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 최씨(海州 崔氏)의 시조 최온(崔溫)은 고려 초기 해주의 목민관(牧民官)으로 선정을 베풀었으며, 후에 판이부사(判吏部事)에 이르렀다. 그 선조들이 누대에 걸쳐 황해도(黃海道) 대녕군(大寧郡)에 세거하여 해주(海州)를 본관으로 삼았다.
최온의 아들 최충(崔沖)이 1005년(목종 8)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수태사(守太師) 겸 문하시중(門下侍中) 상주국(上柱國) 내사령(內史令)에 이르렀으며, 문종 때 구재학당(九齋學堂)이라는 사학을 건립하여 인재들을 길러내어 해동공자로 추앙받는다.[1]
최사제(崔思齊, ? ~ 1091년) : 최유선의 아들. 고려 문종조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문하시랑 판이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양평(良平)이다.
최사추(崔思諏, 1036년 ~ 1115년) : 최충의 손자. 고려 문종조에 과거에 합격하여 숙종(肅宗)조에는 문하시중에 임명되고, 수태사 중서령에까지 이르렀다.
최사량(崔思諒, ? ~ 1092년) : 18세 과거에 합격하여 고려 문종조에 공부시랑검교태사를 거쳐 좌복야 참지정사에까지 승진되었다. 시호는 강경(康敬)이다.
최약(崔瀹) : 최사제의 아들. 고려 예종(睿宗)조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예부상서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최윤의(崔允儀, 1102년 ~ 1162년) : 최충의 현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 판이부사에 이르렀다. 《고금상정례(古今詳定禮)》 50권을 편찬하였으며, 의종(毅宗)의 묘정에 배향하였다.
최자(崔滋, 1188년 ~ 1260년) : 고려 강종(康宗)조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수태사 문하시랑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최홍윤(崔弘胤, ? ~ 1229년) :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 수문전대제학에 이르렀다. 시호는 경문(景文)이다.
최춘명(崔椿命, ? ~ 1250년) : 고려 고종조에 자주 부사(慈州副使)에 임명되었으며 벼슬이 추밀원부사에 이르렀다.
최유엄(崔有渰, 1239년 ~ 1331년) : 최자의 아들. 충렬왕(忠烈王)조에 도첨의 찬성사를 역임하고,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최함(崔諴) :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중서시랑 평장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최만리(崔萬理, ? ~ 1445년) : 최충(崔沖)의 12대손. 아버지는 최하(崔荷)이고, 어머니는 충주 지씨(忠州池氏)로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지용수(池龍壽)의 딸이다.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부제학을 지냈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였다.
최황(崔滉, 1529년 ~ 1603년) :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90년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평난(平難)·광국(光國) 공신에 각각 3등으로 녹훈되고 해성군(海城君)에 봉해졌다.
최경창(崔慶昌, 1539년 ~ 1583년) : 1568년(선조 1)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1575년(선조 8)에 사간원정언에 올랐고, 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과 종성부사(鍾城府使)를 지냈다.
최규서(崔奎瑞, 1650년 ~ 1735년) :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23년 영의정에 올랐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해주(海州)는 황해도해주시의 지명이다. 고조선 시대에 대방군(帶方郡)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렸다. 원래 고구려의 내미홀군(內未忽郡)이다. 748년(신라 경덕왕 7) 폭지군(瀑池郡)으로 고쳤고, 936년(고려 태조 19) 남쪽으로 큰 바다에 임하였다고 하여 태조가 해주를 사명(賜名)했으며, 983년(성종 2)에 해주목으로 승격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안서도호부로 개편되었고 예종(睿宗) 때 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247년(고종 34)년에 다시 해주목으로 환원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지역이 넓고 백성이 많으며, 관서(關西)의 큰 주로 최씨(崔氏), 정씨(鄭氏), 오씨(吳氏), 경씨(景氏)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6년 황해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54년 북한의 관제 정비로 황해남도의 도 소재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