽃에는 노루오줌 냄새는 안 났다. 촛대처럼 화안한 등불을 켜고 우리를 반긴다고 나름 해석하며 눈길로 고것들을 어루만져 준다.
선자령은 1157m의 천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대관령휴게소가 해발840m정도 되기 때문에 등산 코스는 휴양림의 산책로 수준이다.
산길도 푹신하고 곳곳에 개울도 있다. 물이 많은 곳인지 습지식물들도 많다. 예전 방태산과 곰배령에서 많이 보았던 대나무를 닮은 속새가 이곳에서도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속새를 마디별로 뽑아서 다시 조립하기 놀이하면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식물이다. 우리집 아이들이 쇠뜨기만 보면 조립해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20분쯤 걸었을까. 신갈나무의 잎새가 파도처럼 처얼썩 쏴아아 소리를 내며 바람에 흔들리더니 양떼목장이 나타났다. 잎새의 흔들림만큼이나 격정적인 바람소리이다.
바람에 물결치는 나뭇잎소리와 온 몸을 휘감는 바람의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양떼목장을 끼고 숲길이 이어진다.
건너편에서는 샌달과 민소매를 입은 휴가객들이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걷고 있다.
바람의 흔적이 느껴지는 낙엽송. 저 나무는 바람을 원망할까, 그리워할까.
양떼목장을 벗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잔잔해졌다.
잣나무 등걸에 걸린 바우길 이정표가 반갑다. 길은 어느새 활엽수림에서 침엽수림으로 바뀌었다.
폭폭한 숲길을 걸으며 피톤치드의 향을 폐 속 깊이 들이키고 내쉬며 공해에 찌든 몸 속을 샤워한다.
걷는동안 바람에 해를 입어 뿌리가 통째로 뽑혀 다시 나무를 심은 풍해조림지를 지나고
봄에 오면 연둣빛 잎새가 눈부실 낙엽송 길을 지났다.
어린 층층나무에 걸린 바우길 이정표는 자라는 나무와 함께 점점 높아질 것이다. 갈 적마다 꼭 확인해 봐야겠다. 얼마만큼 자랐나.
침엽수림에 이는 바람소리는 단정하다. 쏴쏴쏴쏴, 차르르르, 차르르.
<노루오줌> <꼬리조팝나무와 쉬땅나무>
<미역줄나무> <모싯대>
<말나리>
<동자꽃>
<쉬땅나무>
<대나무와 닮은 속새와 구실바위취의 잎새>
동자꽃에 깃든 슬픈이야기는 진주홍빛 꽃잎을 보면 가늠되지 않는다. 선명하고 화려한 꽃잎과 여러송이가 뭉쳐서 피기 때문이리라. 같은빛깔 말나리도 등산로 곳곳에 피었다.
노랑빛 야생화도 여름꽃에 많다. 집에서 도감을 보고 이름을 안 참좁쌀풀은 키가 컸다. 봄에만 피는 줄 알았던 양지꽃도 지천이길래 도감을 찾아 보았더니 깊은 산에서만 자라는 물양지꽃이란다. 기린초도 있고 마타리, 짚신나물, 씀바귀도 넣어줘야지.
모싯대와 잔대도 바우길에서 발길을 붙잡는 단골 꽃들이다.
하얀색 꽃들이 서운하려나, 개망초와 꿀이 많은, 그러나 향기는 요상한 쉬땅나무의 흰 꽃. 까치수영도 하얗게 꼬리를 내밀었다.
이번에 제일 반가왔던 꽃은 바로 미역줄나무의 흰꽃이다.
덩굴식물인 미역줄나무는 자주 만나는 나무지만 꽃은 오늘이 처음. 더운 여름에 산을 안 다녀서 못만났나 보다.
식물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해서 고것들에게 점점 애정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흙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와 풀에게 내가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든 온갖 물건들 이름은 줄줄 꿰면서 흙과 햇빛과 물이 만든 식물들 이름에 무심해서야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그런 자연에 기대어 사는 우리가. 식물성 동지이기를 바라는 내가.
꽤 높이 올라왔는데도 이렇게 작은 계곡들을 자주 만난다.
샘터가 있는 곳으로 바위 아래서 기도 드리는 아주머니, 돗자리 깔아 놓고 오수를 즐기는 부부. 지인들과 간식을 먹는 사람. 숲에 든 이후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났던 곳이다. 샘터까지 오는동안 세 팀정도의 등산객밖에 못 만났다. 이렇게 좋은 곳을 놔 두고 사람들은 모두 오데로 갔을까.
강릉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이렇게 좋은 곳을 지척에 두고 있어서 계절이 바뀔적마다 와 볼 수 있을테니까.
이 길에서 이른 새벽 동 트는 것도 보고 해질녘 노을도 볼 수 있을테니까.
숲의 여왕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숲의 정령이 느껴지는 길을 지나서
너른 임도길 도착.
임도길은 붉은 줄이 쳐져 있어서 앞 쪽에 보이는 숲길로 접어 들었다.
이곳은 야생화가 종합세트로 피어 있는 길. 감탄사를 연발하며 5분여를 걸었는데 GPS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게 아닌가 싶은 남편이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바우길 이정표도 안 보인다. 조금 더 걸었더니 길이 아래로 내려간다.
다시 되돌아 나와 이정표를 다시 보니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 맞는 길이다. 바우길 이정표도 임도따라서 많이 매달려 있었는데 이제서야 눈에 띈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은지 누군가가 땅바닥에 '이쪽으로 오세요-->' 하고 글씨와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
-야생화 종합세트-
산을 오르며 하나씩 보이던 풍차가 이곳에서는 수십개가 보인다.
풍차가 서 있는 곳 답게 바람은 어찌나 센지 내지르는 감탄사가 금방 바람에 날라가 버린다.
머리위에서 쉭 쉭 돌아가는 풍차소리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바람이 너무 세서 내 머리위로 날개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
바람으로 인해 키가 낮은 신갈나무숲을 잠깐 지나 드디어 선자령 정상에 도착했다.
오다가 점심먹고 계곡에서 쉬고 꽃사진찍고 놀멍놀멍 3시간 걸렸다.
정상 풀밭에서 산토끼 한 마리를 보았다.풀숲에 숨었다가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조그만 회색토끼.
백두대간이라는 거대한 표지석앞에서 인증샷 찍기.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카메라를 든 손도 흔들흔들.
내려오는 하산로는 너른 초원길을 한참 지난다.
평생 맞은 바람보다 더 많은 바람을 맞았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 저리 눕는 풀의 모습이 춤추는 것처럼 아름답다.
며칠후면 아이들도 이 길을 걸으며 우리가 느꼈던 이런 해방감을 맛보겠지. 같이 풍차 이야기도 하고 바람이야기도 해야겠다.
작년까지만해도 아이들 없이 부부만 다니기가 영 서운해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다녔었는데 언제부턴가 부부만 다니는게 홀가분하니 참 좋다. 녀석들 비위 안 맞춰도 되는게 제일 편하다.
바람과 맞짱뜨며 걸었더니 순한 트레킹 코스였던 숲길인데도 4시간이 넘어서자 다리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피로갑이 급속도로 밀려왔다. 처음엔 저질체력탓을 했는데 바람탓인 것 같다. 풀처럼 이리 저리 누울수도 없고 바람에 안흔들리고자 다리에 온 힘을 집중하고 걸어서 그런가 허벅지 안쪽 근육이 당기고 아프다. 내일 2구간 트레킹은 다음기회로 미루었다.
국사 성황사에 도착하니 한창 굿을 할 준비중이다. 조금 더 있으면서 굿판이나 구경할까 했는데 오늘 저녁 숙소가 결정이 안되어 얼른 내려왔다. 대관령 휴게소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빠른 시일내에 다시 와서 2구간 대관령 옛길을 걸어보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3구간의 어명정 소나무길도 너무나 기대된다.
아직 가 보고 싶은 곳이 많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이렇게 좋은 곳을 이제야 알았다는 것에 대해 살짝 억울했던 하루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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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함께 여행다니는 카페에 올린 글, 이곳에도 같이 올립니다. 바우길 개척하시며 고생하시는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산행이 되신것 같네요. 맛갈스런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야~ 좋다~!를 한 50번은 하면서 걸었을겁니다. 남편과 어떻게 다시 올까 열심히 머리 굴리면서요. 아이들이 크고 하니 1박2일 여행이 어려워져서 당일치기로라도 자주 오기로 했죠.
글 사진 잘 보았습니다. 길도 나름 임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바우길이 아니면 저도 산목련님의 아이들과 백두대간을 걸었을 것입니다.
부디 좋은 여행 자주하시길 바랍니다. 바우길도 자주 오시고요...
아이들은 시커멓게 타서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툴툴거리는 것은 해마다 있었던 일이고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좋은 기억들만 생각나서 내년이면 또 간다 할겁니다. 청소년들을 데리고 5박6일을 걷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춘기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은 동감하실 듯.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성장해 가는 님의 2세는 훗날 이 세상 훌륭한 삶의 표상이 될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들이 자라서 우리가 다 하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이어 가겠지요. 잘 보았습니다.
지금 당장 달라진 모습은 기대하지 않지만 훗날 중 고등시절을 돌아 보았을 때 공부외에 제일 생각나는 추억이 될거란 믿음은 있어요. 처음엔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껴오길 바랬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배려와 협동심이더군요. 어려운 여건속에서 서로 피해지주 않고 챙겨주고 때론 도움받고 하면서 5박6일을 보내고 오면 자연보다 사람이 더 소중하단 사실을 체득하게 되겠지요.
요즘 아이들교육 이란것이 넘 힘들 거든요, 우리 아들 고1인데 여름방학내내 아침 8시 부터 밤 11시 까지 학교에서 공부 합니다.
어릴적에 참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이젠 그것도 한여름밤의 꿈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교육의 그날이 올때까지 우리 노력 합시다. - 어느 아들 잃은 아빠가......
내년 우리집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집도 바람난 가족처럼 많이 나돌았는데 내년에는 최대한 집에 붙어 있어 보려고요. 강릉에나 당일치기로 다니면서요.^^
참, 아이들 배웅하러 갔을 때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저에게 바우길회원이냐고 아는척 해 주신 분이 계신데요. 훤칠하니 키가 크고 잘생긴분이셨는데... 반가왔습니다. 학생들 건사하시느라 몸살 안 나셨는지... 수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마도 한국산악회 강원지부 김경래 총무이사님 같습니다. 전날 저녁을 같이하는 자리에서 산목련님 얘기를 한 기억이 납니다. ~ 별루 잘 생긴건 아닌데 _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