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장가 외 2편(최해량)

[필봉]

외상 장가

필봉 최해량

아파트 담장의 줄 장미가 농익어 가던 날, 울산 장미축제를 다녀왔다. 봄의 마지막 향연 축제마당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장미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기를 토해낸다. 겹겹이 피어난 꽃잎은 눈을 호사시키고 은은한 향기는 코를 홀리기에 충분하다.

안드레센, 마로코 폴로, 녹아웃 등의 이름표를 단 외국계 장미들을 취한 듯 감상하던 중 붉은 색의 큰 송이를 가진 ‘마노라’라는 이름이 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내의 손을 끌며 그 쪽을 가리켰다.

󰡒봉여사, 언제 저기 들어가 있었어?󰡓

봉여사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아내의 별명으로 내가 가장 편하게 부르는 말이다. 아내도 꽃이 아름답고 이름도 재미있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저 꽃, 당신 마누라는 아닌데󰡓 한다. 그렇다. 이제 아내는 젊음을 발산하는 아름다울 나이는 아니다. ‘마노라’처럼 곱지도 않고 화사하지도 않다. 정열적이지도 않다. 굳이 말하자면 찔레꽃이다. 양지바른 언덕을 수놓는 은은한 향기의 주인공이다.

나는 스물아홉에 늦깎이 장가를 갔다. 아직 주경야독을 하던 내가 공부를 마친 것도 아니고 아홉수가 어떻니 저떻니 하는 말까지 무시하며 장가를 간 것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느 여름날 고향에 갔다. 다른 계절은 몰라도 이 때 만큼은 내 고향 청하와 비견할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월포의 모래사장을 타고 올라오는 은물결 파도하며 내연산 계곡을 따라 쏟아지는 열 두 폭포, 어디를 둘러보아도 풍광이 뛰어나다. 어디 그 뿐이랴! 언제 만나도 정겨운 친구가 있어 여름철이면 고향을 찾고 싶어 발동이 난다. 그렇게 친구들과 며칠 쏘다니던 어느 날, 새벽녘에 집에 오니 회를 잘못 드신 어머니께서 식중독으로 앓고 계셨다. 몸이 워낙 허약하신 데다 치료 시간마저 놓쳐 병원 한번 가보지도 못했다. 막내의 혼사를 이루지 못한 자책감이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아이고, 이 녀석을!’만 연발하시다 가셨다. 어머니의 슬퍼하시던 그 눈을 잊을 수 없다.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마지막 효도라 여기며 서두르기로 했다.

당시 나는 경제력이 좋지 않았다. 월급으로는 하숙비와 학비 대기에도 벅찼다. 그런 형편에 결혼을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뜻밖에 누님께서 두 냥의 금덩이를 선뜻 내주었다. 어렸을 때는 누님을 너무 좋아해서 신혼방에서 잘 만큼 내게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조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을 것을 내주다니--- 부족하지만 자금이 마련되었다.

나의 반쪽 될 사람은 유산도 없고 모은 돈도 없는 내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흔쾌히 승낙을 했다. 신혼의 삶은 마약의 중독성이 있는지 어머니를 여윈 슬픔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이렇게 깨소금을 볶고 있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도 허전한 옆구리를 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축의금으로 금을 한 냥씩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내가 내야할 몫의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금 파동이 일어나 금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삼 만원이면 사던 금이 십 만원이 되었다. 모두가 내야할 몫이 만만치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던 아내가 자기에게는 제대로 된 패물 하나 해주지 않고 완전히 외상장가를 왔다고 항변했다.

아내가 정말 어려워진 것은 내가 사표를 내고 친구들과 어울려 사업을 할 때였다. 몇 푼 되지 않던 퇴직금은 구경도 시켜 주지 않고 혼자 써버렸다. 용돈마저 집에서 가져다 썼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교직에 복직하고서야 해소되었다. 교원 수급이 불안정하던 1990년대 다시 교사로 돌아올 길이 열렸다. 아내의 얼굴에는 미소와 평화가 다시 자리 잡았다.

나는 아내에게 마음의 빚이 많다. 외상 장가 든 이후에 얼치기 사업을 한다고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은 7년여의 생활, 요즘 여성들 같았으면 벌써 고무신 거꾸로 신고 천리만리 내뺏을 것이다. 자금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고는 결혼을 아예 포기하는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면 더욱 소중한 생각이 든다.

아내는 내고향 언덕에 핀 작은 찔레꽃 같지만 ‘마노라’같은 큰 꽃이다. 언제나 묵묵하게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그 자리를 지켜준다. 이런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사는 것 외에는 외상을 갚을 길이 없다.

담이와 여름이

필봉 최 해 량

추석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씻을 겸 온천을 찾았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도 아니고 집에서 가까워 동네 목욕탕처럼 드나드는 곳이다. 고개를 넘어 ‘○○전적 기념관’ 앞을 지나는데 눈길을 끄는 현수막 하나가 보였다.

‘호국 영령 잠든 곳에 동물 장례식장이 웬 말이냐!’

동물 장례식장을 지으려고 신청한 것을 못마땅해 한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다. 자기 동네에 장애인 학교나 요양원이 들어오는 것도 반대하는 게 요즘 인심이다. 그런데 동물 장례식장이라니! 주민의 관점에서야 당연히 할 수 있는 주장이겠지만 그래도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든다.

예전 같으면 죽은 동물의 사체는 야산에 버리거나 매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동물보호법과 관련 규칙은 일정한 시설을 갖춘 동물장례업자에게 의뢰하여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구에는 동물 장례식장이 없다. 그렇다면 죽어가는 동물의 수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그 처리를 어떻게 할까? 생로병사는 자연의 순리인데 애지중지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으면 마지막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공원이나 강변 둔치를 걷다 보면 많은 사람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한다. 명실공히 애완견 시대가 되었다. 하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숑’을 안고 있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참 비싼 개를 기릅니다.’ 아는 척하며 인사를 건넸더니 동물병원에서 막 퇴원하는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입원비가 몸값만큼이나 많이 나와서 남편의 눈치를 잔뜩 보고 있다고 묻지 않는 말까지 덧붙였다. 예전에는 집이나 지키던 동물로 여겨지던 개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신분 세탁을 잘하여 인간의 영역에 진입하더니 가족 서열도 수직상승 했다. 숫자도 급속히 늘어나 곧 천만 시대를 바라본다고 한다. 종류도 다양해져 고양이는 물론 거북이, 악어 심지어 뱀까지 기르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호칭해야 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든다.

고향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친구 집을 찾았다. 잠자리가 바뀌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잠드는 시각이나 생활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편치 않다. 그래도 어린 시절 함께 뒹굴며 지내던 때를 추억하며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 행복을 좇아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가는 친구 집을 찾았다. 그런데 큰 방 한쪽에 시츄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매우 지친 모습에 병든 기색이 역력했다. 친구는 이 녀석이 담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열여섯 해를 가족들과 함께 애환을 같이해 왔다고 했다.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녹내장으로 왼쪽 눈을 적출했고 오른쪽 눈도 백내장으로 겨우 뜬다고 했다. 달팽이관 이상으로 잘 듣지도 못하고 심장병이 있어 몇 가지 약을 먹는다고 했다. 영락없이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병든 녀석을 안은 친구의 모습이 삼대독자를 안은 할아버지와 흡사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듯 편안한 모습으로 안아 주었다. 아무리 바쁜 일을 하다가도 배변할 시간을 알아채고 얼른 마당으로 데려나갔다. 예전의 친구로는 턱도 없는 소리다. 개는 개같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 아니던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묘약이 있어 동물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이렇게 애완견 바보가 되었을까?

하루는 퇴근하니 아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앓고 있더란다. ‘병원에는 다녀왔느냐? 엄마는 어디 갔느냐?’ 묻고 있는데 부인이 담이를 안고 들어왔다. ‘아들이 이렇게 아픈데 병원에는 안가고 어디를 다녀오느냐?’ 는 물음에 담이가 아파 동물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뭐? 아이가 아픈데 개를 먼저 데려갔다고?’

‘아들은 아프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담이는 말도 못하니 얼마나 괴롭겠어요.’ 아내의 말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담이에 대한 관심이 적던 친구가 담이 바보가 된 것은 한쪽 눈을 적출하고 부터라고 했다. 병들고 늙은 애완견을 보니 저절로 측은지심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담이는 참 복된 주인을 만났다.

여름이는 ‘○○공소’의 개로 푸들이다. 친구의 지인인 신부님은 황무지와 같은 곳에 공소를 정비하고 주변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한 분이다. 은퇴 이후에도 공소를 지키며 신자들의 영혼을 돌보는 영안이 열린 분이라고 친구는 입이 닳도록 칭찬한다. 그 분은 개를 그렇게 귀여워하지 않아서 공소 마당이나 지키는 딱한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던 푸들이 ‘담이 바보’, ‘측은지심 바보’를 만난 이후 신세가 달라졌다.

어느 여름 날, 신부님과 해수욕장에 갔다. 수영도 잘하지 못하는 친구가 제법 수심이 깊은 곳까지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푸들은 자기 주인의 손님이 물에 빠진 줄 알고 막무가내로 헤엄쳐 이 친구에게로 왔다. 컹컹 소리 내어 위급함을 알리며 들어왔다. 이에 감동한 친구는 푸들을 부등켜 안고 막 울었다고 한다. 주인도 아닌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도 돌보지 않고 물로 뛰어든 푸들, 이제 이 두 사람은 떼어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후 푸들의 이름은 여름이로 바뀌었다. 그 친구가 차를 몰고 공소로 가면 언제 왔는지 거의 1km 가까운 거리를 따라와 주인이나 된 듯 마루 밑에 버티고 앉는다고 한다. 그리고 들고양이들에게 주는 먹이까지 독차지하며 이제는 골칫덩이가 되었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다시 그 친구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방을 지키던 담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이냐는 물음에 친구는 풀죽은 목소리로 죽었다고 했다. 고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 속에 괴로워하다가 죽었다고 했다. 담이의 유체는 서울에 있는 아들 내외와 딸과 사위까지 내려와 온 가족이 슬퍼하며 정원 매화나무 밑에 안장했다. 안방을 지키던 담이는 이제 집을 지킨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가장 먼저 듣는다. 반갑다고 꼬리치며 대문으로 달려나와 마음껏 큰 소리로 짖어댄다.

담이 바보는 소중한 가족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추억이 가물거릴 때쯤이면 정원에 화사하게 피어나는 매화꽃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담이와 즐거웠든 시간들을 되살릴거라고 한다.

친구야, 친구야!

필봉 최 해 량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가 위급하단다. 오늘을 못 넘길 것이라고 하네---”

추석을 이틀 앞두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나도 모르게 긴 탄식이 나왔다. 불과 달포 전에 만난 친구다. 위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더니 인생 초로에 집한 칸 없이 동생의 우사에서 외롭게 투병하고 있었다.

비교적 건강했던 모습은 간 곳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는 자신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오늘 중 납품할 것이 있다며 마음이 분주해 보였다.

“아픈 사람이 요양에만 전념해도 시원찮을 판에 일이라니!”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긴 이야기는 나누지도 못하고 추석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다니 못내 아쉽기만 하다.

장례식장을 찾았다. 추석 전날이라 그런지 조문객도 없고 분위기마저 을씨년스럽다. 고향 친구 일동이 보낸 조화와 다른 두 점의 생명 잃은 꽃이 장례식장임을 알려 줄뿐 곡성조차 들리지 않는다. 빈소에는 고인의 얼굴만 크게 웃고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상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혼식 하객은 부모의 열매요 장례식의 조문객은 자식의 꽃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듯하다. 하필 추석 명절과 겹치기도 했지만,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고 길·흉사에도 참여하지 않아서 그런지 친구들의 발걸음도 없다.

고인의 영정 앞에 앉으니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이 새롭다. 봄이면 용산에 올라가 진달래 꺾고 여름이면 보릿단 하나씩 들고 강변에서 목욕하던 일이 눈에 선하다. 여름은 온통 우리 천지였다. 부모님 몰래 월포 해수욕장에 가서 조개를 잡으면 한 시간만 밟아도 충분했다. 오후에는 양지에 가서 고동이랑 홍합을 땄다. 나는 친구보다 한 살 아래여서 작은 바위까지도 겨우 헤엄쳐 갔다. 그러나 친구는 큰 바위까지 가서 손을 흔들며 위세를 뽐내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소 먹이러 가면 우리들만의 세상이 펼쳐졌다. 망개 잎으로 투구를 만들어 쓰고 솔방울을 던지며 병정놀이를 하다 보면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웅덩이가 비좁다 하며 서로 먼저 뛰어들기에 바빴다. 이렇게 놀이에 열중할 즈음, 소는 논으로 들어가 애써 가꾸어 놓은 야들야들한 벼 잎을 막 먹어 치웠다. 우리는 화가 난 주인에게 붙들려 혼이 나기도 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추억을 누구와 함께 이야기하랴!

수박 서리를 하다 들켜서 지서에 불려가 혼났던 일, 술 한 잔 나누며 꼭 성공해서 자가용 타고 고향에 오자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못내 서럽다. 결혼한 이후에도 우리는 그 시절이 그리워 좋은 명소 다 젖혀두고 온 가족과 함께 이가리에 와서 피서했다. 친구는 11톤 큰 트럭을 몰고 와서 교통체증을 일으키며 남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친구야, 그 시절이 너무 그립구나!’

나는 젊은 시절 또 하나의 친구를 잃었다. 그 친구는 결혼한 지 불과 이 년 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핏덩이 딸만 남기고 무정하게 떠나갔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그렇지 친구들에게 연락도 없이 장례를 마쳐 영정에 향불조차 올리지 못한 채 보냈다. 부인은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 그의 동생을 통해 가끔씩 소식을 듣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아이가 어찌 자라나는지 궁금했다. 아빠 없이 자라는 녀석이라 마음이 더 갔다. 어느 추석날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우리를 보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저렇게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날 이후 나는 도저히 그 친구의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고인이 된 친구의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인은 개가도 하지 않고 어린 핏덩이를 곱게곱게 잘 키웠다.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 고인이 된 친구와 한달음에 달려갔다. 예쁜 면사포를 쓴 딸은 삼촌 손에 이끌려 식장에 들어왔다. 아빠가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왔다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신부의 얼굴에도 부인의 얼굴에도 눈물이 흐른다.

‘친구야! 안타깝고 슬프구나!’

이렇게 예쁘게 딸을 키워준 부인, 그 간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랴. 너무 고마워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친구야, 미안하다. 조금의 도움도 못 준 이 못난 친구를 용서하렴!’

나는 먼저 간 그 친구의 딸 결혼 이야기를 오늘 상제인 동생에게 들려주었다. 이제 저 어린 상주를 돌보아 줄 사람이 누가 있겠나? 형제는 위급할 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냐. 삼촌들이 잘 돌봐주어라! 저 아이가 결혼하는 날, 내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오겠다. 삼촌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는 예쁜 신부의 모습을 꼭 보게 해다오.

이제 고인의 이름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점 잊혀갈 것이다. 깨어진 그릇을 아까워하지 않고 쉬 잊어버리듯이 어린 딸에게 빚만 상속하고 간 그를 누가 기억이나 하겠는가!

그래도 친구야, 너를 잊을 수 없구나. 내 정신이 온전한 순간까지 옛일들을 하나하나 꺼내 가며 추억할 것이다. 그 간의 좋지 않았던 감정들은 월포바다에 다 던지고 좋은 일들만 생각할 것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듯이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소중하게 곱씹어 볼 것이다. 그리고 너의 어린 딸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지켜볼 것이다. 예쁜 면사포를 쓰고 식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후에야 친구와의 모든 인연을 다 내려놓겠다.

‘아, 애달프구나! 친구야.’

[choess]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