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극 <레미제라블>
양태룡(중랑구청 평생학습관 전문강사)
발레극은 하수도에서 부상한 마리우스를 업은 장발장과 자베르 경감이 쫓고 쫓기는 현장감을 반영하듯 가쁜 호흡을 몰아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병든 미혼모 팡틴, 사생아를 두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구슬공장에서 쫓겨나 거리로 내몰린다. 그녀를 직장에서 내모는 동료 노동자들. 그들 또한 약자이면서 약자끼리의 연대는 찾아 볼 수 없다. 팡틴은 결국 거리의 여인으로 살다가 비참한 생활로 삶을 마감한다. 여관주인에게 맡겨진 팡틴의 어린 딸 코제트, 여관주인은 딸 에포닌의 생일파티에서 인형을 선물하고 성대하게 생일잔치를 벌이지만 코제트에 대한 학대는 가혹해지고 있다. 장발장은 돈을 주고 코제트를 구출하고 지극정성으로 돌봐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한다. 이제 코제트의 얼굴에 구김살은 없다. 아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이와 어른, 학대와 존중, 먹구름과 햇살을 묘사하고 있다.
행복에 겨운 시간이다. 장발장과 코제트 그리고 그 옆에 마리우스와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어린 시절 생일잔치를 연상하면 코제트와 에포닌의 위치가 바뀌었다. 이런 현실과는 무관하게 에포닌은 밝은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다.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에서 1832년 이전의 혁명은 기득권층간의 권력교체로 민중의 삶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해 6월 민중이 주체가 된 혁명에 착안하여 레미제라블을 썼다고 한다. 뮤지컬과 영화로 된 <레미제라블>은 봤지만 발레극<레미제라블>은 처음이다. 음악과 무용과 영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라 원작의 대강을 이해하지 않았다면 작품의 이해도가 낮아질 뻔 했다. 안무가 지우영 감독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모양이다. 무대의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기독교적 측면이면 ‘박애’의 상징이고 프랑스 혁명이면 ‘자유, 평등, 박애’. 이래저래 박애는 중첩된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사람들의 마음에 쓴 뿌리들이 녹아 화해와 용서, 사랑의 기적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장발장은 훔친 빵으로 혹독한 죄값을 치뤘다. 출소 후 먹을거리가 없어 다시 범죄를 저지렀지만 미리엘 주교의 용서와 화해로 장발장은 새사람이 되었다. 약자의 편에서 수양딸 코제트를 보살피고 혁명가 마리우스의 후견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계형 범죄에 철퇴를 가하고 정의라는 이름하에 자베르 경감은 끊임없이 약자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정직을 좋아하고 삿된 것을 싫어하는 것이 천하의 정서인데 正義가 사라지고 불공정과 부조리가 고착되었다. 인간의 존엄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情이란 무엇인가를 연상케 한다. 사람들이 끝없이 배워 지적수준은 높아졌지만 세상이 더욱 악화하는 것은 호리피해好利避害-이익은 좋아하고 손해는 피하는-의 자세에 있다. 대안으로 호선오악好善惡惡-선한 가치를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 빅토르 위고가 말한다. “법률과 관습이 있기에 사회적 처벌이 생기고 그로 인해 문명의 한 가운데 인공적인 지옥이 생겨나며 신이 만들어야 할 숙명이 인간이 만든 운명 때문에 헝클어지고 있다.”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만 다스리면 사람들은 그물망만 빠져나가면 부끄러움이 없다. 지금의 위정자들 모습이다. 하지만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리면 유치차격有恥且格 즉, 부끄러움도 있고 시민은 감동한다.
재미있는 것은 자베르 경감이 민중들에게 잡혀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장발장이 집요한 추적의 원한으로 죽일 수도 있지만 허공에 총을 쏘며 죽인 것처럼 위장하고 풀어준다. 관용일까 “내가 용서할 때 나는 잊었노라”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으로 가기 위한 민중의 항쟁은 계속되고 진압군의 무력 앞에서 민초는 그저 무기력한 존재다. 민중의 주검 앞에 한 소년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 혁명을 외치다 한 방의 총성과 함께 쓰러진다. 이렇듯 진압군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총질을 난사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자베르 경감도 다시 시작한다. 나름의 정의감과 법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도 하나의 인간이었다. 총에 맞은 마리우스를 발견한 장발장이 그를 업고 하수도로 피하다가 자베르 경감에게 발각되었다. 자베르는 흔들린다. 법정신과 연민 사이에서 고민하다 세느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마감한다.
작품 후반부에는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하는 장면을 부각시킨다. 창녀의 딸 코제트와 혁명활동가 마리우스, 작품에서는 장발장 보다 젊은 연인 둘을 앞세운 것이 인상적이다. 발레극이라 에너지 넘치는 춤과 정열을 내세우고 있다. 더하여 청춘 남녀의 사랑을 넘어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