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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정여화 ㅣ 방랑기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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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단단히 먹고 청계천 바닥으로 나온 지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꽃 피는 춘삼월에 나섰으니 개월 수로 3개월이지만 들은 건 개코나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뭐 영감님이 바빠 안 가르쳐 주었다는 건 아니고 뭘 묻지 않았으니 가르쳐 줄 리 없었다. 짱구는 나온 김에 한마디 구시렁댔다.
“청계천은 물이 맑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데 어째 물 한 방울 없으까?”
“그래서 시끄럽다.”
“뭐가요?”
“네놈은 학생들이 데모하고 경찰이 최루탄 쏘는 게 심심해서 그렇다 보느냐? 뭔가 잘못 됐기에 학생들이 일어나고 백성들이 가만있질 않는 게야. 손님이 없으니 내 금기를 깨고 한마디 해주마. 대전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조치원 쪽으로 가다보면 강이 하나 나타난다.”
“바로 부강(芙江)입니다.”
“그래, 부강이야. 부용같이 아름답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산을 부용산(芙蓉山)이라 부르다가 부산(芙山)이라 하였고 나중엔 부산(釜山)이 되었다. 지명으로 보면 부강은 충청북도에 속해 있다. 그런데 충청남도 서해 바다 쪽에 서산(西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맞은편에 있는 산이 맞산이다. 서산은 음이 와전 돼 상서롭다는 서산(瑞山)이 되었고, 맞산은 마산(馬山)이 된 게야.
지난 5월 3일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에 당선되자 여야가 격돌하는 모양새로 세상이 시끄러워졌어. 들리는 소문엔 야당 국회의원들이 모두 사표를 낼 것이라는데 소란스러운 것은 유신체제에 대한 불만과 부산과 마산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가열됐다는 거야. 그런데 기이하게도 부강의 물빛이 바뀌었다는 게야.”
사주쟁이 영감님 앞에는 어제 저녁 배달된 석간신문의 1979년 7월 3일이라는 날짜가 김치 국물을 벌겋게 뒤집어 쓴 채 너덜거렸다. 짱구 녀석의 고개가 끄덕이는 걸 보며 영감님의 뒷수쇄가 채워졌다.
“그렇다보니 전국 각지에서 데모가 일어나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경찰은 경찰대로 악전고투를 벌이는 게지. 모두 청계천 때문이야.”
“왜요, 영감님?”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자유당 시절, 우연히 청계천 복개공사를 한다는 기사를 읽은 내 친구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어. 청계천 복개공사는 단 한 사람의 군주만으론 불가능하다는 논지였어.”
영감님은 당시를 떠올리는지 지그시 눈 감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무하는 경무대는 좌향이 자좌오향(子坐午向)의 남향이고, 청계천 명당수는 신득수(申得水)의 진파(辰破)로 서(西)에서 나와 동으로 흘러간다. 주인이 있고 나그네가 있고 파가 있으니 삼합(三合)이다. 일을 시작하는 군주, 진행하는 군주, 마무리 하는 군주가 필요했다.
그러면 청계천을 덮는 복개공사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길목에 목조다리가 하나 있다. 다섯 간 길이라 예로부터 오간수교(五間水橋)라 불렀다. 풍수적으로 이곳은 명당수가 빠져나가는 파구(破口)다. 복개공사를 하면 이곳 명당수까지 덮게 돼 나라의 군대가 밖으로 나가는 일이 생기거든.”
그러나 지저분한 개천을 덮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 이것은 나라의 운명과 결부되었다.
“짱구야, 저 앞쪽으로 뵈는 길이 청계천이다. 본래 개천(開川)이라 한 것처럼 조선 왕조가 한양에 도읍할 때 홍수가 나면 침수되는 물난리를 수도 없이 겪었다. 평소에도 더러운 물이 차올라 태종이 개구 공사를 했는데 영조 때 가서야 준설공사가 이어졌다. 청계천을 덮어선 안 되는 이유가 뭐냐? 그건 ‘골수’ 때문이다!”
청계천의 물은 서쪽에서 생겨 동쪽으로 흘러가는 서출동류(西出東流)다. 북악산과 인왕산 · 남산 등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서로 합해 도성 가운데를 지나 중랑천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므로 조선이 건국될 때 무학대사는 경복궁 좌향을 동향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룡세에 있어 왼쪽으로 감아도는 용과 오른쪽으로 감아도는 용의 구별이 있으니 어느 좌향이건 지도(地道)에 따라 용을 향하는 것이 음양지리에 부합된다는 게 해좌사향(亥坐巳向) 이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은 예로부터 제왕들이 남쪽을 향해 다스렸다는 이유로 무학대사 청을 일축했다. 결국 궁궐이 정도전의 주장대로 세워지자 무학대사는 탄식했다.
“관악산을 안산으로 궁궐을 지으면 관악의 화기가 궁궐을 비춰 화재와 내우외환이 그치지 않으니 어찌 바른 대가 이어지겠는가.”
조선 왕조는 형제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비롯하여 암투와 모략이 날뛰는 소인배들의 격전장으로 변해 버렸다. 역대 임금과 왕비들 위패를 모시는 종묘의 현판을 창엽문(蒼葉門)이라 했는데, 이것은 조선 왕조가 길어야 이십팔 대 임금으로 막을 내린다는 경고였다. 창(蒼)은 위에 열십(十) 자가 두 개니 이십을 나타내고 그 아래 여덟 팔(八) 자가 있어 이십팔을 의미했다.
과연 무학대사의 예언처럼 경복궁은 임진년 왜란으로 불타고 27대 순조 임금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저기 영감님. 친구 분이 쓴 편지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됐을까요?”
“전달되지 못했다. 그랬기에 1959년에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됐지.”
공사가 시작되면서 세종 임금 때 광교에 설치한 수표교를 원형대로 장충단 공원으로 옮겼다. 이곳에 경(庚), 진(辰), 지(地), 평(平)이란 표식을 하여 물의 깊이를 측량했다. 청계천 복개는 동대문까지 덮게 돼 결국 이승만은 하야했다. 그렇다보니 오늘날 이런 소란이 있는 것도 청계천 복개 공사와 관계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고가도로야.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복개한 땅 위에 묵직한 고가도로를 만들었는데 문제는 용도야. 알고 보니 제놈들 놀이터인 골프장까지 단숨에 가기 위해 뚫었다는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정부의 관료라는 자가 이런 정신 자센데 하늘인들 가만있겠느냐? 어림없지. 아암, 어림없고말고! 천기를 보아하니 모든 살기(煞氣)가 요동하는 게 예사롭지 않다.”
오늘도 도심을 들었다 놓는 구호와 함성이 그치질 않고 로마병정처럼 열을 맞춘 전투경찰들이 힘겹게 막아서다 청계천으로 밀리고 있는 게 한 눈에 들어왔다. 매캐한 최루연기가 밀려들 때 한 젊은이가 좌판 앞에 무릎을 세워 앉았다.
“여기가 신선나라에서 오신 사주풀이 하는 영감님 좌판이지요?”
“거 말 한번 뽄세 있게 하는구먼. 운수를 알고 싶으면 이걸 던지시게.”
사주쟁이 영감님이 건네준 세 개의 신전(神錢;엽전)이 좌판 위로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여섯 번. 엽전 하나가 핑그르르 돌아 다른 두 개와 삼각을 이루며 따르르 주저앉았다. 앞면 하나에 뒷면이 둘, 여섯 번째 괘효(卦爻)는 음(-)이었다.
“어허? 서른 전으로 보이는데 몸은 이미 저승 문턱에 가 있다?”
“예에? 방금 무슨 말씀이신지?”
“죽을 놈이 그건 알아 뭐해! 어쨌거나 비방을 얻고 싶음 복챌 올리시게.”
다섯 장의 만 원권 지폐가 좌판 위에 놓이자 노인의 혀끝에 힘이 실렸다.
“좌판을 벌인 지 세 해 만에 이처럼 고약한 점괜 첨이야. 도무지 앞뒤가 뵈질 않아. 들어가는 문은 있는데 나오는 문이 없어! 방위와 사계 · 스물 네 시간의 배속이 하나로 떨어지는 해괴한 일이 있구먼! 그러니 이게 보통 문제야? 북서를 가리키는 건(乾)은 지지(地支)는 술(戌)이고 사계론 초겨울이야. 인간사 삼백 예순 날을 달로 나누면 시월이나 십일월이고, 하루론 일곱이나 열한 시 사이야. 바로 자내 명줄이 끊어질 시각이지.”
“그 날이 언젭니까?”
“길어야 사흘.”
“사흘?”
“괘사는 산풍골(山豊蠱)세. 사람의 심신을 흔들 후덥한 바람이 산 밑에서 불어오네. 갑일(甲日)의 앞 삼일 풍랑을 견디면 뒷 삼일엔 좋은 일을 맞이한다는 점괘지만서두···. 모레가 갑일이니 앞 삼일은 내일까지야. 그러니 저승의 아래층에 있달밖에! 어찌한다, 어둠을 몰아낼 등불같은 묘책이 없을꼬?”
낡은 가방에서 거북이 모양의 귀점구(龜占具)를 꺼낸 노인이 웅얼웅얼 신소리를 쏟아냈다. 그 소리는 터널을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점점 가늘어지며 탁! 소리와 함께 점구가 뒤집어지자 세 개의 동화가 가지런히 빠져나왔다.
“에잉, 쩟쩟쩟.”
본래 점구 안엔 오리(五里) 동화 세 개가 들어있었다. 점사를 헤아리려면 주신이 강림하길 풍송으로 노래하고 엎는다. 점구의 가늘게 찢어진 입으로 삐어져 나오는 동전이 한 개면 길, 두 개면 길흉이 반반, 세 개면 흉사다. 활로가 무위로 돌아가서일까. 노인의 눈가에 찬바람이 내려앉았다.
“서입심고(鼠入深庫) 반묘궤문(斑猫跪門)이로세.”
“무슨··· 뜻입니까?”
“창고 깊숙이 들어간 쥐를 얼룩 고양이가 노리고 있어. 죽음의 반점이 있는 고양이면 돈냥이나 있는 졸부겄지? 그도 아니면 한이 깊은 계집일 게고. 어쨌거나 계집 문제는 위험해. 질투가 송곳 끝보다 예리하니까. 더군다나 불편한 몸이면 거동까지 힘들어지지. 그러니 어쩌겠어. 질투의 불길이 활활 타오를 밖에. 한 맺힌 손톱으로 할퀴면 어찌 되는가? 명줄이 끊기는 건 시간문제야.
어디 낯짝 좀 보세. 질액궁(疾厄宮;산근)은 그런대로 풍만하고 빛이 좋아. 그런대로 문장력은 있겠어. 허나 눈썹 사이의 명궁(命宮)에 어지러운 무늬가 있어. 처첩궁(妻妾宮 ; 두 눈썹에서 귀까지)에 광택이 없고 검은 빛이 놀고 있으니 크게 슬퍼할 상이야. 오호라, 업볼세, 스스로가 뿌린 업보인 게야! 이보게 젊은이 노루꼬리 같은 효험이라도 볼 양이면 삼청동 진역관(眞易館)을 찾아가게. 결코 내일 자정을 넘기지 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