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의 <문학사회학>
1.1970년대 한국 문단에서는 문학의 ‘순수-참여’논쟁이 있었다. 문학이 추구하는 핵심적 역할은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은 어쩌면 무의미할지 모른다. 문학은 인간을 그리는 것이며, 인간은 사회적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구분하여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다. 모든 문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와 인간을 구현한다. 그것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좀더 명확하게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문학사회학>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과 사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가 1980년대이다. 사회과학 전성기라 할 수 있었던 이 시기에는 문학적 연구에서도 사회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추구가 중요시되었다. 시대적 흐름 속에서 문학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담론은 세부적이고 미시적인 내용분석으로 축소되었지만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문학의 역할을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시작하려는 1980년대 한국문학에 대한 연구는 ‘문학사회학’의 관점을 띨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문학평론가 김현은 『문학사회학(1983)』에서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문학적으로 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이 질서있게 살아가기 위해 제도화시킨 것을, 쾌락원칙에 의거해서 인간이 갖고 있는 꿈에 비추어서 재반성하는 것을 뜻한다.” 문학적 표현은 예술적 속성상 미와 이상에 대한 개념이 주축을 이룰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 표현 속에는 언제나 숨겨진 심층적 질서에 대한 의문과 탐색이 진행되고 있다. 문학은 그러한 탐색을 통하여 숨겨진 결핍을 부정적 방식으로 그려내며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삶에 대한 수동적 수용을 거부하게 만들고 자신의 삶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3. 김치수는 1979년 발행한 『문학사회학을 위하여』에서 문학사회학의 역할과 임무를 좀 더 세부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문학사회학의 임무는 “①소설이 그리고 있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경험적 현실의 구조 뒤에 숨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의 구조를 밝히는 것, ②그 보이지 않는 현실의 구조를 밝혀내는 것은 보이는 구조를 가능하게 한 숨은 구조와 그 이데올로기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 ③소설이 보여주는 가치관의 대립적 요소들을 찾아내여, 소설의 제도화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양식의 고착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문학은 이러한 역할을 통해 독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가치관 속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가치관을 깨뜨리게 하는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빠지게 하는 것”이다.
4. 문학사회학의 개념과 연구는 19세기말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마르크스 사상은 문학사회학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르크스 사상이 다루는 영역이 바로 인간과 사회의 총합적인 이해라는 점에서 자연스런 결과일 것이다. 문학사회학에 영향을 끼친 많은 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의 견해를 통해 문학사회학이 추구하는 방향을 점검해 본다. 마르크스 계열 문학사상가 중 루카치의 이론은 매우 중요하다. 루카치는 소설을 ‘이상소설, 감정소설, 교양소설’로 분류하고 소설의 역할을 전체성(총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전체성이 상실된 세계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의식인의 넋을 지배하는 것은, 호머적인 전체적 세계 상황에 대한 향수, 동경이며, 그것을 되찾으려는 노력이다. 소설은 바로 그 향수, 동경, 노력의 표현이다.”
5. 독일의 프랑크프루트학파 또한 문학사회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중에서 아도로느는 유대인 홀로코스트라는 인간의 끔찍한 범죄를 통해 야기된 예술적 의미를 진술한다. “현대예술이 표현하고 있는 고통은 그 공식문화 속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의 결과이다.그 노력은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공식문화의 허위성을 밝히고, 그것이 거짓으로 세계와 인간을 화해시킨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한다.” 문학사회학적 시선은 인간의 허위의식을 조정하며 인간을 지배하려는 권력의 위선적 횡포에 대한 경계를 제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냉철한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작가의 작품 뿐 아니락 그것을 수용하는 독자의 개입 정도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변화된 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야우스를 비롯한 콘스탄즈학파의 수용미학은 독자 중심의 관점이 갖는 의미을 보여준다. “문학작품은 독자와 만나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 된다. 이때 문학적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독자가 지닌 모든 문학적 경험에 근거한다. 그리고 독자가 지닌 문학적 경험의 총화는 새로운 작품수용의 방식을 결정짓는 문학경험의 기대수평선이다.”
6. 문학사회학 이론들이 말하는 문학의 의미는 문학적 사실이 사회적 사실이라는 점이며 그 속에는 중요한 가치적 지향이 담겨져 있고,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표현을 통해 은밀하게 은폐되어 있는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이라는 함의가 담겨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우리를 둘러싼 실존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독자가 능동적으로 그 문제에 대한 성찰에 돌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문학의 문제제기적 성격은 때론 제기에서 멈출 뿐, 그 이상의 해답이나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문학의 역할은 문제를 규정하는 일이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는가를 밝혀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은 문제를 던지는 비판자의 시선인 것이다.
7. 김현이 ‘부정적 낭만주의’라는 개념으로 분석한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이나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또한, 젊은 날의 혼돈과 고민 그리고 방황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추적한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은 문학이 추구하는 최소한의 역할이자 제한적 한계에 대한 인식이다. “그 두 주인공의 위악적 행위는 낡은 사회화의 규범에 대한 저항이지만, 새로운 규범에 대한 성찰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 병든 낭만주의의 병은, 과거에 있었던 것은 다 사라졌지만, 미래의 것은 아직 오직 않은 데서 생겨난 병이다.”
첫댓글 - 문학사회학(?)
- 문학의 가치 : "현재의 삶에 대한 수동적 수용을 거부하게 만들고 자신의 삶에 대한 포괄적인 인식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