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벨리스크는 고대 종교의 상징물로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오 벨리스크는 이집트 신화에서 유래됐는데 여신 이시스의 남편 오시리 스의 성기를 의미한다. 오벨리스크는 또한 태양신을 상징한다. 명백한 이교도들의 상징물이 로마 바티칸 성당 앞마당 한복판에 있는 것이 놀 라운 일이다. 더구나 이 오벨리스크는 모조품이 아니라 이집트에 있던 고대 유물을 직접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A.D. 37~41년에 로마 칼리굴라 황제는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바티칸 언덕의 원형경기장으로 가져왔다. 헬리오 폴리스는 고대 이집트 태양 숭배의 근거지였다. 바티칸에 있는 오벨리 스크는 높이가 24m이며, 기초까지 합치면 40m이고, 무게는 무려 320톤이나 나간다. A.D. 1586년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령으로 오벨리스 크를 성 베드로 성당의 앞마당으로 옮겼다. 많은 사람이 거대한 오벨 리스크를 옮기는 일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교황이 오벨리스크를 옮기다가 떨어뜨려 깨뜨리는 사람을 사형에 처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폰타나라는 사람이 책임을 맡고 45개의 감아올리는 기계와 180마리의 말과 800명의 작업 대원을 이끌고 과업을 수행했다. 1586년 9월 10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벨리스크는 운반되었고, 성 공적으로 세워지자 수백 개의 종소리와 대포 함성이 울려 퍼졌고, 군 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교황청은 이집트 우상 꼭대기에 십자가를 안치 함으로써 신성 모독적인 일을 자행하였다. 오벨리스크가 세워진 후 교 황은 미사를 거행하였고, 작업 대원과 말들에게 복을 선포하였다. 성 베드로 성당 광장 주위에는 248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이런 건축양식은 이교도들의 신전 설계에 사용되는 것이다.
② 태양 숭배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교의 제사장들은 태양원반 형태의 빵을 사용했다. 성병(聖餠)과 짝을 이루는 성체안치기(monstrance) 역시 태 양원반의 형태를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태양에서 발산되는 햇살을 연 상시키는 문양으로 꾸며져 있다. 성체(Host)란 화체설(化體說)에 근거 하여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된 성병을 구별하여 지칭하는 단어다. 미 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소위 성체로 변화된 성병을 성체안치기에 올려 놓는다. 그러면 미사에 참여한 신도들은 그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숭 배한다.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이방종교인 미트라교에서는 태양을 숭배했 다. 이러한 태양 숭배의 영향을 받아 성찬에서 쓰이는 성병도 동그랗 게 만들어졌다. 고대 이집트의 신비종교에서도 사제들이 태양신에게 둥근 빵을 재물로 드렸다고 한다. 성병에 새겨진 IHS는 이집트의 삼위 일체신 Isis, Horus, Seb을 의미한다. 성체를 모시는 성체헌사대는 좀 더 적나라하게 태양 햇살까지 표시되는 문양을 가지고 있다. 성 베드로 성당 중앙 제단에는 뱀처럼 꼬인 기둥 사이에 빛이 들어오는 태양 형상이 있다.
바빌론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제단에도 이러한 형태의 금으로 만 든 태양 형상을 가지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건축가들이 신전에 태양 문양을 새기는 관습이 있었는데, 태양신이 악령을 쫓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은 커다란 수레바퀴가 태양을 상징한다고 믿었 고, 태양신이 수레를 몰고 다닌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도 바알과 태 양신과 달과 행성에게 분향하던 제사장이 있어 요시아 왕이 이를 개혁 한 적이 있다(왕하 23:5). 바빌론의 벨 신전에서는 8개의 살을 가진 태 양신을 상징하는 수레바퀴가 발견되어 현재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수레바퀴 문양이 성 베드로 성당의 앞마당에도 오 벨리스크를 중심으로 버젓이 새겨져 있다. 카톨릭의 성화 속 인물의 머리 주위의 밝은 원과 수도승의 로마식 둥근 삭발도 태양신 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찬란한 제복, 촛불, 종, 향, 음악 등이 모두 이교도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
우상숭배 금지를 제거한 카톨릭 십계명
바티칸 성당은 온갖 우상으로 불교의 사찰(寺刹)을 방불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로마교회가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 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5)는 둘째 계명을 좋아할 리가 없고, 첫째 계명에 포함되었다는 애매한 이 유를 붙여 삭제해 버렸다. 우상숭배에 관한 둘째 계명이 삭제됨으로, 한 조항이 모자라게 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아내나, 종이거나, 혹 은 소유를 막론하고 탐심을 갖지 말도록 명한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 누어, 결국 천주십계(天主十誡)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로마교 카톨릭의 기독교 박해
유물과 교회 직책, 면죄부를 파는 일은 중세의 로마 카톨릭의 큰 사업이었다. 교황 보니파스 8세는 A.D. 1300년을 희년으로 선포하였 고, 성 베드로 성당까지 순례를 하는 사람에게 면죄를 허가했다. 그 해 에 이백만 명이 로마로 몰려들었고, 성 베드로의 무덤이라는 곳에서 두 사제는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교황은 이렇게 모은 돈을 친척들 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성과 저택을 구입함으로써 로마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중세에 로마 카톨릭은 많은 도시와 땅을 소유했고, 교회 에 강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게 함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카톨 릭이 이에 만족하지 않고 연옥의 고통을 면하게 해준다는 면죄부를 팔 기 시작했다.
중세에 면죄부를 파는 사람들은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육 적 쾌락을 위해 죄를 용서하는 문서를 팔았다. 마틴 루터 당시에는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했기 때문에 교황은 돈을 모으기 위해 더욱 면죄부 판매에 열중했다. 면죄부를 파는 사람은 도시를 방문해 교황의 공식 인가서와 교황의 깃발을 내걸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면죄부를 사기 위해 줄을 섰고, 긁어모은 돈은 큰 쇠금고에 넣어졌다. 돈궤에는 다음 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 “돈이 상자 속에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순 간 고통 당하는 영혼은 연옥에서 구원 받습니다”. 부자들은 별 무리가 없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조상과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다.
이에 루터는 면죄부를 비롯한 카톨릭의 모순을 지적한 95개 조항 을 캐슬 교회 문에 못 박았다. 카톨릭 신학 박사이자 교수였던 루터는 면죄부와 면제부를 파는 행위를 다음과 같이 강력히 비판했다.
“면죄부는 경건한 사기다. 면죄부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아무 효력을 주지 못한다.” 면죄부가 엉터리라는 가장 큰 증거는 천국과 지옥의 중간이라는 연옥이라는 영계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카톨릭은 아직까지 도 돈을 받고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