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맛 / 조영안
카톡이 울렸다. 초등학교 단체톡이다. 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같은 마을에서 자란 친구가 며느리를 맞는다는 청첩장이다. 슬픈 일이 있거나, 반갑고 기쁜 소식이 있으면 운영진에게서 바로 연락이 온다. 먼 곳에 산다는 이유로 거의 통장으로 마음을 전할 때가 많다. 그래도 이해해 주는 친구들이 참 고맙다.
코흘리개 시절에 만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한 친구들도 있고, 일부는 객지로 나가 공부하기도 했다. 뻗어 있는 한 골짜기 이곳저곳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직사각으로 접은 하얀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달고 입학했다. 사방 사업으로 민둥산에 나무를 심거나 학교 확장공사로 돌멩이를 주워 나르기도 했다. 그때 그 친구들이 반백이 넘은 나이에 모임을 만들어 여행도 가면서 정을 쌓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동해안에 여행을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곳이라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내 고향은 경남 함안이다. 특이하게 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학교가 있는 골짜기 위쪽에 꽤 유명한 오곡 광산이 있었다. 지금은 창원에 있던 39사단이 이전해 있다. 덕분에 작은 면 소재지가 제법 활기를 되찾아 시끌벅적하다. 한 번씩 갈 때마다 변하는 고향의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나마 내가 태어난 마을은 변함이 없고 어릴 적 추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옛집을 지키고 계신다. 꽃과 나무 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작은 정원도 예쁘게 꾸며 놓았다. 뒷산에는 여러 종류의 과실수도 심어 매번 친정 나들이의 풍성한 먹거리가 되어 준다.
나는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시집 왔다. 그 소식을 들은 고모와 작은아버지의 걱정이 태산이었다. 전라도로 가서 어떻게 살 거냐며 한마디씩 걱정했다. 사실 나도 두려움이 커 내키지 않았지만 함께 살 남편만 믿고 의지하리라 마음먹었다. 막상 살아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똑같았다. 흔히들 말하는 지역감정 같은 건 전혀 느껴보지 못했다. 오히려 경상도 말을 하는 내게 호감을 갖고 대하는 이도 많았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전라도 아줌마’로 살고 있다.
이사 온 첫날부터 전라도 김치가 나를 감동케 했다. "아, 김치만 먹고 살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경상도 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서서히 자연스럽게 전라도 여자로 물들어 가고 있다. 시어머니의 택호는 호랑이 조샌떡(댁)이다. 어떤 분은 사나운 시어머니 밑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호랑이 조샌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어머니와 남편이 설명해줬다. 5대조 할아버지는 힘이 장사에다 기골이 장대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마을 근처로 내려왔다.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와 냄비를 두드리고 난리가 났다. 할아버지는 호랑이와 결투를 벌였고 마침내 호랑이가 먼저 도망갔다. 그 이후부터 ‘호랑이 조샌’ 집이라고 불렸단다. 어느 봄 사월 초파일에 아들을 업고 어머니와 절에 갔다. 할머니들이 “호랑이 새끼 보러 가자.”며 우르르 몰려온 적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호랑이 집'이라는 택호가 은근히 좋아졌다. 읍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호랑이 조샌집' 며느리라면 거의 다 알아주기 때문이다.
전라도로 와서 산 지도 벌써 27년째다. 제일 만족스러운 건 역시 풍족한 먹거리와 맛있는 음식이다. 내가 자랐던 경상도에 비하면 바다도 가깝고 들과 산에서 나는 갖가지 재료들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그래도 가끔 친정엄마가 해 주던 음식이 생각난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들깨탕이다. 마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가 맷돌에 생들깨를 갈아 끓이는데 물고동 알맹이와 갖가지 버섯을 넣는다. 걸쭉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아버지가 직접 잡아서 만든 붕어찜과 추어탕도 있다. 엄마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뚝딱 만들어 낸다. 전라도에도 추어탕이 있지만 그것만은 엄마가 만든 게 훨씬 맛있다. 자연산 미꾸라지를 호박잎으로 깨끗이 씻은 다음 갈아서 걸쭉하게 국물을 만든다. 거기에 적당한 우거지와 갖은 야채를 넣고 아궁이 속 불씨에다 재피(산초나무과
열매)를 즉석에서 볶는다. 싹싹 비비면 쉽게 가루가 되는데 추어탕에는 빠지지 않는 향신료다. 붕어찜은 무랑 함께 졸이는데 겨울에 차게 먹으면 더 맛있다. 큰 그릇에 몽땅 만들어서 마루에 놓아 두고 끼니 때마다 찾는데 전라도에 와서 그 맛을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
가죽 나물과 재피잎 장아찌는 엄마의 특별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나도 배워서 해 봤지만 그 맛과는 달랐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맛이 있다. 추수가 끝나면 마을 앞 마당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큰 가마솥에는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삶아진다. 적당히 익은 고기는 수육으로 건져내고 그 육수에다 우거지와 야채를 넣고 푹 끓여 내는데 지금 이 순간, 생각만으로도 침이 꿀꺽 넘어갈 정도다. 가끔 생각이 나서 그 방식대로 끓여 봤지만 그때의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다. 엄마의 솜씨를 다시는 느낄 수 없기에 고향의 맛은 더 그립다.
친정에 가려면 섬진강 대교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뉜다. 갈 때마다 잠깐잠깐 느껴지는 감정은 묘하다. 전라도와 경상도 중에 어디가 살기 좋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많다. 주저 없이 전라도라고 한다. 아직도 경상도 억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때는 싸우냐고 할 정도다. 동창회에 가면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쓴다고 박수를 치며 웃는다. 지금의 나는 분명 전라도 사람이다. 친정이나 타지에 갔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행복하다. 고속도로를 달려 톨게이트에 접어들면서부터 마음은 평온해진다. 시내불빛만 봐도 고향 같은 아늑함에 빠져든다. 나는 고향을 버리고 잊은 게 아니라 새로운 내 안식처 속에서 살아간다. 이제는 전라도 사람으로.
첫댓글 밤에 음식 이야기 읽으면 안 되겠어요. 배고파요. 자야겠죠.
죄송해요.
저는 글 올리면서 배 고팠답니다. 하하
흐흐, 저도 황선생님 말에 백배 공감하는 중요. 맛깔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또 배고픈 분이 한 분 계시는군요. 하하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풍족한 먹을거리와 맛있는 음식에 공감하며 글 읽었습니다.
그러네요.
날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보니 고향의 맛도 그립더군요.
@글향기 호호호. 아무래도 그렇죠. 선생님 언제 한번 뵙고 싶네요. 목포도 맛있는 게 많아요.
@심지현 목포에 작은집이 있어 한번은 가야 할 것 같아요.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하하
@글향기 목포에 집이 있으세요?
@심지현 ㅎㅎㅎ
작은댁(시작은어머니)예요.
@글향기 아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읽어주셔서요.
경상도 함안댁이셨군요.
거기에도 재피(우리는 잰피라고 했습니다.)를 넣어 먹는 게 신선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네.
함안댁이랍니다.
토지에서도 나오죠. 어릴적부터 먹던 제피를 여기와서도 먹어 좋았답니다. 겉절이나 열무김치에 넣어도 샹큼하니 좋더군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왠지 더 정이 가고 뿌듯합니다.
지금은 전라도 사람 다 됐습니다. 하하
함안댁, 글 잘 읽었습니다 .
톨게이트에 접어들면서부터 마음은 평온해진다니 전라도 사람 다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