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밴댕이젓 p190
한 신하가 빙고를 정리하다 밴댕이젓 한 독을 찾았다. 그것을 임금과 의논하여 저녁 때 내관들이 행궁과 성안을 돌며 밴댕이젓을 나누어 주었다. 돌을 모으라 한 성첩에는 공깃돌만한 잔돌만 모였고, 추위에 떠는 군병들을 위해 성첩에 바람막이를 지어달라는 청이 있었다. 무당과 백성들은 성밖에서 온 나루를 악귀라며 수군거렸다. 저녁 무렵 때때로 임금은 나루를 불렀는데, 나루가 말문을 열자 임금은 성안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2) 소문 p198
칸이 청천강을 건넜다는 소문이 성안에 돌았다. 칸이 오면 성이 열린다는 말과 칸이 오면 성이 끝난다는 말이 뒤섞였다. 여러 신하들이 청의 첩자인 최명길을 죽이라 간청했다. 조선 군병들은 밤낮으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쌀죽에 간장을 풀어 한 그릇씩 먹었다. 적이 줄어들지 않아 성첩이 엉성해질까 염려 된다 신하가 말하자 임금이 답했다. "여기서 오래 머물기야 하겠느냐." 성안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 ‘오래’가 오래지 않을 것임을 민촌의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3) 길 p207
성 밖에 머무르는 병사들에게 보내는 유지에 성 안이 풍요롭다는 내용을 가짜로 만들고 적들에게 흘려 혼란을 주자는 주장이 전개되었다. 다른 이는 성 밖에서 잡힌 자가 한둘이 아니라 적이 성 안의 궁핍을 모를리가 없어 오히려 우리 병사들을 함정에 빠뜨릴 것이라 주장했다. 임금은 때때로 성 밖의 길을 물었다. 성과 이어진 길은 육로와 수로가 있었지만 둘 다 적병들로 인해 나아가기 어려웠다.
4) 말 먼지 p218
김류가 신하들 앞에서 임금의 교지를 읽었다. 청과의 전투를 확실히 하는 말이었다.
최명길은 성 안에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있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하며 울음을 참았다.
김상헌은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며, 마음의 길을 밖으로 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하여 마음과 세상이 한 줄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삶의 길은 열릴 것인데, 군사들을 앞세워 출성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임금은 돼지와 술을 군병들에게 먹이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초관이 화친의 길을 끊고 싸움의 길로 나섰으니 최명길의 목을 베어 길을 분명히 밝혀 달라 청하고 늙은 군졸은 김상헌을 군장으로 정해 공을 세우게하라 말했다.
5) 망월봉 p227
망월봉은 성 외곽의 봉우리 중 가장 작아 흙무더기에 불과했지만 성벽에서 가까웠고 시야가 열려있었다. 장애물이 없어 성 안이 훤히 내다보이고 행궁이며 관아가 화포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용골대는 이 보배로운 고지를 넘겨준 조선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성 쪽에서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밖으로 나오는 군사도 없었는데, 그 적막이 오히려 두려웠다. 임금의 유지와 격서가 공포되자 말들은 다시 일어났다. 신하들은 망월봉에 군사를 보내 정상 주변을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모든 말의 끝에는 최명길을 베어야한다는 부르짖음이 있었다.
6) 돼지기름 p233
최명길은 한동안 회의에 나가지 않았다. 임금은 최명길을 부르지 않았고, 다른 대신들도 최명길을 찾지 않았다. 논의를 마치고 저녁에 돌아오는 김상헌은 마당을 쓸고 아궁이를 떼는 최명길과 마주쳤다. 둘은 멀리서도 서로의 기척을 알아채는 듯싶었다. 둘은 서로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군병 사이에서 최명길은 참수로 처형될 것이며, 이시백이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시백의 부름에 최명길이 가니 이시백과 비장들이 돼지기름을 먹인 무명천을 잘라 동상에 걸린 군병들의 환부를 싸매주고 있었다. 소문에 관한 대화를 하다 최명길이 이시백에게 어느쪽이냐 묻자 이시백은 말했다. "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최명길의 속이 뜨거워졌다.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
7) 격서 p243
임금이 유지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아무도 유지를 전달하러 나가길 원하지 않았다. 나라가 적과 화친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지방 군장들이 진군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의심이 생겼다. 화친의 길이 끊어졌음을 알리는 격서를 전달하는 일이 시급했다. 김상헌이 서날쇠를 찾아가 격서가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정과 격서가 시급히 당도해야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끝없이 부탁했다. 서날쇠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품계없는 대장장이에게 격서를 맡길 수 없으며, 군장들이 대장장이가 들고 온 문서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품계 지급에 관한 논란이 일었지만 임금은 김상헌의 뜻을 따랐다. 서날쇠는 새벽에 떠났다. 서날쇠는 김상헌에게 나루를 거둬 달라 부탁했다. 서날쇠가 눈 위에 꿇어앉아 김상헌에게 큰절을 올렸다. 김상헌이 땅에 엎드려 맞절로 받았다.
8) 온조의 나라 p256
백제 시조인 온조왕의 제삿날이었다. 김류, 최명길, 김상헌이 제사를 시행했다. 일천 육백년 전 온조가 세운 나라는 사나운 외적에 둘러싸여 위태로웠으나 온조의 나라는 위난 속에서 오히려 강성하였으며, 봄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기러기들이 돌아가지 않았다고 사서에 적혀있었다. 김류의 뒤쪽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이 절을 했다.
지금 온조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다. 치욕은 삶의 영원성만이 덮을 수 있으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아가야 할 것이라 최명길은 생각했다.
서날쇠가 떠나던 새벽에 빛으로 깨어나던 봉우리들을 김상헌은 떠올렸다. 끝없이 새로워지는 시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발제
1) 서날쇠는 김상헌의 부탁에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성 밖으로 격서를 돌리러 나갔다. 다른 신하들 사이에서는 대장장이에게 임금의 문서를 맡길 수 없다, 이미 제 아내와 자식을 성 밖으로 피난시켰으니 믿을 수 없다, 만약 돌아온다고 해도 격서를 전했는지 놀다왔는지 알 수가 없으니 구원병들이 올 때까지 가둬놔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여러분이 서날쇠라면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나라를 위해 격서를 전달하러 성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것인가?
2) 임금은 신하들이 최명길을 베어라 말하니 "애초에 화친하자는 명길의 말을 쓰지 않아서 산성으로 쫓겨오는 지경이 되었다고들 하면서, 이제 명길을 죽여서 성을 지키자고 하니 듣기에 괴의하다. "라고 하였다. 살기 위해 말을 바꾸고 최명길을 죽이라하는 신하들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