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애이블퓨전 의장 ‧ 이경수
2017년까지 십여 개에 불과하던 핵융합 스타트업이 2020년을 전후하여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24년 현재 세계 15개국에서 5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고 세계핵융합산업협회(FIA: Fusion Industry Association)는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퓨전스타트업의 창업 열기는 미국, 영국, 중국의 핵융합 상용화를 가속화하는 기반이 되고 일본과 독일도 여기에 동참하는 상황이다. 이에 핵융합 상용화 가속화 동향을 파악하고 한국의 정책 방향에 시사점을 제안한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핵융합 스타트업의 국가별 수는 미국이 25개로 가장 많으며 영국, 중국, 독일, 일본 각각 3개이며 전체 스타트업의 수는 45개 이상으로 파악된다. 우리나라도 2023년 말 ㈜인애이블퓨전의 창업을 시작으로 2024년 현재 2개 이상의 퓨전스타트업들이 창업 준비 단계에 들어가 있다. FIA는 2024년 현재 기준으로 스타트업이 5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잠재적 창업기업까지 포함한다면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림 1> 국가별 핵융합 스타트업 현황(FIA, 2024)
미국 핵융합 스타트업 붐과 정부의 가속 상용화 정책
핵융합 스타트업에 대한 그동안의 투자는 누적 금액으로 총 71억 달러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이 중 순수 민간 투자가 94% 이상이다. 핵융합에 대한 투자자는 소니, 토요타 같은 기존의 제조 대기업, 구글 등 빅테크로 불리는 IT기업, 정부의 국부펀드 등 다양하다. 핵융합 스타트업 중 가장 주목받는 기업을 꼽으라면 미국의 Commonwealth Fusion Systems(CFS)와 Helion Energy를 들 수 있다.
CFS는 2018년 MIT의 Plasma Science and Fusion Center(PSFC)의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하였다. 주요한 투자유치 실적은 2018년 5천만 달러의 초기 자금을 조달한 후, 2019년에 빌 게이츠 등으로부터 총 1억 1,5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하였고, 2021년 토카막형 실증로 건설과 운영을 위해 테마섹 홀딩스, 구글, 빌 게이츠, Eni 등으로부터 18억 달러의 시리즈B 펀딩을 확보하여 보스턴 근교에 실증플랜트를 건설 중이다.
Helion Energy는 2013년 창업하여 2021년 chatGPT의 아버지라 불리는 샘 올트먼이 투자한 회사로 2022년 마이크로소프트와 핵융합발전으로 2030년 이전에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2024년 다보스포럼에서 AI의 발전을 위해서는 “핵융합에너지 개발이 필수적”이라는 발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한 샘 올트먼은 현재 Helion 이사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핵융합 스타트업 붐의 발원지이자 가장 많은 스타트업의 창업에 고무된 미국 정부는 핵융합 상용화 정책 방향을 민관 협업(Public-Private Partnership; PPP)에 의한 상용화로 화답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 방향은 2022년 3월 백악관에서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담대한 10년 비전(Bold Decadal Vision for Commercial Fusion Energy)”를 발표로 확정되었고, 이후 미국 정부는 민간 주도의 핵융합 가속 상용화에 더욱 적극적인 정책과 투자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2040년 선도적 핵융합 상용화 선언과 녹색 산업혁명 계획의 공격적 이행
미국이 핵융합 스타트업에 의하여 정책이 견인되었다면 영국은 2020년 녹색 산업혁명 계획에서 핵융합에너지를 2040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공공 주도-민간 참여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영국의 상용화 방안은 정부 주도로 200억 파운드를 투자하여 STEP(Spherical Tokamak for Energy Production) 핵융합발전소를 2040년까지 건설‧운영한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2022년 대규모 석탄발전소 부지였던 영국 중부의 West Burton 지역을 STEP 건설 용지로 선정하고 용지정리 및 토목공사에 착수하였으며, 2023년 STEP 건설을 위한 특수목적 법인으로 UKIFS(UK Industrial Fusion Solutions)을 설립하여 주요 경영진을 영입하였다. 또한 영국 정부와 의회는 STEP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핵융합 시설의 인허가를 원자력 규제에서 제외하고, 첨단 가속기 건설에 요구되는 수준의 안전 법체계를 법제화하는 등 모든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 중이다.
<그림 2> 핵융합 스타트업의 발전전망 (FIA, 2024)
시사점과 정부의 정책 방향: 첨단 제조 국가로서 공급망의 적극적인 활용과 상용화 가속화 방안 추진
한국은 건설 당시 국제적으로 목표 달성에 회의적이던 KSTAR의 완공에 성공하고 2007년 첫 시도에서 최초 플라즈마를 달성하여, 핵융합 장치 건설에 필요한 기술력을 세계에 입증하였다. 이는 ITER 관련 진공 용기 최초 납품과 더불어 열 차폐체, 초전도체, 조립 장비, 전력 설비 등의 조달을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수억 불 규모의 ITER 타 회원국의 조달품까지 수주하는 등의 실적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한국은 이러한 기술력과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된 퓨전스타트업의 공급망을 책임질 첨단 제조 국가로 역량을 적극 활용할 기회이다. 2023년 FIA에서 퓨전스타트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하여 조사한 “The Voice of a New Industry”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20여 개 회사 중, 2개의 스타트업만 핵융합 설비를 직접 운영할 계획이라고 응답했고, 7개 기업은 기술 라이센스만 실시할 예정이며 13개 기업은 라이센스와 운영을 혼용할 계획이라고 답하였다. 이러한 점은 스타트업들이 기술 개발‧혁신 및 설계에는 능할지라도 실제 설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역량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세계적 첨단 제조 국가로서 기술력과 제조 경쟁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세계적 핵융합에너지 개발의 패러다임 변화와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ITER 회원국들의 정부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주재로 제20차 국가 핵융합위원회를 열어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을 심의·의결하였다. 전략에서는 핵융합에너지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총 1조 2,000억 원 규모의 정부 추가 투자를 바탕으로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민간과 협력해 핵융합에너지 산업화 기반을 구축하고, 대학의 핵융합 전공과 과목 신설·확대 등을 통해 전문 인력 확보·양성을 추진한다고 발표하였다. 특히, 민간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핵융합 산업화 기반을 구축하고 핵융합 기술에 대한 민간의 관심을 높이며 기술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민간기업, 대학, 출연(연) 등으로 구성된 ‘핵융합 혁신포럼’을 출범시키고, 대형 연구인프라 구축 등을 계기로 민간 기업에 대한 내수시장 활성화와 핵융합 관련 민간의 스타트업 창업과 시장의 조기 안착을 지원하기 위한 ‘K-Fusion Startup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러한 공공기술의 민간 확산과 상용화 등을 지원하는 전담 기관 지정·운영을 통해 기술 산업화를 촉진하고, 나아가 국내 핵융합 기업에 대한 세계시장 진출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1995년 당시 최대 규모의 국책사업으로 KSTAR 프로젝트 시작하고, 2006년 세계 7대 과학기술 강국이 참여하여 경쟁과 협력의 장이 된 ITER 프로젝트에 기술적 리더로 참여하는 등 그간의 “중간진입전략”의 성공적 수행을 바탕으로, 이제는 연구개발을 넘어 20여 년이 남은 “탄소중립 2050” 목표 달성과 국가 핵융합 기본계획 착수 50주년이 되는 2045년 이전에 핵융합 상용화를 세계 최초로 달성하기 위해 핵융합에너지 상용화 사업을 공격적으로 이행해야 할 때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
미국 텍사스주립대 물리학 박사
(전)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
(전) ITER국제기구 사무부총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