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천성산 홍룡사
2026년 05월 10일(일요일)
홍룡사는 천성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중국의 승려 1,000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창건한 사찰입니다.
승려들이 절 옆에 있는 폭포를 맞으면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듣던 목욕터였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낙수사(落水寺)라 하였다고 전합니다.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의 승려 법화(法華)가 중창하였고, 1970년대 말에 부임한 주지 우광(愚光)이 꾸준히 중건 및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관음전·무설전·산신각·종각·요사채가 있고, 정면 5칸, 측면 3칸에 40평 규모의 선방(禪房)이 있으며, 폭포 옆에는 옥당(玉堂)이 있습니다.
절 옆에 있는 홍룡폭포는 높이 14m인 제1폭과 10m인 제2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옛날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합니다.
홍룡사 일주문
천성산홍롱사(千聖山虹瀧寺) 편액
우리가 알고 있는 홍룡(龍龍)이 아니라 무지개 홍(虹)에 젖을롱(瀧)자를 쓰고 있습니다.
'홍롱'이란 이름은 어쩐지 낯설고 어렵고 어색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어려운 이름을 썼을까요? 그 이유는 홍롱사의 관음전에 가보면 대번에 알수 있습니다.
홍롱사 관음전은 근사한 폭포 옆에 딱 붙여 지어졌습니다. 바위벽을 등 뒤로 두고 수직으로 쏟아치는 삼층폭포 중 가장 상단 폭포의 물줄기를 측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폭포에는 용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관음전은 우레같은 소리를 내며 폭포가 쏟아지는 깊은 못(潭)을 마당으로 삼고 있습니다.
홍롱이란 '무지개에 젖다'는 뜻입니다. 물 많고 맑은 날이면 폭포에는 무지개가 섭니다. 홍롱사란 '폭포가 피워내는 무지개에 젖은 절'이란 뜻이니 이름에 그 형상을 담은 셈입니다.
홍롱사가 맞는다면, 폭포도 홍룡폭포가 아니라 홍롱폭포가 맞지 않을까요?
가홍정
가홍정은 천성산 자락에 있는 홍룡사 앞 쪽에 위치한 정자입니다.
양산 대석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 이재영(石隱 李宰榮)이 1918년에 자신의 소유자였던 홍룡폭포 아래에 죽우 권순도(竹友 權順度)와 같이 정자를 세우고 많은 이들이 함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홍정은 당시 지어진 건물은 없어지고 1970년대 콘크리드로 모임지붕 형태로 사방이 뚫린 모양으로 헐린 자리에 다시 지어졌으며 유서 깉은 정자인 가홍정을 복원하고자 하였으나 옛모습에 대한 자료가 사진 한 장뿐이어서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사진을 토대로 최대한 옛 모습과 비슷한 누각 형태로 2011년에 양산시에서 복원한 정자입니다.
가홍정(駕虹亭) 편액
갈림길에서 , 좌측은 대웅전, 우측으로 가면 홍룡폭포로 갑니다.
대웅전
대웅전은 1910년대 중창된 근대 목조로 건축된 건물이며 그 후 중건 및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단아하면서도 전통적 조선 후기 건축의 기법이 반영된 건물로 보입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대웅전 편액의 글씨는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의 글씨입니다.
주련은 묵선자 박지명의 행초서체로 쓴 글씨입니다.
대웅전은 내부 법당 중심에 석가모니 본존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좌우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불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칠성단
칠성탱화는 중앙에 보륜을 들고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배치하고, 좌우 상단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일곱명의 칠성여래를 나누어 묘사하였습니다. 좌우 협시보살의 주위로는 태상노군, 좌보필성, 우보필성 등의 성중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중앙에 보륜을 들고 결가부좌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머리에 쓴 보관에 해와 달을 표현하였습니다.
치성광여래
지장단
지장보살
신중단
예적금강(穢跡金剛)
예적금강은 오추사마로도 불립니다. 여래의 화현이며 일체의 더러움과 악을 제거하는 위력을 가진 명왕입니다.
신중탱에서 예적금강의 모습은 19세기 초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곧두세운 험상궂은 얼굴에 손에는 금강저를 들거나 공인수를 하고 있습니다.
예적금강은 얼굴3개에 눈도 3개이며 이를 드러내며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8개의 팔을 갖고 있으며 손은 합장을 하거나 금강령, 붓, 창, 칼, 도끼, 탑 등의 지물을 들고 있습니다.
또한 온몸을 불에 휩싸이게 그려 보다 극적으로 분노존을 효현하기도 합니다.
무설전
천수천안관음전으로 되어 있으며 전각에 편액은 무설전으로 되어있습니다.
무설전(無說殿)
무설전은 '말로 설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말로 진리를 완전히 전하기엔 한계가 있어 '언어도단(言語道斷)'의 경지에 있음을 상징합니다.
무설전(無說殿) 편액
천수천안관음보살
황룡사의 가장 높은 곳에 무설전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중생들을 보살피시며 고통에서 구제하신다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이 계십니다.
종각
종각(鐘閣) 편액
요사채
여러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약산초제(藥山招提) 편액
산을 좋아하는 사원이라는 뜻입니다.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 1871~1936)의 글씨입니다.
홍롱사(虹瀧寺) 편액
무방 혜호스님의 글씨입니다.
홍은당(虹隱堂) 편액
무방 혜호스님의 글씨입니다.
경권다로(經卷茶爐) 편액
'경서(책)와 차가 있는 방'이라는 뜻입니다.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의 글씨입니다.
수정문(守正門)
관음전으로 갈 때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올라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산신각
산신각(山神閣) 편액
독성나반존자와 산신
약사대불
약사대불은 중생의 볍을 고쳐주는 부처입니다.
관음전과 홍룡폭포
관음전으로 가는 길
홍룡폭포
홍룡폭포는 예로부터 천룡이 이곳에 머물었습니다.
폭포 아래에서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천선을 품고 있는 신비로운 곳입니다.
세 단으로 이루어진 폭포는 상층 80척, 중층 46척, 하층 33척의 높이로 이어지며, 층층이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장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힘차게 떨어지는 물은 거대한 바위들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더하고, 흩날리는 물보라 사이로 피어나는 무지개는 마치 전설 속 장면을 눈앞에 펼져 보이듯 홍룡폭포를 더욱 빛나게합니다.
관음전
관음전(觀音殿) 편액
폭포 옆에는 관음전이 있는데 관음전에는 랑견보살상과 백의관음상이 있습니다.
랑견관음(瀧見觀音)의 한자 '瀧'은 '물 떨질 롱' 또는 '폭포 랑'의 뜻으로, 랑견관음(瀧見觀音)은 '폭포를 보는 관음'이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33관음 중 제8존으로 '폭포를 바라보는 관세음보살'로 폭포의 물이 번뇌를 씻어내듯 생각을 맑게 한다는 의미를 담은 보살로 소개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홍룡사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랑견관음
백의관음
산신각과 홍룡폭포 하단
뒤돌아본 홍룡사
가홍정 옆으로 등로를 따라 원효암으로 올라갑니다.
천성산 원효암(元曉庵)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천성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의 말사입니다.
천성산(해발 922m) 정상 아래 750m 지점에 자리 잡은 원효암은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천년고찰입니다.
을사(1905)년에 효은(曉隱)선사가 중창하였고, 1976년에 경봉(鏡峯)선사가 종각을 짓고 범종을 조성하고 종명(銘)을 지었습니다.
전국에는 원효암이라는 이름을 가진 암자가 10여 개소 있으나 가장 으뜸 되는 원효암으로 꼽힙니다.
원효암이 보입니다.
원효암 요사채
천성산원효암(千聖山元曉庵) 편액
심우실(尋牛室)
요사채
사성각
사성각(四聖閣) 편액
중앙 칠성탱과 좌우 산신, 독성탱
원효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아미타삼존불은 얕게 조각되어 평면적으리면 회화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입상으로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이 훨씬 길어 보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느낌입니다.
본존불의 좌우에는 본존불을 향해 합장인을 하고 원형두광을 갖추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서있습니다. 좌우 보살상들은 좌우대칭으로 화려한 보관에 긴 머리가 어깨를 다라 허리까지 흘러내린 유려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삼존불의 상단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명문과 대세지보살 우측에 새겨진 세존 응화 2933년(世尊應化二千九百三十三年四月 日)이라는 명문을 통해 아미타불이라는 본존의 존명과 1906년이라는 제작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삼존의 아래에는 '姜膺秀(강응수)' 삼존이 새겨진 암석의 향좌측 측면 암석에는 향좌부터 '李瑀榮(이우영)', '安珪行(안규행)', '郵創玉(우창옥)', '鄭基南(정기남)'의 발원자명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비록 조성시기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한 폭의 불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수법을 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입니다.
대웅전
대웅전(大雄殿) 편액
도솔천 내원궁의 닫집과 중앙 약사여래불의 협시불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중앙 약사여래불의 협시불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석조약사여래좌상
약사여래좌상은 높이 77cm의 석조불상입니다.
불상 조성 기록에 따르면 원래 통도사 약사전에 봉안되었다가 말사인 원효암으로 옮긴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불상은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이고 등을 약간 구부린 자세이며,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나 왼손에는 약사불상의 특징인 약함이 생략되었습니다.
이 불상은 조선 후기의 불상으로는 드물게 돌로 조각된 불상으로 거의 등신대에 가까울 정도의 규모라는 점과 제작시기가 1648년이라는 절대연대가 밝혀져 있어 조선 후기 석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원효암 신중탱
상단 중앙에는 여러 개의 팔과 무서운 얼굴로 악을 물리치는 예적금강이, 하단 중앙에는 깃털 달린 투구를 쓰고 두 손을 모은 위태천(동진보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주변으로 제석천, 범천을 비롯한 천상계의 신들과 무기를 든 신장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채색과 정교한 필치로 도량을 옹호하고 재앙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장엄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범종각
호국사자후종각(護國獅子吼鐘閣) 편액
경봉(鏡峰 1892~1982)스님이 이름을 짓고 편액도 경봉스님이 직접 쓰셨습니다.
사자후(獅子吼) 범종
범종각 옆으로 계단이 있는 곳에서 약사전으로 올라갑니다.
약사전(藥師殿)
1991년 어느 여름에 비 없는 천둥ㆍ번개가 2시간 동안 이어지다가 원효암 동쪽 사자봉을 향해 불기둥을 내뿜었는데, 이튿날 사람들이 올라가보니 불기둥을 맞은 암벽에 부처님의 형상이 조각을 한 듯이 드러난 것입니다.
당시 통도사 방장인 월하(月下) 대종사가 이를 친견한 후 하늘빛이 빚었다 하여 천광(天光)이라 하고, 동방에는 약사여래가 상주하므로 ‘천광약사여래(天光藥師如來)’라 이름 하였습니다.
천광약사여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