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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국참교육동지회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너무 거창한 주제를 압축하자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맑스 사상의 발전과 변형
1. 인류사적 전제전환과 유물변증법적 사유
1. 1.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뒤덮고 있는 담론들의 대부분은 돌고돌아 ‘돈’ 문제로 귀착되곤 합니다. 돈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노동력과 노동산물(상품)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사회적 권력이기도 합니다. 상품을 사고 팔면서 혹은 이자를 통해 증식되는 돈(M−C−M’, M−M’)이 자본이며, 자본의 본성은 무한증식입니다. 증식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주의사회는 빈부격차를 통한 권력의 편중과 이에 따른 지배관계를 통해 유지됩니다. 이 지배관계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지배관계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믿음도 절대불변의 형이상학적 원리처럼 받아들여지곤 합니다. 맑스 이전 시대 영국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스미스, 리카도 등)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인간의 불변적 자연상태라고 전제했습니다.
1. 2. 맑스는 이러한 전제를 근본적으로 거부합니다. 즉 자본주의도 인류사의 산물이며,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형성과정과 노동자민중의 빈곤화, 자본주의 발전에 내재하는 한계 및 위기의 불가피성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잠재력을 밝히고, 나아가 지배관계 자체가 소멸한 해방사회의 구현을 위해 필생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맑스가 혁명의 길로 들어서는 출발점은, 부르주아들이 자명한 것으로 여겨온 전제를 거부하고, 해방의 주체를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찾게 된 데에 있습니다. 이 전환은 “인간해방의 머리는 철학이고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다”라고 주장한 청년기에 이미 이루어집니다. 이는 향후 맑스 사상의 발전과 인류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전제전환입니다.
1. 3.여기서 철학의 요체는 유물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스는 자신의 연구방법을 ‘변증법적 방법’이라고 밝힙니다. 그는 헤겔이 최초로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으로, 또 알아볼 수 있게 서술’했지만, 변증법을 관념론적으로 신비화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 ‘합리적 알맹이’를 찾기 위해서는 유물론적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합리적 형태의 변증법과 관련해 맑스는 1)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 즉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며, 2)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 속에 있다고 보아 그 ‘일시적 측면’을 파악하며, 3)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1. 4.엥겔스 역시 헤겔 변증법의 혁명적 의미를 부각하면서, ‘대립물의 상호침투와 전도’, ‘양질 전환’, ‘부정의 부정’ 등을 강조합니다.레닌은 헤겔의 [논리학]을 독해하며 ‘고찰의 객관성’, ‘관계들의 총체성’, ‘분석과 종합의 통일’, ‘대립물의 통일⋅이행’, ‘인간 인식의 무한한 심화과정’ 등을 변증법의 주요 특징으로 제시합니다.아도르노는 헤겔 변증법과 맑스 변증법의 공통점을 주목하면서, ‘개념의 운동’, ‘내재비판’, 모순의 중요성, 진리의 구체성 등을 내세웁니다.맑스의 사상은 변증법의 주요 특징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특히 [자본론]에서 그는 양질전환과 부정의 부정 개념을 직접 활용하며,(자본1, 419, 1046)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이 모순들로 꽉차 있음을 명시하기도 합니다.(자본1, 20)
1. 5. 자본주의에서 피할 수 없는 노동과 자본의 모순을 부인⋅은폐하는 것은 모순을 유지하여 자본권력의 지배를 영속화하는 데에 기여합니다. 맑스는 [경제학 철학 초고](1844)에서 이미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합니다. 그는 사적 소유, 즉 자본주의가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양극화 및 소외된 노동과 이에 따른 비인간화 문제를 욕구 및 감성 차원에서까지 명시함으로써, 사적 소유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밝힙니다. 그리고 사적 소유가 궁극적으로 지양된 공산주의 사회의 주요 특징을 제시합니다. 공산주의는 ‘모든 인간적 감성들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을 이루며, 풍부한 인간적 욕구와 감성을 모두 갖춘 사려깊은 인간을 ‘사회의 지속적 현실로서 생산한다’는 것입니다.(경철, 102-104)
1. 6. 이러한 공산주의를 맑스는 ‘완성된 자연주의=인간주의’ 혹은 ‘완성된 인간주의=자연주의’라고 표현하고, 여기서는 ‘인간과 자연, 또 인간과 인간의 갈등을 진정으로 해결하고, 실존과 본질, 대상화와 자기확증, 자유와 필연, 개별과 유의 갈등을 진정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이때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완성된 본질적 통일’이자 ‘자연의 참다운 부활’이 된다고 봅니다. 아울러 ‘자연과학은 인간에 대한 과학과 하나’가 되고 ‘산업을 통해 생성되는 자연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적 자연’이라고 보고, ‘역사는 자연사의 일부’라고 파악합니다.(경철, 95-104) 해방운동의 지향 목표와 현실적 필요성에 대한 맑스의 이와 같은 생각은 향후의 과학적 연구와 실천을 통해 일관성 있게 보완되고 구체화됩니다.
1. 7. [경철초고]에서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적극 받아들여 감성적 욕구와 감성적 의식에서 출발하는 과학만이 현실적 과학이라고 단언합니다.(경철, 104) 하지만 그 직후에 쓴 「포이어바흐 테제」(1845)와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에서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이 주체의 실천적 활동성을 파악하지 못하는 ‘직관적 유물론’ 내지 ‘구태의연한 유물론’이라고 비판하고, 자신의 유물론을 ‘실천적 유물론’이라고 규정합니다. 사실 포이어바흐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는 이미 [경철초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맑스는 인간을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 파악합니다. 즉 ‘사회 자체가 인간을 인간으로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는 인간에 의해 생산된다’는 사실을 명시합니다.(경철, 97)
1. 8.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연구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좀 더 구체화되어 유물론적 역사 파악, ‘관념적 형성물들을 물질적 실천으로부터 설명’하는 유물사관으로 발전합니다. 여기서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물질적 요소, 특히 혁명적 대중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독일, 80) 그들은 공산주의자 동맹(1847~1852)에서 활동하는데, 이는 혁명적 대중 형성을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입니다. 1848년 혁명 전야에 나온 [공산당 선언에서 그들은 공산주의 혁명이 전래의 소유관계와 철저히 결별하는 것이지만, 그 첫걸음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계급으로의 고양, 민주주의의 쟁취’임을 밝히며, 생산수단을 ‘국가’ 내지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만국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호소합니다.(선언, 430)
2. 지배관계 극복의 과학적 실천적 전망
2. 1. 1848년 2월혁명은 6월 파리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과 보나파르트체제로 끝납니다. 혁명의 불꽃이 사그러지던 1850년 3월 맑스와 엥겔스는 곧 다가올 새로운 혁명에 대비해 무기를 놓지 말고, ‘독자적인 조직화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공산주의자 동맹에 호소합니다. 1848년 혁명 이전부터 그들은 노동과 자본의 적대관계를 밖에서 굽어보는 논평가가 아니라 ‘해방의 심장’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내부에서 해방의 전략을 세워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혁명은 20여 년이 지난 1871년 파리코뮌으로 찾아옵니다. 그들은 제1인터내셔널(1864~1876)의 설립을 위해 특히 이론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무엇보다 맑스는 이 기간에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데에 매진함으로써 그 극복의 과학적 전망을 구체화합니다.
2. 2. [자본론]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잉여가치의 비밀을 밝힌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류경제학 혹은 자본 이데올로기는 잉여가치는 물론 가치 개념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맑스의 잉여가치론은 자본증식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일관성 있고 현실성 있게 설명합니다. 그 요지는 상품의 사용가치와 가치,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고, 자본 가운데 생산수단에 해당되는 부분을 불변자본(c)으로(가치 이전), 노동력 구매에 필요한 부분을 가변자본(v)으로(이전+추가) 파악하는 데에 있습니다. 자본가는 등가교환의 원리에 따라 임금(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사서 상품을 생산하되,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이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함으로써만 잉여가치(s)를 얻습니다.(자본1, 1장, 7장, 8장)
2. 3. 그래서 저임금과 노동일 연장은 자본의 기본 충동입니다. [자본론]은 노동일을 무제한으로 연장하여 잉여가치(절대적 잉여가치)를 늘이려는 자본의 온갖 사례들을 보여줍니다.(자본1, 10장) 그러나 노동자들의 저항과 총자본의 관점에서 직면하게 된 문제들로 인해 노동일 연장은 한계에 부딪칩니다. 이때 노동생산성을 높여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줄이고 잉여노동 시간을 늘여서 얻는 상대적 잉여가치가 중요해집니다. 개별 기업들은 기술혁신 등을 통해 타 기업들보다 적은 시간에(적은 노동력 투하로)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더 큰 잉여가치(특별잉여가치)를 얻고자 치열하게 경쟁합니다.(자본1, 12장) 특별잉여가치를 위한 기술혁신 경쟁은 산업자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2. 4. 기술혁신은 노동력의 절약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자본 가운데 가변자본 대비 불변자본의 비중(유기적 구성)이 높아집니다. 이는 자본의 집중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생산성의 증대로 임금 대비 잉여가치, 즉 잉여가치율(s/v)은 커지더라도, 총투하자본 대비 잉여가치, 즉 이윤율(s/c+v)은 평균적으로 저하하는 경향을 띱니다. 이 경향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선진 산업국들의 예외 없는 성장률 둔화에 비춰볼 때 충분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러한 증식의 근본한계는 경쟁을 격화시켜 독점을 초래하며,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의 무정부성과 과잉생산으로 인한 위기는 더욱 확대된 규모로 반복됩니다. 이로써 자본은 생산력의 증대로 인해 증식의 한계에 부딪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2. 5. 맑스는 [자본론] 1권 끝부분에서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자본주의적 틀과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여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체를 부정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보며, 이를 ‘부정의 부정’이라고 표현합니다.(자본1, 1046) 부정의 부정은 부정된 것으로의 단순한 회귀도 아니지만 폐기나 청산도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는 대안 사회의 건설에 활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회가 얻는 절대적 여가시간’이나 ‘물질적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일반의 감축’(자본3, 330), 자본의 집중에 따른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 ‘과학의 의식적인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의 공동 이용을 통한 절약,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 발전(자본1,1045) 등은 자본의 자체 부정에서도 보존될 만한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6. [자본론]에서 맑스는 대안사회의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으며, ‘자유인의 연합’이라는 개념을 간단히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공산당 선언]에서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생산수단을 집중하는 것이 기존 소유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파리코뮌에서 대안사회가 눈앞에 펼쳐졌다고 파악합니다. 엥겔스는 파리코뮌을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칭했고, 맑스는 파리코뮌을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부’, ‘노동에 대한 경제적 해방이 이루어질, 궁극적으로 발견된 정부 형태’라고 평가했습니다. 파리코뮌은 비스마르크와 결탁한 티에르의 무력에 의해 두 달만에 무너졌지만, 대안사회의 주요 특징들을 원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2. 7. 이 ‘노동자계급의 정부’ 혹은 ‘궁극적으로 발견된 정부 형태’의 본질적 특징은 ‘국가와 국가 기관들이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화하는 것’을 방지할 절대 확실한 방책을 강구하고자 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방책 중 하나는 입법⋅사법⋅교육 등의 모든 직책을 관계자들의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관계자들이 언제라도 자신의 파견 대표를 소환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또 다른 방책은 모든 공무원들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만 지불한 것입니다.(서문, 296) 또한 코뮌은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무오류성을 가장하지 않았습니다.(내전, 355)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본질은 근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대안사회 건설의 주요 지표로 삼을 만합니다.
2. 8.파리코뮌이 무너진 후의 탄압 분위기 속에서 독일의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비스마르크의 비호를 받으며 노동운동을 한 라살주의자들과 함께 1875년 고타 당대회에서 사민당(SPD)의 전신인 사회주의 노동자당(SAP)을 세웁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이 통합에 대해 불만과 우려를 표하며, 맑스는 당강령 초안을 첫구절부터 조목조목 비판합니다. 여기서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시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불가피성,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 공산주의의 차이, 사적 소유를 폐지한 후의 기본적인 경제구조 등을 약술하며,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하여 분업의 폐해가 극복되고 노동이 단지 생존수단이 아니라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상태를 이상적인 사회상으로 제시합니다.당은 탄압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하여 1890년 선거에서는 최대득표당이 되며, 이때 당명도 사민당(SPD)으로 바꿉니다. 또 선거의 성과로 비스마르크 정권의 악법인 사회주의자법(1878~1890)도 폐기됩니다.
3. 제국주의 시대의 변혁주체
3. 1. 독일 사민당의 성장이 세계 사회주의의 발전으로 직결되지는 않았습니다. 맑스의 혁명노선이 주도했던 사민당 내에서 점차 의회주의의 목소리가 커지며 당은 급속히 우경화됩니다. 그 근본원인은 독일의 제국주의적 팽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국주의전쟁 전야에 당의 대표적인 이론가 카우츠키는 국제적인 카르텔 등을 근거로 ‘자본주의 하에서 전쟁이 종식’되고 ‘국제적으로 연합한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의 공동착취’가 이루어지는 ‘초제국주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 달리 일차대전이 발발하며, 제2인터내셔널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회주의 당들은 조국수호를 내세우며 전쟁에 가담합니다. 레닌은 이들을 사회배외주의자라고 비판하면서 [제국주의론](1916)을 내놓습니다.
3. 2. 레닌은 제국주의를 “독점체와 금융자본의 지배가 확립되어 있고, 자본수출이 현저한 중요성을 띠며, 국제 트러스트들 간의 세계분할이 시작되고,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지구상의 모든 영토분할이 완료된 발전단계에 있는 자본주의”라고 정의합니다.(제국, 122) 또한 ‘자본주의의 최고단계’이자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 혹은 ‘사멸해 가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제국, 90, 29, 165) ‘영토분할’은 식민지 문제를 뜻한다고 보아 위의 정의가 오늘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레닌은 ‘국가종속의 수많은 과도적 형태’에 주목합니다. ‘형식적으로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면서 실제로는 금융적 외교적 종속의 그물에 갇혀 있는 다양한 종속국들도 이 시대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제국, 118)
3. 3. 카우츠키는 제국주의의 본질을 ‘농업지역을 지배하거나 병합하려는 산업자본주의 민족의 노력’에서 찾는데, 레닌은 제국주의의 특징을 산업자본이 아니라 금융자본이라고 보며, 제국주의는 ‘농업지역뿐만 아니라 고도로 공업화된 지역까지도 병합’하려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모든 종류의 영토’에 손을 뻗쳐 ‘재분할’을 기도하는데, 영토 병합의 목적은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에 국한되지 않으며 ‘경쟁자를 약화시키고 그 헤게모니를 잠식’하려는 데에 있다고 지적하며, 제국주의의 정치적 ‘폭력과 반동’ 지향성을 비판합니다.(제국, 124) 따라서 공식적 식민지의 존재여부가 제국주의의 필수조건은 아닙니다. 하지만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 ‘경제영토’는 재분할의 주요대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4. 제국주의전쟁의 필연성을 밝히는 관점에서 레닌은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을 비판하면서, 독점이 경쟁과 갈등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본주의적 생산 전체에 고유한 무정부성’을 강화할 뿐이라고 봅니다.(제국, 121, 56) 나아가 금융자본과 트러스트가 세계경제 각 부분 간의 성장률 차이를 증대시킨다고 지적합니다.(제국, 130) 이러한 불균등발전은 생산력 발전과 자본축적 간의 불균형, 식민지 분할과 금융자본 세력권 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데, 레닌은 이 불균형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자본주의하에서 전쟁 이외에 어떠한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제국 132) 또 그는 이때의 세력 변화가 순전히 경제적이냐 경제외적⋅군사적이냐 하는 형태상의 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점도 지적합니다.
3. 5. 생산력의 불균등발전은 제국주의 세력들간의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종속국이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기 위한 힘이 되기도 합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 저항의 싹을 자르기 위해 경제논리를 넘어선 정치공작과 침략전쟁도 불사합니다. 레닌은 이에 맞선 종속민족의 민족해방과 민족자결권을 옹호합니다. 그는 제국주의전쟁으로 인한 인류공멸의 위기를 극복할 방안으로서 ‘선진국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내전과, 후진적이며 억압받는 미발전 민족들의 민족해방운동을 포함하는 일련의 민주주의적 혁명운동이 결합되는’ 사회혁명을 제시합니다. 이 모델은 식민지적 요소와 제국주의적 요소가 공존하는 한국에서의 해방운동에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여겨집니다.
3. 6. 레닌이 밝히는 제국주의의 주요 특징들을 고려하면 레닌 시대만 아니라 오늘날도 엄연히 제국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제2인터내셔널의 우경화 내지 사회배외주의의 창궐에 대한 그의 비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회배외주의의 경제적 토대를 레닌은 제국주의의 ‘기생성과 부후화’에서 찾습니다. 즉 자본수출을 통해 전세계를 약탈하는 제국주의는 그렇게 거둬들인 초과이윤의 일부로 노동자계급의 상층부를 직접⋅간접으로, 공개⋅비공개로 매수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생겨나는 ‘노동귀족’층은 ‘속물적 생활양식⋅소득규모⋅세계관’을 가진 ‘부르주아지의 실질적인 하수인이자 자본가계급의 노동관리인’이며, ‘개량주의와 배외주의의 실질적 전파자’가 된다는 것입니다.(제국, 38-39)
3. 7. ‘노동귀족’층의 사회적 영향이 미미한 수준에 머문다면 굳이 ‘매수’하려 애쓸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매수된 노동자들이 지식노동자나 교육노동자 등 이데올로그로서 제도교육과 언론 등을 통해, 매수되지 못한 노동자민중에게 자본이데올로기를 지속적⋅안정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경우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이 자본주의적 지배관계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본주의의 근본모순인 노동과 자본의 적대적 모순이나 제국주의 단계 자본주의가 초래할 인류 절멸의 위험에 대해 눈감고, 계급적 단결이 아닌 서열구조와 각자도생을 현명한 처세술로 몸에 새기며, ‘그래도 살만하다’는 시한부 환각에 빠져 자본가들과 그 대리자들을 걱정해주고 노예노동에 몸과 영혼을 바치는 상황도 가능합니다.
3. 8. ‘총체적 속박’ 혹은 ‘관리되는 세계’라는 신좌파적 문제의식은 이처럼 피지배 노동자민중이 자발적으로 지배관계를 받아들임으로써 변혁주체와 변혁의 가능성을 찾기 어려워진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이차대전 이후 미국과 서유럽 제국주의의 경제적 팽창이 있습니다. 한국사회도 지난 수십년간 급속한 경제성장에 힘입어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매수효과를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 것, 또 반노동자중심주의 논리가 운동문화를 주도하게 된 것, 다수 노동자민중이 체제변혁의 불가능성 내지 불필요성을 자명한 원리로 받아들이는 것 등이 그 증거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총체적 속박’의 늪을 벗어나 변혁주체가 되는 첫걸음은 매수의 메카니즘에 대해 철저히 자각하고,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의 근본 작동원리 및 그에 따른 파국 위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안사회 건설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노동자국가와 풍요로운 평등사회
4. 1. 맑스 사상의 본질은 세계에 대한 인식에 머물지 않고 변혁에 기여하는 데에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근본문제에 대한 맑스의 통찰에 근거해 현실의 역동을 직시하면, 일상화된 제국주의전쟁, 핵재앙을 포함한 환경재난, 자동화⋅무인화 등 생산력 발전에 따른 실업의 위협이 삼위일체가 되어 노동자민중의 삶만 아니라 인류문명을 끝장낼 태세임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의 뿌리인 자본독재를 지양할 대안사회 건설이 과거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점도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지속가능한 효율적 착취방법에 대해 골머리를 앓는 자본가의 눈이 아니라, 자본독재 하에서 매일 고통을 겪어온 노동자민중의 눈으로만 파악될 것입니다. 그래서 변혁운동의 심장은 노동자민중일 수밖에 없습니다.
4. 2. 그러나 노동자민중도 흩어져 있는 개인으로서는 변혁을 현실화할 수 없습니다. 변혁을 위한 인식과 적극적 의지를 갖고 조직적으로 단결하는 것, 나아가 이 조직적 운동의 성장을 통해 자본독재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극복하고 실질적 민주주의, 곧 우리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는 노동자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변혁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노동자국가의 본분은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이 바뀌더라도 잔존하는 자본권력의 저항을 제압하고, 제국주의세력들의 간섭을 방어하며, 생산수단의 사회적 국가적 소유에 기초한 생산양식을 효율적으로 발전시키고, 이에 필요한 노동자민중의 탈자본주의적 의식⋅감각⋅욕구 형성을 돕는 데에 있습니다.
4. 3. 우리의 노동자국가를 소련⋅중국⋅북한⋅쿠바 등 기존의 모델들 가운데 어느 하나와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각 모델들이 존립하게 된 제반 조건이 우리의 조건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기존의 성과들을 모두 버리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점에서 현재의 생산력과 해방운동의 유산들을 분석적으로 평가하여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실천적 요구에 따라 주체적으로 종합해내는 변증법적 사유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는 지향모델에 대한 의견차에 따른 운동 주체들의 분열을 최소화하고, 설득력 있는 세부 정책들의 개발과 검증 과정에 다수 노동자민중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단결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4. 우리의 노동자국가 모델이 유연성을 띠더라도 고수할 원칙은 있습니다. 우선 기존의 국가들처럼 소수의 지배자들이 절대다수 노동자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소수 착취자들을 제압하는 것이 노동자국가의 과제입니다. 이는 파리코뮌이 본보기로 구현했던 근본민주주의와도 직결됩니다. 즉 ‘국가와 국가 기관들이 사회의 종복으로부터 사회의 주인으로 변화하는 것’을 방지할 절대적 방책을 마련하는 것도 노동자국가가 지켜야 할 원칙입니다. 이 점에서 노동자국가는 레닌이 지적하듯이 계급의 소멸과 더불어 궁극적으로 사멸해갈 반-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사멸은 장구한 시간을 요하는 과제이지만, 우리의 노동자국가에는 필수적인 이념적 지표입니다.
4. 5. 레닌은 노동자국가와 동일한 역사적 위치에 있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낡은 사회의 힘과 전통에 맞선 집요한 투쟁으로서, 유혈투쟁과 무혈투쟁, 폭력투쟁과 평화투쟁, 군사투쟁과 경제투쟁, 교육투쟁과 행정투쟁’이라고 규정합니다. 이 인류사적 해방전쟁에서 노동자 국제주의에 입각한 국제연대는 중요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노동자국가 건설과정에서는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다양한 해방적 부문운동들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자본독재 극복을 위한 노동자국가 건설 속에 부문운동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단결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무기입니다. 그러나 해방전쟁의 최고 무기는 노동자민중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4. 6. 풍요로운 삶은 맑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스가 [경철초고]에서 그리는 궁극적인 공산주의사회는 풍부한 인간적 욕구와 감성을 모두 갖춘 사려깊은 인간을 ‘사회의 지속적 현실로서 생산’합니다.(경철, 102) [자본론]에서 그는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체로서 발전시키는’ ‘진정한 자유의 영역’이 개화되는 사회를 추구했습니다.(자본3, 1041) 「고타강령 비판」이 제시하는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는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생산력의 성장에 따라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넘치는 사회’입니다.(고타, 377) 이때의 풍요는 자연파괴를 불사하고 노동자민중을 노예노동으로 내몰아가며 끌어올린 성장율 따위와 거리가 멉니다. 풍요의 의미도 자본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4. 7. 노동자국가가 만들어낼 풍요로움을 위해서는 이제까지 노동자민중이 겪어온 수난과 해방전쟁의 역사에 대한 기억과 공감, 해방전쟁 속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자각, 자본논리와 지배욕구를 넘어선 인정 및 보상체계, 약자를 북돋는 인간관계, 나눔을 통한 즐거움의 배가방식 등이 필요할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부는 타인’(경철, 105)이라고 보는 맑스의 시선도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불평등의 잔존을 수치로 여기는 도덕률을 보편적 원리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평등이야말로 자유와 풍요의 전제조건이자 궁극적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풍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는 생산력 수준에 적합한 노동일의 축소와, 기본적 문화생활을 위한 물적 조건의 사회적 보장이 전제됩니다.
4. 8. 매일 매순간 급변하는 위기상황과 들끓는 민심을 대안사회 건설에 집중시킬 주체적 역량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고 판단됩니다. 노동자민중이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를 구성하지만 노동자정치세력은 존재감조차 없는데, 이를 문제로 자각하기도 어렵게 만드는 정치문화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자본독재의 양대 분파들이 해결할 수 없는 오늘의 근본문제들을 깊이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만들고자 분투하는 전사들 또한 늘어나고 있습니다. 혁명의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그 결정적인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는 인식에 근거해, 주체적 조건을 만들어가는 데에 총력을 기울일 때입니다. 이때 맑스의 사상이 기여할 수 있는 바는 지대하다고 여겨집니다. 자주 만나 힘을 모으고, 각자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얻어낸 지혜들을 널리 공유하면서, 자본독재에 맞서 노동자국가와 풍요로운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인류사적 해방전쟁에 적극적 주체로 나서는 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자고 제안합니다. 결정적인 시간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습니다.
2024.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