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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 벼농사 톺아보기 (22) - 멧돼지 사냥하는 난민 여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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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시마에 사는 난민 하타케야마 치하루는
지구학교의 가르침 ‘숨은 원의 세계’를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익숙해져야 할 세상의 모습을 힐끗 보여준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방사능 유출 사고는
전공투 세대에 해당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었던 새로운 세계를 향한
두근거림을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안겼다.
자연농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실천도
이 흐름 속에 있다.
하타케야마 치하루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요코하마에서 후쿠시마 핵 발전소 전기로 생활하다
책임질 수 없는 것에 의존하는 삶을 되돌아보고
결국 이토시마까지 오게 되었다.
핵 사고가 일어나자 돈은 있으되
마트에서는 원하는 것을 구입할 수 없었다.
자판기에서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물도 살 수 없었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지구학교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터다.

하타케야마 치하루는 뜻을 같이한 젊은이들과
이토시마 쉐어하우스를 운영한다.
이곳은 이토시마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꼭 한번 들리는 명소다.
한국식 온돌 바닥도 흥미롭지만
역시 사냥한 멧돼지 가죽과 잘 손질한 멧돼지 고기는
가히 문화적 충격이라 할 만하다.

벼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잘 안다.
내 앞에 놓인 밥 한 그릇의 맛을.
달거나, 고소하거나, 담백하거나, 찰지거나 등등
볍씨를 깨우며 못자리를 만들기 시작해
가을걷이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이
밥 한 그릇에 오롯이 담겨 있다.
중간에 모내기나 김매기 과정을 생략하면
내 앞에는 빈 밥그릇만 달랑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느 하나도 빼먹을 수 없다.

▲ 사슴 고기를 만지는 아이. 아이들은 두려움과 혐오감
이 아니라 본능과 호기심으로 다가간다.
고기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닭의 목을 자르고, 피를 뽑고, 털을 뜯고,
내장을 내고, 통에 굽은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중간 과정 어느 하나만 빼 먹으면
닭고기 한 점조차 먹을 수 없다.
그러나 고기 한 점을 먹을 때쯤이면 다양한 맛을 경험한다.
이 닭이 어떤 녀석이었는지,
닭을 먹기로 결심하는 순간의 느낌,
닭을 부위별로 손질하고 조리하는 모든 순간이
맛을 결정한다.
우리가 치킨 집에서 주문해 먹는 그 맛이 아니다.

돈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기술, 경험을 쌓기위해
쉐어 하우스 동거인들과 농사도 짓고
논, 밭 인근에서 멧돼지를 비롯한 야생 동물도 사냥한다.
헐떡거리는 멧돼지나 왕방울만한 고라니의 눈을 보며
단숨에 칼로 숨통을 끊고 가죽을 벗기며
부위별로 해체 작업에 들어간다.
큰 멧돼지는 4시간이 넘는다.
멧돼지 고기를 통해 얻는 에너지 못지않게
그 고기를 얻기 위해 쏟아 붓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그냥 많이 먹는 고기가 아니다.
오히려 먹는 고기의 양이 줄었다.
원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미생물까지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구체적인 삶 자체가 원의 세계다.
우리 가족은 고등어를 낚고, 손질하고, 김치찜을 해먹는다.
벼농사도 멧돼지 사냥도 매 한가지다.
여차하면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으로 어떻게 살지
몸으로 묻고 몸으로 답하는 과정이다.
벼농사 4년간 짐승 피해가 너무 컸다.
멧돼지와 고라니 수는 부쩍 늘고 있다.
아이와 이번에는 야생 동물 사냥에 나서기로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겠는데
이건 생선 손질과 차원이 다르다.
물고기는 멀고 먼 사촌인데 이 녀석들은 꽤 가깝다.
그래도 별 수 없다.
빈 밥그릇을 밥상에 올릴 수 없으니.
하타케야마 치하루도 이렇게 말한다.
“쌀 자급이 진행되면서 식비가 현격히 낮아졌다.
역시 주식 자급은 강하다!”





▲ 2014年
『わたし、解体はじめました―狩猟女子の暮らしづくり』
(木楽舎)
사냥꾼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자급자족 수렵 생활에서 동물 해체 방법,
해체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가이드를 담은 책
* 모든 이미지는 하타케야마 치하루의
개인 블로그, 페이스 북, 트위터에서 가져왔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