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라는 단어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history입니다. 이 단어는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his + story 로 나뉠 수 있습니다. 왜 많고 많은 단어 중에 역사라는 단어가 누구를 지칭하는 인칭 소유대명사가 들어갔을까요?
이를 해석해보면 “ 그의 역사 ”입니다. 여기서 “ 그” 는 누구인지 말을 안해도 기독교인이라면 다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역사의 흐름을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게 역사학자나 지식층, 철학인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수쳔년을 내려온 단어입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생각이 납니다. 로마에서 박해가 심할 때 박해를 피하여 달아나는 베드로에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 domine Quo Vidis ? "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쿼바디스)
예수님께서 하신 말, “네가 나의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므로 네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부끄러워진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들어가서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가야 할 그 길에서 벗어났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처럼 반드시 그 일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구심점은 예수입니다. 인류구원의 역사가 바로 HISTORY입니다. 즉, 역사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들의 기록입니다.
그 중심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모든 역사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있고, 예수님이 가신 길, 그리고 뒤를 이은 제자들의 길, 그리고 제자들을 보고 아, 제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걸었구나 라고 느낀 성도들이 다시 그 길을 걷기를 작정하여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성도들의 행렬의 기록이 역사이며 성도들의 행렬이 이어지지 못하도록 세상 왕들과 국가들의 박해 기록이 나머지 역사를 지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의 길을 따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가는 길이 극명하게 달리 보여지는 것이 역사의 현장이며 그 기록이 역사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 ”(요 14:6)
오직 길을 제시한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진리의 길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듯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