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살이를 통해 배우는 우리의 인생살이 (호주 이정기)

[이정기]

외국살이를 통해 배우는 우리의 인생살이

호주는 그 면적이 남한의 77배나 되지만, 인구는 약 2,300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4이 200개국이 넘는 해외 출생자로 나타났고, 2005년 이후 출생보다 이민자들에 의한 인구 증가가 더 많듯이 호주는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다문화 공동체 국가이다. 호주 국민들은 그들의 언어와 종교를 포함한 고유한 문화를 지킬 권리를 가진다. 또한, 다른 문화들을 존중하며 공유하는 다문화 정책을 펴고 있어 다름을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유럽이나 미국과 밀접한 문화를 가지면서도 한국과 같은 시간대인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위치한 호주, 이제부터 우리 가족의 호주 살이 이야기보따리를 슬슬 풀어 보겠다.

2006년 아내와 내 나이 마흔이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외국생활을 경험할 기회를 주셨다. 공직에 몸담은 지 12년째이던 2005년 말 우리 부부는 중대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치 솔개의 털갈이처럼 40년을 살아온 아내와 나는 외국살이를 통해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해외유학을 위한 휴직을 하고 우리 부부는 세 딸과 함께 2006년 2월 호주 동부의 브리즈번 (Brisbane)으로 날아갔다. 낯설고 물설고 말까지 잘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 갈 것을 생각하니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던 터라 아이들에게 웬만큼의 영어 준비도 못 시킨 상태에서 호주의 공립학교에 바로 입학시켜 영어로 수업을 듣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 동네 영어학원에서 기본적인 것은 어느 정도 배운 상태였고, 네 돌을 갓 지난 막내는 어차피 Pre-school이라서 그래도 좀 나았다. 둘째 딸은 그 때 한국에서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를 받아 놓고 입학도 안한 상태에서 호주의 Primary school 2학년에 다니게 되었다. 평소 활달하고 수다를 많이 떨던 둘째는 그야말로 ‘I am Tom’도 제대로 모른 채 영어로 수업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몇 개월이 지나서 아내를 통해 들으니 둘째 딸이 학교에서 수업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어서 첫째 날 책상에 엎드려 혼자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래도 학교에 가기 싫다고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 엄마도 아빠도 외국생활에 정착하느라 너무 경황이 없어 보였고, 어린 마음에 학교는 다녀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아무튼 우리 가족은 2006년 2월부터 시작된 1년여 간의 호주생활을 은혜 가운데 마치고 2007년 3월 고국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한치 앞을 모르듯, 몇 년 후 다시 호주 살이를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하면서..

아직까지 해외로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하신 분들께는 송구스럽지만, 하나님께서는 지난 해 우리 가족에게 두 번째로 외국생활을 경험할 기회를 베풀어 주셨다. 이번 외국생활도 첫 번째 외국생활과 같은 나라인 호주이긴 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첫째, 지난번에는 휴직을 하여 해외유학을 한 것이고 이번에는 국외 파견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둘째, 지난번에는 호주 퀸즐랜드 (Queensland)의 주도 (州都) 브리즈번 (Brisbane)에 살았는데 이번에는 서부호주 (Western Australia)의 주도 퍼스 (Perth)로 온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브리즈번이 동해안의 영덕 쯤 되고 퍼스는 서해안의 목포 쯤 된다고 할까? 비행기로 약 5시간 걸리고 시차는 2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지난번에는 1년 정도 체류했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2년간 머무는 것이다.

호주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하는 서부호주와 경상북도는 2007년,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경제·통상, 자원·에너지, 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협력을 약속하는 교류의향서 (Letter of Intent; LOI)를 체결하고 실질적인 교류 협력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써 인도양을 끼고 있는 서부호주의 퍼스에 파견되어 호주와의 교류 협력을 위해 작으나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가족이 작년 7월 이곳 퍼스 땅에 도착한 후 벌써 일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그 동안 퍼스에서의 삶을 돌아볼 때 한 소절의 찬송으로 압축된다. “은혜로다~”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장모님, 아버님 그리고 큰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장모님은 우리 가족이 호주로 떠나온 작년에 88세이셨다. 연세에 비해 건강하셨지만, 막내딸인 아내와 나는 연로하신 장모님과의 이별에 마음이 무거웠다. 출국을 며칠 앞두고 처가 식구들과 함께 식사모임을 하고도 마음이 쓰여 그 다음 날 다시 찾아뵈었는데, 그것이 이 땅에서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이야. 장모님은 우리 가족이 호주에 입국하던 작년 7월 5일,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중환자실에서 두 달 여간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안타깝게도 소천하셨다. 장모님께서 쓰러지신 슬픈 소식을 처음 전했던 처남의 울먹이던 목소리와 힘겹게 투병 중인 장모님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안타깝게 울던 아내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시리다.

급히 비행기 표를 구해 한국에 가서 장례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인간적 바람으로는 장모님께서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복귀하는 내년 이후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면 하는 마음이 당연하지만, 연로하셔서 기력이 많이 쇠하신 탓에 막내딸인 아내와 나는 늘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데려가셨나 싶은 생각도 든다. 마음이 더 짠한 것은 우리 부부는 별나게도 고3인 큰 딸을 한국에 두고 둘째와 막내만 데리고 호주에 왔기 때문이었다. 고3인 자녀를 혼자 남겨 두고 외국으로 간 희한한 부모인 건 사실이지만, 큰 딸은 기숙사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주말에는 할아버지 댁에서 머물기로 하고 호주 행을 결정했던 것이다. 아무리 이해를 하고 굳은 다짐을 한 후 가족을 호주로 떠나보냈지만, 큰 딸의 입장에서는 이후의 고3 생활이 생각보다 훨씬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내와 큰 딸이 전화기를 붙들고 대화하다가 엉엉 울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큰 딸이 힘들었던 때, 수능시험을 불과 한 달 정도 남겨 둔 시점에 우리 가족은 비록 장모님을 떠나보낸 슬픔 가운데였지만, 눈물겹도록 반가운 가족 상봉을 맛보고 애틋한 스킨십을 한국에서 나눌 수 있었다.

작년 가을 그렇게 한국에서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호주로 다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채 3주도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부터 또 다른 힘든 소식이 들려왔다. 칠십 중반이신 아버님이 친구 분 산에 있는 감나무에서 떨어지셔서 머리와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어머님은 충격으로 거의 실신하셨고, 급히 뇌수술을 해야 한다는 다급한 누님의 목소리에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님의 부상이 심각하고 연세도 있어 혹 큰일을 당할지도 모르고, 수술 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장애는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남이자 불과 얼마 전 장모님 상을 치르고 막 돌아온 나로서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 곤고할수록 더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하나님! 최대한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아버지!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다행히도 아버님은 뇌수술과 척추수술을 받으시고 3개월 가량의 병원생활 후 지금은 혼자서 보행이 가능할 만큼 회복되신 상태이다. 감사드릴 따름이다. 부모님이 편찮으심에도 찾아뵐 수 없는 타향살이 자식의 마음고생을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큰 딸 입장에서 보면 별난 부모 만나 고3 생활 중간에 가족을 외국으로 떠나보낸 후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크게 다치신 일을 겪는 등 수능 시험 전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냈음에 틀림없다. 그 와중에서도 대학 입시가 최대의 관건이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었다. 물론 전화로 부모와 상의해 가면서 하긴 했지만, 수시 원서 접수와 수시 시험과 수능 응시 등 모든 절차를 담담히 잘 치러 주었다. 감사하게도 큰 딸은 수시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여 올해 한 학기를 마치고 지난 7월 가족이 있는 이 곳 퍼스로 합류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파견 근무를 마치고 복귀할 내년 5월까지 호주에서 열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나이 든다고 저절로 시근 드는 것 아니듯, 외국 산다고 그저 영어 느는 것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 또한, 잠시 머무는 외국생활이지만, 우리 인생살이와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해 본다. 첫째는 배움이다. 말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삶 전체를 배우는 것이 외국살이이고 우리 인생살이인 것 같다. 둘째는 여행이다. 잠시 동안의 외국생활은 돌아갈 조국을 그리며 하는 여행과 같다. 이 땅에서의 우리 인생도 돌아갈 본향, 즉 영원한 천국을 그리며 여행처럼 잠시 살다 가는 것 아니겠는가? 셋째는 사명이다. 국가의 명을 받아 파견 근무를 하고 있듯이, 우리 인생살이도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의미 있지 않겠는가? 남아 있는, 여행 같은 호주 살이를 통하여 많이 배우고 우리 가족의 사명을 잘 깨달아서 남은 생을 통하여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쓰임 받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 4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근무처인 호주지방정부연합 (Local Government Managers Australia; LGMA) 사무실 직원들이 우리 가족과 조국의 평안을 위해 카드에 적어준 위로 편지글이다. 영문을 인터넷으로 직역한 한국어 번역문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 카드를 전해 주며 눈물을 흘렸던 직원을 생각하면 지금도 깊은 사랑을 느낀다. 이 글을 덧붙이며 사랑하는 조국, 돌아갈 본향을 떠올려 본다.

I am saddened by the escalating events in your homeland.

I pray for you, your family, your country and her people.

Everyone at LGMA wishes you peace of mind and ease of heart.

We truly hope that a speedy end comes to these dreadful threats.

We send these words in comradeship.

ALL The LGMA Team

나는 고국에서 증가하는 이벤트에 의해 슬프게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당신의 가족, 국가와 그녀의 사람을 기도합니다.

LGMA에서 모두가 당신에게 마음의 평화와 마음의 용이성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정말 빠른 끝이 무서운 위협에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동지애에서 이러한 단어를 보냅니다.

ALL LGMA 팀에서

[사랑나눔]

먼 데서의 소식 감사하네요~
많은 것 느끼고 체험하며, 간접적 전달 위해 종종 글 올려주세요^^
가족들 건강하고 주님 안에 평안하세요~~!

[사랑나눔]

부모님,아이들 이야기... 맘이 느껴지네요...

[작은자]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이 기독 약사 카페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글을 잘 내 놓지를 않는데 그 먼 곳에서
장문의 글을 이 카페에 올려주어 카페를 빛내준 이정기 후배에게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니 더없이 반갑다 그리고
돌아와서 함께할 우리 이정기 약사님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설렌다
늘 신앙안에서 사명을 생각하는 우리 이정기 약사를 보니 마음이 참으로 든든하다
다시 볼 그날까지 이정기 약사와 가족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이 늘 함께하시길......

[하나님은혜]

정기야 소식 전해주니 너무너무반갑다.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가족의 평안과 모든일에 하나님이 큰 축복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