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불태우다 발제
윌리엄 포크너
2023.5.15.월. 글쓰기 14기 박은희
이 소설은 땅 주인 해리스의 헛간(barn)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 소작농 애브너 스놉스의 재판으로 시작한다. 해리스는 소작농의 아들 사티에게 증언을 요구한다. 치안판사는 어린 사티를 추궁하지만 아이의 곤란한 모습을 보던 해리스가 증언을 중지시킨다. 그로 인해 애브너는 방화 혐의를 벗게 되었지만 스놉스 일가는 마을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스놉스 일가는 드스페인 소령의 소작인으로 새로이 출발한다. 그러나 소령의 집에 깔린 프랑스 양탄자를 더럽힌 문제로 소령과 애브너는 갈등을 겪게 되고 이에 애브너는 다시 한 번 방화를 준비한다. 사티는 이 사실을 드스페인에게 알리고 곧장 아버지와 형이 향한 헛간 방향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그곳에서는 몇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사티는 아버지를 부르며 절규하다가 곧이어 어두운 산마루에서 동이 트고 아침이 되리라 생각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주인공 사티는 10살이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 나이다. 내가 지금 체육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이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아버지가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공포와 절망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티 가족은 12번이나 이사를 한다. 아이들이 전학을 간다는 것은 뿌리가 뽑히는 일과 같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사티는 뿌리가 뽑히는 경험을 10년 동안 살면서 12번이가 겪는다. 또한 아버지의 범죄에 가담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동학대도 이런 아동학대가 없다. 가장이면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 하에 아동과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학대가 만연하던 시대였다. 백인이 흑인에게, 지주가 소작인에게 하듯이.
사티는 해리스를 ‘우리 원수’라고 한다. ‘아버지와 나’의 원수. 여기서 우리는 흑인이고 여성이고 아이들이며 소작인이다. 원수는 백인, 남성, 지주들일 것이다. 그 당시 계급차이와 차별이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남부 지방에서 ‘헛간’은 곡물, 가축, 농기구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그 규모가 소작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백인들 집보다 더 큰 경우가 많다. 현재 부자 집 차고가 고시원보다 큰 것처럼.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 학대는 많이 사라졌지만 계급의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티의 아버지 애브너는 보통의 소작인이 아니고 농장주에게 적의와 분노가 많다. 지주의 부당함에 침묵으로 헛간을 불태운다. 헛간에 불을 지른다는 것은 그곳에 보관된 곡물을 비롯하여 가축과 농기구 등 많은 재산에 피해를 주는 엄청난 범법 행위라고 볼 수 있다. 12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주의 차별과 부당함이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 애브너는 그 때마다 지주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 헛간에 불을 지르고 떠난다. 그런데 해리스가 애브너 가족의 돼지가 들어왔다고 자기 집 우리에 가둬두고 1달러를 가지고 오라고 하거나, 애브너가 양탄자를 버렸다고 드스페인이 옥수수 550킬로그램을 부과하는 것은 정당한가?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분노가 차올라 불태우고 싶을 것 같은 심정이 이해된다. 그렇지만 불태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이해가 되면서도 안타까운 행위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티는 아버지라는 존재와 방화라는 범죄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티는 드스페인의 안락한 저택이 대표하는 ‘질서’와 가난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애브너의 방화가 대표하는 ‘평등’ 사이에서 ‘법원 건물 만큼이나 큰’ 드스페인의 저택을 선택한다. 사티는 그렇게 아버지의 폭력과 단절하고 세상의 윤리에 편입하게 된다. 첫 장면 재판이 열리는 가게 안에서 치즈냄새와 고기 냄새 사이로 밀려왔던 비애와 절망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새들이 물 흐르듯 은빛 소리로 끊임없이 울어 대는 어두운 숲을 향해 언덕을 내려갔다. 그 울음소리는 늦은 봄밤을 재촉하는 심장의 박동 소리였다.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티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