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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기사원문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007
“찌는 듯한 무더위에 바람 한 점 없는 지하에서 안전벨트와 못 주머니를 차고 거푸집 작업을 하다 보면 체감온도가 40도를 훌쩍 넘어갑니다. 토시를 하고 긴팔 옷을 입어도 햇볕에 달궈진 철근에 데이기 일쑤입니다. 뜨거운 철근을 어깨에 메면 화상 자국만 남습니다. 안전장비와 마스크까지 착용하면 숨쉬기조차 힘이 듭니다. 건설현장에서는 안전보다 비용을 중시하는 관행 때문에 변변한 그늘막 하나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20여년을 건설현장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는 한경진(45)씨의 하소연이다. 건설노조가 21일 오전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씨는 지금 정부가 내놓고 있는 폭염대책으로는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노동자들 폭염 속 쉬지 못한다”
건설노동자 10명 중 2명만 “폭염으로 10분 쉬어”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31일 폭염으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겠다며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 가이드’를 발표했다. 폭염 위험단계를 ‘관심·주의·경고·위험’의 4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를 기온만이 아니라 ‘기온·습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위험단계에 따라 사용자에게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조치할 것과 옥외 작업장과 가까운 곳에 햇볕을 가리고 바람이 통하는 그늘 공간을 제공하라는 등의 권고를 담았다. 체감온도가 섭씨 33도 이상인 주의(폭염주의보) 단계에서는 1시간마다 10분 휴식시간을, 35도 이상인 경고(폭염경보)와 38도 이상인 위험단계에서는 15분의 휴식시간을 부여하게 했다. 해당 권고를 발표한 것만으로, 또 사업주가 권고를 잘 지키면 열사병 등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을까.
건설노조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조합원 1천453명을 설문조사했더니 “폭염특보 발령시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는 응답은 22.8%에 불과했다. 23.8%만 “폭염으로 작업이 단축되거나 중단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5.9%는 “시원한 물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햇볕이 완전히 차단된 곳에서 쉰다”는 응답은 33.5%에 불과했고 “아무 데서나 쉰다”는 답변이 66.5%였다. ‘에어컨이 설치된 휴게실에서 쉴 때가 있느냐’는 질문에 52.5%는 “없다”고 답했고 “휴게실이 멀어서 가기 힘들다”는 응답은 23.3%였다. 세면장 상태에 대해서는 45.1%가 “씻을 수 있는 곳이 못 된다”고 답했고, 26.3%는 “세면장이 없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을 보면 사업주는 폭염에 노출되는 야외작업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과 그늘진 장소, 깨끗한 음료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 이 같은 제도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질병관리청 등 유관부처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자는 156명이다. 이 가운데 26명이 사망했다. 극심한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8년에는 12명이 숨졌다. 여름철 온열질환은 주로 야외에서 작업하는 건설업(76명)과 환경미화 등 서비스업(42명)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고용불안·임금감소 우려로 작업중지권은 있으나 마나
지난 20일 폭염위기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되자 노동부가 다시 나섰다. 5월31일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라며 ‘일터 열사병 주의보’를 발령했다. 물·그늘·휴식 등을 충분히 제공하고 작업자가 건강상 이유로 작업중지를 요청할 때 즉시 작업을 중지하라고 밝혔다. 가이드라인과 산업안전보건법 26조(작업중지 등) 조치를 버무린 대책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도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작업중지권이라 불리는 제도인데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폐기물을 수거하는 40대 초반 김아무개씨는 지난 17일 오전 10시께 쓰러졌다. 전날부터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고 손이 저렸다. 눈앞이 캄캄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속이 메스꺼워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쓰러진 김씨는 병원에서 열사병 진단을 받았다. 대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노동자는 오전 6시에서 오후 2시까지 일한다. 김씨가 쓰러진 뒤 민주연합노조는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작업을 중단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안산시에 요구했다. 계약갱신을 걱정하는 민간위탁업체에 요구해 봐야 개선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조 관계자는 “쓰레기를 빨리 치우지 않으면 민원이 쏟아지기 때문에 무더위가 극심해도 잠깐 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며 “민간업체·지자체 모두 개선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가이드라인이 옥외 노동자만을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학교 급식실이나 유통업체 물류센터, 선별진료소, 조선소 선내 용접공 등 옥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업무 환경에 따라 폭염에 노출돼 있지만 관련한 정부 대책은 없다. 200도 안팎의 기름, 밥 짓는 열기와 수증기 등으로 학교급실실은 사우나실과 다름 없다. 제 시간에 밥을 내어야 하는 급실실 노동자에게 힘들다고 쉴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정부는 2005년 폭염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래 지난 16년간 폭염시 작업중지는 오로지 권고로만 규정하고 있다”며 “강제력 없는 안이한 대책만을 내놓으면서 폭염으로 다치고 죽어 가는 노동자를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http://www.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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