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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시의 공간 : 경북 상주
자연·인간·문화를 융합하는 유토피아 시공간-상주
정유화
1.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지복의 생활공간
공간은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다스려나가고 지배하는 통치자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한하기 때문이다. 공간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공간은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이다. 하이데거가 언급 했듯이 인간은 이러한 공간 속에 던져진 하나의 피투성被投性이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영원하며 무궁한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삶의 방식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공간은 힘이 세다. 공간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간은 보이지 않는 그의 손으로 유한한 인간을 지배해나가고 다스려나간다. 인간은 공간을 이길 수 없다. 공간을 지배하고 다스려나갈 수도 없다. 다만 인간은 공간이 호의적으로 베풀어준 그 어떤 일부를 이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이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상상계적 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라캉은 언어 습득 이전의 단계, 오이디푸스 이전의 단계를 상상계라고 말한다. 흔히 어린 아이는 그러한 상상계 속에서 자기의 욕망과 어머니의 욕망이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머니의 욕망은 전혀 다른 데도 말이다. 오인한 것이다. 그런 것처럼 공간은 인간의 욕망대로 빚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설령 인간이 공간을 개척하여 그것을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새롭게 만들어진 그것은 다시 공간 차원으로 환원되어 인간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새롭게 구성된 공간 자체가 인간의 삶을 간섭하기에 이른다. 결국 공간은 영원히 인간을 둘러싼 존재자로써 인간의 삶을 간섭하고 인간의 의식을 조율하는 큰타자로 위치하게 된다.
그러므로 공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적인 삶의 형태와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삶의 양식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공간의 형태가 다양하면 삶의 형태도 다양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가령, 공간의 형태가 산악지역이면 산악에 맞는 삶의 형태가 주를 이룰 것이고, 들이 많은 지역이면 들에 맞는 삶의 형태가 주를 이룰 것이다. 공장이 많은 도시지역이면 거기에 맞는 삶의 형태가 주를 이룰 것이고, 자연이 많은 농촌지역이면 또 거기에 맞는 삶의 형태가 주를 이룰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주어진 지리적인 공간, 문화적인 공간, 사회적인 공간, 역사적인 공간은 매우 중요하다. 그 공간의 특성이 그 공간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자연스럽게 결정해나가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상주는 지리적으로는 산과 들이 조화롭게 겸비되어 있는 자연적인 공간이고, 사회·문화적으로는 도시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공장이 거의 없는 전원적인 공간이며, 역사적으로는 선비정신과 충절의 절개를 지니고 있는 유교와 유적의 공간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간적 특성들이 단절되지 아니하고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변화와 개혁, 세계화는 거의 단절을 낳는다. 21세기의 테마인 변화와 개혁, 그리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시대를 맞이해서도 상주는 여기에 요동하지 아니하고 평온한 가운데 스스로 자생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주 사람들은 스스로 상주를 지복의 공간으로 믿고 있기에 그럴 것이다.
이에 따라 상주에서 나고 자랐던 시인들은 자연스럽게 상주를 둘러싼 공간적 특성을 온몸에 간직할 수밖에 없다. 예의 온몸에 간직된 그러한 특성은 삶의 양식과 생활 태도, 인생관 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거대한 무의식으로 작용한다. 의식이 가시적인 현상이라면, 무의식은 그러한 현상을 가능케 하는 불가시적인 배후가 되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상주 시인들이 상주 공간에 대해 노래한 시는 다름 아닌 그들의 무의식을 노래한 것이 된다. 그 무의식은 바로 상주에 대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그들의 의식을 올곧게 다스려나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무의식의 소산인 상주 공간에 대한 노래(시)를 감상해보도록 하자. 먼저 시인들은 상주에 대한 지리적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지구―/ ―아세아―/ ―동남쪽―/ ―한국― 그리고/ 경상도의 소백산맥 아래/ 나직이 펼쳐진,/ 마-을,// 가는 바람소리 요요하고/ 땅 푸른 곳에/ 마을이 옹기 종기 모여있는/ 다정한 동리들// ―앞에는 갑장산―/ ―뒤에는 천봉산― ―옆에는 낙동강―// 산사이 솔내음 전설은 서리고/ 유유히 흐르는 강 위에는/ 지금도 겨울새가 우는/ 산하야, 산하야-!// 심정心情한 사람 사람 가슴에는/ 풍요가 와 닿고/ 고래古來가 와서 현재를 살찌우는/ 산수화 같은 곳, 곳,――// 「상주」/ 「상주」/ 「상주」라는 마을 마을들,// 삼백이 자랑이던/ 자연인의 가슴에는/ 등잔불이 사라지는/ 시절 시절의 그늘 밑에서도/ 옛 정이 그리워 시인은 운다.// 「상주」// 밤이면 풍류에 젖는/ 막걸리 한 잔에 세월은 가고,/ 공갈못 연꽃이 지는 날까지/ 논메기 노래를 부르며/ 긴― 밤!/ 삼베 엮는 역사같은 날을/ 지새우며……,// 「빛이 솟는 마을 마을」// 솔가지 바람소리는/ 세상을 맑게 밝게/ 태양과 같이 울려라.// 「상주」/ 「상주」/ 「상주」/ 우리의 상주여!// 영원한 복이 있어라/ 사시절의 마을 마을들아!// 「상주」/ 「상주」/ 「상주」 / 죽음에서도 사는/ 「상주尙州」라는 영원한 둥지여!
──박두필, 「상주」(1987) 전문
상주는 다른 어떤 공간으로부터 단절된 공간이 아니다. 전 세계 지구와도 연관되어 있고, 아세아와도 연관되어 있다. 한국과도 연관되어 있고, 경상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요컨대 지구촌 중의 한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상주는 전 세계와 경상도에 이르기까지의 공간과는 변별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서 지구촌에 속하지만 지구촌의 무수한 공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예의 상주는 소백산맥 아래에 위치하는 작은 마을로 인식된다.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공간과는 달리 배산임수의 공간이 빼어난 곳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장 살기 좋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상주는 골 깊은 갑장산과 천봉산을 등지고 있으면서 그 무릎 아래로는 낙동강을 흘러보내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지금까지 농사와 과목果木들이 잘 되어 풍요와 풍류를 누려오고 있다. 풍요와 풍류 속에서의 인심은 말할 것도 없이 후하다. 시인이 상주를 “산수화”에 비유한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배산임수가 빼어난 탓에 상주가 자랑하는 특산물은 삼백이 되고 있다. 공통적으로 흰색을 지닌 쌀, 고치, 곶감(분粉이 흰색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다. 논농사의 산물인 쌀, 뽕나무의 산물인 고치, 지천으로 널려있는 감나무의 산물인 곶감은 바로 지리적 공간, 자연적 공간의 영향에 의해 탄생된 소산물이다. 부연하면 천지공간이 그러한 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뜻이다. 요컨대 자연이 상주 사람들에게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삼백 중에서도 그 으뜸은 쌀이다. 주지하다시피 쌀농사는 엄청난 집단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노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요구한다. 그러다보니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했다. 그 지혜의 산물이 바로 노동하며 함께 부르는 민요였다. 그래서 상주에서는 그 노동요가 수많은 사람들의 입술에서 수시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 노래로 상주 사람들은 “세상을 맑게 밝게” 만들려고 한다. “영원한 복이” 깃든 상주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뽕잎 갉던 누에에겐 반도半島도 섶일런가.
설레설레 머리 젖다 실을 뽑아 붙인 것이, 동東으로는 의성, 남南으로는 선산 금릉, 서西로는 보은, 옥천, 북北으로는 문경 괴산
아늑한 내륙의 터전 신라적의 사벌국沙伐國.
낙동강 길을 열 때 자리내어 눕게 하고
그 곁에 평야 얻어 지어내는 살찐 오곡
무서리 내릴 그 녘엔 감타래도 걸렸었지.
문장대서 건네보나 경천대서 바라보나
투박한 말씨하며 후덕한 인심으로
인정도 다사로웁게 진달래로 피는 고장.
──이기라, 「상주운尙州韻」(1987) 전문
또한 상주는 지리적 공간으로도 마치 요새와 같은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중심부인 상주를 정점으로 해서 동서남북의 지역, 곧 의성, 보은, 선산, 문경 등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상주는 그러한 지역에 둘러싸여 아늑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라 적부터 그 모든 지역을 총괄하는 수도, 곧 ‘사벌’로써의 기능을 담당해 오기도 했던 곳이다. ‘사벌’을 현대어로 번역하면 수도를 지시하는 ‘서울’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면, 상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던 공간인 셈이다. 신라의 뿌리를 지닌 상주, 그 역사적 형태는 변천되었지만 여전히 상주는 낙동강과 평야와 감나무와 사람이 하나로 융합되어 사는 후덕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말씨는 투박하지만 그 인정만은 진달래처럼 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늑한 요람의 공간 안에 사는 상주 사람들의 구체적인 생활상, 문화상, 역사상, 인간상, 미래상 등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해서 평생을 바쳐가며 상주를 탐색하고 상주를 시화해온 시인이 있다. 누구보다도 상주를 사랑하는 상주의 지킴이 시인詩人인 박찬선 시인이다. 그는 1986년 연작시집 『상주』를 출간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상주 연작을 발표해 오고 있다. 박찬선 시인의 이러한 선구적인 시적 작업은 상주에 사는 많은 후배 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로 말미암아 후배 문인들도 상주를 넓고 깊게 탐구하는 시화 작업을 이어받고 있다. 물론 본장에서는 박찬선 시에 나타난 생활상, 문화상, 역사상, 인간상, 미래상 등을 서술하지는 않는다. 한 시인을 조명하는 시인론詩人論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은 제2,3,4장에서 여러 시인들의 시를 통해 함께 살펴볼 것이다. 다만 본장에서는 박찬선 시인이 바라본 상주 공간 속의 자연관 생활관을 간략하게 짚어보고자 한다.
잔 돌 비치는/ 서보西洑 구슬물이/ 독경讀經을 하고 있다.// 주위의 나무들도/ 합장合掌을 하고/ 머릴 조아리며/ 산으로 하늘로 오르고// 깃털 고운 묏새가/ 잠자는 빛을 물어/ 사방에 퉁기면// 묵은 잠에서 깬 대지大地는/ 기지개를 하며/ 성큼 다가오지만// 무심결에 돌아누운 강기슭/ 그 시린 언덕을/ 자꾸만 덮어 주는 산자락// 방금 나들이를 마치신/ 북장사北長寺 괘불掛佛이/ 빙긋 웃고 있다.
──박찬선, 「상주(3)-북장사 괘불」(1986) 전문
서보는 상주의 유명한 시냇가의 명칭이다. 그 물이 맑고도 시원해 상주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서보냇가는 깊은 골에서 발원한 시냇물로써 사시사철 상주 마을들을 적시고 상주의 그 너른 들판을 적셔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생명의 젖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보냇가는 마을과 사람과 사물들을 닦아주고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한다. 그런 서보가 이제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고 있다. 봄의 서보냇가는 어떤가. 예외 없이 마찬가지의 기능을 한다. 잔돌이 훤히 비칠 정도로 옥구슬 같은 서보냇가는 봄을 맞아 생명을 깨우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겨울 동안 얼음으로 동면하던 그 서보가 몸을 일으켜 묵은 잠을 자고 있는 대지를 구슬 같은 목소리로 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깨우는 소리가 독경을 닮은 소리라는 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독경은 스님이 경전을 외울 때 내는 소리를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서보냇가는 자연적 층위에서 인간의 층위, 그것도 세속적 인간과 변별되는 스님의 층위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서보는 세속을 구제하는 스님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나무들이 “합장”하며 “머릴 조아”린다는 언술이다. 스님의 독경과 나무의 합장은 대지의 모든 생명들을 “하늘”로 향하여 상승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괘불 또한 이러한 생명의 발돋움을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서보는 자연적 세계가 아니라 불교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된다. 아마도 그것은 우연적인 산물이 아닐 것이다. 상주에는 예부터 불교적 문화가 꾸준하게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남장사, 북장사, 청룡사, 갑장사 등 유명 사찰이 많은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결국 상주는 자연을 불교적 시선으로 보는 자연관을 갖게 된 셈이다.
상주 사람들은 가슴 속에
노래 하나 간직하고 삽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노래 하나 간직하고 삽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이전
까마득한 옛부터 부르던 노래
할아버지는 구천에 계셔도
노래는 살아
외로운 가슴 따뜻하게 열어 줍니다
오뉴월 허리 아픈 모심기의 무논에서
노래도 함께 땀 흘리는 푸른 줄 넘기기
그리운 이의 가락으로 이랑을 넘는
타는 혼불 백성의 노래여!
──박찬선, 「채련요採蓮謠에 부쳐」(1999) 전문
익히 알고 있듯이 상주 공간은 너른 평야를 가슴에 내재하고 있다. 그 드넓은 평야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풍요를 주는 매우 귀중한 보고寶庫이다. 그러므로 이와 연관된 일이 상주 사람들의 생활 관습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불교와 연관된 문화가 자연의 세계를 불교적 표상으로 만들었듯이, 논농사와 관련된 문화는 노동요를 “백성의 노래”로 만들어 놓았다. 가령, “오뉴월 허리 아픈 모심기의 무논에서” 부르던 “노래”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계속 전승되어 상주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불리어지고 있는 노동요는 몇몇 사람들만 부르는 게 아니다. 모심기 노동자들만 부르는 게 아니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상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노래 하나씩은 다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가슴 속에 그 노래를 간직하고 있다. “백성의 노래”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의 생활 중에서 부르는 그 노래는 외로운 가슴을 따뜻하게 열어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열어주는 에너지가 되고 있다,
내 고장 사람들은 우복동을 압니다
막연히 어디엔가 있을
우복동을 압니다
그러나 아무도
우복동을 가본 사람이 없습니다
(…중략…)
어느 산 너머
어느 개울 건너
정치도 전쟁도 부자도 없는
근심 걱정도 없는
우복동이 있다고 믿습니다
꽃 피고 새 우는
살기 좋은 마을이 있다고 믿습니다
내 고장 사람들은 우복동을 그리며 삽니다
땀 흘려 일하고
순하게 소를 키우며 삽니다
내 고장 사람들은 우복동을 압니다
그러나 참으로
내 고장 사람들은 눈 앞의 우복동을 모릅니다.
──박찬선, 「상주(53)-우복동 이야기」(1986) 일부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현실적인 고통과 아픔과 상처와 슬픔이 있기 마련이다. 상주 공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하나 다른 점은 그에 대한 대처 방법이 여느 공간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상주 사람들은 현실 생활을 도피하거나 부정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한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니라 실제로 상주 어딘가에 유토피아로써의 마을이 있다고 믿고 사는 것이다. 긍정적인 미래를 설정해 놓고 있는 셈이다. 그 유토피아로써의 공간이 바로 ‘상주의 우복동’이다. 예의 그 우복동은 “정치도 전쟁도 부자도 없는/ 근심 걱정도 없는” 동네이다. 상주 사람들은 그것을 믿으며 “땀 흘려 일하고/ 순하게 소를 키우며”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다. 현실을 이길 힘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문제는 그러한 우복동을 가본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꿈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것이 꿈이 아니고 실체(현실)라고 역설한다. 곧 상주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존의 공간 그 자체가 바로 우복동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배산임수의 상주 공간, 삼백의 상주 공간 그 자체가 바로 지복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2. 사람의 심성을 기르는 삼백의 시공간
상주 공간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는 뭐니뭐니 해도 삼백三白이다. 쌀, 누에, 곶감이 으뜸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백이 거저 쉽게 만들어진 소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연공간이 그냥 선물로 사람들에게 준 산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삼백이 되기까지에는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과 고통과 아픔과 상처가 지불되었다. 다시 말하면 쌀, 누에, 곶감을 잘 만들어내기 위한 한없는 정성과 각고의 사랑이 투자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투자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삼백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태풍 「베라」가 지나간 날/ 흙 묻은 베잠뱅이 찢어진 옷자락으로/ 「베라」보다 더 큰/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시달리다 지친 벼이삭들이/ 머리 풀고 드러누운 맥빠진 들판에서/ 한아름씩 벼포기를 안고 씨름하다가// 문득/ 지난 해 열병으로 잃은/ 막내 아이의 얼굴// 흙무더기 속에서/ 그래도 질기게 달려있는 벼이삭을 보면/ 지친 팔뚝으로/ 밉도록 다시 힘이 오르고// 풋밭 넘어진 고추대며/ 부러진 감나무 가지를/ 막내아이 뜨거운 이마/ 정신없이 만지듯// 허리춤 끌어 올리고// 다시 일어서는 뜨거운 가슴
──김재수, 「농부(14)」(1987) 전문
논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된 노역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 재해가 주는 막심한 피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논에 대한 사랑 없이는 농사를 감히 지을 수가 없다. 강조하면, 자식을 사랑하듯이 논을 사랑해야 농사를 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 알 수 있듯이, 가끔씩 찾아오는 태풍은 농부들의 마음을 온통 절망과 상처로 몰아넣는다. 지금은 태풍 베라가 잘 익어가던 벼이삭들을 모조리 넘어뜨리고 위세당당하게 지나갔다. 벼이삭들은 거의 다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농부들은 주저앉아 탄식할 겨를도 없이 열병으로 죽어가던 자식을 살리듯이 벼이삭들을 안아 일으켜 세우고 있다. 지친 팔뚝으로 온 힘을 다해서 말이다. 태풍이 밉지만 저주하지 아니하고 죽어가던 논을 생명의 논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논은 자신의 목숨과도 같기 때문이다.
새벽/ 둔덕길은/ 찔레향이 하얗다// 간밤을 설치게 했던 하우스재배 사과 배 포도나무 공포감도 위기감도 자꾸만 무뎌지는 수입 농산품, 선대先代 긴 한숨 같은 들바람이 불어올 때 경운기 코를 잡고 힘껏 시동을 건다 눈부신 쟁깃날로 검은 땅 독초 잡초 깊이깊이 갈아엎어 남아있어 죄가 된 아픔도 설움도 갈아엎어 갈아엎어// 지친 넋/ 켜켜이 일어서는/ 봉답마다 흙의 파도여
──유재호, 「논을 갈며」(2013) 전문
예의 농사의 어려움은 태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글로벌시대, 곧 세계화시대도 논밭의 농사에 큰 어려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상주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쌀뿐만 아니라 이제는 사과, 배, 포도 등 거의 모든 작물이 싼 가격에 수입되고 있으니, 그 경쟁력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하우스재배를 해도 이익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농부들의 수익이 “한숨”만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에 놓여있다. 그렇지만 아직 흙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시동을 건 경운기의 쟁깃날로 외세의 상징인 독초, 잡초, 내면의 상징인 아픔, 설움 등을 모조리 갈아엎고 있기 때문이다. 갈아엎은 흙에서는 희망의 상징인 새생명이 다시 돋아나게 된다. 흙을 사랑하는 한 생명은 영원히 솟아나는 것이다.
삼대가 살던 흙집 오래도록 비우더니// 하루해에 헐려 오도카니 남은 우물// 어두운 우물 속으로 달빛 한 점 이운다// 가슴에 자리 잡은 빈 그릇 하나처럼// 꿈속 빈집에는 밤도 서둘러 오고// 우물엔 게단 오르는 기억의 별무더기
──신순말, 「우물」(2013) 전문
흙을 영원히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다.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흙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도 있다. 상주 공간도 예외는 아니다. 생명의 뿌리인 집을 비우고 타향으로 떠난 삶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시에서도 보면, “삼대가 살던 흙집”을 버리고 온 가족들이 떠났다. 남은 것은 우물뿐이다. 예의 우물은 생명수이다. 그런 만큼 그 우물은 삼대에 걸쳐 그 모든 가족들에게 생명을 주며 존재해온 셈이다. 뿐만 아니라 우물은 거울의 기능도 한다. 그런 만큼 그 우물은 날마다 가족들의 얼굴을 비춰주는 밝고 환한 거울의 기능을 해온 셈이다. 그런데 이제 가족들이 사라지자 그 우물도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생명을 상징하는 밝은 우물이 아니라 죽음을 상징하는 어두운 우물이 된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에 따라 빈 집의 우물을 차지한 달빛과 별무더기는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게 하는 이미지로 작용하게 된다.
초벌매기 벼포기 쓰다듬는/ 병구아범/ 새참 광주리에 눈길 자주 가고/ 아낙 치마꼬리 졸졸이며 따라온/ 봇도랑은 그만 까르르/ 웃음소리에 양지마 너른 들은/ 노루잠에서 깨어난다/ 달빛은/ 바람이 일적마다/ 논배미를 기어나와/ 천상의 순리를 얘기하고/ 목매기 송아지/ 풀잎에 감추인 전설에/ 흠칫 놀란다.// (…중략…) // 떠오르는가/ 들판 저편 높은 하늘에 소나기 구름이 곤두서고/ 한바탕 바람이 아우성치며 몰려들 때/ 농심을 살찌우는 황토의 매캐한 살내음을/ 도심의 스카이 라인 위에서/ 자네의 흰 손은 무엇을 움켜쥐고 있나/ 맞잡았던 내 손의 체취인가/ 우리네 터의 비릿한 밤꽃 향내인가// 자네에게/ 흙 한 줌을 보내네/ 오거던 포장을 풀지말고/ 어디쯤의 흙일까 내음을 알아보게나/ 동구밖 입술을 붉게하던 뽕나무 밭일까/ 연둣빛 사랑을 속삭이던 왕릉가일까/ 감꽃 줍던 예쁜이네 과수원 쯤일까/ 터를 지킴은/ 단지/ 내 자식과/ 자식의 자식과/ 또 자식의 자식에 대한/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끈끈한 정 때문이라네.
──신동한, 「터를 위한 단상」(1994) 중에서
예의 상주 공간에는 흙을 버리고 떠난 사람도 있고, 흙을 사랑하며 흙 속에 사는 이들도 있다. 어느 쪽이 더 현명한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흙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농부들은 생명의 충만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초벌매기는 하기 힘든 육체적 노동이지만 그래도 농부들은 마치 잔치를 여는 듯이 일을 한다. 농부의 모습이 그러하고, 새참을 광주리에 넣고 가는 아낙의 모습이 그러하고, 거기에 참가는 의인화된 봇도랑이 그러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밤에는 달빛이 참가하고, 낮에는 송아지도 참가한다. 요컨대 천지인이 융합된 잔치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아무 갈등이 없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농부의 한 친구는 이러한 세계를 버리고 도시로 떠난 것이다. 농부에 의하면, 농촌과 도시는 모든 것이 대립한다. 농부의 손은 검은 손이지만 도시의 손은 흰 손이다. 농부는 황토의 매캐한 살내음을 맡지만 도시인은 아스팔트의 매캐한 오염의 내음을 맡는다. 전자는 생명의 충일이고 후자는 생명의 억압이다. 그래서 농부는 도시의 친구에게 “흙 한 줌”을 소포로 보내게 된다. 흙은 바로 생명을 상징한다. 그 흙을 통해서 친구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농부는 생명의 근원인 흙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흙을 지킨다는 것은 후손들에게 그 생명을 지속적으로 전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농부는 그 사명감으로 살고자 한다.
무논은 평평하다/ 삶아 놓은 무논은 마당이다/ 운동장이다/ 거기 한 그루 두 그루/ 잘 자라는 벼여!/ 뜨거운 태양/ 따끈한 물/ 개구리밥 잎줄기 깔리고/ 올미, 고랭이, 너도방동사니, 나도방동사니 어울려 자라고/ 논둑이 있는 저만치까지/ 물은 기울지 않고 찰랑인다/ 그 벼는 그렇게 사이좋게 자라서/ 평평한 상床을 차리는 것인데/ 찬밥, 더운밥, 진밥, 식은밥, 마른밥, 고두밥/ 차별이란 무언가/ 따끈한 물/ 평평한 무논에서 자란 벼의 꿈/ 이 가없는 세상에/ 우리들 밥상처럼/ 평등한 꿈이여
──임술랑, 「무논의 꿈」(2006) 전문
농부가 그 사명감을 가질 때, 상주의 들판은 생활의 터전인 “마당”이 되기도 하고 놀이의 터전인 “운동장”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마당과 운동장에는 벼만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개구리밥풀, 올미 등 여러 식물들이 함께 자란다. 벼만을 위한다면, 오로지 수확만을 위한다면, 벼 이외의 모든 잡풀은 농약으로써 그 생명을 소멸시켜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태환경을 중시하여 인간중심적인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모든 생명을 차별하지 않는 생명 중심주의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벼는 차별 없는 밥상을 꿈꾼다. 즉 “찬밥, 더운밥, 진밥, 식은밥” 등을 구별하지 않고 오로지 따스한 생명의 밥만을 차리길 꿈꾼다. 농부는 벼의 꿈처럼 “우리들의 밥상”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즉 생명의 나눔을 통해 모두가 하나로 평등해지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뽕잎 서너 장 하늘로/ 얼비치던 가난이// 두어 층 채반마다/ 아지랭이로 고물대더니// 하얗게 울음 벗기운/ 손마디로 앓고 있다.// 보리 이랑 속살들이/ 바람에 풀려나면// 그 눈에 일렁이는/ 가슴 속 허물만큼// 넉넉히 봄틀 문간에/ 숨결로 핀 목화木花여.// 포름한 실비단 꿈/ 깃에 꿰어 날다가// 낮달로 목청 거둬/ 둥지 틀고 앉았다가// 생각은 은하물에 잠긴/ 저 세상의 조약돌.
──권형하, 「누에를 치며」(1987) 전문
제비 입새 닮은 잎사귀들/ 그 파릇파릇한 것들./ 하늘 슬쩍 내려놓고 부채질 하는 것들./ 감꽃 하얗게 피면/ 왠지 눈물 날 것 같은/ 상주 하늘/ 휑하니 빈 툇마루/ 등불 환하게/ 마을길로 밝혀들어/ 잊었던 소식들을/ 시렁마다 매다는 것들/ 기적소리 높이 날리던 먼 하늘로/ 기러기 몇 마리 날아올라/ 까치집 처마 끝마다 달아 올리고/ 너븐 들녘 경전으로 읽던 것들./ 이 밤은 산마루 넘던/ 하얀 눈들이 무릎 다 깨지도록/ 마당을 덮고 덮다가/ 순한 소처럼 앉아 있는 것들.
──권형하, 「감골」(2014) 전문
주지하다시피 상주에는 쌀농사와 더불어 고치농사, 감농사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지금은 고치농사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감농사는 여전히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삼백의 유명세도 현실생활의 변화와 그 영향에 따라 다소 간의 차이가 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고치농사에 대한 기억과 애착은 상주 사람들에게는 여전하다. 익히 알고 있듯이 고치농사는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는 농사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만 오직 고치농사를 통하여 돈을 벌고자 했던 것만은 아니다. 논을 사랑했듯이, 뽕나무를 사랑했던 그 마음은 뽕잎을 먹고 자란 고치의 집을 “숨결로 핀 목화”로 볼 수 있게 했다. 고치의 집을 바로 돈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마음에 의해 목화의 상상은 “실비단 꿈”으로 이어지게 되고, 또 그 꿈은 새처럼 비상하여 낮달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하늘 위의 조약돌이 되어 하얗게 수정처럼 빛나고 있다. 이처럼 고치 농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동심과 탈속의 순수한 세계로 이끄는 기능을 하고 있다.
감 역시 마찬가지이다. 매우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상주를 잠시 떠나 있어도 상주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감나무만 보면 바로 상주를 떠올린다. 그 정도로 감나무는 상주 사람들의 몸과 같은 존재이다. 상주 아닌 다른 곳에서 “감꽃 하얗게” 피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상주 하늘”을 떠올리는 것도 그래서 그렇다. 예의 상주의 감꽃은 마을의 등불 기능을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리는 곶감은 잊었던 소식을 하나하나 떠올려주는 기능을 한다. 부연하면 인정을 다시 살려내는 기능을 한다. “시렁마다 매다는 것들”과 “처마 끝마다 달아 올”린 것들이 다름 아닌 곶감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인 앞에는 감꽃들이 피고 있다. 그 감꽃들은 눈처럼 “마당을 덮고 덮”고 있다. 한 집이 아니고 마을 전체가 말이다. 소처럼 순한 상주의 감골로써 말이다.
<감> 알몸 부끄럼없이/ 미인대회 열렀디여// 어떤건 멋을 부려/ 먹칠 한것 더러 있고// 골마다 무리 무리지어/ 속엣 맘도 밝힌다
──민병덕, 「가을 무대 중에서」(1994) 일부
감꽃이 지고 감이 차츰 익어가는 가을이 오면, 감나무에는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주홍색의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미인대회에 참가한 미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얼굴도 아름답고 피부도 윤기로 빛나는 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미인대회에서는 자기의 미적인 개성을 발휘하기 위해 머리 스타일이나 의상 디자인을 파격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더욱 조명 받기도 한다. 그런 것처럼 주홍색감도 자신의 얼굴에 먹 같은 색깔을 칠하는 경우가 있다. 상주에서는 이것을 먹감(먹칠한 감)이라고 한다. 맛은 단연 최고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미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맘을 속이면 진정한 미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미인인 셈이다. 상주의 미인인 주홍색감은 어떨까. 그것은 “속엣 맘도 밝”히 드러내는 진솔한 미인이다. 그런 미인을 보고 화내는 사람 있을까. 없다. 그래서 상주의 미인인 주홍색감은 사람들의 심성을 부드럽고 싱그럽게 만들면서 진솔함도 드러내게 만든다.
3. 문화적 세계를 통한 일상적인 삶의 이해
앞에서 조금 언급 바 있듯이, 상주는 문화적 공간으로써 그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민담, 전설, 설화에 따른 유적지도 많이 있고, 유교문화에 관련된 문화재도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인들의 고택도 많다. 그리고 종교 중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도 많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것을 뽑는다면 불교 문화재가 될 터이다. 이것은 불교를 통하여 삶의 세계를 많이 이해했다는 뜻이 된다.
북장사 부처님은 밤잠 잘 주무실까?/ 천주산 소쩍새 밤새 외는 염불소리/ 허공에 맴을 돌다가 잎새가 돼 앉은 곳// 땡그렁 풍경소리 처마 끝에 정다웁고/ 산 첩첩 북장은 적요로와 돋보인다/ 이 밤사 우리 부처님 극락문을 여신다.
──고지연, 「북장의 밥」(1993) 전문
윗절에서 아랫절을 내려다보노라면/ 우거진 신록이 극락을 보여준다/ 유월은 산속 깊이 스며 경전을 펼친다// 스님은 자연 앞에 무심히 등 돌리시고/ 홀로 가슴 안의 새 잎새만 틔우시며/ 자신을 들여다보는 그 정진에 깊어라// 나도 가다듬고 무릎 꿇어 앉아본다/ 스스로 빛나는 신록을 어찌 닮을까/ 은혜를 잊지 마라고 나무가 타이른다
──김경자, 「남장사 영산전에서」(1999) 전문
북장사, 남장사는 상주의 여러 사찰들 중 하나이다. 불교를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문화적 공간으로써 인식하고 그곳을 찾아 종종 휴식을 즐기곤 한다. 그 정도로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어떻게 그 공간을 인식하고 있을까. 먼저 시조로써 북장사의 밤을 읊은 시인의 반응을 보자. 예의 북장사의 밤은 대립적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현현한다. 사람 중심으로 보면, 북장사는 인적과 소리가 없는 침묵과 적요의 하강공간이다. 반면에 자연 중심으로 보면, 북장사는 소쩍새와 풍경이 울고 울리는 소리의 상승공간이다. 전자는 스님들이 잠들어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고, 후자는 소쩍새와 풍경이 염불을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립적인 모순의 시각에 부처님이 극락문을 연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누가 극락문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남장사에 대한 시조 역시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 “윗절”과 “아랫절”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립에 의해 위의 절은 세속적 공간이 되고, 아래의 절은 탈속적 공간, 곧 극락 공간이 된다. “아랫절”은 이미 “우거진 신록”으로써 “극락”과 “경전” 그 자체가 되고 있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것에 따르면, 당연하게 “아랫절”에 있는 스님들은 모두 극락의 삶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님은 그런 극락(신록=자연)을 등지고 자신을 살펴보는 정진을 행하고 있다. 이것은 스님이 “아랫절”을 속세공간으로 본다는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스님은 모순적 공간에 있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나무가 다시 “은혜를 잊지 마라고 타이른다”. 결국 사찰을 통한 인식은 다른 것이 아니다. 현실과 이상, 이 세상과 저 세상, 소유와 무소유의 대립적 삶, 모순적 삶을 통합하고자 하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 된다.
상주군 함창읍 윤직리/ 회나무 아래에는/ 용수를 쓰듯 솔을 덮어쓴 바위가 있습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는/ 새솔의 새옷을 갈아입고/ 정갈하게 차린 제상을 받습니다/ 동리에서 가장 정한 남정네로부터/ 잔을 받고 너부죽이 하는 큰절을 받기도 합니다/ 어느 해던가 치성을 그르자/ 바위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마을에 연이어 헛간채에만 불이났읍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두 우물에 물이 말랐습니다/ 마을은 혼비백산/ 금새 벌집 쑤신 꼴이 되었읍니다/ 이후 대보름에는 빠짐없이/ 정성을 받고 있습니다
──박찬선, 「옷 입는 바위-상주(78)」(1987) 일부
상주군 화남면 임곡리/ 낮은 산 기슭/ 구령산을 향해 앉은뱅이꽃처럼/ 땅에 앉은 집/ 문 없는 집에는 하늘이 내려와 산다/ 텃밭에는 겨울 난 마늘이/ 풋풋하게 솟아 있다/ 거동 없는 날에는 쾅쾅/ 바위의 발톱을 쪼아냈다는 부엌/ 끄으름이 덥혀 동굴같이 어둡다/ 하지만 청솔가지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묘지 다듬으려 산으로 가고/ 밝은 햇살이 몸 낮추어/ 들어오는 집/ 고개 넘어 돌아서니 꽃씨처럼/ 훨훨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박찬선, 「하늘 오르는 집-동학 농민군 대장 강선희의 생가」(1994) 전문
또한 상주 공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민담, 전설, 신화에 대한 문화적 공간과 의로운 삶을 살다간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문화적 공간이다. “상주(78)”에서는 대표적으로 민담에 대한 문화를 탐색하고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회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이다. 이 바위는 “솔을 덮어쓴” 신령한 “바위”로써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의 정갈한 제삿상을 받는다. 일종의 마을의 수호신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어느 해에 치성을 거르자 화 난 바위가 마을에 불이 나게 하고 우물이 마르게 하여 큰 재앙을 내리고 만다. 이에 사람들은 다시 대보름마다 치성을 드리게 된다. 이러한 민담은 자연의 특이한 속성과 마을의 불가해한 현상을 연결시켜 그것을 이해하려는 심리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농학 농민군 대장이었던 ‘강선희 생가’는 현실성이 강하게 풍기는 이미지를 준다. 대장이라는 기개에 걸맞지 않게 그의 생가였던 집은 현실적으로는 “앉은뱅이꽃처럼” 작고 초라하다. 그을음 덮인 부엌도 동굴같이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장을 낳을 수밖에 없는 기품이 서려있다. 예전에 “바위의 발톱을 쪼아냈다는 부엌”의 놀라운 힘이 그러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밝은 햇살이 몸 낮추어” 집으로 “들어”간다는 높임의 자세가 그러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그 이면을 보면, “꽃씨처럼/ 훨훨 하늘로 오르는” 천상의 집이 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천상의 기운을 받은 집에서 의로운 인물이 나온다는 뜻이 된다. 이처럼 상주 사람들은 현실의 삶을 그 너머에 있는 삶과 연관시켜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4. 자연을 통해서 배우는 삶의 섭리
상주는 배산임수의 공간이기 때문에 도처에 많은 산과 많은 나무들과 많은 시냇물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많은 시냇물을 모아 거느리는 강(낙동강)도 소풍가듯이 길을 나서면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공간 속에서 사시사철을 생활하는 상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것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좀더 강조하자면 그 많은 자연속의 사물들과 한 몸이 되어 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삶의 양식도 바뀌게 되고, 그 양식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연의 세계는 사람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다스려나가는 어버이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상주 사람들 역시 그러한 자연을 통해서 삶의 섭리를 하나하나 체득해 나가고 있다.
백옥같이 투명한/ 혈관을 잇고/ 신神은 웃고 있는가/ 2월의 강 아래.// 아직도/ 근엄하시고 단정하여라./ 젊디젊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누워 있구나/ 2월의 강江이여// (…중략…) //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근엄하신 아버지의 자세를 한/ 2월의 강가에 서면/ 오늘도 바람에 날리는 은빛 머리칼,/ 한없이 안온하면서도/ 서늘한 감촉으로 느껴져 오는 아버지의/ 그 옷자락, 나는 강江자락에 매달리어/ 지은 죄를 씻는다.
──김연복, 「2월의 강가에 서면」(1994) 일부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따라/ 족대 들고 찰방찰방/ 고기를 후려요./ 숨었던 고기가 다이빙해요.// “어, 저기 있다.”/ 물고기들이/ 요리조리 도망을 치면/ 우리들은 족대를 흔들며/ 찰방거려요.// “아 잡았다.”/ 팔딱팔딱/ 물고기들이 그물 옷 입고/ 패션 쇼를 벌이면/ 우리들은 깔깔거리며/ 손뼉을 쳐요.
──김숙자, 「고기잡이」(2014) 전문
상주의 그 너른 들판을 두루 적시고 흐르는 낙동강은 상주의 생명줄이다. 그래서 강은 언제나 살아있다. 살아 움직이면서 사람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그러나 그 생명은 사람의 생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강은 “혈관”을 지니고 있지만 “신神”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근접 못할 천상의 신은 아니다. 그 신은 바로 단정하고 근엄하면서도 한없이 안온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2월의 얼음을 안고 있는 강의 모습이 그러하다. 겨울의 강, 그것은 죽지 않고 생명을 키우며 다가올 봄을 생각하며 흐른다. 그런 것처럼 겨울의 강을 닮았던 육신의 아버지들도 가족들의 생명을 키우며 바람막이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생명줄의 고마움을 모른 채 살아왔다. 시인이 “죄를 씻는다”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겨울을 살며 몰래 베풀어준 강과 아버지(근엄함 속의 따스한 부정父情)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순간이 된다. 말할 것도 없이 강의 자식들인 시냇물 또한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 된다. 겨울강이 아버지로 상징된 만큼 여름의 시냇물은 아이들로 상징된다. 아버지가 단정하고 근엄한 모습이었다면, 아이들은 깔깔대고 손뼉 치는 모습이다. 시냇물이 없었다면,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강이 존재하고 아버지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예의 시냇가는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는 신나는 놀이터다. 아이들은 그 놀이를 통하여 자연과 한몸이 되는 행복한 순간을 경험한다. 그것을 동심이라 부른다. 매운탕을 위해 물고기를 잡지 않는다. 단지 재미를 위해서 팔짝팔짝 뛰는 물고기를 잡고 있다. 이런 아이들이 크면 다시 단정하고 근엄한 아버지가 될 것이다. 이처럼 강과 시냇물은 아버지와 아이의 표상으로써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양육하는 존재로 작용한다. 곧 자연과 일체하게끔 만든다.
가을 햇살이 놀다 간 갑장산길을/ 다람쥐처럼 산을 오른다.// 야아 호오―,/ 야아 호오―,// 억새 길, 단풍 길/ 헤쳐 나가면// 솔잎바람 소올솔/ 흰 구름 동동,// 들국화 미소짓는 언덕을 지나/ 으름 다래 맛 보며// 향긋한 풀 내음이/ 메아리에 묻어오는 갑장산길을/ 다람쥐처럼 산을 오른다.
──박정구, 「즐거운 하루-갑장산을 오르며」(1993) 전문
떡갈나무가 비를 맞으며/ 뭐라고 했을까/ 풀잎은 뭐라고 했을까/ 저마다 외치는 소리를/ 나는 왜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을까./ 자연이 내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열어 주소서!// 저 많은 나무들이/ 하나같이 서둘지 않는다./ 그러나 쉼없이/ 잎을 피우고 가지를 벋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밤낮 한 자리에서/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 골짜기의 숲에/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을/ 내 가슴 속에 뿌리 내려 주소서!/ 개쑥부쟁이가 아무데나 흔하지만/ 송이마다 정성스레/ 촘촘히 꽃잎을 달고 있더라./ 향기가 나더라./ 개쑥부쟁이를 만났을 때/ 아름답게 느낄 줄 아는/ 마음을 내게 주소서!
──최춘해, 「숲속에서 기도」(1993) 일부
상주를 흐르는 수평적인 강과 시냇물을 수직으로 곧게 세운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하늘로 향하여 치솟는 것이 될 터이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타고 올라갈 수 있을까. 간단하다. 수직적인 높이를 지닌 산이나 나무를 타고 오르면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강과 시냇물을 수직적인 코드로 변환하면 곧 산과 나무의 코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강과 시냇물은 산과 나무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아니다. 비슷한 존재, 곧 사촌지간인 셈이다.
그래서 시냇물에서 물고기처럼 놀던 아이들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어른들을 산에 올려다 놓으면 모두 어린 다람쥐가 된다. 곧 물고기가 다람쥐 코드로 변환된 셈이다. 시인은 그런 다람쥐가 되어 신나게 가을의 갑장산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수직적인 높이를 오르는 것이다. 그 높이는 지상의 세속적인 세계를 떠나 천상의 탈속적인 세계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나게 “야아 호오―” 하는 것이다. 더욱이 아름다운 단풍 길이니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즐거움은 솔바람, 흰구름, 들국화 등 모든 사물들과 하나로 융합하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주듯이 산은 동심의 시인에게 “으름과 다래”까지 먹여주고 있다. 모성의 산으로써 말이다. 이렇게 상주의 가을산은 모성의 산으로써 탈속한 세계를 선물해 주고 그로 하여금 순정한 마음을 갖게 해주고 있다. 물론 그 순정한 어린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면, 강의 아버지를 보듯이 산의 나무를 쳐다보게 될 것이다. 바로 「숲속에서 기도」는 어른으로서 나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어른은 그것을 통해서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듣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달라고 신에게 간구한다. 또, 밤낮 한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까지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고는 언제나 숲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마지막으로 흔하디흔한 쑥부쟁이지만 정성스레 촘촘히 꽃잎을 달고 있는 것을 보고는 편견 없이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한다. 이러한 간구를 종합하면, 자기 이기적인 인간의 편협한 생활 방식을 버리고 유기적 생명으로 어우러진 평등한 자연의 생활방식을 체득하고픈 욕망을 드러내준다. 이처럼 상주의 산과 나무들은 부조리한 인간의 모든 욕망을 씻어주고 정화해주는 기능을 한다.
가지마다 열어내는 어린 잎/ 대지와 하늘과 수목들이 한데 어울려/ 내 눈 속이며 이 깊은 겨울 은밀히/ 찬란한 봄 같은 개국의 음모를/ 숙덕거리는 소리 들었습니다
──조희옥, 「배회의 편린」(1999) 일부
먼발치서 산이 벙글고/ 잔가지 송송 잎이 솟아/ 진달래 개나리로/ 담장을 촉 틔우고/ 후두둑/ 빗줄에 터져 오르는 목련 봉오리
──김미옥, 「봄뜰에 서면」(1999), 일부
주지하다시피 상주에 봄이 오면, 산에서부터 강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생명들이 깨어나며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그 모습과 그 소리가 너무나 일상적이고 예사로운 것이 되었지만, 그것이 주는 무의식적 영향은 지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연하면 일상생활에 아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실은 가장 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배회의 편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생명들이 나의 눈 속으로 들어와 나의 생명이 되고 있다. 그것은 나의 몸을 생명으로 열어주는 “개국의 음모”가 된다. 「봄뜰에 서면」도 마찬가지다. 몸이 집으로 확대 되었을 뿐이다. 먼 산의 벙그는 생명이 마을로 다가와 담장에 생명을 불어넣고 집에도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먼 산에 있는 셈이다.
이처럼 상주의 일상공간조차 지천으로 펼쳐진 자연의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상주 공간 안에 있을 때에는 그러한 영향을 모르고 생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났을 때에는 어느 날 문득 그러한 세계가 생각날 수도 있다. “아버지는/ 벌써 파주로 떠났다 한다/ 조금만 일찍 와도 만났을 텐데/ 나무가 웃으며 말했다 고향 따앙이 여어기이서/ 몇리이나 되나 몇리나 되나 몇리나되나……/ 학교 갔다 오는 아이들이 노래 불렀다/ 내 고향은 파주가 아니야 경북 상주야”(이성복, 「꽃 피는 아버지」(1980) 일부)에서 알 수 있듯이, 타향인 파주에서의 ‘웃는 나무’와 ‘아이들의 동요’를 통하여 고향 상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타향에 살아도 고향의 일상 공간은 늘 변함없이 그대로 기억 속에 보존되는 법. 그래서 오랜 세월 뒤에 다시 고향에 왔어도 그 고향의 일상 공간은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오고 너무나 아름답게 여겨진다. 이성복 시인도 그러했다.
1998년 1월 2일 선산에서 상주로 통하는/ 25번 국도에서 개나리 덤불이나 관목숲,/ 하다못해 갈대까지도 성에로, 서리로/ 하얗게 코팅한 상태에서, 감홍시 같은/ 해는 안개 낀 하늘 위 데구루루 굴러/ 내 차 유리창 앞에 딱 붙어 섰는데, 그것들/ 너무 아름다워 내 눈이 나도 모르게 웃었다/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미치게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전속력 전방위적으로/ 아름다운 것, 왜 어떻게 아름다우냐고/ 물으면, 왜 어떻게 아름답다고 대답할 뿐,/ 코팅한 입으로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성복, 「85-언제나 미치게 아름다운」(2003), 전문
이 고백에서 알 수 있듯이 상주의 일상적인 자연들 가령, 개나리, 덤불, 관목숲, 갈대, 서리, 감홍시, 안개 등은 친숙하면서도 너무나 아름답다. 미치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왜 그럴까. 아마도 고향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주 공간의 시문학, 이것은 어쩌면 문학이라기보다는 생활 자체일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상주를 사랑하는 시인들은 문학을 생활로 하고 있으며, 생활을 문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문학이 하나로 융합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하겠다. 삶 속에서나 시 속에서나 시인들은 상주 공간에 내재한 모든 사람들, 모든 자연들, 모든 사물들, 모든 이야기까지 그 삶의 에너지로 삼고 있다. 그 에너지가 지향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연·인간·문화를 융합하는 유토피아로써의 상주 공간이다.
정유화 / 경북 선산에서 태어났으며 198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떠도는 영혼의 집』, 『청산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 『미소를 가꾸다』가 있고 중앙문학상을 수상했다. 본지 편집위원.