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 절감, 무엇부터 살펴보아야 할까요?
우리 아파트에 새로운 주민자치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대표를 선출하고, 관리비가 제대로 쓰이는지 살펴보며,
우리 공동체의 살림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새 대표회가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는 관리비 절감일 것입니다.
주민들이 매달 부담하는 관리비를 조금이라도 줄이되,
필요한 곳에는 제대로 쓰고 불필요한 낭비는 줄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살펴보아야 할까요?
관리용역 계약을 비교하고, 각종 지출의 적정성을 확인하며,
공동시설의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관리사무소의 인력 구성과 업무 분담 문제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 헬스장 이용료와 회원 관리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문제를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1. 먼저 관리사무소의 인력과 업무를 살펴볼 때입니다.
우리 단지가 처음 입주를 시작했을 때는 총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직원이 한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입주 후 약 5년이 지난 시점에 한 명을 더 채용했고,
그 인력 구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와 지금의 업무량이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입주 초기와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시설 관리와 행정업무가 늘어났을 수 있고,
관리해야 할 사항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한 명으로 운영했다고 해서
지금도 반드시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인력 구성이 적정한지 확인하지 않은 채
계속 유지하는 것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소장의 업무는 무엇인지,
관리과장은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
두 직책 사이에 업무가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장이 관리업무 전반을 지휘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관리과장은 어떤 고유 업무를 담당하며 어떤 부분에서
소장을 지원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작업을 수행하는 업무와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하는 업무는 서로 다릅니다.
행정적인 기안과 결재,
현장 작업의 관리와 감독,
직원들의 업무 분담 역시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직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직책과 인원이 유지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구성이 반드시 적정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여직원들의 행정 지원 업무까지 포함해 각자의 업무량과 책임,
중복되는 업무가 있는지,
현재의 인력으로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관리비 절감은 단순히 몇 사람의 인건비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업무를 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현재의 업무량과 인력 구성을 분석한 결과 개선할 여지가 있다면 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반대로 인력이 부족하다면 무조건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줄이겠다는 결론이 아니라,
주민의 관리비가 합리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2. 헬스장 회원 관리 업무는 어디까지 관리사무소의 일일까요?
우리 단지 헬스장은 월 5,000원의 이용료를 받고 있습니다.
회원 등록과 출입 카드 발급, 회비 안내 등 회원 관리 업무는 회원 중 한 사람이 맡아 처리하고 있으며,
그 수고에 대한 대가로 월 20만 원을 지급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은 이 업무를 관리사무소로 넘기고,
이용료를 월 3,000원으로 낮추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주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헬스장 시설 자체를 관리하는 일과 헬스장을 이용하는 회원들의 활동을 관리하는 일은 성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시설의 안전과 유지보수,
공동시설의 운영에 관한 관리업무는 관리사무소의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 회원 모집과 등록, 회비 안내, 회원 간의 활동 등은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회원 등록이나 이용료 수납 등 일부 업무를 관리사무소에서 담당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업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기존 직원들이 추가 비용 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
그 결과 실제로 얼마를 절감할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검토 없이 주민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해 오던 일을
관리사무소에 넘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지급하던 월 20만 원의 수고비가 없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절감입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의 업무가 늘어나고 다른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면 전체적인 효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용료를 낮추는 것과 관리비를 절감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이용료를 얼마로 낮출 것인가가 아니라,
회원 관리 업무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주민 전체에게 가장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3. 그렇다면 경로당의 행정업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조금 더 넓혀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단지에는 헬스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옆에는 경로당도 있습니다.
경로당 역시 회원들이 모여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공동체입니다.
경로당 회장과 회원들은 자체적인 운영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필요한 경우 외부 기관과 연락하거나 대외적인 행정업무도 수행합니다.
그렇다면 경로당의 행정업무는 누가 담당하고 있을까요?
경로당 회장과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일이라면,
헬스장 회원들이 처리하던 업무 역시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담당할 수 있다는 원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경로당과 헬스장은 운영 목적과 필요한 업무가 다르므로 모든 업무를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헬스장 회원 관리 업무를 관리사무소가 맡아야 한다면,
경로당의 회원 관리와 대외적인 행정업무도 관리사무소에서 전담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주민 자치모임에서도 회의 안내와 회원 관리,
회비 정리 등의 업무를 대신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어떤 기준으로 받아들이거나 거절해야 할까요?
헬스장에는 특별한 이유로 행정 지원을 제공하면서 다른 주민 모임에는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주민 모임의 행정업무를 관리사무소가 맡는다면,
그 업무량과 필요한 인력은 얼마나 늘어날까요?
이것은 경로당이나 헬스장 가운데 어느 한쪽을 불편하게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리사무소가 담당해야 할 업무와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담당할 업무의 경계를 먼저 정하자는 뜻입니다.
시설을 관리하는 일과 주민 모임을 대신 운영하는 일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민공동시설의 안전과 유지관리를 지원하는 것과,
그 시설을 이용하는 회원들의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리사무소의 지원이 필요하다면 지원의 범위와 조건을 정하고,
모든 주민 모임에 적용할 수 있는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4. 새로운 업무를 넘기기 전에 전체 비용부터 계산해야 합니다.
새 대표회가 관리비 절감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면,
개별 업무를 어디로 넘길 것인지 결정하기 전에 전체적인 비용과 업무량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헬스장 회원 관리 업무를 관리사무소로 이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기존에 지급하던 월 20만 원의 수고비가 없어지는 것은 절감 요인입니다.
그러나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나는 만큼 다른 업무가 지연되지는 않는지,
별도의 인력이나 비용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기존 인력 구성과 비교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동시에 관리사무소의 현재 인력과 업무를 검토해 불필요하게 중복되는 일은 없는지,
전산화나 업무 재배치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는 결정과 인력 운영을 개선하는 결정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통합하면 비용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업무를 추가하면서
기존 인력을 줄이려 한다면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한쪽의 비용을 줄이면서 다른 쪽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이익인지 따져보는 일,
바로 이것이 관리비를 살피는 이유입니다.
5. 주차요금도 같은 원칙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주차 문제 역시 요금을 받을 것인지부터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단지에 등록된 차량은 실제로 몇 대인지, 주차공간은 얼마나 부족한지,
추가 차량은 어떤 기준으로 관리할 것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단지의 사례를 살펴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들으며,
요금을 부과하는 방법과 다른 관리방식의 효과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금을 부과하기로 했다면 그 수입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도 함께 설명해야 합니다.
주차요금의 목적은 주민에게 돈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주차공간을 보다 공평하게 이용하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합니다.
헬스장 이용료를 낮추는 문제,
관리사무소의 인력과 업무를 검토하는 문제,
추가 주차요금을 논의하는 문제는 서로 다른 사안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두 주민의 돈과 권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비용을 줄이려면 먼저 무엇에 돈이 들어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업무를 바꾸려면 그 업무가 누구의 책임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실제로 어떤 결과가 생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확인 없이 금액부터 낮추거나 업무부터 넘긴다면,
당장의 변화는 있어도 전체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주민자치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지해 온 인력 구성과 업무 분담을 다시 살펴볼 기회는 생겼습니다.
관리사무소의 소장과 관리과장, 행정 지원을 담당하는 직원들의 업무가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필요한 인력과 인건비가 적정한지 검토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헬스장과 경로당을 비롯한 주민 자치모임의 업무 가운데
무엇을 관리사무소가 지원하고 무엇을 각 모임이 자체적으로 수행할 것인지도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만 유리하거나 불리한 기준이 아니라,
업무의 성격과 필요성에 따라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저는 새 대표회가 관리비 절감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면,
먼저 전체적인 업무와 비용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무조건 직원을 줄이자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의 업무를 무조건 관리사무소에 맡기지 말자는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인력은 유지하되 불필요한 비용은 줄이고, 관리사무소가 맡아야 할 일은 책임 있게 수행하며,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운영하도록 돕는 것.
이러한 원칙이 세워진다면 관리비 절감과 주민자치는 서로 충돌하는 일이 아니라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민의 돈을 아끼되, 아껴서는 안 될 곳까지 아끼지는 맙시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기존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 먼저 물어봅시다.
왜 바꾸어야 하는가?
누가 맡아야 하는 일인가?
그렇게 바꾸면 전체적으로 무엇이 좋아지는가?
주민의 돈을 다루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절약하겠다는 의지만이 아닙니다.
비용과 업무의 관계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며,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저는 우리 단지의 주민자치가 이러한 작은 질문에서부터 단단하게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