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에 청평사(淸平寺)가 있다. 1973년 소양강댐이 생긴 이후에 배를 타고 15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섬에 있는 사찰이다. 청평사는 고려시대인 973년에 영현선사(領賢禪師)가 창건하였으며, 이자현(李資玄 : 고려 중기의 학자)이 은거하였던 곳이다. 1367년에는 나옹(懶翁)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고, 1555년 보우(普雨)가 머무르면서 청평사로 불리게 되었다. 한편, 청평사로 가는 옛길인 환희령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일명 ‘공주탑’이라고도 부르는데, 다양한 설화가 전한다.
청평사에 와 공주 몸에서 떨어진 뱀
원나라(혹은 당나라) 공주가 뱀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상사병에 걸렸다. 날이 갈수록 병이 심해지고, 공주에게 붙은 뱀은 떨어지지를 않았다. 공주의 아버지는 온 나라 안에 있는 점쟁이들을 불러 성대하게 제(祭)를 올리기도 하고, 뛰어나다는 의원들을 불러 치료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주의 병은 점차 깊어지고, 뱀 또한 떨어지지 않았다. 왕은 마지막 방법으로 전국에 있는 사찰을 순례하면서 부처님에게 빌어보라고 했다. 공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전국에 있는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지극 정성으로 부처님께 빌었다. 그래도 공주의 병은 치료되지 않았다.
공주는 아버지의 체면도 있고 해서 원나라를 떠나기로 하였다. 산 넘고 물을 건너 정처 없이 떠돌다가 도착한 곳이 지금의 청평사였다. 청평사에 도착한 공주는 뱀에게 “여기 있으면 절에 들어가서 밥을 얻어가지고 오겠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주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던 뱀이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공주는 기이하게 여기며, 청평사 안으로 들어가 밥을 얻어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 뱀이 죽어 있었다. 이상해서 뱀을 만져 보았다. 뱀이 말라 있었다. 공주는 어찌나 기뻤던지 원나라로 돌아갔다. 공주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청평사를 크게 짓게 했다.
연못에 비친 공주의 그림자를 보고 떨어진 뱀
한편, 청평사에는 다른 설화도 전한다. 명나라 공주가 아버지 몰래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그만 청년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 뒤 뱀 한 마리가 나타나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는 청년의 화신(化身)으로 알고, 청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찰들을 순례하였다. 그러던 중 조선에 있는 청평사까지 오게 되었다. 공주는 청평사 앞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연못의 물이 얼마나 맑은 지 자신의 몸과 연못에 비친 그림자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때 뱀이 연못 속에 있는 공주의 그림자를 보고, 공주인줄 착각하고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공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그 연못을 그림자 연못이라는 의미로 영지(影池)라고 하였다.
청평사의 문을 넘지 못한 뱀
청평사 상사뱀 설화는 다양하다. 공주가 몸에 붙은 뱀을 떨쳐내기 위해 청평사에 들렀다가 스님의 가사(袈裟)를 만들어 주고 뱀이 떨어졌다고도 한다. 또는 공주를 기다리던 뱀이 공주를 찾아 절로 왔으나, 절 문을 넘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 입구에 세워진 불문(佛門)을 ‘회전문’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청평사 상사뱀 설화는 신분 차이에서 오는 일방적인 짝사랑의 결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가사불사(袈裟佛事) 공덕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