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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엄중함 중 국민 생명을 불모로, 의사협 집단행동, 도대체 왜?
오늘 시대의 특징이라면, 집단 이기주의와 ‘사회 분권화(分權化)’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분권화란 정치적 상황과 관계해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는 조직화 되는 사회로 탈국가 현상으로 연결되는 현상에 대해서 말하기를 원한다.
집단 이기주의로 연결되면서 나라 안 주요 기반들이 자신들 집단적 이익을 위해서 정부와 대항하는 탈사회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가 국제적으로 하나의 체계(體系), 즉 일체제화로 나아가면서 상대적으로 각국의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으로써 탈사회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지구가 거대한 집단화로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면서 세계 각 나라의 사회 현상을 몰아가는 힘의 작용으로 탈국가, 탈사회, 탈 공교육 등의 현상들이 주도되며, 그 나라 시민 사회를 반국가, 반민족, 반정부 환경들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체주의, 혹은 인권, 자유 등의 사상적 의미들이 국가 민족 개념보다 더 중요시되고, 이를 통해서 사회 조직들과 국민들을 부화뇌동(附和雷同)으로 탈 자기국가, 혹은 자국 배타적 국민 감정들로 길들여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를 전파하고 앞장서서 확대 생산하는 전도사들이 있다. 이들을 통해서 사회 운동으로 전개하면서 이익, 개체의 자율을 부추김으로 반정부 운동을 펼치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든 혹 하지 않을 수 없는 부(富)나 안정된 삶을 이유로 나라, 민족, 역사와 전통 등의 자기사회 일체화 된 정신들을 부정하도록 시민 정신을 무너트리면서, 자기 사회 혼란을 가중(加重)시키는 작용들을 한다는 것이다.
인권, 자유, 이익, 안정 된 삶, 행복 추구, 국민권리 모두 중요하다. 마땅히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누릴 자격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힘이나 다른 무엇에 의해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를 위협하는 무기로 작용할 때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여기에 정신이 한 번 길들어져 버린 국민이나 사회 조직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 사회 안에서 은밀하게 반정부, 반사회 운동을 위해서 행사하는 이익추구, 인권, 자유 등의 의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사회는 이것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버젓이 대놓고 진행되는 것이다.
전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도 될 만큼 힘이 형성되었고, 든든한 뒷 배가 깔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자기 정부와 공권력을 무시할 정도로, 혹은 대한민국이란 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아도 될 정도로 근본이 다른 자들의 조직력이 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함이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 이것은 인류 역사 이래 변함이 없는 정의였다. “짐이 곧 국가다” 했던 자유가 없는 시대에서도 국민과 나라는 하나였다. 이것이 인간 각 개인, 개체로 결합 된 조직적으로 자기 나라 정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바로 정의였다.
그런데 세계화가 지구의 질서로 점점 강성해 지면서 상대적으로 각 나라 사회적 정황은 탈국가, 탈사회 현상이 우리 현대사에 깊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면서, 자국 정부를 경시하는 사회적 환경이 점점 깊어져 오다가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군부 독재가 잘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 된 군부 독재의 국가 권위는 오히려 세계화의 질서를 국민들에게 호응(呼應)되어 환영받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만에 하나 깨어있고, 국가관이 바로 된 자기국력, 국방의식이 철학적으로 잘 정립된 정부가 일찍 들어섰더라면, 국제 질서가 둘러 싸고 도는 역학 구도 속에서도 강력한 국가의 길로 들어서서 국민들을 지켜 내는 나라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의사협의 반정부 운동에 대해서 말해보자! 대한의협은, 정부의 4대 의료법에 대해서 4대악 의료법으로 규정하고 대정부 논쟁에 돌입하였다. 먼저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엄중한 상황이 우리 사회를 팬데믹 환경으로 내몰아가는 때에, 국민 생명을 지키고 책임을 지는 의사들이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 거리로 나가 투쟁을 한다?
게다가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환자분들이 얼마나 불안 속에서 나날을 보내게 되겠는가? 정부는 코로나 방역과 홍수 피해, 그리고 태풍문제 등, 산적한 국정 운용으로 온 힘을 쏟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때에 사회 최고요, 국민 생명을 책임지는 인격자들이 내팽게치고 거리 투쟁길에 올랐다?
게다가 일반 국민들보다 더 보편적으로 고수익자들의 집단분들이 아닌가? 즉, 생명을 다룸으로써 존경을 받고 그에 대한 사회 품위를 유지하는 최고의 인사들이 아닌가? 물론 개중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는 의사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일반 국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전전긍긍하지만 의사들은 고수익 부류들로 안정 된 삶을 누리는 분들이 아닌가?
그런 분들이 더 움켜지려고 합리적 명분으로 만들어서 무조건 정부 정책을 반대하면서 정부가 강하게 나오면 자신들은 사표를 쓰겠다고 하면서 강경 대응으로 나온다? 이거 무언가 이상하지 않는가? 가장 어려운 때에 의협이 의사들을 떼로 몰아 반정부 운동에 나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말해주는가?
최고의 인재들, 존경의 대상에서 국민들의 건강의 문제로 우리사회를 지키는 이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택한다는 것은, 순수하지 않은 그 어떤 작용이 배후에 도사리고 있음을 반영해 주는 것이다.
외관상으로 볼 때, 자신들 이익을 지키겠다고 정부 의료법을 악으로 규정하는 논리로 반정부 운동 선언을 하며 거리로 나섰다며 입장 설명을 하면서, 국민들께서 자신들을 이해해주시고 지지를 당부한다는 의협회장의 독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분은 의사라기보다 선동가가 아닌가?
4대 의료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잘 모른다. 정부가 의사 정원을 늘리고 의과대학 신설을 한다고 하니 의사협은 현재의 의사 수로도 넘치고, 게다가 국민들 인구수가 적어지는 상황에서 의사 수를 더 늘린다고 하는 이유를 중점으로 반정부 운동을 펼치겠다고 하여 오늘부터 거리 농성에 돌립했다.
이에 대해서 갑론을박 하는 논조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모든 이유와 명분은 자신들 입장에서 걸면 거는 대로 이유가 되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세계질서라는 지구촌 시대와 이를 주도하는 소수의 지배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이 깊어지는 시대가 아닌가?
이들 지구 지배자들로 세계를 굴리는 이들은, 현재 코로나 상황으로 지구를 몰아가고 있다. 우리 나라도 온 사회적으로 이런 지구적 변화의 엄중한 상황 중심으로 몰리고 있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기회를 틈다 곳곳에서 정부에 반하는 세력들이 준동(蠢動)하기 시작 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협이 한 술 더 떠서 그 중심점에 바톤 터치를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이들 부류들과 합세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라고 손 사례를 치겠지만 나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의협은 반정부 노선에 섰고 투쟁으로 정부와 코로나 정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자 하는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본인은 이러한 의협의 결정에 대해서 그 본질을 병원생활의 경험을 기점으로 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대한의협의 길거리 투쟁을 반대하는 글을 기술할까 하여 다시 병원관련한 글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왜? 의사들은 국민들의 이름으로 정부 의료정책에 대해서 발끈하여 4대악의료정책으로 규정하며 투쟁의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 경험에 비추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우리 사회 의사 협의체는 전국 13만 명의 의사들을 거느린 거대 집단들이 되어 있다. 거기다가 국민들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어떤 면에서는 목숨을 늘리고 줄이는 신과 같은 존재들로 일반 국민들보다 특별한 위치에 서 있는 존중되는 인격자들이다.
그런데 이분들이 연합하여 힘을 행사한다? 국민 목숨을 책임지는 의사들이 단체 행동을 하게되는 그 나라 사회는 갈데까지 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우리사회 국민들의 의료생활, 병원, 의사들의 진료환경 등, 우리 사회 의료 구조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아서 있다.
그럼에도 이분들이 이렇게 힘을 행사 한다? 더 무엇을 얻고자 말이다. 해외 의료기술과 신분을 획득하여 자국에서 어떻게 환자들을 다루어 왔는가? 이를 파고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악들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덮어버리고 자신들 이득 추구를 위해서 국민 고통과 불편은 뒤로 한 체, 무조건 반정부 운동을 펴기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가 실력행사를 한다?
그럼, 얼마나 무서운 일들이 벌어 지겠는가? 국민들 목숨을 다루는 분들이기 때문에 이분들이 자신들의 단체 행동을 무기로 삼아 정부와 사회,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행동을 하고자 규합을 실력행사나 거대한 힘으로 무언가를 추구하고자 하는 무기로 삼는 집단성을 말한다. 그것은 자신들 위에 정부와 전쟁을 하고자 하는 반란을 의미함이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단체 행동에 드러가려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 지금 얼마나 나라적으로, 사회 국민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게 몰아오고 있는가? 그런데 국민 건강과 목숨을 책임지는 의사들이 자신들 단체 이득을 위해서 단체 행동에 나서서 반정부 투쟁을 한다? 그런데 협회장이란 분의 얼굴이 왜 그렇게도 일본 생각나게 하는 인사인가?
그렇다. 의사들이 자신들의 진료 환경이 괜찮음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위기 상황 앞에서 거리 투쟁가들로 강경 노선을 만든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화를 주도하는 힘이나 일본적 경향성이 우리 사회 안의 의사협의체를 움직이는 배경일 수 있음의 문제이다.
이러한 배경이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기에 고품격의 의사들이 코로나 상황으로 위급하고 엄중함에도의사협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반정부 대열로 뭉쳐서 국민들과 정부를 더욱더 어렵게 몰아가는 전쟁을 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의사협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미국행에 올라서 십수년 동안 미국, 혹은 유럽, 일본 선진국들의 유학길에서 기술만 습득한 길이 아니라 사상적으로, 혹은 신분적으로 변동이 발생한 과정이 되어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 왔을 것이다.
이것이 국민들의 건강 문제에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쳤을 것인지? 75년의 우리 사회적 현상이 이를 반영해 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본인 개인 병원 경험에 대해서 지금의 의협의 거리 운동 시작을 규명해 보았으면 한다.
2010년 아내가 강남 모병원에서 뇌하수체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 참으로 아픔이고 억울한 과정이었다. 지금이야 한 숨 돌려 일상의 삶으로 돌아 왔기 때문에 그때 상황과 너무 다르고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물론 모든 가족 삶 자체까지 무너졌던 기간을 10년 넘게 보내야만 했다.
담당 의사가 첫 실패를 하는 바람에 내리 두 번을 더 머리 수술을 받았다. 꼬박 두 달을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고 1년이 지날 무렵 담당 의사가 미국행에 올라 버린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진료한 아내의 데이터를 비롯해서 자신이 치료한 한국 모든 환자들의 자료를 가지고 미국 하버드와 1년 조인 연구차 미국길에 올라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아내는 정상 진료가 아니라 실험 대상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옆의 동료 의사에게 아내 남은 치료 과정을 맡기고 떠났는데, 그 의사가 자신이 직접 치료한 환자가 아니어서 제대로 진행을 못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스트로이드제 약을 매일 11개 씩을 복용하며 진행 과정을 살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안 되니 황당한 나날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제대로 치료가 진행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우리 나라 의료사고를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 도움 받을 길이 열려 있었던가? 병원은 합법적으로 의료사고를 치료 과정으로 군대의 소원 수레 받듯이 조치를 취해 놓았기에 의료사고 법적 대응은 어림도 없었다.
그랬던 것이다. 한국사회 거대해진 병원체 구조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정신은 고사하고, 상업적 병원체로 진화되는 의료 환경이 형성되면서 의사들의 수술 칼 놀림들은 인간 생명을 다룸이 아니라 죽은 돼지를 다루는 저급한 의료 환경이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거기다가 10년 전부터 세계 속의 한국 병원 환경은 원격치료라는 의술이 세계적인 구조와 결합 되어 시행되면서 한국 병원 안에는 합법적으로 실험이 자행되는 의료 환경으로 문이 열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IMF 이후에 우리 사회 안의 어두운 의료 환경이 형성되는 시작이 되어오고 있다. 합법적으로 상업과 병원체의 기술 발전을 위한 방법들이 가능해지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신경계에 액체를 주입해 넣어 원격치료 과정이 진행되는 의료법이 IMF 이후 우리 사회 새로운 치료 기술로 접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 병원 기술을 업그레이드 해 주었음은 사실이지만, 그 힘이 이제는 자기 사회를 집어 삼키려 하는 사악한 힘으로 진화가 되어 온 것이다.
인간의 힘은 그것이 거대해지고 결합 되어 파괴력을 행사하려 하게 되면, 더 큰 불행의 문을 스스로 열고자 하면서 그 위치를 가장 최상의 상태로 올리거나 두고자 하는 교만함이 작동하게 되어 있다.
지금 한국 사회 병원들이 정부와 대립하며 국민들의 이름을 통해서 자신들을 변호하고자 거리로 나간 것은 바로 이런 사실에 기인하는 현상이다. 본인 아내는 이런 병원체 환경의 좋은 먹이사슬이었다.
외국인으로 머리가 뛰어나고 교수법에 탁월한 인물이었다. 한국 교사들 중에 탁월한 교수로 특출한 능력을 발휘하던 대상들과 같았던 인물이었다. 머리가 궁금했던 것인가?
아무튼지, 너무 억울한 대상으로 실험이 되어 아내를 병간호하던 내내 아내만 특별하게 적고 매 진행과정을 체크 하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병원에 유린 되었던 것이다.
이런 병원과 의사들의 합법적 마음놓고 환자들을 돼지 다루듯이 하는 병원의 저급한 치료 과정은, 우리 사회 안에 숱한 가정들을 건강의 문제로 어두운 가운데로 내몰아 온 국민 삶의 파괴적 현상이 점차적으로 짙게 드리어져 오고 있었다.
게다가 의료사고를 가장한 범죄가 슬그머니 진행되고, 이것이 세월이 길어질수록 사악해지는 인간성의 반비례해서 더욱더 가혹한 세상으로 내몰아 오는 환경이 펼쳐 졌던 것이다. 우리 사회 의사들은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내는 지인의 도움으로 다른 병원으로 이원을 해서 계속 치료를 받아 오고 있었는데, 여전히 실험 대상이었다. 그러기를 3년을 넘기면서 스테로이드제를 11개 씩 매일 복용한지 3년을 넘기고 4년 차에 백혈병이 온 것이었다.
이는 우리사회 의학계에 보고가 되어야 할 사항이었던 것 같은데,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서 변화의 추이를 의사들보다 더 감지가 민감해진 보호자 입장에서 말이다. 물론 동네 병원에서 냉방병이라고 진단하면서 핑크색 주사를 주입한 것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도 합리적으로 의문스럽게 하는 모든 진료 과정에 일부분일 뿐이다. 다만 아내를 보호하던 중 너무 과로하여 쓰러져 병원에서 회복제 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어떤 부인이 옆에서 주사를 맞는데 아내가 맞았던 색깔의 주사를 주입 받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아내가 그 주사를 맞고 이틀 후부터 온 몸에 엄청난 푸른 반점들이 부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약 한 달 동안 지속되었다. 그런데 그 병원에 본인 옆에서 이 주사를 맞던 부인에게 의사가 설명하기를 이 주사를 맞으면 푸른 점들이 온 몸에 부분적으로 퍼져서 나타나고 자연적으로 한 달 정도 지속된 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백혈병 현상을 이렇게 몰았던 것이다. 아내와 본인은 이때부터 1년 동안 무균실 생활을 모두 6개 월에 거쳐서 하였고, 꼬박 1년 동안 병원 생활을 하다가 퇴원을 했는데 하루 60알 정도 되는 약을 복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다. 다른 백혈병 환자들은 약을 복용하는 일이 없는데 유독 아내에게만 매일 많은 약을 복용토록 하더니 그것이 퇴원하면서 60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아내 몸은 뇌하수체, 백혈병 이런 병을 비롯해서 당뇨, 간, 무릎, 혈압, 가려움증, 방광염 등, 이루말할 수 없는 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을 했다.
병원, 즉 의사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데 젊은 아내가 낫는 것 보다 더욱더 문제가 많아지고 고통스러워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면서 너무 힘들어졌던 것이다. 이때부터 모든 약들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그 약들이 일으키는 부작용들을 암기하여 아내에게 나타나는 증세대로 주치의에게 끊어 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5개로 줄이니 아내 몸에 불균형적인 병적 요인들이 하나하나 사그라들면서 안정을 이루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당시 병원 담당 의사는 우리 식약청에 가장 많이 문제의 약으로 전국에서 보고 된 문제의 약까지 복용을 시켰던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는 것인가? 치료 받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고, 의사에게 건강하게 해달라고 맡겼는데 오히려 실험대상이 되어 계속 반복되는 고통 가운데로 내몰렸던 것이다.
병원, 혹은 의사들과 제약회사의 담합 된 우리 사회 의료 환경, 이 또한 환자와 보호자들이 우롱 받는 상업화되고, 저급해진 의료 병원체적 환경, 이를 국민들이 어디 가서 해결을 받을 수 있을까?
초기, 중기, 우리 사회 의사들은 고치기 위해서 국민 환자들을 바라 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나 수많은 의사들이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고자 몸부림치던 한국 병원 환경을 지속해 왔던가?
하지만 오늘 날 한국 병원 환경, 과연 치료하고, 살리기 위해서 순수하게 국민 신체를 대하고 실제적으로 고치는데 역점을 두는 병원들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본인은 아내로 하여금 옷을 갈아 입도록 하고, 병원에 이원을 신청하여 치료하는 병원을 찾아 옮겼던 것이다. 본인의 아내는 5년의 기간 두 병원을 통해서 고생 고생을 하다가 아산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약으로 바꾸고 두 주치의가 아내를 담당하여 완전히 치료를 끝냈고 완치 판정을 받도록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첫 번 째 병원의 뇌하수체 종양제거수술 과정에서 뇌하수체 자체를 잘라 내버린 결과로 지금도 그와 관련한 약을 복용중에 있다.
하지만 아내는 힘도 쓰는 일이 안 되고, 집중을 하는 것도 안 된다. 그냥 생활을 하지만 잠을 많이 자야 그나마 감당이 된다. 그래도 살아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2013년 시작 된 백혈병은, 2016년 완치 판정을 받고 2018년까지 죽었다 살았다를 숱하게 반복하다가 2019년부터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병원에 치료 받기 위해서 방문을 했다가 병원의 잘못으로 일년에 2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고통 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균형이 맞지 않는 병원 문어발식 확장과 돈벌이에 미친 병원 키우기가 이 같은 거인적인 문제를 가져 온 것이다. 이것은 순수하게 국민적인 경험에 의거하여 바라보는 근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말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사회는 러시아, 미국, 중국, 캐나다, 인도 같은 거대한 나라 환경이 아니다. 국토는 너무 좁고 인구도 고작 5천 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적당이 수에 맞추어서 병원을 두고 의사 수를 조절해야 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마구잡이로 병원을 키우니 그 병원을 먹여 살려야 하니 5천 만 명이 다 환자가 되어야 할 판이다. 이는 지금 병원이 시인한 문제이다. 기존 병원도 인구 수에 비례해서 너무 많고 의사 수도 많은데, 의협의 수장과 실무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지 않았는가?
병원에 1년 동안 입원해 있을 때, 병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이 모두 다 새로 입원해 들어오는 환자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장기 환자들이었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저절로 데이터가 나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유방암으로 시작하여 치료과정을 밟고 퇴원을 하면서 병원이 주는 약을 복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전신암으로, 혹은 다른 암으로 전이가 되어 계속 치료를 받니라 병원 생활을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병원 안의 모든 환자들이 이런 식으로 입원하여 장기 치료를 받고 있었다. 아내에게 수많은 약을 복용토록 할 때, 온갖 질병들이 일어나면서 주치의가 퇴원하기 전날 브리핑을 해주는데 본래부터 그런 유전인자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인이 이를 지적하자 무엇이라고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냐고?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강조하시면서 우리 보고 걱정하지 말라! 해놓고서 퇴원하는 브리핑에서 처음부터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었다니!
이것이 병원과 담당의사의 실체였다. 본인처럼 의학을 공부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인도 이렇게 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어르신들이나 전문 지식이 부족한 국민들은 얼마나 병원이나 의사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겠는가?
글을 맺도록 하자!
과거 의사로써 인간성이 살아 있었던 시대는 병원이나 의사들이 자국민들을 환자로 대상으로 치료 과정을 진행하면서 비상식적인 의료행위를 스스로 거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떤 이물질적 배경이 개입되기 시작했고, 그에 의한 사악한 의사들이 우리 사회 의료계에 포진되어 있다면, 이는 다른문제인 것이다.
그들이 의료계를 장악한 소수의 무리들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의사들조차 그들이 치는 그물망에 걸려서 함께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의 현상,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정부 4대 의료정책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런 판을 벌여서 반정부 운동으로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일에 의사들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거대해진 의협의 힘을 무기화하여 현재 정부와 전쟁을 벌이는 조직적 행보에 편승하는 의협의 운동이 되고 있음으로 규정할 수 있다.
정부가 의료정책을 펴고자 하는 것은, 국가 미래를 생각하여 안전한 장치를 하고자 함일 수도 있다. 의협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의협에 속한 의사들 가운데는 훌륭하고 인격적인 분들이 많음을 잘 안다.
본인 아내를 치료해 준 병원과 의사님들처럼 말이다. 잊지 못한다. 어떤 의사는 실험 대상으로 더욱더 고통으로 내 몰았는데, 어떤 병원은 치료로 건강한 삶으로 돌아가게 해 주었다.
왜, 지금 코로나19 엄중한 상황 앞에서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들이 거리로 나서고, 자신 정부의 정책을 악으로 규정한다는 것인가? 한국 의협의 이단아들인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이렇게 거리로 나서서 반정부 운동으로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데 한 몫 하고자 한다면, 이는 지금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내 몰아 가는 자들과 합세하는 것일 뿐이다. 정부 4대 의료정책을 빌미로 말이다.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분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안정 된 사회가 된 후 정부와 충분한 의견을 교환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건강하고 건전한 의사선생들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치료 과정에서 상처 받은 국민들이 많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양심 있는 의사들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나마 치료를 해 준 병원과 주치의 선생께서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속히 길거리 투쟁을 멈추고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서 국민들에게 보여주시는 고치고 살리는 의사의 모습으로 우리 사회 국민들의 의지가 되어 주시기를 당부한다. 우리 정부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벌여가고 있는 불쌍한 작은 나라 정부가 아닌가?
그런데 의사들까지 거리 투쟁으로 정부를 곤란하게 하고자 함이 말이 되는가? 결코 정부와 의협은 갈려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 또한 우리 사회 건강 문제를 책임지는 의사들의 고충을 헤아려 주고, 마음 놓고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불안전한 의료 환경들을 모두 거두어내 주어야 할 것이다.
본인은 우리 사회 의사들의 노고를 폄하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물론 본인 아내가 너무 오랜 세월 치료 과정에서 고통을 많이 당하고 이해 할 수 없는 과정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미 모두 과거가 되었다.
누구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이미 버렸다. 모두가 다 우리 의료 환경의 발전이라고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또한 우리 한국의 의학발전이 세계 속에 우뚝 서 가는 현실을 접하니 기분 좋고 감사가 된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들이 합법적으로 희생되고 고통 가운데 들어가는 저급한 의료 환경, 그리고 국제질서에 연계되어 저질러지는 보이지 않는 의료적 환경이나 제약회사나 그 외의 상업적 이유들로 불법과 사악한 의료 행위가 통용되는 사회 악이 판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런 점에서 정부 의료 정책은, 의사협의 사감이 너무 강하여 정부와 대립하는 길거리 농성의 수준이 안 되었으면 한다. 이런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자기 정부 중심은 물론 국민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혹시 국제질서에 따르고자 하는 소수의 무리들이 의사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유 아래 이런 대립 구도를 펼치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혹은 친일화 된 무리들이 배후에 지금 사회 다른 움직임들과 연계해서 일으키는 의협의 길거리 농성 말이다. 자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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