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넷째주
소식
본격적으로 완연한 더위가 시작되고 녹음은 더욱 짙어지는 한주였습니다. 낮에는 여름처럼 뜨겁다가도 밤이
되면 갑작스럽게 찬바람이 불기도 합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만물이 자라나는 봄의 한 가운데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한껏 자라나 강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생각해 봅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많아지고 종종 거리에서 미사를 만나는 분들이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로 동참해 주시는 분들도 많아지는 5월의 넷째주 (23일~28일) 강정현장미사 현황입입니다.
23일은
예수회와 광주 까리타스회에서 24일은 예수회와 성가소비녀회에서 함께 했습니다. 25일
월요일에는 대전교구신부님들이 오셔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26일에는 강정현장팀이 미사를 진행하였고, 27일에는 면형의집과 김기량성당, 골롬반회에서
함께 해 주셨습니다. 28일에는 광양성당에서 미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미사에는 위민크로스디엠지 행사에 참석했던 여성들이 강정에 와
미사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청소년들의 방문으로 북적북적
강정을 찾는 청소년들이 무척 많았던 한주였는데요. 이들은 마을 곳곳을 청소하거나 마을
여기저기 직접 벽화를 그리는 등 특유의 활기찬 모습으로 마을을 더욱 빛나게 해 줬습니다.
개구럼비 마르쉐 성공리에 첫 시장
열려 24일 강정천 옆 묏부리에서 개구럼비 마르쉐가
열렸습니다. 제주 각지에서 만들어진 특색있는 먹거리, 핸드메이드 상품등이 판매되었습니다. 문화운동으로서 강정과 연대하기 위해 열린 이번 마켓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 북적북적 했습니다. 매달 넷째주 일요일에 열린다고 하니 시간을 내어 참여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용감한 여성들의 강정
방문
분단70년 한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위민크로스디엠지(Women Cross DMZ)가 19일 베이징을
출발해 평양에 머문 후 15개국 30명의 여성들이 DMZ를 넘어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 행사에 참여한 여성들 중 7명이 26일 강정에
왔습니다. 이들은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마을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간담회에서 강정마을에서 매일 진행되는 미사와 인간띠 잇기 비폭력
평화운동에 매우 감명 받았다고 수차례 이야기 하면서 끝까지 포지하지 말자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떠나는 날인 28일에는 하귤나무를 평화센터 앞에
심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나는 하귤나무처럼 평화로 나아가는 연대의 끝을 놓지 말고 잘 키워 나가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강정마을
미사천막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는 등불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희생자아이들의 초상화와 그들의 이야기가 강정의 밤을
매일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한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5월 25일 4시미사 김유정 신부님 강론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의
자비가 강정 해군기지와 군 관사 건설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있으시기를 빕니다. 또한 이 무자비한 기지와 군 관사 건설 과정에서 파괴되고
오염되고 상처 입은 아름다운 바다와 땅과 온 자연과 선량하고 양심적인 시민 여러분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가톨릭교회는 최근에 무척 중요한 날들을 기념했습니다. 바로 어제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냈고 그제는
1980년 엘살바도르에서 군사독재에 항거하다가 미사 도중 총격으로 돌아가신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님께서 복자로 시복되셨습니다.
1977년에 대주교님이 되실 때에만 해도 군사정권에서 환영할
만큼 로메로 대주교님은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해 침묵하시는 조용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군부 독재의 탄압으로 숨져가는 이들이 과격주의자가 아니라
자신의 동료 사제라는 것을, 자신의 형제들인 민중이라는 것을 목격하시고 반독재 운동에 함께 하시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독재 정권에 의한 인권 침해를
고발하셨고 1980년 3월 24일 미사 중 성찬 기도를 바치시다가, 괴한에 의해 피살되셨습니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대주교님의 죽음과 자신들이
무관하다고 발뺌하다가 29년 만인 2009년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성찬 기도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하는 순간의 기도입니다. 대주교님은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도록 기도하시다가 자신의 피를 우리를 위해,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 미사에서
강론 중에 하신 로메로 복자님의 마지막 말씀은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통렬한 비판의 목소리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주님의 몸으로 변하고, 이 성작 안에서는 포도주가 구원의 대가인 피로 변화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님, 인간을 위하여 희생 제물로
바쳐진 이 몸과 피가 저희에게 양식이 되고, 저희 또한 저희의 몸과 피를 고통 받는 이에게 나눠주게 하소서. 그리스도 당신처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중의 정의와 평화를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하도록 해 주소서.”(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소리, 211쪽)
로메로 대주교님은 네 개의 중요한 사목서한을 남기셨는데 그 중
두 번째 사목서한인,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제목의 서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일과 예수께서 수행하시던 일을 역사 속에서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만이 교회는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소리,
49쪽)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수행하시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그가 사랑 앞에서 회개하여 그 마음과 삶이 하느님께로 향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자 청년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묻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청년은 무척이나 급한 듯 달려와서
인사말이고 뭐고 다 생략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선 죄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인간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 세상 어디에서나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도덕 질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 말씀들이 왜 이렇게 과격하게 들리는 것일까요?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횡령이 너무나 비일비재하고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힘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이 계명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부자 청년은 오늘날 우리나라를,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을 상징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때만 되면
종교행사에 달려가서 기도하는 사진을 찍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누리는 것을 더 많이 누리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는 말씀은 전혀 실천할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이들의 것을 팔아 자신이 더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늘날 권력자들은 이 부자청년만 못합니다. 힘 있는
이들의 성추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횡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을 도배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두 달 전 강정마을에 왔다가 군사기지 건설 현장에서 해군에서 걸어 놓은 플래카드의 문구를 보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필승해군! 정예해군! 우리 바다를 넘보는 자! 그 누구도 용서치 않는다!” 너무나 멋있고 든든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미국을 향해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누가 우리의 제주 앞바다를 넘보고 있습니까? 누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천혜의 자연에 군사 기지를 원하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이 플래카드 한쪽에는 “천안함 피격사건 5주기”라는
말이 씌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거짓 증언을 하지 마십시오. 유리한 대로 믿지 말고, 진실을 믿으십시오. 거짓의 증인이 되지 말고 진실의 증인이
되십시오. 우리의 아름다운 바다가 해군 기지 건설로, 천안함 참사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죽음과 거짓과 의혹으로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바다가 진실을 알고 있고 이 바다를 만드신 분께서 진실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을 두려워하십시오.
오늘 1독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이들에게는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
인내심을 잃어버린 자들을 위로하신다. 주님께 돌아오고 죄악을 버려라...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라... 또 너는 그분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을 혐오하여라.”
그분께서 역겨워하시는 것은
죽음과 거짓과 억압과 폭력입니다. 3년 전 구럼비 발파 이후 지속된 오염은 연산호 꽃밭이던 강정의 바다 속을 콘크리트로 오염시켰습니다. 항의하는
활동가들을 연행하며 “예비병력 다 데려다 놓고 안 되면 쏴버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행정대집행으로 4.3으로
인해 상처 입은 제주에 또 다시 억압과 폭력의 역사를 새겼습니다. 주민 동의 없이는 관사를 짓지 않겠다던 약속은 처음부터 진정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부디 지금이라도 회개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께 돌아오고 불의에서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잠시 머물고 지나가는 자리에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의 삶에 영향을 끼칠 파괴와 죽음의 자국들을 남기지 맙시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을 당신의 특별한 피조물인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를 파괴하거나 불모지로 만들어 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누가 그 놀라운 바다 세계를 생명과 빛깔을 잃어버린 수중
묘지로 바꾸어 놓았습니까?’... 우리는 모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작지만 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사는 이
나약한 세상과 사람들을 보살피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215-216항)
비슷한 맥락에서 복자 로메로 대주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평화적입니다. 그러나 수동적이지
않습니다.”(네 번째 사목서한 중, 목소리 없는 사람들의 소리, 179쪽)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애호하며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은 단순한 평화주의자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싸우고 투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전쟁보다 평화를 선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갑작스럽고 난폭한 폭력적인
변혁은 기만적이며, 그 자체로 비효율적이며, 인간 존엄과 합치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179쪽)
우리는 로메로 복자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이 불의한, 기만과 폭력의 공사에 대해 끝까지 평화적으로
항의하고 투쟁하겠습니다.
로메로 대주교님께서 군인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맺겠습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에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한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의 이름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대들에게 요구합니다. 그대들에게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그대 아직
갈망하는가, 269-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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