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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여유로운 가정은 달러저축을 하며 학비를 준비한다.
반면 언제 나는 저런 통장 한번 가져볼까 고개를 이리저리 젖는 부모들도 많다.
돈 없고 4자녀를 둔 가정에서 유학을 보내려면 부모의 대단한 각오와 희생이 필요하다.
그런데 각오만으로 될까? 부모의 결단만으로 절대 자녀의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할 수 없다.
이 글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뉴욕에서 대학 전반전을 끝낸 기특한 아들(아들 자랑해도 할 수 없다)이야기로 흙수저 자녀들에게 도전을 주고 싶어 적는다.
나의 장남은 미국대학은 합격한 후, 2017년 6월에 페낭의 달랏국제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바로 1년 Gap year 기간을 가졌다.
졸업한 모교에서 보조 선생으로 바쁘고 결근하는 선생을 대신해서 초중고 수학 ,과학 ,운동부 코치를 했다.
대학합격을 했지만 돈 없는 부모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국대사관에 은행잔고를 보여줄 능력도 학비도 전혀 없었다.
대학교측에서 약 4년 60% 장학금을 준다고 했지만 학비 40%와 생활비 마련을 할수 없어 이 아빠는 페낭을 떠나 몇해를 가족들에게 헌신하기로 하고
옛날 젊은 시절 경험한 오사카와 서울을 오가며 막일을 했었다. 굉장히 굴욕적인 삶이었다.
오늘은 내 이야기가 아니다.
뉴욕으로 가던 날
자녀에 대한 꿈 많은 아빠가 마련한 생활비 약 250만원을 바꿔 쥐어준 100달러짜리는 터무니 없이 얇았지만
아빠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만은 두텁고 묵직했다. "또 보내줄게 "
집세도 따로 주지않고 세계최대 도시인 맨해턴, 고작 19년 삶의 경험을 가지고 아이가 혼자 겪어내야할 막막함이 나의 모든 감정을 찔렀다
학교는 중심가, 엠파이어빌딩이 보이고 돈이 가장 많은 은행들과 월스트리트가 있는 곳이다.
식생활은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도 했다.
이 말은 하고 보냈다 .
"바나나와 계란은 어디서나 싸니까 알지"
기숙사가 있어도 보내지 못했다. 너무 비싸니까.
원래 학교 방침은 1학년은 공부를 따라 잡느라 무조건 기숙이 의무가 되어 있있다.
그도 그럴것이 학교의 이상한 학풍은 1년을 마칠때면 학생 중 10%는 무조건 학점미달로 퇴학조치를 시킨다.
그리고 2학년때도 똑같이 짐을 싸게하고 정말 공부할 아이들만 약80%만 남게 만든다.
그 학교의 이름은 쿠퍼유니온이다.
이 학교의 전설 중에, 911테러 때 무역센타가 무너져 내리고 5층 이상의 빌딩 모두 대피령이 내려졌을 때 조차도 학생들을 저층으로 내려보내 공부시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처음 뉴욕에 갈때에 이 학교 아이 선배들을 수소문해 외부에서 통학은 어떤지, 파트타임은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선배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학교에서는 1학년때 통학이 거의 불가능하고 자기는 공부만 열심히해도 GPA3.3 이였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다.
실제로, 만점학점 4.0에서 전체 평균이 3.0이하로 만드는,공부 많이 시키는 대학 미국 TOP 10에 이 학교 이름이 있었다.
숙소문제는 학교측 양해를 구하고 멀리 한 시간 떨어진 퀸즈라는 곳이 첫 정착촌이 되었다.
나이 60정도 되어 보이는 삼촌이라 부르는 아저씨 홀로 운영 하는 홈스테이였다.
작은 1인용 침대 하나에 600달러,4인1실의 조건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밤 삼촌이란 주인은 방이 없어 거실에서 자는것을 보고 "만약에 거실에서 먹고자면 얼마인가요"? 하고 물었고
그렇게 100달러를 깎고 모든 사람이 지나다니는 거실에서 먹고살고 지하철로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그 삼촌하고 친하게 되어 항상 식사도 같이 하고 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2년 뒤 아들의 귀국길에는 나에게 비싼 비타민을 보낼 정도로 감사했고 홈스테이비용이 늦으면 아무 불평없이 기다려주었다.
또 그가 입던 청바지며 윗옷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여름나라 살면서 겨울옷을 많이 준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빨리 뉴욕으로 돌아오라고 하던 분이 코로나19 때문인지 급사를 했다는 비보를 작년말에 듣게 되었다.
아들의 2년 거실 생활도 몰랐던 내가 두번째로 놀랐던것은 1학년 1학기 마치고한 질문이었다.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아들에게 묻기를
"뉴욕 어디를 가봤니"
돌아온 답은 학교와 도서관, 교회가 전부였다.
미국학생들의 인기 1순위대학은 하버드가 아닌 NYU 라 하는 뉴욕대학이다. 아들 학교와 담도 없이 붙어 있다.
NYU는 운동장도 없지만 뉴욕의 중심부 화려한 맨해튼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연세대가 학생들 1순위 로망인 이유가 학교로 둘러싸인 젊음과 불빛이 있는 신촌이 있기 때문인 것과 같다.
아들의 전공은 화학공학이고, 부전공은 컴퓨터공학이다. 한번은 1학년 중간고사에서 수학이 C가 나왔다.
그 아이의 고교 4년은 올 A였다 당연히 전체1등 상을 받았고 B도 없었던 아이가 C라는 충격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 이야기를 들은 그 당시에 나도 1학년 마치고 잘릴까봐 노심초사했다. 나는 그 아이가 수학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많이 보며
살아왔다. 학교수학이 너무 쉬워서 재미없다고 자주 말했고 실제로 시험 때 수학공부를 한것을 본적이 없었다.
학부모 면담에서 수학선생은 "미스터 김의 아이들은 수학에 문제가 전혀 없어요" 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알고보니 C학점을 받은 이유가 담당 교수가 자기가 가르친 방법으로 안 풀고 다른 방식으로 한 문제를 풀었고 답은 맞았다고해서 일종의 괘심죄로
그런 초라한 점수를 주었다. (알고보니 이 학교의 특징이 수학이 강하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 뒤에 수학을 어떻게 공부 했는지 나는 모르지만 아들은 기말에 만점을 받아 10개정도의 과목에서 유일한 B가 되었다.
2학년 때는 이 아이의 성적을 인정 받아 기계공학을 알고 싶어 공학석사과정의 학생들하고 수업도 했고 그 과목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 학점대로면 석사과정을 패스하고 2년 대학 생활후 박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교수들이 키워주겠다고 제의를 해오고 있다.
물론 기업체 인턴제의 제1순위 학생이다.
학교 생활 일년 뒤부터는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졌다.
학교 장학금 60%이외에도 학교배구대표 선수장학금, 외부 장학금 2개를 합쳐져 처음보다 아빠인 나를 많이 해방시켜 주었다.
운동과 공부는 절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12학년 때 주장으로 참가한 홍콩아시아국제학교배구 시합에서 다리뼈가 완전 두 동강난 초대형 사고가 있었다.
약 몇주간의 병원생활에서도 수업을 안듣고 시험 치고도 최고점으로 과목상을 전교 학생들 중 가장 많이 받았다.
12학년 한 선생이 과목상 선정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말한것이 위의 내용이다
이 아이의 열정을 말하려면 내용이 제법 있지만 조금 더 이야기하면,
다리 기부스를 하면서도 육상부코치 역할을 했고, 그것을 풀고 약 한달뒤 대만에서 있는 육상대회를 위해 후배들을 훈련시켰다.
그 뒤 학교에서 비행기티켓을 사주어 따라갔는데 어쩌다가 3종목에 출전 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혼자 은메달2 동메달1개를 받아 달랏을 3등 시상대에 올려놓았고(교장 선생님이 그 해 체육인 시상식에서 말한 내용)
그 해 학교육상 MVP가 되었다. 이미 11학년 때 페낭고교체전에서 금은동 메달을 따내었고 전국체전 출전은 외국인이라 못했고 은메달리스트에게
출전권을 자동 양보했다.
어제도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 거실에 운동하러 나갔는데 오늘 하루 쉬어라고 하니
자기는 하루도 운동을 안하면 친구하고 약속 하기를 하루에 700달러를 그에게 주기로 했다고 한다. 자신이 약해지지 않게 하기위한 약속이고
실제로 말한 내용을 지키려는 아이디어이다.
그 약속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추워도 공원에서 땀을 흥건히 흘린다.
고교 졸업식 하루 전날 학교는 시상식을 한다.
일등은 당연히 공부성적을 전제로하고 그 학생을 총체적으로 평가를 한다.
일등을 전교생 앞에서 발표할 때는 이름 호명을 먼저 하지않고 선정이유를 먼저 이야기한다.
나는 내 아들이 호명될 것이란걸 기대했다.
시상에 앞서 이 이글상 대상자을 위한 선생들 모임에서 교장이 들은 이야기를 전교생 앞에서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 한번은 과목 시험을 치르고 한 아이가 선생을 향했다고 한다 . 그 이유는 선생이 틀린 2문제를 맞게했고 맞는 1개를 틀렸다고 바로 잡아 달라고 선생 책상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자기의 긴 선생 생활 중에 어떤 아이도 자기 손해 보는걸 가져 온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면서 수상의 한 이유를 말하였다.
그 수상소감은 2017년도 1등상으로 도서관 한부분에 깊이박힌 금색 뱃지 보다도 더 깊이 내 마음에 감사장으로 박혀있다.
아들에게서 받은 제일 큰 선물이기도하다.
아들의 미국경제생활은 인터넷 ZOOM 과외로 한시간당 40달러를 받고 지금은 시간이 많아 12명을 가르친다.
그 중에 선교사 자녀는 반값에, 30분은 덤으로 더 가르쳐주고 ,막내의 친구는 지금 공짜로 가르친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부터 학창생활 내내 장학금을 받았기에 적게나마 돌려주려는 실천이다.
살면서 가장 보기 좋은 장면은 막내 아들의 과외는 물론이고 연세대공대 4년 100%장학생들(다자녀장학금 절반 이상과 연세대에서 주는 장학금 합쳐 1년에 한사람 당 1450만원 정도 두 아이가 2900만원을 받고 있다. 네명의 장학금을 합하면 약 7천만원 가까운 돈을 받고 있다.)
둘째 아들 ,셋째 딸의 수학 화학도 직접 가르친다는 점이다.
아들이 과외하는 뉴요커교포 아이는 아빠가 서울공대박사 출신인데 그의 아들을 처음 만났을 때 GPA가 낮았다고 한다.
그 아이부모가 과외선생을 선발하는데 꼭 대학교 원서를 제출하는것 같이 내 아이의 내외부성적을 요구했고 ,그 아이는 2년전에 과외를 시작해서 이제 12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2년의 결과물은 SAT1600점 만점에 1590을 받았고 현재 명문대학에 원서를 내고도 AP수학 과외를 받고 있다.
그 과외의 열매라고 할까? 지금은 그 집 딸도 물론 가르쳐 주고 더불어 주변에 소개하고 있고 심지어 수업에 바빠서 못해도 그냥 월급식으로 과외비를 보낸다고 하고,
이 집 때문에 뉴욕에서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아빠가 자기논문 공동연구를 제의해 왔고 지금 그 아빠의 공학논문에 내 아들의 이름도 실려있다.
이러한 습관과 자세가 이제 뉴욕에서 홀로 버틸 수 있는 많은 자양분이 되었다.
대학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그러나 이룬 성과는 결코 적지 않다.
에너지 분야에 발명이론을 게재하며 미국발명협회에 2학년 때 이름을 올렸고 아들 대학 화학과선배인 토마스에디슨의 후배답게 쿠퍼발명 대회상(교수가 주목할 발명부분)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때 받은 과학상 2년연속 금메달의 성과가 대학1학년까지 이어진 것이다.그 당시에는 학교내 과학경진 대회가 있었고 그 당시 내 아이들 3명이 출전 전부 금메달을 받았고 첫째 둘째는 2년 연속 금메달을 받았다)
지금도 혼자 하는 에너지 관련 연구를 2개를 마무리 하고있고 학교교수의 조언을 받고 있다.
조만간 미국학회에 논문이 실리기를 기대해 본다.
군대휴학을 하고 지금도 몇시간째 책상에 있던 아이가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재밌다.
"어! 왜 엉덩이가 젖어있지"
한국말에 엉덩이에 땀나도록 한다는 이야기를 그 아이는 모른다
이 글은 미국도전을 하는 후배학생들이 도전 받으라고 쓴것이다.
미국 유학 75%정도 실패한다는 통계를 우리는 알고 있다.
흙수저 자녀들의 건승을 기도한다.
첫댓글 아... 대단합니다. 진짜 듬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