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12
용신(龍神)과 함께 한 우리의 삶, 기우제
<물의 고장 춘천의 기우제>
“물이 깊으나 흐르지 않고 머물러 괴어있으니 완연히 신용이 여기에 숨어 있는 듯하다.”
이 말은 춘천 신연강 백로주에서 행한 신룡연(神龍淵) 기우제에 얽힌 『수춘지』 기록이다. 신용연에는 신령스러운 용이 머물러 있다고 믿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춘천부사 이현석(1647~1703)의 기우제문이 『유재집』에 전하는데, 말마다 비를 비는 절실함이 배어있다.
기우제(祈雨祭)는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제의이다. 에이아이(AI)시대에 웬 기우제 이야기인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아직 하늘의 조화를 알 수 없다. 기후의 변화로 어떤 지역은 가뭄이 이어져 식수마저 마르고, 또 어떤 지역은 폭우가 내려 모두 쓸고 간다. 날씨의 변화에 우리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참담할 따름이다. 그래서 비가 오기를 비는 기우제, 겨울에 춥기를 비는 기한제(祈寒祭), 눈이 내리기를 비는 기설제(祈雪祭) 등이 있었다.
<곳곳에서 지낸 춘천의 기우제>
『수춘지』에는 춘천부사가 제의를 주관하는 기우제단으로 세 곳을 기록해 두었다. 제1기우단 신용연, 제2기우단 대룡산, 제3기우단 가리산 기우단이다. 세 곳 모두 용신이 기거하고 있다는 장소이다. 춘천의 부사가 참여하는 기우제는 유교식 제의에 무당이 축원하는 굿으로 이어졌다.
2012년 가뭄에도 가리산 한천자 무덤과 가리산 기우단에서 춘천시장이 참관하는 기우제가 있었다. 물로리 사람들이 큰 돼지를 제물로 올리고, 인근 스님이 와서 독경하고, 춘천시장과 각 읍면동장 등이 와서 제의에 참관했다. 제의가 끝나고 그날 밤중에 비가 내려 기우제의 효험이 있었다.
춘천시 동면 지내리에서는 소양강 미역바위 옆에 가서 여자들이 기우제를 지냈다. 속옷 차림으로 물에 들어가서 키를 들어 물을 뿌리며 비를 기원했다. 옛 춘성군 북산면 수산리에서는 여자들이 소양강에서 속옷 차림으로 놀다가, 물을 길어 화장실 지붕에 물을 뿌렸다. 우두동에서는 자양강에 가서 여자들이 키로 물을 뿌렸다. 우두산 솟을뫼에는 사람의 뼈를 묻어 비를 기원했다. 삼한골 신선바위와 용화산 주전자바위에서는 개를 잡아 피를 뿌렸다. 이 외에도 곳곳에서 마을별로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전한다.
이처럼 춘천에서는 용을 달래는 화해형(和解型), 용을 혼내는 대항형(對抗型), 용에게 비 내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유도형(誘導型)이 모두 행해졌다.
춘천 기우제의 전통은 민속놀이로 만들어져서 강원도민속예술축제에 두 번이나 출품했다. 전통을 살려 유교식 제의와 무당의 굿을 가미했다. 신용연 가에서 비를 비는 간절함을 마당놀이로 이었다.
<용을 움직인 간절한 농부의 마음>
“맑은 음식과 술을 따르고 향을 사르고 슬프게 신명께 고하며, 정성을 다하여 엄숙하게 기원하나이다.”
이현석 부사의 기우제문 일부이다. 기우제는 하지가 지나도 비가 오지 않아 농사를 짓지 못할 때, 비를 관장하는 용신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용신을 달래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을까.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심은 곡식이 땡볕에 타들어 갈 때 심정은 농부가 아니면 모른다. 하지가 지나면 곡식을 심어도 여물지 않으니 추수가 안 된다. 농사를 그르치면 온 고을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 그 고통을 알기에 농부들은 용신께 비를 빌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