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사슴공원에서]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사슴공원에서 고영민
공원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어디까지가 여름이고 어디부터가 가을일까 누가 벗어놓은 신발을 돌려놓았다 오늘 나는 아주 먼 곳에 있다 그리고 당신의 얼굴은 침엽수처럼 무표정하다 젊은 어느 날의 책속처럼 지금도 사슴공원 어딘 가에선 사랑이 생기고 비가 내리고 멀리 빈 들판엔 철새가 돌아온다 누가 구름을 사라지게 하고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나 투명 비닐봉지에 금붕어를 담아 들고 한 소년이 급히 어딘가로 달려간다 공원에 잇닿아 있는 장례식장 마당에서 어느 가족이 늦은 상복을 갈아입고 있다 사슴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도 서둘러 당신에게 가야 한다 사랑이 식기 전에 밥이 식기 전에 ※ 녹명(鹿鳴) -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사슴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
거웃 고영민
산 밑 언저리가 검게 그을려 있다 밭둑에 잠깐 풀어놓은 불이 산으로 도망치려 했던 흔적이다
밭주인은 생솔가지를 꺾어 불을 얼마나 두들겨 팼을까 벌떡이던 심장, 꼬리 끝까지 참 말끔하게도 죽였다
누가 목줄을 당기던 바람을 보았다 했나 타다 만 발자국이 아직 마른 숲 쪽을 향해 있다
극치 고영민
개미가 흙을 물어와 하루 종일 둑방을 쌓는 것 금낭화가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 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 길게 몇 번을 우는 것 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 늙은 소나무 밑에 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 노랗게 쌓여 있는 것 마당에 한 무리 잠자리 떼가 몰려와 어디에 앉지도 않고 빙빙 바지랑대 주위를 도는 것 저녁 논물에 산이 들어와 앉는 것 늙은 어머니가 묵정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것 어스름녘, 고개 마루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우체부가 밭둑을 질러 우리 집 쪽으로 걸어오는 것
손등 고영민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어떤 미동微動으로 꽃은 피었느니 곡진하게 피었다 졌느니 꽃은 당신이 쥐고 있다 놓아버린 모든 것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마음이 불러 둥근 알뿌리를 인 채 듣는 저녁 빗소리
독경 고영민
저 꽃이 모두 져 내리면 오리라 벌과 나비를 물리고 향기를 물리고 들뜬 마음을 추슬러 나뭇가지에 가만히 푸른 잎을 매달때쯤 오리라 긴 날을 지나 더 아득한 허공을 골라 아픈 몸으로 오리라
우리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 저녁 나무는 꽃 위에 짙은 노을을 풀어 새로 기왓장을 굽고 흙을 이겨 붉은 지붕을 엮는다
마침내 기다렸던 이가 온다 잎에 가려진 가지 사이를 거닐며 잘 익은 과실을 따 입에 가져갈 때면 그게 꽃이었다고 말할 겨를도 없이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잎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꽃이 빨리 졌으면, 벌과 나비를, 향기를 물렸으면, 꽃을 뭉개며 나무 한 그루가 환한 면벽을 풀고 엎드린 집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서 있다가 어둠 속으로 간다
마흔 고영민
아내가 고구마를 삶아 놓고 나갔락으로 여러번 찔러본 흔적이 있다 나도 너를 저렇게 찔러본 적이 있지 잘 익었나, 몇 번이고 깊숙이 찔러본 적이 있지 뜨거운 손을 바꿔 잡다가 괜한 내 귓불을 잡은 적이 있지 후후, 베어물고 입속에서 여러번 굴려본 적이 있지 벗겨 먹은 적이 있지 목이 메어 가슴을 두드리고 벌컥벌컥, 찬물을 들이켜고는 망연자실 내려다본 적이 있지
구례 산동 고영민
서둘러 가는 것들은 얼마나 망설이다 떠나는가 꽃은 노랗고 열매는 붉은 빛 걸음이 처져 걸음이 처져 뻐꾹새 운다 고욤나무 가지에 앉아 꽃이, 꽃이 핀 풍경을 돌아다봤다
꽃이 안보일 때까지
흰죽 고영민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 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 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
말갛게 밥물이 퍼진, 간장 한 종지를 곁들여 내온 흰죽 한 그릇
늙은 어머니가 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가스레인지 앞에 오래 서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부어 저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물을 부어주는, 좀 더 퍼지게 할까 쌀알이 투명해졌으니 이제 그만 불을 끌까 오직 그런 생각만 하면서 죽만 내려다보며 죽만 생각하며 끓인
호로록, 숟가락 끝으로 간장을 떠 죽 위에 쓰윽, 그림을 그리며 먹는
물금 고영민
수문 벽에 물금 몇개 그어져 있다
물은 저 벽에 철썩 철썩 주먹을 내지르고 깨진 주먹으로 수면을 붉게 물들이곤 했을 것이다 흔들리고 부딪치다 되돌아간 자리 찰랑찰랑 목 끝까지 숨이 차올랐던,
미세하게 달라진 숨결 지금은 물오리가 떠 있는, 암컷 잠자리가 꼬리를 담그고 힘겹게 산란을 하는 자리
영영 떠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돌멩이를 매달아 가라앉힌 물의 자루들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거듭 물을 재우며 차오른 수위
부레와 지느러미 그 아래 층층 희미한 물금들
천장 고영민
나는 저 위층의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누구인지 안다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니 흰 발바닥이 보인다
내가 딛고 사는 이 바닥의 아래층에도 나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 살고 있어 가만히 위를 올려다보며 쿵쾅거리는 나를 떠올릴까
거 참, 조용히 합시다
문득, 황급히 어딘가를 뛰어가다가도 발걸음을 죽이게 되는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바닥 밑의 누군가가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평평한 저녁에
감꽃 고영민
딸아이가 마당 한 구석 감나무 밑에 모락모락 한 무더기 가래똥을 싸놓고 밑을 닦아달라 아빠를 부른다 휴지를 몇 토막 끊어가 하늘로 추켜올린 밑을 닦는데, 휴지에 똥이 묻어나지 않는다 다시 밑끔을 훑어도 그 바닥이 깨끗하다 뒤끝 좋다는 것이 이런 거다 고스란히 문을 열었다 닫앗다 얼굴 붉힐 필요도 없다 맺고 끊는 것이다 똑, 한 가지에서 한 꼭지가 절로 떨어졌다
통증 고영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달 혹은 일년 아니면 몇십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통을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번 수백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 가고 어느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간장 고영민
간장 달이는 냄새가 배어 있는 밤입니다 누가 컴컴한 독에서 담가뒀던 메주를 건져냅니다 떠있는 붉은 고추와 숯을 건져냅니다
어둠을 밀어내며 아궁이 앞에 홀로 앉아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끓는 거품을 걷어내는 이는 누구입니까 베 보자기에 간장을 걸러내는 이는 누구입니까
간장에 살짝 새끼손가락을 담갔다가 빨아 먹어봅니다 두번 세번 빨아 먹어도 간장은 짜고 씁니다 달여 식힌 간장을 다시 새 독에 붓습니다
간장 빛은 아직 간장 빛이 아닙니다 그 빛깔만큼 어둠도 아직 온전한 어둠이 아닙니다 어둠이 어느 가장자리에서부터 어둠이 될 때, 간장은 어떤 안간힘으로 칠흑의 어둠을 다 긁어모아 비로소 잘 익은 한 독의 간장입니다
동행 고영민
길가에 돌멩이 하나를 골라 발로 차면서 왔다 멀리 차놓고 다가가 다시 멀리 차면서 왔다 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 집에 당도하여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니 그 돌멩이 모난 눈으로 나를 말끔히 쳐다본다 영문도 모른 채 내 발에 채여 끌려온 돌멩이 하나 책임 못질 돌멩이를 집 앞까지 데려왔다
민물 고영민
민물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약간 미지근한 물살이 세지 않은 입이 둥근 물고기가 모여 사는
어탕집 평상 위에 할머니 넷이 나앉아 소리나게 웃는다 어디서 오는 걸까, 저 민물의 웃음은 꼬박 육칠십 년, 합치면 이백 년을 족히 넘게 이 강 여울에 살았을 법한
강 건너 호두나무 숲이 바람에 일렁인다 긴 지느러미의 물풀처럼
어탕이 끓는 동안 깜박 잠이 든 세살 딸애가 자면서 웃는다 오후의 볕이 기우는 사이, 어디를 갔다 오느냐 이제 막 민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아이야
그림자 고영민
개에 붙어 있는 그림자가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그림자를 향해 짖는다
소에 붙어 있는 그림자를 몰고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그림자가 집으로 간다
미루나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린다 소에 붙어 잇는 그림자와 사람에게 붙어 있는 그림자가 미루나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난다
낮은 함석집 그림자 속으로 소와 사람의 그림자가 들어간다
점점 길어진다, 그림자가 그림자의 등을 밟고 그림자가 지나간다 그림자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죽인다 그리마가 그림자를 위로한다 .♣. ================= ■ 시인의 말
내 발등 위에 한살 난 딸애의 발을 올려놓고 걸음마를 시킨다 앞으로 걷게 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뒤로 걸음을 옮긴다 뒷걸음질을 친다 앞으로 내게 남은 일은 오직 뒷걸음질뿐이다
2012년 늦가을 열일대에서 고 영 민
[ 발 문 ] - 형상과 전형 윤 성 학
아침에 보던 그 맑은 햇살과 당신의 고웁던 참사랑이 푸른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스며들던 날이 언제일까(…)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해놓고 말은 한마디도 못한 것은 당신의 그 모습이 깨어질까봐 슬픈 눈동자로 바라만 보았소 (…)낙엽이 지고 또 눈이 쌓이면 아름답던 사랑 돌아오리라 언제 보아도 변함없는 나의 고운 사랑 그대로를 -‘해바라기’의 노래「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중에서
형, 과거의 한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을까. 나는 이따금 생각해본다. 얼마 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다가 스물한살 적의 하루를 떠올렸다. 그날 그 자리, 오월의 어느 더웠던 날, 스물세살의 형이 살던 집 마당. 그날 테니스를 쳤던가 우린? 마당 수돗가에 와서 번갈아 서로의 등에 물을 끼얹어주고 엎드려뻗쳐를 한 자세에서 한 손으로는 얼굴에 쏟아져내리는 물을 푸룹푸룹 닦아냈겠지. 목물을 하고 우리 둘은 웃통을 벗은 채 마루 끝에 앉아서 쨍그랑 깨질 것 같던 오월의 하늘을 바라보았지. 마당가엔 맨드라미가 피어 있었다. 체온과 기온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아서 내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잊은 채 아무 말 없이 먼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지금의 형은 그때의 형을 알고 있었을까. 오늘 우리의 모습이 이러할 것을 그때의 우리는 짐작했을까. 지난날의 어느 한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난 그날의 그 마루 끝에 앉아서 환하게 소멸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형이 잘 부르던, 그래서 같이 자주 불렀던 해바라기의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지.
발, 쾅 반도 유혈사태
고영민은 나의 스무살 적 친구이자 형입니다. 학력고사 삼수를 하고 들어와서, 고3에서 곧장 입학한 나보다 세 살이 많은 같은 학과 동기생입니다. 1학년 2학기 시절에 한숨 돌리며 대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려던 차에 학교 근처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우리가 여태 붙어다니고 있으니 그 세월이 20년이 넘었군요. 최근에 고영민을 만난 사람들은 그를 점잖고, 예의바른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 여학생을 제외하고 문창과 동기들 중에 고영민한테 얻어터진 적이 없는 사람은 겨우 한둘에 불과할 겁니다. 김종렬(아동문학가), 백정승(소설가), 김종광(소설가)등도 다 그의 주먹이 스쳐간 인사들이죠. 그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던 기영이형 정도가 무사했을 뿐. 그러면서 그는 “야, 근데 원펀치로 붙으니까 안영민(동기)이 자식 주먹이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금 나더라”하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나도 그 주먹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주먹은 피했는데 발차기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병장 제대하고 3학년으로 복학한 1995년 초봄. 그날 몇 차례 술집 기행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한우리’라는 술집이었습니다. 선후배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틈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으니 아니나 다를까, 고영민이 선배(나이는 동갑이었음)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영민이 나한테 “야, 윤성학. 내가 껍데기야? 내가 껍데기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 말에 더 화가 났는지 갑자기 나에게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덩달아 왜 그러냐고 대거리를 했는데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닙니까. 순발력이 좋은 나는 그 주먹을 가볍게 피했고 고영민은 중심을 잃은 채 쓰러졌습니다. 그러더니 “너 나와, 이 새끼야”하고 나를 밖으로 끌고 갔습니다. 밖으로 나가자 갑자기 날아차기로 내 가슴팍을 차는 겁니다. 와락 달려들어 한판 붙으려다가 나는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왜 그래, 왜 때리냐고…… 내가 껍데기냐고, 내가 껍데기냐고, 고영민도 더는 나를 때리지 못하고 우리는 부등켜안고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초봄의 땅은 질척질척했고, 나는 그날따라 새하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고영민의 발자국은 쾅, 아주 또렷하게 가슴에 찍혀버렸던 것이었습니다.
무규칙 이종격투 시 창작 배틀(Battle) 관전기
고영민은 그렇게 격투기와 소설을 전공했고, 나는 스케치 시 쓰기(‘형상사유 연습’이라는 말 기억나?)로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그는 어느 대학에서 주최하는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된 적이 한번, 나는 문예지 신인상 시 부문 최종심에 올라간 적이 한번, 그밖에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빈손으로 우리는 학교를 떠났습니다. 1997년부터 서울에서 넥타이를 매고 매일 이렇다 할 것 없이 2호선 순환선을 타고 돌았습니다. 나는 대방동으로, 그는 역삼동 시절을 거쳐 서교동 시대로 “아침부터 저녁입니다.” 2001년 2월 17일 그가 ‘눈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이메일의 첫 문장입니다. 메일에는 「눈 오는 날」이라는 시 한편이 동봉되어 있었는데
눈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보다 더 먼 곳에서 온다
빈 그네만이 걸려 있는 고향에서 온다
고 적혀 있군요. 졸업한 지 4년 만에 보낸 메일은, 소설만 써온 그를 생각했을 때 낯설디낯선 시 한편이었습니다. 회사 근처에 부산오뎅집이 있는데 오뎅과 정종 맛이 괜찮으니 먹으러 오라면서 말이죠.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오뎅에 정종을 마셨을 테고, 봄 여름 가을이 지나 그해 겨울 나는 신춘문예에 당선됐습니다. 이듬해인 2002년 3월 22일 그에게서 온 11번째 메일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군요. 메일 제목은 ‘집 생각 난다’였습니다. “일은 안 되고 괜히 시골집 생각이 나서 끄적거린다”라며 한 줄을 적고 「향수」라는 시 한편을 붙여놓았군요.
부모한테 맞을 때는 빨리 달아나는 것이 효도란다 나는 왜 그 열 살에서 서른다섯이 넘도록 마당 한가운데 이렇게 맞고만 서 있는가.
단숨에 읽어내리는데 콧날이 새큰한 것이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솜씨가 좋았습니다. 나는 ‘어이, 좀 쓰는데’라는 제목으로 답장을 보냈더랬지요. 이어 4월 10일「몰입沒入」이라는 시가 배달되어왔는데 나는 속으로 ‘어, 어, 이 선수 이러다 일내지’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시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사실 소설을 준비해오던 그는 며칠 수 문학사상 신인상 공모에 단편소설 두 편을 응모하면서, 망설이다 망설이다 결국 시도 함께 응모했습니다. 5월 중순께 문학사상에서 덜컥, 연락이 왔답니다. “고영민 씨, 축하합니다. 당선되셨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근데 소설인가요, 시인가요?” “네, 소설도 응모하셨어요?” 고영민이 그렇게 등단하고 나서 말하기를 “어이, 좀 쓰는데”라는 말이 자신에게는 힘이 됐고 시를 좀 더 써도 된다는 씨그널로 생각됐다고 합디다. 나는 겸연쩍게 웃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매일 시를 써서, 어느 날은 두 편, 세 편을 써서 서로에게 이메일로 보내며 ‘무규칙 이종격투 시창작 배틀’을 벌였습니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이 좋았고 그에게 시를 보내는 것이 좋았습니다. 우리가 등단한 2002년에 나는 250편을 썼고 고영민도 300편 가까이 썼으니 고영민과 나의 배틀이 어떠했는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 배틀은 2008년까지 7년가량 계속되었고 발밑엔 연필가루 수북이 쌓였습니다. 8월에 그가 새 직장을 얻어 포항으로 내려가면서, 또 내가 회사에서 과장 직급이 되어 바쁘게 굴러가면서 배틀은 자연스럽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 2차전, 각자 자신과의 배틀을 하게 된 것이죠.
어느 날 그가 “포항에 내려와 처음 써보는 시다. 시 한편 불러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라면서「일가一家」라는 시로 포항 시절의 막을 올리더군요.
아침나절 물가로 나갔던 거위들이 줄서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지 나는 조용히 그걸 바라보고 있지 어김없이 울타리를 돌아 풀이 우거진 돌배나무 곁을 지나 말뚝을 지나 저녁의 어두운 마당을 지나 왔던 길 그대로 인색하게, 아주 인색하게 왔던 길 그대로 바깥에서 안으로, 안으로 어디에도 한눈팔지 않고 고스란히
엉덩이를 흔들며 한 발 한 발 거위 속으로 들어가는 一家
저녁이 온다 그래서 울어야겠다니, 나 참
한참 만에 엉뚱하게도 경남 함양이라는 낯선 곳에서 고영민과 다시 만났습니다. 올해 여름의 끝, 그가 지리산문학상을 받는 자리에 온다 간다 말없이 찾아갔더랬지요. 수상작은「반음계」.
새소리가 높다
당신이 그리운 오후, 꾸다 만 꿈처럼 홀로 남겨진 오후가 아득하다 잊는 것도 사랑일까
잡은 두 뼘 가물치를 돌려보낸다 당신이 구름이 되었다는 소식 몇 짐이나 될까 물비린내 나는 저 구름의 눈시울은
바람을 타고 오는 수동밭 끝물 참외 향기가 안쓰럽다
하늘에서 우수수 새가 떨어진다
저녁이 온다 울어야겠다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그는 “지리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드는 것 같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품에 들듯이……”라고 말하며 목이 메었습니다. 그는 어머니 아버지를 말할 때 매번 울고, 매양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눈물이 나려는 걸 감추기 위해 공연히 마른 코를 들이마시더군요. 지저분하게 말입니다. 그날은 지리산이 다 젖도록 비가 내렸고 늦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이번 고영민의 시집은 아마도 서산 출생, 안성에서 공부, 장호원에서 군생활, 서울에서 직장, 다시 포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마흔다섯 먹은 ‘소’의 붉은 눈시울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다지도 눈물이 많았으면서, 그렇게 마음이 여린 주제에 스물몇살 시절 친구들을 왜 그리 때렸나, 나를 왜 발로 찼나. 12남매 중 막내 고영민은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보다 먼저 간 넷째 형, 그리고 늙으신 어머니를 몸에 들이고 딱 그만큼의 시를 몸 밖으로 꺼내놓습니다. 그러고는 눈을 껌뻑입니다. 그의 여자, 그의 몸에서 나온 두 딸과 함께 “자면서 그대가 나에게 다리를 올려놓는 시간 내가 이불을 당겨 그대의/배를 덮어주는 시간”(「공전」)이 갖는 우주적 연민을 그는 알고 있나봅니다. 인류의 역사를 놓고 볼 때 모래알 하나가 다른 모래알과 부딪쳐 생긴 생채기만큼도 보잘 것 없는 “저녁 밥상을 물린 뒤, 우리는 고요해졌다 형은 바닥에 눕고 누나는 벽에 기대었다 어머니는 다림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간장 간을 맞출 때는 생계란을 띄워보면 안단다”(「저녁 밥상을 물린 뒤」)하시는 이런 풍경이 그에게 가서 시의 옷을 입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공연히 나도 “소가 바람을 등지고 울면 큰비가 온다”, “승수네 굴뚝 연기가/자꾸만 옆으로 돌아눕는구나”(「호미」)하시는 어머니 말씀에 귀가 얇아집니다. 지난 10월에 부산에 내려갈 일이 있어 혹 시간이 나면 영일만의 영민을 만나 소주나 한잔 할까 연락을 넣었더니, 강원도 인제 큰형님 집에 계시던 어머니가 포항에 몇주 내려와 계시다가 다시 인제로 가신다며 모셔다드린다 하던군요. 갑자기 나도 어머니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어머니는 왜, 내 몸에 눈물 많은 소를 매놓았을까/옷소매가 젖도록/훌쩍훌쩍, 매운 연기를 훔치던/슬픈 굴뚝을 박아놓았을까”(「호미」)라고.
형, 예전에 합정역에서 후기형이랑 셋이서 술 마실 때 후기형이 내게 말했지. 야, 성학아, 애 하나 더 낳아야지 인마. 커봐라. 혼자는 외롭다. 그래서 내가 형한테 물었지. 형12남매지? 외로워, 안 외로워? 형의 답은 ‘외로워’였다. 후기형, 봤지? 하나나 열둘이나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니깐.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형의 외로움은, “형이 다시 저 길로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다시 저 길로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죽은 아들을 살려 떠메고/함께 웃으면서 왔으면 좋겠다”(「마중」)는, 내가 아직은 문장으로 쓸 수 없는 외로움인가보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외롭다는 말을 쓰지 않을 거다. 딸아이랑 같이 베어진 나무의 나이테도 헤아려보고(「새」), 두 아이가 토마토를 ‘도마도’라고 따라 부르니(「도마도」) 시가 참 맛있다. 딸이 둘이고 시집이 두 권이니 이번 새 시집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군. 아까워서 어찌 시집보내나.
지나온 시간 중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하나만 더 보태야겠다. 형이 강원도 인제 어론리 큰형님 집에 가 있던 내 스물두 살의 겨울. 연락도 안하고 무작정 서울을 떠나 더듬더듬 어론리를 찾아갔었지.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던 오후 무렵에 그 집 앞에 나는 도착했었다. 멀리서 보니 형은 안이 들여다보이는 창가, 볕이 잘 드는 곳에 의자를 놓고 앉아 들여다보이는 창가, 볕이 잘 드는 곳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지. 아마 전상국의 소설이었을걸. 나는 눈이 가득 쌓인 앞마당을 천천히 걸어가 유리문 앞에 서서 형의 책에 닿고 있던 햇빛을 가로막아 섰다. 형은 갑자기 어두워진 영문을 알기 위해 고개를 천천히 들었고, 바로 앞 창 밖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빙긋 웃어주었다. 나도 웃었다. 그 순간으로 돌아다 눈사람이 되어 서서(히) 소멸할 수 있다면…… 그래서 오늘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그 웃음과 눈물들을 기억해냈다가 기억나지 않아서 갸우뚱하다가 말다가 한 것이 전부. 밤엔 서울에 올해 첫눈이 흩날렸다. 尹聖學|시인
◆ 표사의 글 ◆
“누가 목줄을 당기던 바람을 보았다 했나”(「거웃」). 시에 목숨 걸었다 말하는 사람들이여, 목은 이렇게 거는 거다. 아무도 모르게, 바람만이 알 듯 모르게. 눈물과 미소와 햇살과 사랑은 스미고 흐르는 것. 시 또한 떨림이 되어 가슴에 스미고 미소가 되어 가만 입가에 흘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꽃이 피고 지는 일은 꽃도 모르는 일, 시가 태어나고 시가 사라지는 일도 시인은 모르는 일. 피고 지는 순간, 다만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 꽃과 시와 시인의 책무. 책의 표지만 덮으면 도무지 너나 구별 없는 시단에서 고영민의 시는 ‘꽃 피는 형식’과 ‘똥 싸는 내용’을 간직한 채 홀로 도저하다. 그의 시는 두서없는 댓바람에 휘둘리지 않는다. “먹어둬!/이게 마지막일지 모르잖아”(「끼니」). 그의 시는 언제나 마지막 순간에 피어나며, 그가 “사랑이 식기 전에/밥이 식기 전에”(「사슴공원에서」) 닿고자 하는 시작詩作의 궁극엔 속 깊고 연약한 것들의 떨림과 그에 대한 연민이 가득하다. 그는 묵은 간장처럼 “어떤 안간힘으로/칠흑의 어둠을 다 긁어모아”(「간장」)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짭조름한 시의 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박후기 시인
▶고영민高榮敏 시인∥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문학사상』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악어』『공손한 손』이 있으며 ∙2012년 지리산 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순정과 연민을 녹인 따뜻하고 유쾌한 상상력
2002년『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부드러운 시정詩情 속에 유머와 해학이 어우러진 개성 있는 시세계를 펼쳐온 고영민 시인의 세번째 시집『사슴공원에서』가 출간되었다. 두번째 시집 『공손한 손』(창비 2009)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상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과 유쾌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농익은 감수성으로 삶의 풍경을 노래한다. 요즘 시단에서 흔한 엽기적인 상상력과 관념적인 언어유희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독특한 발상과 투명하고 명징한 언어의 두레박으로 일상에서 길어올린 소박한 시편들이 가슴속에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절실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고영민의 시는 순박하고 소탈하다. “12남매 중 막내”인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보다 먼저 간 넷째 형, 그리고 늙으신 어머니를 몸에 들이고 딱 그만큼의 시를 몸 밖으로 꺼내놓”(윤성학, 발문)는다.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는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는 특히 “병실에 누운 채 곡기를 끊으셨”다가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밥 한 그릇을 드시고 “다음날 돌아가”(「끼니」)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지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문득 내 살던 집의 팽나무가 보고 싶은 시간”(「공전」),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형을 마음속으로 불러내 애틋한 그리움에 젖는다. 형이 다시 저 길로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다시 저 길로 살아서 왔으면 좋겠다/죽은 아들을 살려 떠메고/함께 웃으면서 왔으면 좋겠다/봐라 아버지란 자고로 이런 거다, 너털웃음에 큰소리를 치며/시끄럽게 왔으면 좋겠다//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은 다시 살아서 온다/달큰한 아버지의 술냄새처럼/꽃들은 온다/비틀비틀 온다/산 절로 물 절로, 흥얼흥얼 고래고래/노래를 부르며 온다(「마중」 부분) 여전히 젊은 시인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어느덧 중년에 이른 덕분일까. 시인의 시는 기존의 풋풋한 서정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삶에 대한 성찰에서 오는 그윽한 깊이마저 더하게 되었다. 시인은 “어둠이 혼자서 성큼성큼 걸어오”(「저녁 밥상을 물린 뒤」)는 “뿌리 젖은,/이승의 저녁”(「한적한 흙」) 무렵, “당신을 땅에 묻고 와 내리 사흘 밤낮을” 자고 “일어나 반나절을 울고/다시 또 사흘 밤낮을 잤”(「망종(芒種)」)던 기억을 되새기며 애잔한 슬픔에 잠긴다. 자신을 일러 “눈물 많은 소”(「호미」)라고 말하는 시인은 “울고 싶을 때 울고”(「손등」),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는/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중얼거”(「오지」)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을 기어이 일상의 남루함 속에서 이끌어가야만 하는 우리네 인생, 그것이 슬픔과 고독을 불러온다는 것을 이제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그것들을 애써 부정하고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 듯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새와 나무와 꽃의 “몸을 빌려” 슬픔을 다독인다. 어젯밤에는 잠든 사이/양철지붕을 빌려/비가 한참을 울다 갔다/애가 울면 아내는/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젖을 꺼낸다//나는 여태껏/매미가 우는 줄 알았다/나무가 매미의 몸을 빌려 울고 있었다/울음이 다하면/얼른 다른 나무 그늘에 붙어/대신 또 몸으로/울어주고 있었다(「빌려 울다」 부분) 그는 딸의 이야기를 시에 종종 담는다. 그에게 있어 딸은 일상 속에서 문득 소박한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딸을 만나 그 시절을 함께한 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추억하는 계기가 되고, 생에의 슬픔과 고단함은 딸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푸릇푸릇한 희망으로 진화한다. 나아가 시인은 그러한 전환 속에서 자연과 세계에 대한 어떤 지순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민물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약간 미지근한/물살이 세지 않은/입이 둥근 물고기가 모여 사는//(…)//어탕이 끓는 동안/깜박 잠이 든 세살 딸애가/자면서 웃는다/오후의 볕이 기우는 사이,/어디를 갔다 오느냐/이제 막 민물의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아이야(「민물」 부분)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흰죽」)라고 말하는 시인의 소박한 심성은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버림받은 후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주인을 기다리”며 “끝끝내 버림받았다는 것을 믿지 않는/개”를 지켜보며 시인은 “모든 과오는 네가 아닌 나에게서/비롯되었다는”(「꼬리는 개를 흔들고」)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을 따듯한 연민의 정으로 어루만지며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마음 가는 대로/열이 되”(「수필」)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길가 돌멩이 하나를 골라/발로 차면서 왔다/저만치 차놓고 다가가 다시 멀리 차면서 왔다/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집에 당도하여/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니/그 돌멩이/모난 눈으로/나를 멀끔히 쳐다본다/영문도 모른 채 내 발에 차여/끌려온 돌멩이 하나/책임 못 질 돌멩이를/집 앞까지 데려왔다(「동행」전문) 무척이나 애틋한 연시聯詩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사슴공원에서』를 읽는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시인은 주변 대상을 연민하고 어루만지는 순정한 마음과,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고자 하는 소탈한 바람, 사랑하는 이들과 나눈 기억을 현재화하는 탁월한 감수성 등을 기반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그 속에 녹록지 않은 깊이를 간직한 연시들을 선보인다. 공원을 한바퀴 도는 동안/계절이 바뀌었다/어디까지가 여름이고 어디부터가 가을일까/(…)/젊은 어느날의 책 속처럼 지금도/사슴공원 어딘가에선/사랑이 생기고 비가 내리고/멀리 빈 들판엔 철새가 돌아온다/누가 구름을 사라지게 하고/비를 멈추게 할 수 있나/투명 비닐봉지에 금붕어를 담아 들고/한 소년이 급히 어딘가로/달려간다/(…)/사슴 울음소리를 들으며/나도 서둘러 당신에게 가야 한다/사랑이 식기 전에/밥이 식기 전에(「사슴공원에서」부분) 올해로 등단 10년째인 고영민 시인은 제7회 지리산문학상(2012)을 수상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시적 성취를 평가받으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고영민의 시만큼 서정시의 문법에 정통한 사례도 드물 것”(이영광 시인)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는”(손택수 시인) 깊은 성찰과 삶에 밀착된 섬세하고 농밀한 언어로 묵묵히 ‘공손한’ 시의 밭을 일구어나가는 그의 손길에서 전통 서정시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개미가 흙을 물어와/하루종일 둑방을 쌓는 것/금낭화 핀 마당가에 비스듬히 서보는 것/소가 제 자리의 띠풀을 모두 먹어/길게 몇번을 우는 것/작은 다락방에 쥐가 끓는 것/늙은 소나무 밑에/마른 솔잎이 층층 녹슨 머리핀처럼/노랗게 쌓여 있는 것/마당에 한 무리 잠자리떼가 몰려와/어디에 앉지도 않고 빙빙 바지랑대 주위를 도는 것/저녁 논물에 산이 들어와 앉는 것/늙은 어머니가 묵정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것/어스름녘,/고갯마루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우체부가 밭둑을 질러/우리 집 쪽으로/걸어오는 것(「극치」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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