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로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11월 중순까지 가야 하는데 길이 멀어 다니기가 만만하지 않다. 짐이 있을 때는 차를 가지고 가지만 보통은 기차나 버스를 이용한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보았다. 벼르다가 어제 날을 잡아 그들과 함께 꼬박 밤을 새고 목포행 새벽열차를 탔다.
서울역사위에 크게 자리 잡은 대형마트의 입구에 쌓아둔 포장상자들을 대여섯장 집어 와서는 이리저리 엮어 간이 숙소를 만들었다. 오분쯤 앉아 있으니 냉기가 올라왔다. 영상 10도 안팎의 날씨에도 냉기가 스미니 이제 곧 영하의 날씨가 되면 그 누구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겨울의 서울역 앞 지하도는 통행이 어려울 만큼 많은 노숙인들이 모인다고 한다. 일거리는 줄고 여기저기 흩어졌던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모이기 때문이다.
서울역 주변에 대략 200~300명이 넘는 듯 하고 대부분 건강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말을 붙이려 하니 술 두병을 가져 오라 한다. 이미 충분히 취해 있는 듯한데 술은 더 주고 싶지 않아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동무가 필요했던 듯 다음 사람은 친숙하게 말을 이어갔다. 영화가 시작된 후에 들어가서 쏟아지는 대사들에서 앞의 상황을 유추하려는 관객처럼 나는 귀를 세웠다. 이들은 자신을 이전에 크~은 사업을 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패하자 사람들이 멀어지고 술은 늘어나고 말은 거칠어지고 가족도 떠났다는 류의 얘기다.
그가 갑자기 분노를 담아 욕설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외)손자를 보고 싶은 모양인데 아버지 꼴이 이 모양이니 딸이 멀리하는 모양이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거친 언행을 하는 할아버지와 제 자식을 만나게 하고 싶은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딸의 행위를 용서 할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떨어가며 분노를 폭발하고 있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손을 뻗어 만류하며 잡으려고 애썼다. 외로웠을 테고 아무나 잡고 싶었을 것이다. 취한 척 하지만 깊이 취하지는 않았고 상대의 반응을 봐가며 욕설의 강도를 조절하는 듯했다. 욕설도 일종의 배설이며 자위이며 자가 치료다. 주변사람들이 견디기 괴로운 것이 흠이지만 자신에게는 잠시 약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점점 더 멀어지고 더욱 외로워질 것이다.
나는 일어났다. 욕으로는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알려주어야 한다. 떠나는 내게 그가 의미 없는 욕을 했다. 하지만 그의 욕 화살은 나를 맞추지 못하고 멀리 빗나갔다. 욕도 중독성이 있다. 그가 욕하는 습관을 바꾸지 못하면 언 발에 오줌 누듯 점차 스스로를 마비시키고 옭아매서 무너뜨릴 것을 깨달아야 하지만 어려울지 모른다.
돌다보니 아까 계단 중간에 멍하게 앉아있던 젊은이가 맨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전경들이 순찰을 돌기는 하지만 쓰러진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지나가는 여자들이 허옇게 내놓은 다리만 따라다니며 힐끔거릴 뿐이다. 119를 불렀으나 출동을 꺼렸다.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국제도시 관문인 서울역 앞에 즐비한 수백명의 노숙인들이 추위와 병으로 하나씩 죽어가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5천만원의 활동비가 적다고 대폭 올릴 궁리만 하고 있다.
심형래가 도박판에 처박았다는 투자자들이 낸 헛돈의 10%만 있어도, 돈에 미친 종교업자들이 타고 다닌다는 비싼 승용차 한대만 팔아도 이들 모두의 올겨울 끼니는 해결될 것이다. 한강 르네상스 예산의 1/1000로 서부역 쪽의 낡은 건물하나를 개조하여 추위를 막을 최소한의 시설을 하고 허기를 때울 간단하나마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고 모퉁이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이들이 용기를 내서 새 삶을 개척하는 실낱같은 발판이 되지 않을까 한다.
5시 20분 목포행 산천을 타려면 용산역으로 가야 한다. 동자동 숙대입구 삼각지를 거쳐 용산역으로 천천히 걸어 보았다. 차들은 끊임없이 달리는데 길에 인적은 없다. 84번 동아운수를 타고 흑석동에서 시경 앞까지 5년간 학교를 다녔던 그 길이다. 삼각지의 입체교차로도 없어졌다. 다음 사람이 또 지하차도를 팔 것이고 다시 허물고는 또 초현대식의 입체교차로를 세울 것이다.
용산 역 앞에도 노숙인 몇이 여기저기 쓰레기더미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내일부터는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댓글목록
서동화 작성일
얼마전 신문에는 재산이 50억이고 가방에 현금 수백만원을 가진 노숙인도 있다고 한다. 이상한 취향이고 별난 선택이다. 일방적으로 그들을 측은지심으로 보는 것은 교만일지 모른다. 다만 간단한 장치만 하면 주리거나 노상에서 병사하는 일은 줄일 수 있는데 신경쓰지 못함은 모두의 책임이며 즉시 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동춘 작성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측은지심을 행하라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자신에게 측은지심을 행하라. -제14대 달라이 라마 - 측은지심(惻隱之心) -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사랑 출발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현성 작성일
여기선 길에서 술마시거나 .. 주정하면 .. 바로 달려가는데 .. 이런 제도 좀 도입하지 ... 좋은 제도가 더러 있는데 ......
서동화 작성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사입력 2011-10-01 10:42:00 기사수정 2011-10-01 10:42:00 서울시 "겨울 전까지 노숙인 카페 마련할 것" 혐오시설 입주를 꺼리는 주민들의 '님비(NIMBY)현상' 때문에 서울시가 노숙인 자유카페(자유카페) 부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1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최근 서울역 인근 한 건물에 노숙인 자유카페 입주를 추진했지만 성사 직전에 무산됐다. 계약 체결 직전 노숙인 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이 인근 주민과 건물주들에게 알려졌고 이들의 반발에 서울시가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주민들은 "노숙자들이 드나들면 주변환경이 엉망이 되고 범죄도 늘어나게 된다"며 "장사와 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재산가치도 떨어질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카페는 노숙인들이 24시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편의시설로 냉난방 및 샤워시설, TV, 인터넷, 전화 등을 갖추고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었다. 단체생활과 엄격한 생활규칙, 사생활 부족 등을 이유로 시설입소를 꺼리는 노숙인들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자활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서울시가 찾아낸 징검다리 시설이다. 노숙인들이 무료급식 등 지원이 풍부한 서울역에 몰려있어 효과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서울역 주변에 자리를 잡아야만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입주장소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되지만 노숙인 보호를 위해서는 자유카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동절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자유카페를 설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또다른 건물에 입주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며 "반대가 계속된다면 건물을 사서라도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는 자유카페를 설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이건종 작성일
대단한 우리 서교수! 아무나 할 수 없는 체험을 행하는 그대에게 존경 한 접시^^올리네. 지하도의 걸인에게 돈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하철에 다니는 장애자에게 돈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