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말씀]
요한복음 20:1,11-18; 8:3-11 / 마태복음 16:14 ; 20:20-21 / 마가복음 6:7 / 누가복음 7:36-50 ; 9:46; 22:24 ; 24:10
[외울 말씀]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 요 20:17b
[핵심 메시지]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재창조의 사역으로 성도들은 다시 창조되는(거듭남) 기쁨과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0:1, 11-18]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말씀나눔]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엇이 1922년 출간한 434줄의 시 ‘황무지’는 다소 난해한 시이지만 20세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시 중의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시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지요.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뿌리로 약간의 목숨을 남겨 주었습니다....
꽃이 피는 4월을 잔인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 세계 1차 대전의 상처로 인해서 사람들이 절망 상태에 빠져서 재건의 때가 왔지만 의욕을 잃어버리고 움직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쿠마에 무녀에 빗대어 비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쿠마에 무녀는 아폴로 신전에 사는 나이를 먹지 않는 사제로 이탈리아 나폴리 근처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지 쿠마에 지역에 살며 예지력과 아름다움으로 아폴론 신을 매혹시킨 무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쿠마에 무녀는 신에게 한 줌의 모래만큼 생명을 요구했지만, 그에 따른 젊음은 요청하지 않아서 몸이 쪼글어 들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를 통해서 차라리 겨울이 낫다고 봄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쿠마에 무녀에 빗대어, 그들의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새 싹의 생명조차도 거부하는 소망 없는 세상은 황무지와 같습니다.
엘리엇이 시를 출간한지 100년이 지난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우리들의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애써 일구었던 일터의 문을 닫는 사례도 볼 수 있고, 성도들이 떠난 교회 예배당을 목회자 부부만이 덩그러니 남아서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들도 일어납니다.
부활절!
그 어느 해보다 간절해야 하지만, 엘리엇의 시처럼 소망을 잃어버려 부활의 기대조차도없는 시대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우려스럽습니다. 얼어붙었던 땅에서 라일락 새싹이 돋듯이 우리의얼어붙어버린 마음에 부활의 소망이 자리함으로 다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축복합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는 향품을 준비하여 예수님의 무덤으로 갑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오후 3시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안식일이 시작되는 오후 6시 이전에 장례를 치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촉박했습니다. 그래서 정식 장례절차를 다 행하지 못하고 향품 가루만 시신에 뿌려 세마포로 감싸 두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미처 다 하지 못한 장례 절차를 안식일이 지나고 첫날 일찍 하려고 미리 향품을 준비하였다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이른 새벽에 예수님이 안치된 무덤으로 갑니다. 가면서도 예수님 무덤을 막고 있는큰 바위를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걱정하였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주어서 옮길 수 있으면 예수님의 몸을 향품으로 씻어내고 옮기지 못하면 무덤 앞에서 곡이라도 할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깜짝 놀란 막달라 마리아는 그 길로 제자들에게 정신없이 달려가서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다시 무덤으로 돌아왔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잃어버렸다 생각한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통곡을 하다가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흰옷을 입은 천사가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 묻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 옮겨 놓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하고 돌이켰는데 마리아 앞에 다른 누군가가 서 있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그 분이 예수님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묻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예수님이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연약한 여인이 어떻게 시신을 옮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의 시신을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기세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마리아야!”하고 다정하게 부르십니다.
그제야 마리아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었습니다. 그때야 울먹이는 목소리로 ‘라부니’라고 부릅니다!
죽은 시신을 찾고 있었는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와락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는데 예수님이 만류하시면서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선생이 되어 주시고, 친구가 되어 주시더니,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신 후로는 제자들을 형제로 불러 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으로 제자들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놀라운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여인들의 증언은 어린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증거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처음 보여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 중의 한 명으로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당시‘마리아’라는 이름은 매우 흔한 이름으로 한 때 우리나라의‘영희, 순희’와 같이 많이 불리는 이름이었습니다.
복음서에만 해도 마리아라는 이름이 5명이나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요한과 야고보의 모친(예수님의 이모)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모친(알패오의 아내) 마리아,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여인들과 다르게 이름 앞에 지명을 붙여서 부릅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에게만 지명을 붙여서 한정시켰을까요?
그만큼 예수님의 사역, 그리고 죽음과 부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리바다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로 생선을 소금에 절여서 유통하는 산업과 배를 만드는 산업이 발달한 산업 도시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곳 출신으로 적지 않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이 소개될 때는 그 중에 가장 먼저 호명되는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헤롯 안디바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인 요안나 보다 먼저 호명됩니다(눅24:10).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고침을받은 이후로 예수님을 따르며 자신의소유물로 예수님과가난한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1945년 발굴된 ‘나그함마디문서’에서는 예수가 가장 총애한 제자가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랐으며 예수님이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도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곁을 지켰으며, 부활의 순간 가장 먼저 예수님을 맞이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한때 막달라 마리아는누가복음 7장의 향유를 부은 동일시되기도 하고, 나사로의 누이 베다니의 마리아와 혼동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591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90~604년)는 설교를 통해서 막달라 마리아가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자’로 해석해 그녀를 ‘회개한 창녀’로 설교한 이후로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으로 오인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주님을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활하심을증언하는 첫 증인이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기쁨에 넘쳐서 제자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두려워서 문을 꼭 닫고 있었는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음을 깨닫지 못하고 부활의증인들의 증언을 듣고도 믿지 않음을 책망하십니다(마16:14).
믿음이 없음으로 책망 받은 제자들과는 다르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신실하게 변함없이 주님을 섬겼습니다.
다른 제자들처럼 권력욕이나명예욕에도 휩쓸리지 않았습니다(마20:20-21, 눅9:46; 22:24).
마리아는 묵묵히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제자였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부활을 묵묵히 증거 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매주 맞이하는 주일은 작은 부활절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기념하고 주님의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며 주님과 더 친밀하게만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그 소망이 우리 안에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죽은 자를추모하는 추도예배에 불과합니다.
날마다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주님을 담대히 증거 하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 눔]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마리아가 무덤에 도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1절)
무덤 안에서 마리아와 대화를 나눈 자들은 누구인가요?(12절)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마리아가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13절)과 진짜 알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요?(14절)
2.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기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마리아게 부탁하신 말씀은 무엇인가요?(17절)
3.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들에게 돌아가서 자신이 목격한 것을 증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활을 증언하는 마리아의 마음과 제자들의 반응, 마리아의 반응은 어떠했을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4.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나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된 여러분이 누구에게 찾아가 복음을 들려주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추천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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