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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상여
-포은 문화제에서 -
박 명 순
청홍색 옷을 입은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흰 무명옷을 입고 짚신을 신은 서른 두 명의 상여꾼은 어깨에 두른 무명끈을 단단히 조여 매며
먼 길 떠날 차비를 한다. 건실한 젊은이들은 선채꾼인 요량자비의 신호에 따라 상여가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박자를 맞추어 가며 좌우로 발을 바꾸어 놓았다.
푸른 천의 상여 지붕이 바람에 펄럭인다. 현대의 콘크리트 건물과 상여의 행렬이 부조화를 이루며
낯설게 느껴졌다. 검은 옷을 입은 가족들과 그들을 태운 장례식버스가 슬픔을 참으며 거리를 지나
장지로 떠나는 것이 보편화 된 요즈음 오늘의 행렬은 수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용마루에 서있는 선채꾼의 소리가 구성지게 울려 퍼졌다. 병조판서격인 군관이 감독하고 한성판윤
(현재의 서울시장)의 청홍색 관복이 바람에 펄럭인다. 수많은 만장의 행렬이 휘날리며 길게 이어졌다.
어허 어하 ~ 어허 어하 ~
햇볕은 따갑게 내려앉았다. 상주들은 짚신을 신고 머리는 새끼줄로 묶고 지팡이를 든 채 연신 곡을
하며 뒤 따랐다. 상여 지붕에는 용의 형태와 날고 있는 닭의 붉은 술이 커다랗게 돋보였다.
남색과 붉은 색은 혼례식 때 뿐 만아니라 천당으로 가는 마지막 죽음의 길에도 똑같이 쓰여 졌다.
함을 짊어진 젊은이와 상여를 멘 젊은이가 공존하는 그래서 우리의 삶을 마감하는 길은 아름다운지
모른다.
탈을 쓰고 칼을 든 망나니가 선두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잡기를 물리치고 혹은
갑자기 나타나는 산적들을 막으며 부정 타는 요인들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다.
어허 어하 ~ 인생이 한번 죽어지면
어허 어하 ~ 물이나니 불이나나
공수래공수거 빈손지나
상여 앞에는 잘도 모시네 어허 어하 ~
여보시오 아 님네들 어허 어하 어허 어하 ~
어소가소 어허 ~ 잘도 모시네 어허 어하 ~
아명사신 해당화와 잘도 오시네
아서야 마라 봄이 오면 아니 필려나
아 ~ 우리네 인생이 한번지면 다시 오기가 어려우네
어허 어하 ~ 어허 어하 ~
옛날에 상민들은 가족이 죽으면 만장은 고사하고 상여를 사용하지도 못하였다. 시신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지게에 얹어 산에 묻었다. 그만큼 양반과 상민을 가려 차별하였다. 죽음 뒤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마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신분의 계층은 비천함과 양반을 갈라놓았다.
상여 뒤로 농악대가 꽹가리를 치며 활기차게 걸어간다.
어허 누구의 영인데 떠나간다.
이제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하 어허 어하
잘도 모신다. 잘도 모시네
천하의 일색 양귀비도 인물이나
죽어 가면 무엇 하나
천하장사 섭섭이도 재산은 많으나
죽었구요.
혼을 불러서 초혼을 하지
이제가면 언제 오나 다시 오기가 어렵구나
어허 어하 어허 어하 ~
회심곡에 내용을 덧붙여 구슬프게 한가락을 읊었다. 시의회 앞에서 노잣돈을 받으려고 멈추었으나
아무도 여비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상여 밑으로 나오기도 하고
앞에서 달음질치며 남보다 먼저 멋진 장면을 사진기에 담기도 한다. 큰 배낭을 멘 그들의 행렬은
상여 행렬에 못지않았다. 오렌지색의 <포은 문화제>라는 깃발이 상여 옆을 따라간다. 길가에는
인산인해를 이룬 구경꾼들로 발을 디딜 틈이 없다.
공원에 이르자 행렬은 잠깐 쉬었다. 풍악패들이 쓴 모자위의 종이꽃들이 공원 안에 꽃밭을 이루었다.
노란머리로 염색을 한 총각들이 청홍의 의관을 입고 각색의 만장을 든 모습은 흥미롭게 보여진다.
상여를 멘 총각들은 항공대학교 학생들인데 인터넷에 올려서 뽑았다고 한다. 그런데 뽑은 후에
부모들의 항의가 심해서 곤욕을 치루었다고 한다. 아직 장가도 가지 않았는데 무슨 상여를 메고
다니느냐고 어른들이 화를 내어 나름대로 고초가 있었다는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총각들은 더위에 지친 표정이었지만 흥미로운 듯 그래도 진지하게 거리를 활보했다. 그들이 죽음의
상여에 대하여 얼마큼 이해하며 느낌을 알고 있을까. 그냥 상여와 만장이라는 어휘를 느꼈을 뿐이며
지금쯤은 더위에 시달리며 후회할지도 모른다.
수지를 거쳐 능묘로 갔다. 나는 다행이 마이크를 실은 선두 행사차에 탔기때문에 조수석에 앉아
편안히 갈수 있었다. 또 다시 구슬픈 선창이 울려 퍼졌다.
어허 어하 ~
햇빛은 점점 따갑게 내려앉고 젊은이들이 메고 있는 상여는 이제 지쳐서인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청년들의 어깨에 멘 끈이 자꾸 미끄러져 내리고 뒤틀린 걸음
때문에 발걸음을 반듯하게 옮겨놓지를 못했다. 선창하는 이의 훈령이 세차게 들린다. 얼마나 힘들고
무거울까. 그래도 젊은이들의 혈기가 아니면 긴 시간 상여의 행렬은 버티지 못하였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각색의 휘장이 너울거리며 위엄을 보였다.
어허 어하 적삼은 내어서 손에 쥐고
혼을 내어서 초흔을 하니 일집사가 일집사라
한손에 철봉을 들고 누구의 영인데
지체를 하나 어허 어하 ~
한발 한발 떠나간다.
북방산천 떠날 제에 우리 부모님 얼굴이 보여
못가겠네 어허 어하 어허 어하 ~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서러워 마라
내년 삼월 봄이 오면 다시 피건마는
우리 인생 한번가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어허 어하 어허 어하 ~
배 곺은 사람 공덕을 주었으나
목마른 사람 물을 주었느냐 어허 어하 ~
포은문화제 주체인 오늘의 행렬에서 취타대는 학생들과 선생님이고 기수는 군인아저씨, 집내관은
부원장이 맡고 장군은 이규호 이시장이며 양쪽에 영귀가 가고 그 뒤로 당산탈을 쓰고 춤을 추며 간다.
만장 서시가 2개이며 금전은전을 든 망나니가 있고 은섬과 풀섬을 멘 농부들 그리고 영어(작은상여)가
그 뒤를 따른다. 만장기는 백여 개가 물결치듯 따랐다.
다리를 건너 상여가 멈칫거린다.
마지막 가는 길에 노잣돈 내주소. 어허 어하 ~
어하 어허 우리 종손은 어디를 갔는가 어허 어하 ~
금전투전은 오다만 들었다. 돈 나온다. 노비가 나온다.
여기가 누구의 위 터인가 어허 어하 ~
종친들이 나와서 노잣돈이 든 봉투를 건네었다.
포은문화제는 옛날의 장례문화와 상여를 그대로 재현한 정몽주를 기념하는 축제였다. 제례를
지내는 의식에는 종친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노인들과 남녀 어른들이 다소곳이 뒤를 따른다.
오늘의 제례의식은 주최가 용인 문화원이며 포은문화제 추진위원회와 영일 정씨 포은공파
중약원에서 참여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오십여 명의 여성 농악대는 흰 옷에 청홍색 띠를 두르고
구슬픈 가락으로 피리를 불며 장구소리와 함께 작은 산을 휘몰아친다.
또 다른 기념공연 및 행사마차 굿과 상산제를 시작했다. 검은 예복에 붉은 모자와 청포를 입은
남자 무당이 제전 앞에서 제를 올리며 굿을 올린다. 붉은 패랭이 모자를 쓰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여러 동작이 반복되었다. 제단 옆에는 장구와 사물놀이 네 명이 앉아 풍악을 울렸다.
촛불을 켰다. 하얀 버선을 신은 발걸음이 가볍게 옮겨지며 꿇어앉아서 두 손으로 빌고 절을 했다.
남자 무당 옆에는 네 명의 무녀가 시중을 들며 함께 제를 올렸다. 무당은 큰칼을 받아들고 칼을
정중하게 모셨으며 다음동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옥천대사 삼형제를 하명 받아 포은선생을 무녀들이
빌고 빌며 / 4월은 상달이라 이래로 만백성이 편하실 제
대한민국 만만세 받들어서/ 만만세 받들어서~
오늘은 장군님 하혜 받으면서 쉬~ 쉬이이 ~
원을 돌때마다 의상이 활짝 펴지며 바람에 실린다. 큰칼을 모든 음식에 얹었다 내려놓았다.
무당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무당은 재빨리 붉고 푸른 고깔모자와 청홍의 도포자락으로
갈아입고 마치 도령처럼 차림새를 했다. 방울과 부채가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추고 무당은
박자에 맞추어 겅중겅중 뛰기도 하며 맴을 돈다.
에 ~ 하혜 받으소서 천지도술 ~ 예
우리 신장님이 울는지 신장님이 어찌 그냥 가겠소
은산에 가서는 은을 캐고 금산에 가서는 금을 캐고
길게 못 노시고 덩기덩 덩덩 더덩덩덩 덩덩
무당은 금박이 찬란하게 수놓은 장군 복으로 갈아입고 투구를 쓰고 무대위에서 작두를 들었다.
작두위에 흰 천을 대니 그대로 두 동강이 났다. 날카로운 작두의 날이 무당의 혀를 가르고 지나갔다.
소름이 끼쳤다. 피한방울 나지 않는 묘기를 보였다. 반복하여 혀를 자르는 작두, 혼신을 다하여
기를 고르며 그는 신기를 받는 것 같았다. 그에게서 번득이는 신기가 느껴진다. 무녀들이 계속
두 손 모아 빌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하여 주소서. 조용히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그들의 기도와 다름없었다.
그의 염원은 악귀를 쫒고 혼신을 다하여 무거운 작두로 혀와 입술을 자르고 팔을 자른다.
상처하나 나지 않는 그가 신기했다. 다음은 탑을 싸놓은 곳을 향하여 버선발로 올라간다. 흰 천을
깔고 발을 씻고 층계에 놓인 작두를 쌓아놓아 만든 층계를 순식간에 맨발로 올라갔다. 제단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칼 위를 하나하나 오른다. 기가 흩어지면 어떻게 될까. 가장 높은 제단 끝의
항아리 위에 놓인 작두를 타기 전에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를 했다. 부채춤을 추고 청홍
깃발을 자르고 잠시 작두 위에서 춤을 춘다.
숨을 죽인 듯 긴장감이 흐르는 장내는 조용했고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복자루를 받아가소 ~
갑자기 작은 흰 천에 쌓인 복주머니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나리고 순식간에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주변을 시끄럽게 했다.
이제 굿판과 제는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산 아래로 내려간다. 순식간에 무대는
어수선하게 비어있고 썰렁했다. 4월의 바람이 서늘하게 불었다.
첫댓글 눈에 보이는것처럼 너무 상세하게 묘사를 해주셨네요 박회장님 덕분에 앉아서 귀한 구경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