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고 살아 갈 나이
욕심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사람은 대부분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다. 욕심 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면 그는 무미건조한 생활과 평범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욕심이 과한 인생을 살아 왔다면 더러는 실패와 운이 따르지 않은 등 짠맛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자연에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의 아버지 직업은 농업이다. 아버지는 벼농사, 과수농사로 수확한 벼나 사과를 판매 수익금으로 평생 살아오셨다. 우리 집은 사과나무를 심어 경작한지도 20년 넘었다. 그래서 그런지 위 과수원 사과나무는 신품종과 비교해 보면 당도가 많이 떨어진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오래된 묘목을 베어 내고는 사과나무 품종개량을 했다. 매년 과수농사로 천만 원 이상 수입을 올리고 있는 아버지는 사과나무 베고 신품종 심기까지는 많은 고심을 하셨다. 다시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하려면 3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논으로 사용한 땅과 전에 심었던 과수원에 똑같이 3,966㎡(1천 2백 평)을 묘목을 식재했었다. 한곳은 1년 휴경 후 사과묘목을 심었다. 전에 과수나무가 심었던 곳에는 겨울철 돼지분뇨 뿌리고 봄에 과수나무를 식재했었다. 두 곳 과수원에 4월 같은 날 사과나무 심었지만 사과나무가 자라나는 속도는 전혀 달랐었다. 1년 휴경했던 자리에 심은 사과나무는 3그루만 고사하고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휴경하지 않고 심은 사과나무는 1/4이상 서서히 죽어갔다. 사과나무가 죽어가던 이유는 아버지가 욕심 부려 썩지 않는 돼지 분뇨 넣어 심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버지가 1년이라도 앞당겨 심어 수확하려했던 욕심의 결과물은 다음해 확연하게 나타났다.
"자연은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전혀 보답을 주지 않는다."
라는 것을 전번 사과나무 식재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린사과나무가 꽃이 피고 과실이 열리면 접과 할 적에 모두 따주어야 한다. 1년 빨리 사과를 수확하려 한다면 성년이 아닌 어린아이가 아기 출산하는 것 같다. 사람도 얼먹듯이 어린산모가 건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어른보다 힘이 든다. 과실을 남겨두어 1년이라도 조기에 수확을 하려 한다면 무모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수년전 1천만 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한 적 있었다. 주식대금을 미수금 사용하는 등 대출금을 빨리 갚겠다는 욕심에 나는 많은 금액 손실보고 손을 털었다. 대출금보다는 여유 돈으로 주식투자를 해야 한다는 평범한 논리를 쉽게 간과한 냉엄한 결과였다. 주식을 투자하여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스스로 통제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주식시장에서 기계적이고 냉정한 기관,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
2005년 집중호우가 내려 예산군 oo면에 시설하우스 농가가 피해를 많이 당했다. 농가들은 농작물피해 발생하자 본인, 이장을 통해서 면사무소에 시설 피해신고를 접수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농작물 피해 신고한 작물에 대하여 나는 대파비(大破費)을 주기위해 피해농가 하우스 현지 방문 살펴보니 농가들은 작물은 식재하지 않았었다. 피해농가 일부는 작물파종 하지 않고는 풀이 난 것이 종자를 파종하여 싹이 나온 것이 작물이라며 우겨댔었다. 나는 가지고 간 수첩에 풀을 뽑아 이름 밑에 테이프로 붙이고는 사무실로 돌아왔었다. 그들은 농작물피해 내용을 면사무소에 신고만하면 정부에서 확인을 하지 안하고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착각하다고 거짓말 한 것이 들통 났다.
내가 마을에서 작물파종여부를 조사하고 사라지자 그들은 다시 종자를 하우스 안에 뿌렸다는 사실을 재차 그 곳 마을 방문해서 알게 되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글을 쓰고 있으려니 가는 여름이 그리운지 모기들이 기승부린다. 나의 팔다리에 모기가 물은 흔적이 여러 군데 있다. 책상 옆에 모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여 손바닥으로 힘껏 내려쳤다. 피하지 못한 것을 보면 며칠사이 나의 팔다리에서 많은 피 빨아 먹어 활동력이 떨어진 모양이다. 이제 파리도 나를 피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손바닥을 펴보니 빨간 피가 멍들어 있다. 모기 녀석은 내 몸 주변에 있는 피를 조금만 먹었더라면 운동이 둔한 나에게 오늘 죽음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틀 지나면 추석이고 안방에 있는 뚱뚱한 녀석 피 빨아먹는데 쏠쏠한 재미를 며칠간 더 누릴 수 있었을 터인데, 욕심 부리다가 죽음 맞이했으니 나는 정말 통쾌하다.
지방행정공무원은 대학 전공을 살려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신규직원 복무 중 선배공무원이
“자네 영어 잘 하나!”
라고 물어 보기에 생각 없이
“저는 영어 잘못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결과는 영어교육을 보내주지 않았다. 영어교육을 가고 싶었는데 욕심을 부리지 않아 결국 영어교육 기회를 놓쳤다.
영어 이야기가 나오니 신규직원 임용되기 전 충남도청에서 면접관이 물어본 말이 생각난다.
“영문학과 전공했으니 공무원 응시한 이유를 영어회화로 대답 좀 해보지!”
라며 면접관은 나에게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을 하였다.
“영어는 잘못합니다.”라며 나는 얼버무려 버렸다.
그 상황에서 면접을 잘 보려고 욕심 부려 잘되지도 않는 엉터리로 영어를 둘러 댔다면 감점을 당했을 것이다. 그날 공무원시험 면접시험 응하면서 채점하는 것을 나는 곁눈질하여 보니 기대했던 만점을 면접관은 주고 있었다.
2011년 봄 서울 교보문교에 들렀다가 무역영어 책을 사가는 사람을 보는 순간 나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충동구매 억제하고 집에 와서는 허황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결국 인터넷으로 무역영어 책을 구입했었다. 나는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무역영어를 며칠 공부한 후 당진상공회의소로 달려가 시험 응시했었다. 국가공인자격시험에 합격해도 이제 취업과는 나와 무관하다. 그 시험에 응시한 것은 어쩌면 나의 크나 큰 욕심이다. 합격점수에서 모자라 합격을 못했다. 그 시험에 떨어진 것이 도리어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공인자격시험을 우습게 본 것을 나는 후회했다.
나는 요즈음 차분히 무역영어를 익히는데 재미있다.
첫댓글 멋지세요^^
언제나 근본을 중시하면서 생활하시는 철학의 실천이 더욱 멋지게 느껴집니다.
무역영어는 이제 죽었어요^^ 홧팅입니다.
영어는 영문도모르고 포기 했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자세사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영어 공부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네요
아들녀석은 하루에 영어단어 30개씩 외운다고 하는데...
저처럼 영어를 못하면 하고 걱정이 됩니다.
진솔하게 엮어 가신 삶의 이야기.
언제나 모범이 되어 주시는 님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항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분이 계시는 한
예산의 사과가 해외로 진출하는 시대가
가까워 질 것 같습니다,
제40회 이상 문학상 대상수상자(천국의 문> 김경욱도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더군요.
피천득, 장영희 등 수필부문에서도 뛰어난 작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소설부문 문학상도 타고싶은 조그마한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김창배 <지나가는 이야기>피천득 선생이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외갓집)에 일시 머믈다 같다고
이재인 인장박물관장이 연고비를 작은 연고비를 세웠더군요,
@운파 피천득 수필 <비원>에 광시가 나옵니다.
... .....
서울 출생인 내가 꾀꼬리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충청도 광시라는 시골에서였다. 내가 서울로 돌아오던 날 아침 '그 아이'는 신작로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꾀꼬리가 울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작은 신문지 봉투를 주었다. ... .....
@김창배 그렇군요,
저는 바로코 앞에 살면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